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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주(고고학자)

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교수
이성주
李盛周 | Lee Sung-Joo
파일:이성주.jpg
<colbgcolor=#DB1F26> 출생 1961년 6월 10일[1] ([age(1961-06-10)]세)
본관 전주 이씨 덕천군파[2]
학력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사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고고학 / 석사[3] · 박사[4])
현직 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교수
약력 한국상고사학회 회장
창원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센터장
강릉원주대학교 박물관 관장
경북대학교 박물관 관장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교수

1. 개요2. 경력사항3. 논저
3.1. 논문3.2. 저서 및 번역서
3.2.1. 주요 저작3.2.2. 번역서
3.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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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고고학자. 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교수.

2. 경력사항

1961년 6월 10일, 고고미술사학자였던 아버지 이은창(李殷昌)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에 입학했고, 이때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석촌동 고분군 조사에 참여한 바 있다. 1987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고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창원대학교 박물관의 학예연구사로 부임하였다.

이 시기 동안 경상남도 일대에 흩어져 있는 다수의 신라·가야 유적을 조사하였다. 대표적으로는 함안 도항리 고분군의 지표·표본 조사가 있으며, 이외에도 창원 도계동유적, 마산 현동유적, 합천 저포리 유적, 함안 오곡리 유적, 울산 중산리 유적, 창원 가음정동 유적 등을 발굴조사하였다. 이 가운데 울산 중산리유적은 이 시기 있었던 가장 대표적인 발굴성과로서 2~7세기 대규모의 신라 고분군이 조사되었는데 특히 5세기 신라 적석목곽묘의 기원에 대한 중요한 자료를 얻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1998년 2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고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新羅·伽耶社會의 政治·經濟的 起源과 成長(신라·가야사회의 정치·경제적 기원과 성장)」이다. 이후 창원대학교, 부산대학교, 경북대학교에서 잠시 강사 생활을 하다가 2000년,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겨 경상남도 일대의 다수의 구제발굴 조사에 참여하였다. 2002년부터는 2012년 가을까지 강릉원주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이 사이 2007년에는 강릉원주대학교 박물관장을 겸임했다.

이후 2012년부터 자신의 모교인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고고인류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현재에 이른다. 부임 후 경북대학교 박물관장 및 고고인류학과 학과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 외 경력사항으로는 2004년 한국상고사학회 출판위원 및 편집위원장,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제12·13대 한국상고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그 밖에 한국문화재연구조사기관협회 편집위원, 호남고고학회 편집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3. 논저

연구의 출발점은 원삼국시대 토기연구에서 출발하였지만,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다수의 신라, 가야 유적을 조사하였고 이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영남지역의 신라·가야 고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성과는 박사논문으로 완성되었다.

그의 연구방법은 당시로서는 보편적인 연구의 스탠다드였던 "형식학적 방법과 역사적 해석"에 주안점을 두기보다는 다양한 방법론을 통한 연구에 보다 중점을 두었다. 특히 그의 석사논문은 형식학적 방법론 뿐만 아니라 토기의 태토와 성분분석과 같은 과학적연구방법도 차용한 당시로써는 선진적인 논문이었다.

고고학 자료의 해석 역시 단순한 역사·정치적 해석보다는 사회구조, 사회의 변동 등의 과정을 중점적으로 설명하는 경향을 보였다. 보통 이러한 사회구조를 논하는 것은 선사시대의 연구에 주로 해당하는 것이었는데 이성주의 연구는 역사적 해석 일변도에서 탈피할 수 있었던 연구로써 본인의 이후 연구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물론 신라·가야와 관련하여 한 때 학계의 주된 담론이었던 신라가야 연대론에 이성주도 통시적 편년관을 제시한 바 있으나 이미 이희준, 김용성, 신경철 등의 주요한 인물들의 연대관이 저마다 확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목받을 수 없었다. 그러한 바 편년관 자체는 그렇게까지 인용되지 않는다.

이후 원삼국시대 중도문화유형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청동기시대까지 다루었으며, 한반도의 기원 전후한 시점의 사회변동 전반에 대해서 기술과 혁신이라는 테마 등으로 접근하여 분석하기도 하였다. 유물의 형식보다는 유물의 형식을 아우른 유물군의 변천에 초점을 두고 분석하였으며 그러한 유물군이야 말로 의례행위의 상징으로써 상대적으로 정치적인 해석에 적합하다고 보았다.

뿐만아니라 기존에 막연히 고분군의 배치에 대해서 논하던 것을 GIS 기법을 통한 체계적인 분석방법에도 일찍이 관심을 보여왔으며 GIS 기법을 통해 고분군 성장의 과정과 함의에 대해서 연구한 사례도 있다.

