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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시티3/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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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자치군
2.1. Lv.10 재앙의 물결2.2. Lv.11잦아드는 음성2.3. Lv.13 영동 전진기지의 상황2.4. Lv.15 정면대결2.5. Lv.16 위험지역으로2.6. Lv.18 발등에 떨어진 불2.7. Lv.20 위험지역 봉쇄2.8. Lv.21 정체불명의 세력2.9. Lv.22 드러나는 적의2.10. Lv.23 이것도 일이니까2.11. Lv.24 사람이 사는 방법2.12. Lv.26 원인을 찾아서2.13. Lv.28 선릉기지공략2.14. Lv.30 추락한 천사2.15. Lv.31 만지지 마시오2.16. Lv.32 되찾은 천사2.17. Lv.33 벌초2.18. Lv.34 콘크리트 동굴2.19. Lv.35 방치2.20. Lv.36 새로운 임무2.21. Lv.37 방랑자들2.22. Lv.38 불청객2.23. Lv.39 다리 밑 탈환작전
3. 조사단
3.1. Lv.19 습격을 받은 사람들3.2. Lv.19 모여드는 약탈자3.3. Lv.19 약탈자에 대해서3.4. Lv.23 타지에서 온 자들3.5. Lv.24 말이 없는 사람들3.6. Lv.26 끝나가는 이야기3.7. Lv.27 가려진 세상3.8. Lv.27 리버티 프론트3.9. Lv.30 나무뿌리 조사단3.10. Lv.31 발밑의 공포3.11. Lv.32 요격3.12. Lv.33 파종3.13. Lv.34 정체불명의 세포3.14. Lv.35 수상한 시체3.15. Lv.36 더 깊은 곳으로3.16. Lv.37 괴상한 사람3.17. Lv.38 실타래3.18. Lv.39 약탈
4. 용병단
4.1. Lv.11 부고4.2. Lv.12 헛 바람4.3. Lv.14 오메가 팀4.4. Lv.15 용병단장의 걱정4.5. Lv.16 용병의 삶4.6. Lv.17 동료애4.7. Lv.20 자치군의 의뢰4.8. Lv.21 비열한 습격4.9. Lv.22 훈계4.10. Lv.24 좋은 일과 나쁜 일4.11. Lv.24 일그러진 현실4.12. Lv.27 마음 편한 일4.13. Lv.27 어쩔 수 없는 사이4.14. Lv.30 벌통4.15. Lv.31 역전의 용사들4.16. Lv.32 낙오4.17. Lv.33 빗나간 탄환4.18. Lv.34 비난4.19. Lv.35 상심4.20. Lv.36 무자비4.21. Lv.37 약탈자 전담 용병4.22. Lv.38 정보원4.23. Lv.39 뜻밖의 재회
5. 정커길드
5.1. Lv.11 돈이 되는 쓰레기5.2. Lv.12 폐허를 누비며5.3. Lv.14 도토리 찾기5.4. Lv.15 애도5.5. Lv.17 사라진 정커5.6. Lv.17 잃어버린 보물들5.7. Lv.18 구원의 손길5.8. Lv.21 고집스러운 손길5.9. Lv.22 보은5.10. Lv.25 위기의 정커5.11. Lv.25 정커의 자존심5.12. Lv.27 의뢰인5.13. Lv.28 동행5.14. Lv.30 뒷 조사5.15. Lv.31 돌려막기5.16. Lv.32 열려라 들깨5.17. Lv.33 열려라 참깨5.18. Lv.34 장인은 도구를 탓하는 법5.19. Lv.35 보물 터널5.20. Lv.36 괴소문5.21. Lv.37 빈 창고5.22. Lv.38 정당 방위5.23. Lv.39 현장 보존5.24. Lv.42 권유5.25. Lv.43 회상5.26. Lv.44 혐의
6. 자치민협회
6.1. Lv.14 피난민의 삶6.2. Lv.15 자치민 보호 협회6.3. Lv.16 사이 좋은 오누이6.4. Lv.17 고립된 사람들6.5. Lv.19 파업6.6. Lv.24 매도6.7. Lv.24 의심6.8. Lv.25 수색6.9. Lv.25 길 청소6.10. Lv.29 담판6.11. Lv.29 원한6.12. Lv.30 침묵은 금6.13. Lv.31 오빠는 잘 있단다.6.14. Lv.32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6.15. Lv.33 실리6.16. Lv.34 회상6.17. Lv.35 몰락6.18. Lv.36 불안6.19. Lv.37 소망6.20. Lv.38 사라예보6.21. Lv.39 패배 그리고 달리기
7. 정화교
7.1. Lv.11 난민촌 아이들7.2. Lv.12 성녀7.3. Lv.16 괄시7.4. Lv.17 독립 난민7.5. Lv.18 증발7.6. Lv.20 오해7.7. Lv.21 경고7.8. Lv.23 사고7.9. Lv.24 거수자7.10. Lv.24 추적7.11. Lv.25 보물찾기7.12. Lv.27 지원군7.13. Lv.29 구출7.14. Lv.30 실종7.15. Lv.31 불길한 예감7.16. Lv.32 가능성에 대하여7.17. Lv.33 짐승의 소굴로7.18. Lv.34 턴 페이스7.19. Lv.35 극복7.20. Lv.36 대담7.21. Lv.37 학교 다녀오겠습니다7.22. Lv.38 신뢰7.23. Lv.39 오멘
8. 리버티 프론트
8.1. Lv.36 기회8.2. Lv.36 수상한 움직임8.3. Lv.39 잠입8.4. Lv.40 피곤한 하루8.5. Lv.41 창과 방패8.6. Lv.42 다시 만난 세계8.7. Lv.43 고집쟁이8.8. Lv.43 지켜보고 있다8.9. Lv.44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9. 방랑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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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

