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H. 피첸바거 William H. Pitsenbarger | |
본명 | 윌리엄 하트 피첸바거 William Hart Pitsenbarger |
출생 | 1944년 7월 8일 |
미국 오하이오주 피카 | |
사망 | 1966년 4월 11일 (향년 21세) |
남베트남 동나이성 껌미현 샤껌미 | |
복무 | 미합중국 공군 |
최종 계급 | 미국 공군 하사 |
복무 기간 | 1962~19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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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위성도시 피카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 2학년 때 군인의 꿈을 꾸고 그린베레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2년 공군에 입대해 샌안토니오 공군 기훈단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했다. 1963년 파라레스큐에 지원해 육군공수학교, 해척조학교, 구호, 생존과정을 모두 수료했다. 모든 과정을 수료 후 캘리포니아 해밀턴 비행장 소속으로 전입했다.베트남 전쟁 당시 공군과 그린베레가 북베트남 후방, 라오스에서 비정규전을 하던 시기 스스로 자원해 모리스 키슬러 소령이 지휘하는 제38파라레스큐대대 소속으로 참전했다. 참전 후 250번의 임무를 수행했고 생매장당해 죽을 뻔한 남베트남 병사를 구출하기도 했으며 이 공으로 항공 메달을 수여받았다.
1966년 4월 11일 동나이성 껌미현에서 펼쳐진 전투인 애블린 전투에서 베트남군에 포위당해 발이 묶인 육군 제1보병사단 찰리 중대의 구조 요청을 받고 피첸버거가 탑승한 항공구조대 HH-43이 현장으로 향했고 중대 의무병이 피격돼 중태인 걸 알고 피첸바거는 패스트로프를 타고 전투 현장으로 랜딩했다. 헬리콥터의 안전이 위태롭자 본대로 귀대해야 했지만 부상병을 실은 헬리콥터를 떠나보내고 홀로 전장에 남는다.
이 전투에서 약 300번의 구조 임무를 수행하였고 60명이 넘는 병사를 구한다. 부상병 치료와 시신 수습을 도맡았을 뿐만 아니라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자진하여 전투에 뛰어들었다가 결국 베트콩 저격수의 총에 맞아 전사하였다. 현장이 수습되면서 전해지기론 사망 당시 피첸바거가 한 손에는 총을, 한 손에는 구급상자를 꼭 쥐고 있었다고 한다.
전사 후 피첸바거는 영웅적 행위로 공군십자장을 수여받았지만 살아남은 찰리 중대원들과 파라레스큐들은 그 훈장이 그의 행위에 합당한 훈장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들은 피첸바거가 군인으로서 최고 영예인 명예훈장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미국 정부에 끊임없이 요청해 2000년 12월 8일 거의 35년 만에 명예훈장을 추서했고, 그의 부모님이 대신해서 훈장을 수여받았다.
3. 여담
- 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2019년 라스트 풀 메저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