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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스피드 스케이팅)/쇼트트랙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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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년 시절2. 2004-05 시즌
2.1. 국가대표 선발전2.2. 월드컵 시리즈2.3. 2005 세계선수권
3. 2005-06 시즌
3.1. 국가대표 선발전
4. 2006-07 시즌
4.1. 국가대표 선발전4.2. 2007 토리노 동계 유니버시아드4.3. 월드컵 시리즈
5. 2007-08 시즌
5.1. 국가대표 선발전5.2. 월드컵 시리즈5.3. 2008 세계선수권
6. 2008-09 시즌7. 2009-10 시즌
7.1. 국가대표 선발전

[clearfix]

1. 유년 시절

어릴 때는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스케이트를 처음 신었으나, 신목중고교 시절 때 쇼트트랙으로 종목을 변경했으며, 2009-10 시즌 다시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하기 전까지 쇼트트랙 선수로 활동했다. 주종목은 1500m였다.

2. 2004-05 시즌

2.1. 국가대표 선발전

선발전에서는 한 순위 차로 안타깝게 실패했으나 이후 추가 선발 선수로 뽑혔다.

2.2. 월드컵 시리즈

월드컵 개인전 경기에는 하나도 출전하지 않았고, 계주도 6차 월드컵이 돼서야 계주에만 참가했다.

2.3. 2005 세계선수권

예상을 뒤엎고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안현수, 송경택과 함께 개인전 멤버로 참가했다. 안현수는 당시 세계선수권 2연패를 기록 중이었던 명실상부 에이스였고, 송경택은 선발전에서 1위로 선발되었음은 물론 안현수를 제외한 선수 중에는 월드컵에서 가장 준수한 활약을 보였던 선수였다. 이승훈은 선발전에서 높은 순위로 발탁되었던 것도 아니고 추가 선발로 대표팀에 승선에 국제대회라고는 본 시즌이 첫 시즌에 마지막 월드컵에서 계주 경기를 뛴게 고작이다. 그럼에도 마지막 한장의 개인전 출전권을 차지한 것에 대해 (마치 안현수가 그의 커리어 초창기에 그랬듯)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됐었다.[1]

세계선수권에서는 1500m와 3000m 슈퍼파이널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최종 5위로 종합 순위 3위 이내에는 들어가지 못했다.[2] 이후 계주 멤버로 출전해 금메달을 따는데 공헌했다.

3. 2005-06 시즌

3.1. 국가대표 선발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며 다시 한번 2006 주니어 세계선수권에 참가하여 1500m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500m에서는 준준결승에서 탈락했고 1000m에는 아예 출전하지 못했다. 슈퍼 파이널도 가보지 못하고 대회를 마무리했다.

당시에는 쇼트트랙계가 한창 파벌 싸움으로 시끄러울 시기이기도 한데, 남자 대표팀에서 혼자 한체대 출신이었던 안현수가 다른 남자 선수들과 훈련을 할 수 없어서 이때 안현수에게 도움을 준 선수들이 다름 아닌 이승훈과 성시백이다. 심지어 올림픽이 코앞인데도 여전히 한체대파, 비한체대파로 나뉘어 훈련이 지속돼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안현수는 토리노에 훈련파트너로 이 둘을 데려갈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그나마 빙상연맹의 뒤늦은 중재로 토리노에 가서는 파벌로 나뉘지 않고 같이 훈련하게 되어 이승훈과 성시백이 토리노에 동행하지는 않았다.

4. 2006-07 시즌

4.1. 국가대표 선발전

1차 선발전 개념이었던 종합대회에서 8위를 기록해 2차 선발전 참가 자격이 주어지는 최종 15인에 합류하게 됐지만, 2차 선발전에서 다시 한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4.2. 2007 토리노 동계 유니버시아드

선발전 탈락 이후 동계 유니버시아드에 출전해 1000m와 1500m에서 은메달, 계주 금메달을 따내며 다음 시즌을 기약했다.[3]

4.3. 월드컵 시리즈

6차 월드컵에서는 이승재와 함께 불참한 안현수와 김병준을 대신해 500m와 5000m 계주[4]에 출전했다.