전작 이터널시티2의 저널을 계승하였으나 메인 시나리오가 독립되어있지 않고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1]
아쉬운 건 중간중간 나오는 일러스트들과 서브 시나리오(서브 퀘스트)의 이야기들이 사라졌다.
사람들이 MAX등급의 장비 구하기 바쁜건지 전혀 채워지지 않고 있다. 진짜로 안채우고 있다. 뭐 이 병..

2. 자치군

2.1. Lv.10 재앙의 물결

시민군 훈련을 마치고 처음 전해 들은 서울 자치지구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갑자기 발생한 대규모의 지반 붕괴로 인해 자치지구 주변의 수많은 건물들이 붕괴되고 도로가 흔적도 없이 땅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거기에 감소 추세를 보이던 변이생명체들은 돌연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강북에서 발생한 정체 불명의 거대 폭발은 모든 무선통신을 먹통으로 만들어 놓았다. 자치지구는 극도의 혼란속에 빠져있었다. 이는 상황을 설명하는 서현우 중위 조자 마찬가지였다. 이곳 저곳 정신없이 울려대는 전화를 받던 그는 서울자치지구가 처한 상황에 대헤 빠르게 몇마디 하고는, 붕괴된 지반의 상태 파악을 위해 자치지구 북문에서 조사팀을 통제하고 있는 판 웨이 하사를 찾아가라고 한다.
하지만 판 웨이 하사도 병력 통제만으로도 힘에 부치다보니 별다른 정보가 없었고 증가하는 변이생명체 때문에 조사팀은 갈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 결국 주인공이 직접 지반을 조사하게 된다.

2.2. Lv.11잦아드는 음성

지반 붕괴를 조사하기 위해 용병들까지 동원되었으나 아직도 큰 혼란에 빠져있다보니 정보는 제대로 교류되지 못했다. 개중에는 조사를 위해 작전에 투입되었다가 연락이 두절되어버린 경우도 여럿 있었다. 이에 서현우 중위는 주인공에게 복귀시간이 지나도록 연락이 닿지 않는 두개의 조사팀을 지원해 주기를 요청했다.

