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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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수나라의 장수.2. 생애
612년에 상서우승을 지내면서 수양제의 명으로 위문승과 함께 요하 동쪽의 백성들을 위무하고 10년의 부세를 면제하면서 군현을 설치하고 관할했으며, 고구려를 공격할 때 상서좌승이 되어 수나라의 별동대에서 위무사를 지냈다.수나라의 고구려 2차 원정 때 을지문덕이 수나라의 군영에 파견되어 그 군영에 가서 거짓으로 항복을 하면서 허실을 보려고 했다. 이 때 우중문은 수양제로부터 고원(영양왕), 을지문덕이 와서 만나게 되면 반드시 그들을 생포하라는 밀명을 받았으며, 우중문은 이로 인해 을지문덕을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유사룡은 이를 굳게 말려 중지시켜버렸다. 이로 인해 을지문덕은 수나라 군대의 허실을 알아보고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으며, 우중문은 을지문덕을 놓아준 것을 후회하고 사람을 보내어 을지문덕을 속여서 다시 오게 하려고 했지만, 을지문덕이 돌아보지도 않고 압록수를 건너가면서 완전히 놓치게 되었다. 결국 고구려 원정이 실패한 후에는 참수당했고, 수는 그 목을 통해 천하 사람들에게 사죄했다고 한다.[1][2][3]
[1] 황명을 거역하면서까지 독단적으로 풀어준 인물에게 국가의 정예병을 몽땅 잡아먹혔으니 이게 다 유사룡 때문이다로 몰리기 좋았으며, 결국 처형당했다. 후대에도 유사룡은 복권되지 못했는데, 이 인물은 죽을 짓을 해서 죽은거지 양광의 폭정으로 인한 희생양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강했음을 보여준다.[2] 하지만 접대의 관습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유사룡의 주장이 마냥 어리석은 것은 아니다. 만약 을지문덕을 붙잡았다면 이후 수나라의 외교 신뢰도는 크게 하락했을 것이다. 또한 그를 붙잡았다 해도 이미 수나라군은 열세에 빠져고 고구려군은 승전에 가까운 시점이라서 붙잡았다 해도 소용 없는 전쟁의 판일 것다.[3] 수양제하고도 상극으로, 수양제는 진왕 시절부터 목적 달성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로 태자와 황제가 되기 위해 자신의 형이자 태자였던 양용을 온갖 모략질을 일삼아서 태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부모에게 착한 아들인 것처럼 연기하고 수문제가 자신의 실체를 알아내자 가차없이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다. 접대의 관습에 매달리는 유사룡과는 성격부터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