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14 20:51:49

이장원(군인)

<colbgcolor=#000><colcolor=#fff> 이장원
李章遠
출생 1928년 2월 11일
충청남도 예산군
사망 1951년 11월 29일
원산 황토도
복무 대한민국 해병대
최종계급 해병대 중위
복무 기간 1951~1951
1. 개요2. 생애 및 군 경력 3. 공훈4.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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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장원(李章遠, 1928년 2월 11일 ~ 1951년 11월 29일)은 대한민국의 6.25전쟁 참전 군인이다.

2. 생애 및 군 경력

초기 생애 및 군 입대
1928년 2월 11일 충청남도 예산에서 출생하였다.
1951년 해병사관후보생 5기로 입대하였으며, 같은 해 9월 해병대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후 해병 독립 제42중대 소속 황토도 파견소대장으로 부임하였다.

6.25 전쟁 참전
황토도의 전략적 중요성
황토도(黃土島)는 함경남도 영흥만 인근에 위치한 해상 요충지이다.
북한군의 후방 교란과 해상 보급로 차단을 위한 작전 수행 거점이었다.
북한군은 황토도를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기습공격을 감행하였다.

황토도 방어전 및 전사(1951년 11월 29일)
- 1차·2차 북한군 기습공격 저지 : 북한군은 황토도를 확보하기 위해 두 차례 기습공격을 감행하였다. 이장원 중위가 지휘하는 해병대 소대는 모든 공격을 저지하였다. 이에 북한군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최후의 공격을 감행하였다.
- 3차 북한군 대규모 기습공격 및 최후의 항전 : 북한군은 1개 대대 규모의 병력을 동원하여 총공세를 감행하였다. 치열한 교전 중 무전기가 파괴되어 아군 지원을 요청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장원 중위와 해병대원들은 끝까지 진지를 사수하며 방어전을 전개하였다. 이에 북한군은 집중포격을 감행, 결국 이장원 중위와 부하 3명이 전사하였다.
- 전우들의 결사 항전과 황토도 사수 : 소대장의 전사를 목격한 대원들은 분기탱천하여 결사 항전하였다. 북한군의 마지막 공세를 격퇴하고 황토도를 지켜냈다. 이로써 북한군의 황토도 점령 작전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이장원 중위의 희생과 해병대의 방어 성공으로 북한군의 해상 보급로가 차단되었으며, 대한민국 해군이 제해권(制海權)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이장원 중위의 희생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1계급 특진(중위)과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또한 2016년,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는 그를 "11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3. 공훈

충무무공훈장(1953.3.30, 사후 추서)
국가보훈처 이달의 6.25전쟁영웅(2016년11월)

4. 참고 자료

국방부, 《호국의 별》 제4집, 1980
이원복, 《호국용사 100선》, 명성출판사, 1976
해병대사령부, 《6.25전쟁 해병대전투사》, 2012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6.25 전쟁영웅 이장원 해병대 중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