하지만 간단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임무는 처참하게 찢겨진 두 팀의 시체를 발견하면서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시체들은 끔찍할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으며 변이생명체라기엔 물리거나 뜯겨나간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일부러 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을정도로 심하게 훼손된 시체들의 모습은 마치 자치지구 밖으로 나서는 자들은 모두 이렇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경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2.3. Lv.13 영동 전진기지의 상황

영동전진기지에 도착한 주인공. 영동전진기지의 기지장인 이중원 중위는, 항상 진지한 모습의 서현우 중위와는 달리 유쾌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기지장의 유쾌한 성격과는 반대로 기지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기지는 경기고 사거리와 영동대교 교차로를 가득 메운 변이생명체들로 인해 사실상 고립된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때문에 고립을 해소하기 위해 야간 시계 확보작전을 실행하였으나 노후화 된 장비는 말썽을 일으켜서 성공하지 못했고 작전에 투입된 두 작전팀중 한팀이 전멸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에 주인공은 생존한 작전팀을 안전하게 전진기지로 이동시킨뒤 전멸한 나머지 한팀의 살해당한 현장을 보게 되는데,경기고 사거리때와 같이 심하게 훼손되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2.4. Lv.15 정면대결

결국 야간 시계 확보 작전은 실패했고, 영동전진기지는 여전히 자치지구로부터 지원을 못받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엄청난 수의 변이생명체 무리가 영동전진기지 방향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정찰대의 보고가 이어졌다. 이중원 중위는 용병이나 시민군중 살고 싶은 자는 도망치라는 권고를 내렸으나 주인공은 도망치치 않고 방어작전에 참가하게 된다.

변이생명체의 난입을 막아선지 몇 시간이 지났을까, 더 이상은 총을 들 힘도 없다고 느껴졌을 때 즈음, 본 적 없는 거대한 덩치의 변이생명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놈들은 전진기지의 외벽 한 켠을 완전히 박살내고 나서야 침묵했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전투는 종료되었다.

2.5. Lv.16 위험지역으로

수풀이 무성한 청담역 진입로의 모습은 오래전 영화에서 본, 인류가 사라진 후의 버려진 도시의 모습과 같았다. 그런데 이 무성한 풀들이 불과 한 두달 사이에 자라났다는 점이다. 엄청나게 자라난 수풀들은 붕괴한 지반 사이사이로 솟아나와 있었고, 그 아래로는 본적 없는 거대한 싱크홀이 마치 아가리를 힘껏 벌린 뱀처럼 또아리치고 있었다.

싱크홀은 입구에서부터 변이생명체의 울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주인공이 싱크홀로 들어가 변이생명체를 상대한뒤 싱크홀 주위를 살펴보았다. 내부에는 작은 빛조차 들어오지 않았지만 대출 둘러본 것 만으로도 그 규모가 상당함을 알 수 있엇다. 일단 주인공은 탐사를 끝내고 서현우 중위에게 보고했다. 서현우 중위는 싱크홀에 주목했다. 영동대교 교차로로 유입되는 변이생명체의 근원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듯 했고, 긴급히 자치군 사령부에 싱크홀에 대해 보고했다.

2.6. Lv.18 발등에 떨어진 불

사령부의 반응은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그러나 그런 사령부의 반응에도 서 중위는 의지를 꺾지 않았고, 그는 허위 보고를 감수하면서까지 붕괴된 지반과 싱크홀에 대한 조사를 강행했다. 주인공은 다시 싱크홀 지역으로 가서 조사를 재개했고 조사의 결과는 더욱 큰 의문을 증폭시켰다. 싱크홀에서는 수상쩍다 못해 기이하기까지 한 식물이 있었고 변이생명체들은 마치 그 식물을 지키기라도 하려는 듯이 움직였다. 그리고 더 깊은 곳에는 상상을 초월하게 거대한 변이생명체까지 존재했다. 주인공이 서현우 중위에게 이사실을 전하자 서현우 중위는 발견한 것들을 통해 자신의 주장에 더욱 확신을 가졌고 사령부에 다시 한번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자치군 사령부에서는 싱크홀에서 발견한 것을 의미없는 풀쪼가리로 치부해 버렸다. 그의 견해보다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의문의 병력 손실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때마침, 의문의 사건들의 조사를 위해 연방에서 파견된 연방 조사관 부재의 회의가 시작되었다.

