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올랜도 다비 William Orlando Darby | |
출생 | 1911년 2월 8일 |
미국 아칸소주 포트스미스 | |
사망 | 1945년 4월 30일 (향년 34세) |
이탈리아 왕국 토르볼레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최종 계급 | 미국 육군 준장[1] |
복무 기간 | 1933년 ~ 1945년 |
학력 | 포트스미스 고등학교 미국육군사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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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아칸소주 포트스미스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933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포병 소위로 임관했다. 1940년 대위로 진급했고 1941년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하자 제34보병사단장 러셀 P. 하틀의 부관으로 일했다.1942년 소령으로 진급했고 7월 9일 비상설 비정규부대인 제1레인저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500명의 지원자 중 600명을 선발해 스코틀랜드에 있는 영국 코만도 훈련소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고 디에프 상륙 작전에 최초로 투입되었다. 디에프 서쪽에 있는 해안포대를 제압하는 임무를 맡았고 제4코만도와 함께 해안에 상륙해 기관총과 철조망을 훈련받은대로 극복하고 대전차 소총으로 포대를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했다. 당시 디에프 상륙 작전당시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동쪽에 투입됐던 레인저 부대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횃불 작전당시 레인저부대는 오랑인근 아르주에 야간 침투해 교란작전을 펼쳤다. 북아프리카 전역이 끝에 다다르자 레인저부대가 연대급으로 확대편성되었고 1943년 시칠리아 전역에서 최초 상륙부대였고 안치오 상륙작전당시 상륙에 성공했으나 8일 뒤 시스테르나에서 1, 3대대가 추축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전투력이 온전한 4대대도 크게 피해를 입고 부대가 해체되었다.
이후 제45보병사단 179보병연대장으로 임명되었고 재편성을 통해 전투력을 회복했고 안치오 인근의 도시를 점령했다. 도시를 점령후 본국으로 돌아가 전쟁계획부 과장으로 복무했으며 야전을 희망해 다시 이탈리아 전선으로 복귀했다. 당시 제10산악사단장이였던 로빈슨 E. 더프 준장이 트렌토 인근에서 전투 중 부상을 입었고 이에 후임으로 지휘했다. 1945년 4월 30일 전선 시찰중 독일군의 포탄이 날아와 존 에반스 소령과 함께 사망했다. 그가 사망한 이틀 후 이탈리아 주둔 독일군이 항복했다.
[1] 전사 당시 대령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