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47a0><colcolor=#fff> 출생 | 1890년 3월 7일 |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임하현 수곡동 (현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1] 251번지) | |
사망 | 1965년 6월 3일[2] |
경상북도 안동군 | |
본관 | 전주 류씨[3] |
자 | 성만(成萬) |
호 | 신준(愼寯)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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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2. 생애
1890년 3월 7일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임하현 수곡동(현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251번지)에서 아버지 유장호(柳璋鎬)와 어머니 의성 김씨[4] 사이에서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1919년경 김영기(金榮基)로부터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활동하고 있으나 군자금이 부족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경상북도 안동군 일대에서 간도 독립단에서 발행된 공채를 가지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10월 23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중지로 불기소처분을 받기도 했으나, 이후 체포되었다.
1920년 11월 3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다이쇼 8년 제령 제7호 위반, 문서위조행사 위반, 사기 혐의로 대구지방법원 공판에 회부되었고, 이어 12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문서위조·사기·공갈미수죄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임시정부 군자금 조달을 위해 다시 동지 손영학과 함께 1926년 2월 21일 영덕군 부호 조규한(趙圭漢)의 집을 습격하여 1만원을 요구하던 중 일본 제국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6년 10월 1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강도미수죄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65년 6월 3일 경상북도 안동군에서 사망했다. 198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고,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