2.7. Lv.20 위험지역 봉쇄

아직까지는 사령부에도 생각이 있는 지휘관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걱정과는 달리 서현우 중위는 지하 작전으로 배속되지 않았고,대신 얌전히 강남구청의 변이생명체 퇴치에 전력을 다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서 중위 역시도 한바탕 홍역을 치른 만큼, 별다른 말 없이 주인공에게 퇴치임무에 집중하라는 반응이었다. 물론, 의심스러운 것을 발견하면 지체없이 보고하라는 말을 잊지는 않았지만...

강남구청 주변은 청담역 진입로만큼 수풀이 무성하지는 않았고, 지반의 붕괴도 그다지 심하지는 않았다. 다른 곳과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수의 좀비 무리만 빼면 말이다. 거대한 규모의 좀비무리라는 말에 서현우 중위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 다운 반응이었다.

2.8. Lv.21 정체불명의 세력

강남구청에서 돌아오자마자 숨돌릴 틈 없이 문제가 발생했다. 임시 통신소의 설치를 위해 강남구청 지역에 투입된 통신대대 소속의 병사들이 교전중이라는 통신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것이다. 서현우 중위의 말대로라면 뭔가 문제가 생긴것은 확실해 보였다.

불길한 예상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통신대대의 대원들은 결국 전원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이상한 점은 신원 불명의 시체들 여럿이 함께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 신원불명의 시체들은 정황상 약탈자로 보였고 통신대대를 공격한 무리였을 가능성이 컸다. 그들의 복장과 주변에 떨어진 조잡한 날붙이들이 그러한 정황을 뒷받침했다.
통신대대를 공격한 것이 약탈자라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서현우 중위는 난처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연방조사관의 약탈자 만능설에 사령부가 휘둘리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약탈자였다고는 해도, 무슨 이유로 그저 통신설비를 가설중이었던 자치군 병사들을 공격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2.9. Lv.22 드러나는 적의

서현우 중위는 약탈자로부터의 위협이 현실화 된 만큼, 강남구청의 임시 집결지로 향해서 작전중인 자치군과 용병들에게 약탈자에 대해 경고해줄 것을 지시했다.

임시 집결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지만, 임시 집결지에는 변이생명체만이 우글될 뿐, 용병이나 자치군은 보이지 않았다. 상황을 볼때 변이생명체와 교전을 벌이다가 해당 구역을 포기하고 다른 집결지로 이동한 것으로 보였다.
두번째 임시 집결지에 도착했을 즈음, 집결지 앞에서 사망한 자치군 병사를 발견했다. 차가운 송곳이 폐부를 찌르는 듯한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두번째 임시 집결지는 생지옥이나 다름 없었다. 그들을 추적해온 수많은 변이생명체들은 그들을 퇴로조차 없는 구석으로 밀어 넣은 후 학살한 것으로 보였다. 좁은 방안에는 마지막까지 생존의 희망을 놓지 않았을 치열한 저항의 흔적이 보였지만, 결국은 대부분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찢겨져 있었다. 개중에는 통신대대를 습격한 것으로 생각했던 약탈자들의 복장도 적잖이 보였다. 하지만 서로 교전했다기 보다는 변이생명체에 대항해서 함께 저항한 듯한 모습이었다.

보고를 받은 서현우 중위는 혼란에 빠진듯 했다. 경험 많은 다수의 병사와 용병들이 일시에 전멸한 것도 그렇지만, 통신대대를 공격한 것으로 생각했던 약탈자들이 자치군과 합심해서 전투를 벌였다는 것은 그러한 혼란을 가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싱크홀에서 뿜어지듯 몰려나오는 변이생명체와 갑작스럽게 등장한 약탈자들, 알 수 없는 상대에 의해 속절없이 당하고 있는 병력들, 이 모든것들이 서현우 중위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2.10. Lv.23 이것도 일이니까

연방 조사관 직할팀이 전멸했다는 소식에 잠깐 할 말을 잃은듯 보였던 서현우 중위는 잠시 후 두개의 팀으로 나뉘어 임무를 수행중인 자신의 부하들을 찾아가 상황을 점검해주기를 요청했다.