5. 2007-08 시즌

5.1. 국가대표 선발전

1000m에서 이호석송경택의 팀플레이로 또 약간의 위기가 있었지만 성시백이 막판에 노골적으로 진로 방해를 펼친 이호석과의 몸싸움으로 속도가 줄어든 틈을 타 2위로 날을 내밀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3000m 슈퍼파이널에서는 2위를 기록해 선발전 종합 3위로 처음으로 추가 선발이나 차순위 자격이 아닌 정식으로 국가대표에 승선했다. 단 당시 안현수가 2007 세계선수권 우승자 자격으로 자동선발이 되었기 때문에 실제 대표팀 내 순위는 4위로 계주 멤버로 선발되었다.

5.2. 월드컵 시리즈

당시에는 안현수, 이호석의 장벽이 너무 높았고, 송경택, 성시백을 비롯해 쟁쟁한 경쟁자들 때문에 밀리는 감이 많았다. 더군다나 신예 곽윤기가 월드컵에서 나이에 맞지 않는 활약을 보이며 그가 공기화되는 사태까지 벌어졌으며, 실제로 이승훈은 개인전에서는 활약상이 가장 떨어지는 멤버였고, 계주에서도 안현수, 이호석, 송경택이 무서운 폼을 보이던 시기라 결과적으로 이승훈이 더 묻혔다.

이후 5차 월드컵을 앞둔 2008년 1월에는 안현수가 중부상을 당하고 시즌 아웃이 되어 이승훈이 차순위 자격으로 개인전 멤버로 승격되어, 세계선수권 개인전 출전권을 획득했다. 선발전에서 성시백과 단 5점 차로 최종 순위가 바뀌어서 가능했던 것인데 만약 1000m에서 성시백에게 2위를 내줬다면 개인전 출전권이 그에게 갔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승훈에게 선발전 1000m에서 2위를 기록했던 것은 굉장한 행운이었다.

6차 월드컵에서는 1000m 결승에서 이호석, 아폴로 안톤 오노, 샤를 아믈랭과 맞붙은 가운데 5바퀴를 남기고 이호석이 미끄러지며 아믈랭을 넘어트렸고, 결국 오노와 1대1 상황을 맞이했지만 승부를 뒤집는데는 끝내 실패해 은메달을 건다. 1500m에서는 드디어 첫 월드컵 개인전 금메달을 따내었다. 사실상 월드컵 종합 우승과 세계랭킹 1위를 확정지은 이호석이 2위에서 그의 뒤를 커버해줬으며 특히 무섭게 기회를 엿보던 오노의 추월을 차단하며 이승훈이 금메달을 딸 수 있게 일조했다.

5.3. 2008 세계선수권

개인전에 송경택, 이호석과 함께 출전했다. 그의 주종목이었던 1500m에서는 저 둘과 오노를 포함한 경쟁자들보다 먼저 선두로 치고 나갔으나, 이후 마지막 한 바퀴를 도는 과정에서 오노에게 인코스 추월을 허용했고 마지막 코너를 도는 과정에서 오노와의 접촉으로 밀려나 아쉽게 4위를 기록했다. 오노가 추월을 성공시켰고 몸이 이승훈보다 살짝이나마 앞서 빠져나왔던 상황이기 때문에 이승훈이 실격을 당했어도 문제가 없을 장면이었지만, 한국에서 열렸던 대회여서였는지 오노에게 실격이 주어졌다. 또한 오노도 2002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한 한국 선수를 상대로 저지른 만행이 있기 때문에 꼴이 좋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취약 종목인 500m에서는 예선에서 탈락했다. 1000m에서는 준준결승에서 오노에 이은 2위로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었으나 혼자 넘어지며 결국 대회 종합 우승 경쟁권에서는 밀려났다. 대신 1500m에서 4위에서 얻은 포인트 덕에 3000m 슈퍼파이널에 참가하였고, 당시 오노와 우승 경쟁 중이던 이호석송경택의 우승 확률을 높혀주기 위해 한 바퀴를 먼저 잡는 작전을 실행해 이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 여담으로 이 경기에서 우승에 가장 유리한 상황이었던 송경택이 하필이면 이승훈의 스케이트 날에 걸려 넘어지며 종합 3위로 대회를 마쳤다. 이승훈에게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없으나, 이미 한바퀴를 잡은 상황이었기에 스퍼트가 시작되는 타이밍이었던 그때 아웃으로 크게 비켜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5]

