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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5대 육군주임원사 이태준 Lee Taeju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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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2년 |
사망 | 2014년 6월 (향년 72세)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1961년 ~ 1996년 12월 | |
재임기간 | 제5대 육군주임원사 |
1993년 2월 ~ 1996년 12월 | |
임관 | 보병 231기 |
최종계급 | 원사 |
최종보직 | 육군주임원사 |
주요보직 | 제12전차대대 주임원사 |
참전 | 베트남 전쟁 |
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전 군인. 최종계급은 원사. 제5대 육군주임원사를 역임했으며, 무려 주임원사직만 25년 11개월 15일간 수행해 온 부사관계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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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경기도 최고 인증서 수여식에서 주임원사를 오래한 사람으로 선정되어 김문수 경기지사에게 인증서를 받고있다. |
중사 시절인 1965년에 하사관 5만명 가운데 최우수 전투원으로 선정되었고 맹호부대 기갑연대 소속으로 베트남 전쟁 파병 제1진으로 참전하였다. 적과 교전 중 생긴 아군 부상병들을 위해 시간을 벌거나 직접 들쳐업어 후송하는 등의 상황이 자주 있었다고 하며 이 공로로 인헌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만 29세에 현재의 원사 계급에 해당하는 주임상사 보직을 맡았다. 당시에는 원사 계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주임상사가 되었기 때문에 복무하면서 소대, 중대, 대대, 사단, 군단, 야전군 등 각급 단위 부대에서 모두 근무한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1993년 2월 5대 육군주임원사로 취임했다. 1996년 12월 이석형 원사에게 주임원사직을 이임 후 35년 6개월간의 군 생활을 마무리 짓고 전역했다. 방송사에서 전역식을 취재했는데 육군에서 근무하면서 2남 2녀를 대학교까지 졸업시킬 수 있었기에 군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전역 후에는 야전군사령부급 이상의 주임원사를 지낸 예비역들의 모임인 충정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2014년 6월에 72세로 사망하였다. 생전에 군생활 중 사용하던 물건들을 연천에 있는 자택에 전시하고 있었는데 사후에 일부는 육군부사관학교에 기증되었고 2018년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3. 여담
- 제20기계화보병사단 61여단 제12전차대대에서 18년 동안 근무하고 사단급 부대로 넘어갔다. 현재는 군 인사 체계상 부사관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순환보직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오래 근무하는 게 불가능하다.
- 그가 현역 시절 전국 팔도 육군 부대에서 주임원사 임무를 수행한 기간은 총 25년 11개월 15일. 총 군 복무 기간 35년 8개월 11일 가운데 3분의 2 이상을 ‘부대의 어머니'로 살았다.
- 전역식 날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표창과 미국 육군부의 공로훈장이 수여됐다.
- 과거엔 부사관이 하사관이란 명칭으로 불렸으며 장교와는 다르게 임관이 아닌 임용이라고 표시했다. 정식적인 군 간부가 아니라 사병과 통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병사도 간부도 아닌 애매한 위치였고, 병보다 복무 기간만 조금 더 길고 대우나 봉급도 눈곱만큼만 더 좋은 한직이었다. 계급장 역시 병과 같은 포제 계급장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잔재 중 하나인 장교들의 하사관 무시도 극심했고 여러모로 대우가 좋지 않았다.[1]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개선되면서 지금의 중간 간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어느 정도의 잔재는 남아있었고 이를 개선하고자 계급장을 장교와 같은 금속제 휘장으로, 임용이란 표현을 임관으로, 하사관이란 명칭을 부사관으로 바꾸는 데 크게 일조한 사람이 바로 이태준 원사다. 물론 이러한 명칭들만 바꾼다고 바로 바뀌지는 않지만 변화를 기피하고 굉장히 보수적인 군대라는 집단에서는 이러한 개선조차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1] 자세한 내용은 부사관 문서의 과거 내용 문단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