그는 이미 팀원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위험과 조우할 경우 무리한 작전속행 보다는 대피를 우선시 하라는 명령을 내려둔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연이어 벌어지는 사건들로 인한 불안감을 완전히 떨져버릴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포스코 사거리에서 조우한 첫번째 팀의 팀장은 오랜만에 만나는 판 웨이 하사였다. 예상치 못한 조우에 반가워할 틈도 없이 만나자 마자 그녀는 자신이 본 피칠갑을 한 수상쩍은 무리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녀는 자신이 마주한 상대로 인해 상당히 놀란것 처럼 보였는데, 애써 태연한 척 하려 했음에도 실핏줄이 죄다 터져 시뻘겋게 변해버린 놈의 눈을 보았다고 이야기할 때에는 여태까지 봐왔던 그녀의 당당한 모습과는 달리 목소리마저 떨리고 있었다.

두번째 팀은 약탈자들에게 기습을 당했다고 했다. 하지만 의외인 것은 약탈자들이 그들을 완전히 제압했음에도 별다른 해코지 없이 그냥 내버려두고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병사는 그들이 기습을 할 때 조차 공격의 목적 보다는 무력화에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 증거가 바로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약탈자들에게 제압 당한 후 처분을 기다리면서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탓인지 상당히 지쳐 보였던 그는, 약탈자들이 사라지기 전에 빨간 눈의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판 웨이 하사가 본 것이 약탈자들이 말한 것과 같은 존재라면 분명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병사는 밖에 그런것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지금 당장의 가장 큰 문제는 약탈자들이 빼앗아가 완전히 바닥나버린 탄약임을 강조했다.

2.11. Lv.24 사람이 사는 방법

약탈자들에게 습격받은 두번째 팀에게 탄약과 지원 병력이 필요함을 알리자, 서현우 중위는 우선 탄약을 내어주며 그들을 구출할 병력을 확보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니 먼저 두번째 팀에게 돌아가 대기중인 그들을 도와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서현우 중위가 확보해준 탄약을 들고 돌아간 1차 퇴각지점에는 주인을 잃은 자치군 군장과 급하게 휘갈겨쓴 EB8이라는 메모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자치군의 작전지역 표기방식에 따르면, EB8은 현재 지역인 포스코 사거리의 동쪽 B열 8번지를 뜻했고 예상대로 해당 지역에서 부상당한 팀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그는 반대쪽 입구로 들어온 것이 천만다행이라며, 서현우 중위에게 도움을 청하러 떠나자 마자 강력한 변이생명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들을 습격해와 간신히 쪽지만 남기고 이곳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병사들이 2차 퇴각 집결지로 피할 수 있도록 퇴각로를 확보해준 뒤 서현우 중위에게 상황을 보고하자, 그는 병사들의 구조를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음을 깨달은 듯 보였다. 그리고는 이내 그가 가장 원치 않는 상대인 연방 조사관에게 도움을 요청할 지휘서신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2.12. Lv.26 원인을 찾아서

선릉전진기지 탈환작전을 준비하는 이중원 중위는, 어딘지 모르게 활기차 보였다. 물론 목숨이 오가는 실전 상황이 즐거울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이 중위는 자치지구 보다는 일선에서 작전을 지휘하는 것을 선호하는 눈치였다.

