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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2년 8월 15일 |
한양 | |
사망 | 1966년 2월 25일 (향년 73세) |
사망지 미상 | |
서훈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대한민국의 미주 방면 독립운동가.2. 생애
그는 1917년 12월부터 1918년 1월까지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 서기를 지냈고, 1919년 3월에는 신한민보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같은 해 5월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학무원 및 법무원을 역임했고, 7월에는 신한민보통신원을, 10월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단체 구미위원부의 임시지방위원을 지냈다.1920년 3월부터 1923년 2월까지 노동사회개진당의 지도자로 월간지 동무를 발간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고, 1930년 3월 중부 캘리포니아 대한인공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1931년 12월~1933년 4월에 열린 미주한인연합회에 중부캘리포니아공동회 대표로 참석했고, 이후 1933년 1월 미주한인연합회 의장, 1936년 7월 대한인국민회 총회 특별대의원회에서 위원제규칙 기초위원, 1941년 1월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 1944년 2월부터 11월까지 동지회 북미총회 총회장, 1944년 11월 임시정부 워싱턴 주미외교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1945년 4월 샌프란시스코 국제안전조직회의에 이승만과 함께 임정 대표로 참석했고, 1918년부터 1942년까지 지속적으로 독립의연금을 납부했다.
앞줄 왼쪽부터 송헌주, 이승만, 이살음. 뒷줄 왼쪽부터 윤병구, 정한경, 유경상, 임병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