성씨 | 우(區) | |
이름 | 경(景) | |
출생 | 미상, 후한 형주 장사군 | |
사망 | 211년, 후한 교주 남해군[1] | |
경력 | 창오군 도독 |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 형주 장사군(現 후난성 창사시) 출신으로, 교주자사 장진의 부장이다. 창오군의 도독(都督)을 지냈다.2. 생애
주부(朱符)의 후임으로 교주자사에 임명된 장진(張津)은 미신을 믿어 붉은 두건을 둘렀고, 거문고를 타면서 향을 피우면서 도가의 서적을 읽으면서 득도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이러한 장진의 행동은 부장인 우경이 장진을 살해한 원인이 되었던 걸로 추정된다.[2]장진의 사망으로 형주자사 유표는 뇌공(賴恭)를 교주자사로 임명했고, 오거(吳巨)를 창오태수로 보내면서 우경은 오거의 부하가 되었다.
건안 15년(211년), 손권은 보즐을 교주자사로 임명했다. 오거는 보즐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나 보즐은 오거가 딴마음을 품고 있다고 믿었다. 이듬해 보즐은 오거와 우경을 잔치에 초대했는데, 오거와 우경이 보즐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잔치에서 기회를 틈타 둘 다 죽였다.
3. 기타
- 《강표전》에서 장진이 남쪽 오랑캐(南夷)에게 살해당했다고 언급한 점을 근거로 이민족 출신으로 보기도 한다.
- 백가성에는 해당 성씨가 기록되지 않았지만 해당 성씨의 인물이 많이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희귀 성씨로 보이는데, 후한 말 장사군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손견한테 토벌된 우성(區星)과 성이 같으며, 장사군 출신인 점을 근거로 같은 가문이라는 추정이 있다.[3]
- 일본의 논문인 카와테 쇼의 남월 경계 정권으로서의 교지태수 사섭 연구에서는 우경에 대해 상림현의 공조 우련과 장사의 도적 우성을 언급하면서 우씨 성을 가진 인물들을 언급하면서 우경에 대해 형남, 영남에 거주하는 비한인의 유력자층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1] 당시 교주자사 보즐의 잔치에 초대되어 오거와 함께 제거당했는데, 211년에 교주자사의 치소가 창오군 광신현에서 남해군 번우현으로 옮겨져 있었다.[2] 《강표전》에서는 손책이 우길을 살해할 때 "옛날 장진이 성인의 가르침을 버리고 한나라의 법률을 폐하며, 도가의 책을 읽고 제사를 지내면서 교화를 돕는다고 운운하다가 끝내 남이(南夷)에게 살해당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다만 해당 기록은 배송지가 손책(200년 사망)보다 장진이 뒤늦게 죽었다면서 287년에 왕범이 《이주준추》를 올린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장진은 201년에 교주목으로 부임했다며 강표전의 해당 기록을 부정했다.[3] 호삼성의 주석에 의하면 區는 조(鳥)와 후(侯)의 반절로 성이고 여자(如字)라서 우성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