전진기지 탈환작전에 대해 설명하던 그는, 전진기지 공략에 앞서 선릉역 지하철 내부의 수색을 요청했다.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진기지 주변의 안전을 먼저 확보할 필요가 있었는데, 지하를 통해 유입되는 변이생명체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로부터 유입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입된 변이생명체들이 지하철 터널과 역사등을 통해 지상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이를 막기 위해 우선 변이생명체가 유입되는 위치로부터 찾아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과연, 이중원 중위의 추측은 정확했다. 선릉역 역사내의 사무실 벽면 한쪽이 무너져 내려 있었는데, 그 뒤쪽으로는 끝이 보이질 않을정도로 깊고 어두운 싱크홀이 연결되어있었던 것이다. 그 구멍을 통해 변이생명체들이 유입되고 있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근처에 있던 긴급전화의 전화선을 뜯어내어 이 중위가 지급해준 유선통신기와 연결하자 별 문제 없이 통신이 연결되었다. 상황을 보고받은 이 중위는 아직 탈환되지 않은 선릉전진기지 내부에 고폭탄이 남아있는 것을 기억해 내고는 그것으로 구멍을 폭파하여 변이생명체의 유입경로를 차단할 것을 부탁했다.

선릉전진기지에서 찾아낸 고폭탄을 싱크홀 입구에 설치한뒤, 간단한 기폭장치를 장치하고 사무실을 나서려는 순간 싱크홀의 내부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나무의 뿌리와 같은 형상이었는데, 이미 기폭장치가 작동 중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중원 중위에게 돌아가자 그는 본격적인 탈환작전을 시작하기 위한 사전준비를 하고 있었다. 선릉역의 구멍에서 본 꿈틀거리는 나무 뿌리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는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지금은 시기가 미묘하니 일단은 선릉 전진기지 탈환작전에 집중하자고 말했다.

2.13. Lv.28 선릉기지공략

이중원 중위의 얼굴은 어두웠다. 선릉전진기지 탈환작전이 무탈히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니었나고 묻자, 전진기지의 탈환은 생각보다 쉽게 성공했지만, 전진기지와 연결된 부속 건물이 문제라고 했다. 무슨 이유에서 인지 변이생명체들이 죄다 그 건물 안에 들어가있다는 모양이었다.

실외 전투보다 실내 전투가 훨씬 어렵고 위험하다. 게다가 건물 내부 확보작업은 변이생명체의 유입을 막기 위해 입구를 봉쇄한 체 진행하기 때문에, 일단 진입한 작전팀은 퇴로도 없이 건물 내부가 완전히 비워질때까지 변이생명체들을 상대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중위의 팀원들중 몇몇이 건물 내부에서 고립되어버린 모양이었다. 마땅히 병력을 지원해줄 방안이 없었던 이 중위는, 결국 나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부상당한 작전팀 병사는 가까스로 내부의 화장실에 숨어있는 모양이었다. 근처까지는 접근했지만, 더 이상은 돌입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동료 병사들을 안심시킨뒤, 눈앞에 보이는 변이생명체들을 닥치는대로 박살내며 전진했다. 뒤의 병사들 역시도 필사적으로 엄호해 주기는 마찬가지였다.

고립된 동료를 구출하는데 성공하자, 병사들은 크게 안도하며 본격적으로 내부의 변이생명체들을 소탕하기 시작했다. 건물 밖에서 기다리던 이중원 중위 역시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건물 내부 정화작전도 어느덧 끝나가고 있었다. 그는 힘들게 되찾은 전진기지를 또다시 빼앗기지 않도록 아주 신경쓰겠다고 다짐하며, 들뜬 모습으로 전진기지 보수작업을 시작하겠노라 선언했다.

2.14. Lv.30 추락한 천사

셰브첸코는 생각보다 훨씬 무능한데다 치졸하기까지 한 인물이었다.

그동안 수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조사했던 식물의 이상증식 현상에 대해 셰브첸코에게 여러 차례 보고했고, 이에 필요한 지원 혹은 최소한 관련 조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연구원이라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해 왔지만, 연방으로부터는 그동안 지원은커녕, 아무런 반응조차 없었다. 때문에 지금껏 식물의 이상증식을 무시해왔던 건 연방의 판단인 것으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중원 중위의 말에 따르면 셰브첸코는 애초에 이 사안에 대해서 연방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셰브첸코가 얼마전 갑작스레 연방에 관련 내용을 보고했고, 연방은 사안이 중하다고 생각했는지, 즉시 일본에 체류중이던 생물학자를 급파해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셰브첸코가 왜 지금에서야 뒤는 게 보고를 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마도 선릉역에서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혹은 감추기 위해 다른 이슈가 필요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연방이 식물의 이상증식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일이었고 이제서야 제대로된 조사를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리 긍정적으로만 돌아가고 있지는 않았다.
그 생물학자를 태우고 자치지구로 향하던 연방의 헬기가 청계산 부근에서 무언가에 피격당해 추락해버린 것이다.