이후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내 결과적으로는 두개의 금메달을 수확한 샘이지만 사실 이승훈의 활약이 상당히 미미했던 대회였다. 3000m 슈퍼파이널은 원래 최종 우승자를 가리기 위한 종목이라 메달이 크게 의미가 없는 종목이며 이승훈 본인이 개인전 메인 종목에서 제대로 죽을 쒔으므로 종합 3위에도 들어보지 못하고 대회를 마쳤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아폴로 안톤 오노에게 종합 우승을 내준 송경택이호석이 까이느라 이승훈은 거의 관심 밖이었다.

6. 2008-09 시즌

6.1. 국가대표 선발전

곽윤기, 성시백, 이호석, 이정수에 밀려나며 2008년 4월에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다.

6.2. 2009 하얼빈 동계 유니버시아드

2006-07 시즌때처럼 다시 동계 유니버시아드에 출전해 1,000m, 1,500m, 3,000m 금메달을 휩쓸어 3관왕을 차지했다. 물론 정상급 선수들한테 유니버시아드에서 3관왕을 하는 게 성시백처럼 전관왕을 하지 않는 다음에야 그렇게 대단한 업적은 아니어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서서히 자신의 기량을 계속해서 끌어올리게 위해 출전한 대회이다.

7. 2009-10 시즌

7.1. 국가대표 선발전

2009년 4월에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6]에서 탈락하며 쇼트트랙 선수로는 결국 동계올림픽 출전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이후 행보는 이승훈(스피드 스케이팅)/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경력 문서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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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교롭게도 약 1년 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이승훈도 한체대 입학 예정자가 되었다. 즉 안현수의 대학 후배이며 당시 파벌 싸움이 굉장히 심했던 시기였다.[2] 당시 빙상연맹은 한체대 출신 선수이었던 최은경강윤미가 각각 종합 순위 2, 3위에 올랐었단 이유만으로 갑작스럽게 규정을 바꾸고 우승자인 진선유(비한체대 출신)와 함께 1차 선발에 면제되는 우선 선발자로 발탁했다. 원래는 세선 우승자만 우선선발을 시키는게 기존의 규정이다. 남자부쪽은 안현수가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기 때문에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없었지만 이승훈이 포디움에 올랐다면 남자부쪽도 얘기가 달랐을 것이다. 다만 이승훈은 고등학생으로 아직 한체대 학생이 아니었고, 한체대 입학 예정으로 알려진 것도 2006년이 돼서야 알려졌다.[3] 이 대회에서 성시백이 5관왕(전관왕)을 차지했다.[4] 이승재가 준결승, 이승훈이 결승을 뛰었다.[5] 물론 송경택은 당시 팬들 사이에서 선발전 1000m 사건으로 이호석과 함께 이미지가 안좋은 상황이었기에 자업자득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그때 피해자 중 한명이 이승훈이었기에 더더욱 아이러니하다.[6] 선발전이 원래는 1년에 2번 열렸지만 빙상연맹이 2008년부터 선발전을 줄였기 때문에 빙상연맹이 선발전을 2회에서 1회로 줄인 것을 당시 안현수 등 많은 선수들이 부상의 위험으로 선발전 축소를 주장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