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순지이며 호는 전하지 않는다. 지돈녕부사 이자(孜)와 재령군주의 둘째 아들로, 형 이증석과 같이 서울 성남의 옛집에서 태어났다. 생년은 알 수 없으나 선후대 간의 세대 간격과 5남매 간의 출생 서열에 비추어, 형보다 6~7세 연하로 보이는바 대개 1453년(세종 17) 전후로 추정된다. 따라서 그 성장 과정이나 배움에 대하여는 알려진 것이 없지만 부모를 일찍 여의고 불우한 가운데서 소년기를 보냈음을 짐작하게 한다.
30세가 다 된 나이에 겨우 음서로 선발되어 관원으로 진출할 수 있었으나 초기의 관력은 미상이다. 중년에 이르러 궁중제사의 희생을 관장하는 전생서의 종7품 직장을 역임한 후 외직으로 맹산현감으로 나갔다. 나이 50세 전후에 경기도 포천군수로 승진 발령이 났으나, 와병으로 부임도 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아내는 숙인 하양 허씨(河陽 許氏)로, 현감(縣監)을 지낸 허인(認)의 딸이고 관찰사를 역임한 허지혜의 손녀이다.
슬하에 4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사원, 사침, 사경, 사기이다. 딸은 현감 한열에게 출가했는데, 예종의 국구(國舅)인 청천부원군 한백륜의 며느리가 되었다.
묘소는 원래 응봉산(鷹峰山) 자락에 있는 어머니 재령군주의 유택을 중심으로 형 이증석과 함께 좌우에 나란히 장사지냈으나, 언제부터인가 실묘가 되었다가 1994년에 그 후손들이 힘을 합해 복원하였다.
이증약의 자손들은 충청도 홍성과 청양, 전라도 영광과 고창, 경기도 광주와 춘천 등지에서 수백 년 동안 집단촌을 이루어 세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