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05:12

찬성(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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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좌찬성1.2. 우찬성
2. 권한3. 관련 문서

1. 개요

찬성()은 조선 의정부에서 정승을 보좌하던 종1품 관직. 지금으로 치면 부총리에 해당한다.

1.1. 좌찬성

左贊成

조선 극초기나 단종조에는 우찬성·명예직 판중추부사가 정1품의 우의정·명예직 영중추부사에 승진하기 위해는 좌찬성을 거쳐야만 하였다. 그리고 이조·병조 판서의 상위에 찬성이나 참찬을 겸직한 판이조사·판병조사가 문선(文選)과 무선(武選)·병정(兵政) 등을 맡아 이조·병조를 지휘하는 실질적인 기능을 발휘한 요직이었다.

1.2. 우찬성

右贊成

좌찬성과 함께 육조판서를 거친 후 정승이 되기 전에 임명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정원은 역시 1인이었으며 좌찬성·좌·우참찬과 함께 정승을 보좌하고 국정에 참여했으며, 정승의 유고시에 그 임무를 대행하였다.

2. 권한

조선 전기에는 육조의 정책인 의정부를 거치는 의정부서사제와 육조의 정책이 바로 국왕에게 보고되는 육조직계제의 관계에 따라 그 기능의 권한에 강약이 있었다. 삼정승의 권한이 강했을 때는 같이 강했지만, 약했을 때는 같이 약했다.

조선 중기 이후 비변사 중심 국정운영으로 의정부 기능이 축소되면서, 품계 자체는 육조 판서보다 높았으나 권한은 종2품 이상이 겸임하는 비변사의 장 비변사제조(備邊司提調)보다 못하였다. 따라서, 중요한 국정 운영 논의에도 참여하지 못했으며, 또 항상 임명되지도 않는 등 유명무실한 한직, 명예직이 되었다.[1]

그러나 1865년(고종 2) 비변사가 폐지되고 의정부의 기능이 다시 활성화되면서 조선 중기 이전 지위와 권력의 회복으로 의정부 폐지 직전까지 그 권력이 계승되기도 하였다. 물론, 케바케인 것이 비변사가 국정운영의 축이였을 때도 벼슬 수행자의 자질, 출신 가문에 따라 때때로 강한 권력을 발휘하였다.

사극에서는 정승 밑의 찬성은 거의 묘사되지 않는다. 삼정승 육판서는 맨날 사극에 나오지만, 판서 위의 찬성은 존재감이 거의 없다.

3. 관련 문서


[1] 반면 삼정승은 비변사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권력을 유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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