헬기를 공격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알길이 없었다. 일개 약탈자들이 대공무기를 갖고 있을리도 없고, 청계산 인근에 반군의 세력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조차없다. 따라서 헬기가 추락했다는, 그것도 무언가에 피격당해서 추락했다는 것은 의문스러운 일이었다.

아무튼 헬기는 추락 직전까지 '무언가에 맞았다' 라는 통신을 보낼 수 있었고, 그건 완전히 공중분해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사령부에서도 생존자들의 수색에 적극 나서고 있었지만, 지역이 지역인 만큼 어려움이 따르는 모양이었다. 이에 이중원 중위가 수색대를 맡게 되었는데, 불길한 예상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지 그는 수색에 함께 참여해 주기를 예의 능글맞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요구했다.

오랜만의 비행 때문인지, 조금은 메스꺼운 속을 다스리며 청계산에 발을 내딛자 기대와는 달리 퀴퀴하고도 이상한 냄새가 감도는 공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숲이 우거진 산속임에도 이정도의 악취가 풍기고 있다는 것은 이 산을 뒤덮고 있는 변이생명체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를 짐작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긴장해햐 할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중위는 이래서야 등산을 온 기분이 나질 않는다며 예의 너스레를 떨어댔다.

이 중위는 먼저 수색을 시작한 1팀이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했다. 변이생명체들 때문에 이제야 제대로 된 수색을 시작한 2팀보다 1팀은 한참을 더 앞서 나가있는 모양새였다. 이 중위는 사령부에 보고하기 위해 수색 1팀이 발견했다는 이상한 물체를 조사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현장에 도착해서 발견 한 것은 뜻밖에도 청담역 진입로의 붕괴 지반에서 발견했던 것과 비슷한 형태의 나무뿌리들 이었다. 마치 심장 박동 같은 기분나쁜 고동이 느껴지는 그 나무뿌리를 건드리면 주변의 변이생명체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는 것은 싱크홀에서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일단은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둔채 돌아왔다.

이중원 중위에게 1팀이 발견한 것이 청담역 진입로에서 발견했던 나무뿌리와 같은 것 같다고 전하자, 그는 즉시 들은대로의 내용을 무전을 통해 보고했다. 하지만 통신이 이어질수록 그의 표정은 점점 찌뿌러져갔고, 무전이 끝나자 그는 돌연 그가 할 수 있는 최고로 미안한 표정을 지어가며 나에게 당장 자치지구로 복귀해 연방 조사관을 만나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우직한 얼굴로 최대한 불쌍해보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피식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다시금 연방 조사관을 상대할 생각을 하니 그조차도 금세 짜증스러운 기분으로 바뀌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2.15. Lv.31 만지지 마시오

금토천으로 향한 수색 1팀으로 부터 무전이 온 모양이었다. 이중원 중위는 1팀이 수색지에서 뭔가를 잘못 건드렸는지 광분한 변이생명체들의 습격으로 인해 금토천의 한 편의점에 고립 되어 버렸다면서, 아무래도 그들이 문제의 나무뿌리를 건드린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또다시 병력 손실이 발생한다면 지휘관인 서현우 중위가 난처해 질 것이라면서, 다른 일은 미뤄두고 그들을 먼저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토천의 편의점에 들어서자, 수색 1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들이 얼마나 놀랐는지에 대해 토로했다. 그들은 그저 발견한 헬기의 소속을 확인하기 위해 헬기를 휘감고 있던 덤불을 잘랐을 뿐인데, 갑자기 사방에서 변이생명체들이 미친듯이 공격 해오기 시작했다며 아찔했던 상황을 앞다투어 털어놨다. 역시나 그들이 자른 덤불은 단순한 덤불이 아니라 그 괴 식물의 뿌리인 듯 보였다.

