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 원년(272년)에 아버지 유평이 손호가 정사를 돌보지 않고 노는 것으로 인해 손호가 돌아오지 않으면 여러 신하들과 정무를 약조하기로 했다가 손호에게 알려져 숙청되었지만 유려는 군직에 있었는데, 직책은 수군도독(水軍都督)이었다. 그 해에 서릉독(西陵督) 보천이 반란을 일으키자 육항의 지휘를 받아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출전했는데, 진의 파동감군(巴東監軍) 서윤이 이끄는 파촉 방면의 수군이 건평(建平)에 도달하여 진격의 형세를 갖추자 진서장군(鎭西將軍) 주완(朱琬)과 함께 이를 방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