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문제가 위운기에게 바깥 일이 편하지 않은 것에 대해 물었는데, 유술은 그 자리에 있었지만 위운기가 유술에 대해 성격이 호방하고 사치스러워 일을 잘하지 못한다면서 그런데도 병권을 쥐고 있어 폐하(수문제)께서 관리를 임명하는 것에 어진 이를 고르지 않았다는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서 이것이 편하지 않은 바라 했다. 이에 유술은 수문제로부터 약이 되는 돌이니 가르침으로 삼으라는 말을 들었으며, 후에 수문제가 백관에서 인물을 추천하라고 하자 유술은 위운기를 통사사인으로 추천했다.
599년에 고경이 여러 차례 독고황후에게 참소되자 하약필, 우문필, 설주, 곡률효경 등과 함께 고경에게 죄가 없음을 알려 고경을 변호했다. 604년 7월에 수문제가 병이 위중해 병상에 눕게 되었는데, 양광이 황제에 등극하기 위해 일을 처리하려고 했지만 발각되었다. 이에 수문제가 문책하기 위해 양광을 불러들이려 하자 수문제의 명으로 원암과 함께 조서를 작성해 양광을 폐위하고 양용을 다시 태자로 세우려고 했지만 양광이 보낸 군사들에게 체포되었다.
수문제 때 난릉공주와 결혼했고 부부와 금슬이 좋았는데, 수양제가 즉위하자 유배되어 죽을 때까지 난릉공주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