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9 16:33:00

이위공문대

무경칠서
손자병법 오자병법 육도 삼략 울료자 사마법 이위공문대

李衛公問對
1. 소개2. 위서 논쟁

1. 소개

무경칠서(武經七書)의 하나이다. 정식명칭은 <당태종이위공문대(唐太宗李衛公問對)>이나,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 혹은 <당리문대(唐李問對)>라는 약칭이 널리 통용된다.

여기서 이위공(李衛公)이란 당나라 이정이 위국공(衛國公)으로 봉해진 데서 나온 존칭이다. 또한 문대(問對)는 문답의 다른 표현이므로, <당태종이위공문대>라는 책 제목은 '당태종과 이정이 한 문답'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아무런 문학적 비유도 없는, 굉장히 단순하고 직설적인 제목이다.

후술되듯이 위서라는 주장도 제기되어 왔으나, 그 진위에 관계 없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사고전서 총목제요에서는 기습과 전면전, 공격과 수비 등 여러 가지 분야를 두루 다룬 오묘한 책이라고 평가했고, 15세기 후반의 명나라 사람 정원(鄭瑗)은 자신의 책인 정관쇄언(井觀瑣言)에서 이 책을 소개하면서 비록 위서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학식과 모략이 있는 자가 쓴 것이므로 다룬다고 썼다.

2. 위서 논쟁

제목에 나오듯 이 책은 당 태종과 이정이 문답하는 형식이며, 따라서 이정이 저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구당서, 신당서, 송사 예문지에는 그의 저서로 육군경(六軍鏡) 3권, 위국공수기(衛國公手記) 1권, 이정병검신서(李靖兵钤新書 )1권, 도검비술(韜鈐秘術) 1권, 총요(總要) 3권, 궁결(弓訣) 1권만이 나열되어 있지 이위공문대는 없다.

실질적으로 송대 이후의 무경칠서 합본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 실물을 본 사람이 없고, 후대 가필이나 역사적 내용에 맞지 않기 때문에 위서로 여겨진다. 이에 "이정이 쓴 책이 아니라면 진짜 저자는 누구인가?" 를 두고 여러 설들이 제시되어 왔다.

11세기 후반 북송의 진사도(陳師道)는 후산담총(後山談叢)에서 이위공문대가 11세기 전반 북송 사람 완일(阮逸)이 지은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널리 받아들여지지는 못했는데, 완일이 지은 다른 저작들을 보면 문체가 뛰어난 편인데 이 책은 조잡하기 때문이다.

사고전서 총목제요에서는 칠서의 제정에 의거하면 결코 당나라 때의 문장으로 볼 수 없다며 당말송초의 누군가가 당 태종과 그 신하들 사이에 실제로 있었던 일들을 수집해서 지어낸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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