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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3년 12월 1일 |
경기도 장단 강남 독정 | |
사망 | 미상 |
사망지 미상 | |
서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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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의 의병,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2. 생애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해산된 이래 전국의 의병은 더욱 확대되었다. 이내원은 이 시기 의병장으로 활약했는데 1908년 11월 연기우 의진에 참여해 본격적인 항일투쟁에 나섰다.1908년 7월 15일 연기우 의진의 의병 20여 명과 함께 무기를 휴대하고 장단군 소남면 면장 김재혁에게서 군자금을 30원을 모집했다. 같은 달 28일에는 대남면 김한원에게서 40원의 군자금을 모금 받았다.
1909년 음력 8월 2일 1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장단군 고남면의 김의경의 차남에게서 200원의 군자금을 모집했다. 같은 달 10일에는 장단군 장현내면 홍형규에게 20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12월까지 연천군 계명리 마을에서 군수품으로 사용할 벼 122석을 모금했다.
이처럼 강원도 장단군과 연천군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약을 보이는 한편, 일본헌병대의 감시망도 점점 좁혀졌다. 그리하여 1910년 1월 29일에는 은닉하고 있던 화승총 1개와 칼 1개를 일본 헌병에게 압수당했다.
1910년 5월 6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2년 12월 7일 징역 3년으로 감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