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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이상천 李商天|Lee Sangchun[1] | |
출생 | 1954년 1월 5일 |
서울특별시 | |
사망 | 2004년 10월 19일 (향년 50세)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국립암센터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응용수학과 / 중퇴)[2] |
종목 | 당구[3] |
주 종목 | 3쿠션 |
경력 | 대한당구협회 회장 (2004) |
신체 | 177cm, 75kg |
가족 | 딸 올리비아 리[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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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당구 선수 중 한 명.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2004년 5월 대한당구연맹 4대 회장으로 추대되어 한국 당구계의 프로화를 위해 다방면의 활동을 하던 중, 뒤늦게 발견된 위암으로 2004년 10월 19일 만 50세의 나이에 타계했다.2. 선수 경력
현대 당구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고 정평이 나있는 선수를 꼽으라면 대표적으로 4대 천왕(토브욘 브롬달, 프레드릭 쿠드롱, 딕 야스퍼스, 다니엘 산체스)를 꼽을 것이다. 그러나 4대 천왕을 논하기 전에, 한국의 이상천이라는 선수를 빼 놓을 수 없다.전 세계 통틀어 당구 역사상, 이상천의 감각을 따라오는 선수는 전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아무리 4대 천왕이라 할지라도 감각적인 부분에서 만큼은 그러하다. 그리고 4대 천왕 모두가 이상천의 당구 구사 능력(특히 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인정하고 있으며 이는 4대 천왕뿐만이 아니다. 이상천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매년 국제 대회가 열리는 것만 봐도 그의 위상을 분명히 알 수 있다.
3쿠션의 경우 과거의 당구와 현대의 당구를 비교해 보면 이상천의 영향이 크다. 과거에는 분명 기본적인 앞돌리기, 뒤돌리기, 옆돌리기, 대회전 등의 정석적인 방식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현대의 당구는 이에 탈피해 조금 더 자유스럽고 창의적인, 독창적인 방식으로 난구 자체를 마치 이지볼처럼 풀어내는 선수가 많다. 과거의 실제 당구 경기에서 정석적인 방법을 벗어나 자유스러운 방식으로 공을 구사하는 선수는 몇 없었고 그 중 가장 위에 군림하고 있었던 선수가 바로 이상천이다.
당구 수지 300(4구 기준)은 아마추어 단계에서 수준급이라 할 수 있는데[5], 이를 3개월 만에 달성했다고 한다. 쉽게 말해 보통 일반인이 2~3년 길게는 5년 이상을 노력해야 얻을까 말까한 실력을 불과 3개월 만에 이뤄낸 것이다. 수지 300이 되기 전에 포기하는 일반인들이 대다수다.
서울대학교를 다니다가 당구의 길로 빠져들어 중퇴한 후 도장 깨기와 유사하게 전국 각지의 실력자들을 찾아나서며 한국 당구계를 평정했다.
3. 평가
당구를 구사하는 모습을 보자면 현대 당구에서 볼 수 있는 정석적인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자세도 반쯤 서서 당구를 구사하며 타구법도 손목의 스냅을 자주 이용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전문적으로 당구를 배운 것이 아니라 독학으로 당구 실력을 쌓으며 선수의 몸에 최적화된 자세를 감각적으로 체화시켰을 것으로 추정된다.왼손잡이 이상천은 몰아치기 달인이어서 '칙칙폭폭'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의 당구 감각은 완벽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실제로 당구를 좀 친다는 사람이 보아도 이건 분명히 전혀 나오지 않을 각 같이 느껴져도 이상천은 쭉쭉 잘만 뽑아냈다.
보통의 선수는 쓰리쿠션에서 볼퍼스트 형식을 기본기로 하고 레일퍼스트 형식이 보조를 이루는 형태로 당구를 구사한다. 하지만 이상천은 볼퍼스트 형식뿐만 아니라 레일퍼스트 형식까지 기본기로 갖췄다. 레일퍼스트 형식은 변수가 매우 많은데 대부분의 3쿠션 선수가 볼퍼스트를 선택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뿐만 아니라 스트로크의 완급 조절을 통해 항상 수구가 2적구의 한 뼘 내지 두 뼘 내의 거리에 위치하도록 하는 그의 능력은 압권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단순히 스트로크의 세기만을 조절한다고 해서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스트로크 타법과 그립법, 세기와 두께 중 어느 한 가지라도 틀어져서는 안된다. 이 모든 요인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조화시켜 컨트롤 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프레드릭 쿠드롱이 난구도 쉽게 풀이한다는 점에서 유명하기도 하고 대단하지만 그 이전에 이상천이 있었다. 물론 보기에는 쉬워 보이고 독창적이라고 느껴지는 선구이지만 실제로 구사하기에는 매우 어렵다. 이러한 이상천의 스타일은 한국 당구의 강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러 당구 경기를 보면 한국 선수만의 특징을 느낄 수 있다.
4. 수상 기록
- 1982년 전국체전 우승
- 1990년 미국선수권 우승
- 1991년 독일 베를린 월드컵 우승
- 1992년 벨기에 브뤼셀 월드컵 우승
- 199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월드컵 우승
- 1999년 미국 라스베가스 월드컵 우승
- 2003년 제1회 한밭배 전국 3C 우수선수 초청경기 우승
미국 대표로 참가한 대회 | ||
월드 게임 | ||
동메달 | 2001 아키타 | 3쿠션 |
대한민국 대표로 참가한 대회 | ||
아시안 게임 | ||
은메달 | 2002 부산 | 개인전 |
5. 기타
- 현역 시절 별명으로는 당구의 신, 서울대 꼬마, 칙칙폭폭이 있다.
[1] 영어권에서는 보통 상 리(Sang Lee)로 통한다. 영문 위키피디아에도 해당 이름으로 기재하고 있다.[2] 당구의 매력에 이끌려 재학 중 중퇴했다고 한다.[3] 당시 국내에서는 매우 드물게 왼손으로 큐대를 잡았다.[4] 1992년 4월생. 한국명 이혜진. 이상천 회장이 당구를 위해 1987년 도미한 후 뉴욕에서 낳은 외동딸로 현지에서 약학을 전공했다. 2012년부터 본인의 사업으로 미국과 한국을 왕래하던 중, 대구의 당구장에서 만난 14세 연상의 남성과 2018년 혼인했고 당구 클럽을 운영하던 남편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30세인 2022년 PBA 프로당구 투어(LPBA)에 데뷔했다. 2022-2023년 시즌 두 대회에서 64강에 진출한 바 있으며 2023-2024 시즌에도 활약 중이다. 부친과는 다르게 오른손으로 큐를 쓴다.[5] 일반적으로 이 수준 이하면 큐대가 찢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맛세이(찍어치기)를 금지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