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644~713.[1]李嶠. 중국 당나라의 시인이자 관리.
자는 거산(巨山)이다.
2. 생애
수나라의 내사시랑(內史侍郎) 이원조(李元操)의 증손이며, 중국 하북성 찬황(贊皇) 출신이다.시와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당나라 초기 근체시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삼교주영(三敎珠英) 1,300권의 편찬을 주관하였고, 시집으로는 이교잡영(李嶠雜詠)이 있다.
과거에도 합격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안정현위(安定縣尉), 감찰어사(監察御史), 이부상서(吏部尙書), 중서령(中書令) 등을 거쳐 재상도 3번이나 역임하였지만 여러 번 풍파를 겪고 말년에는 좌천된 뒤 세상을 떠났다.
당 고종, 중종, 예종, 측천무후, 현종 등 5명의 황제를 섬기는 동안 의(義)를 버리고 세력을 따랐다는 평가가 있다.#
3. 여담
이교와 더불어 두심언(杜審言), 최융(崔融), 소미도(蘇味道)를 문장사우(文章四友)라 부른다. 이들 모두 당나라 초기 궁정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다만 이들 중 두심언의 시가 가장 문학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현대중국의 교육과정에서는 소학교에서 이교의 시 하나를 배운다.
[1] 다른 자료에서는 645~714년이라 표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