자못 인상은 탈과정주의 고고학자스러운 편이지만 연구 내용을 살펴보면 어디까지나 과정주의에 가장 충실한 편이며, 탈과정주의 고고학이라는 것이 현재진행형인 바 탈과정주의를 포함한 다각적인 연구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특정한 전공분야에서 머무르지 않고 그 관련 시대 주변을 아울러서 연구하는 편이다. 이는 특정한 전공분야에 머무르는 것이 세부전공에 매몰되어 보편성을 잃는 것이라고 보는 본인의 견해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1. 논문

이성주, 1987, 善山伽耶古墳의 硏究, 영남고고학 4, 영남고고학회

3.2. 저서 및 번역서

3.2.1. 주요 저작

파일:신라·가야사회의 기원과 성장.png
▲ 『신라·가야사회의 기원과 성장』 (학연문화사, 1998년)
1998년 출간한 『신라·가야사회의 기원과 성장』은 그의 박사학위 졸업논문을 수정·보완한 책으로 창원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시절의 연구성과가 고스란히 담겼다.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정치체의 형성과 성장과정을 추적하였다. 당시의 정치체 연구 트렌드인 개인과 집단의 비교를 통한 위계형성에서 벗어나 고고자료를 사회, 경제, 환경의 측면에서 다각도로 분석하여 고대국가의 발전과정을 설명하려 하였다. 당시로써는 생소한 티센 폴리곤 모델이나 토기의 성분분석 등의 과학적 분석이과 고분군 또는 취락의 입지환경 분석등을 사용하는등 선진화된 연구방법을 사용하였다.
파일:청동기·철기시대 사회변동론.jpg
▲ 『청동기·철기시대 사회변동론』 (학연문화사, 2007년)
2007년 출간한 『청동기·철기시대 사회변동론』은 청동기ㆍ철기시대의 사회변동론을 연구한 책으로 오늘날 한반도의 중부 이남지역의 청동기 및 철기시대 사회와 그 변동에 대한 연구서이다. 고고학 자료 그 자체, 물질 문화 그 자체를 분석하고 고고학 그 자체의 이론적, 방법론적 전제에 기초하여 청동기와 철기사회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파일:토기제작의 기술혁신과 생산체계.jpg
▲ 『토기제작의 기술혁신과 생산체계』
(학연문화사, 2014년)
2014년 출간한 『토기제작의 기술혁신과 생산체계』은 원삼국시대 토기유물군과 그 변동을 해석한 책으로 토기제작에 있어 기술의 수용과 전파 그리고 생산체계를 분석하였다 단순히 토기분석의 수준을 넘어 토기를 제작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2015년 한국고고학회 주관 초대 삼불학술상을 수상하였다.

3.2.2. 번역서

칼리 시노폴리 저 (이성주 역) 토기연구법 (도서출판 고고, 2012)

콜린 렌프류, 폴 반 공저 (이성주·김종일 공역), 『고고학의 주요개념』 (도서출판 고고, 2010)

배리 컨리프 저 (이성주 역), 『영국 철기시대 사회』 (도서출판 고고, 2017)

3.3. 여담

  • 부친은 한국 고고학계 1세대 학자인 이은창 선생(李殷昌, 1922~2019)으로 부자(父子)가 고고학자이다. 부인 이현주 박사도 부산박물관 학예연구관으로 집안이 대를 이어 고고학을 연구하고 있다. 이은창 선생은 충청남도 청양군 비봉면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비봉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일제강점기 교원시험에 합격한 뒤 국민학교, 중학교에서 교사, 교감, 교장, 교육청에서 장학사 등으로 근무했다. 1967년부터 1969년까지 충청남도문화재위원, 1973년에는 영남대학교 박물관 학예서무과장을 지냈다. 공주사범대학영남대학교 강사를 거쳐서 효성여자대학교(현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와 박물관장, 대전보건대학교 교수와 박물관장을 지냈다. 영남고고학회와 호서고고학회에서 각각 회장을 역임했다.
  • 서울대학교 대학원 재학 시절 석·박사 지도교수는 박근혜 정부 집권 당시 국정화 교과용도서의 집필진으로 참여할 뻔 했던 최몽룡 교수이다.


[1] 전주이씨덕천군파보 권2 342쪽 참조.[2] 함풍군파(咸豊君派) 19세 주(周) 항렬. 2007년 2월, 이덕성의 후손 자격으로서 이은창·이성주 부자가 '이덕성 초상 및 관련자료 일괄' 130건 132점을 부산시립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덕성(李德成)은 조선 숙종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인물로, 덕천군8대손이다.[3] 석사 학위 논문: 原三國時代(원삼국시대) 土器(토기)의 硏究(연구) : 영남지방 출토토기를 중심으로(1987)[4] 박사 학위 논문: 新羅(신라)·伽耶社會(가야사회)의 政治(정치)·經濟的(경제적) 起源(기원)과 成長(성장)(1998.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