魏元丕(? ~ 181)후한 말의 인물.옹주 경조군 사람으로 원비는 자로 비석의 글귀에 휘가 마멸되어 있어서 이름은 알 수 없다.필만의 후손으로 진(晉)나라에 벼슬하고 위 땅에 봉해지자 봉지의 이름을 따서 위를 성씨로 삼아 대대로 이어졌으며, 효렴으로 천거되어 낭중이 되었다가 상서, 시랑, 우승을 지냈다. 매번 선거 때마다 겸손했고 9년이 지나도록 과오를 범한 적이 없었다.모친상을 당하고 복상했다가 끝나자 상서, 시랑을 지냈으며, 특별히 좌승에 임명되었고 이후 양주자사가 되었다가 181년에 병으로 사망했다.그의 전임 자사는 179년에 지낸 주홍으로 보이며, 후임 자사는 확실하지 않지만 기록상 가장 가까운 시기는 양곡이 양주자사로 있다.그가 죽자 문하생과 고리 등이 그를 기려 비석을 세웠는데, 이는 한고양주자사위군지비라 하고 청대의 서예가 전영, 옹방강 등이 평가했다. 본래 유주에 있었다가 비석은 일찍 사라지고 탁본은 북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분류 후한의 인물 181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