확인을 위해 헬기 잔해가 있는 장소로 가자, 역시나 그냥 덤불이 아닌 문제의 나무뿌리가 헬기 전체를 휘감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연방의 헬기는 아닌 듯 보였는데, 여지껏 이 괴기 스러운 나무뿌리가 특정한 물체를 휘감고 있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기에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더구나 이 헬기 역시도 추락한지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지는 않았다. 흔하지도 않은 헬기가 굳이 청계산에 자꾸 추락한다는 것은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편의점으로 돌아오자, 수색 1팀은 이중원 중위가 찾는다는 말과 함께 자신들의 무전기를 건네주었다. 이중원 중위는 수색 1팀이 무사하다는 것에 안도하면서도 나무뿌리가 금토천에서 까지 발견되었다는 것에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여기까지는 별다를 것 없는 대화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중원 중위는 무전기를 판웨이에게로 넘겼고, 잠시 후 그녀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2.16. Lv.32 되찾은 천사

베이스 캠프에 도착하자, 이중원 중위는 수색 1팀을 무사히 구출한 것에 감사를 표하며, 드디어 수색 2팀에서 연방의 헬기를 찾아냈다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후 괴상한 변이생명체들에게 공격받고 있다는 연락이 다시 왔고, 그 이후 통신이 두절 되어 지금까지도 전혀 교신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이중원 중위는 증원을 준비하는 동안 먼저 윈터골로 향해 그들을 찾아봐 달라고했다. 괴상한 변이생명체라면, 아무래도 금토천에서 발견했던 채찍 형태의 나무뿌리를 말하는 것일 터였다.

윈터골에 진입하고 얼마 되지않아 앞서 수색 2팀이 발견했다던 연방 헬기의 잔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나 나무뿌리에 휘감겨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헬기의 상태가 예상보다 나쁘지 않았고, 주변에 시체 또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탑승객들이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상황, 그러나 변이생명체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던 수색 2팀의 무전이 계속 마음에 결렸다.

한참을 가슴 졸이며 윈터골을 수색하던 도중, 드디어 한 건물 실내에서 사람의 흔적을 발견했다. 흔적을 따라 옥상으로 올라가자, 완전히 지쳐 쓰러지기 직전 상태인 수색 2팀원과 추락 헬기의 생존자들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존자들은 헬기가 추락한 후 자력으로 이 건물로 와서 먼저 숨어있었고, 그 와중에 변이생명체들의 공격에 쫓기는 수색 2팀을 발견하면서 합류하게 된 것이었다.
수색 2팀 역시도 변이생명체의 습격에 의해 무전병을 잃기는 했지만, 지금 이곳의 상황으로 보았을 때, 그정도의 사상자로 끝난 것도 천운이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수색 2팀과 생존자들이 베이스 캠프로 복귀하자, 이중원 중위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좋아하며 우리를 반겼다. 무전병이 희생당했다는 소식에 잠시 굳은 표정을 보이긴 했어도, 그래도 이만하면 다행이라며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로했다. 그 때, 서현우 중위와 연방 조사관 셰브첸코를 태운 자치지구 헬기가 베이스 캠프 상공에 나타났다. 연방의 생물학자가 구출되었다는 소식이 벌써 자치지구까지 전해진 모양이었다.

2.17. Lv.33 벌초

인상을 잔뜩 찌뿌린 이중원 중위의 말은 나까지 한껏 인상을 쓰게 만들었다. 연방 조사관이 맑은 숲 공원 정찰에 자치군 병력을 동원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이 중위는 이번에 복귀 하기만 하면 셰브첸코의 턱을 박살 내놓겠다며 길길히 날뛰었고, 나 역시 그 뻔뻔한 얼굴에 한방 먹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져 버렸다. 그러나 연방 조사관 막사에서 지켜본 자치군 사령관과 셰브첸코의 대화를 돌이켜 볼때, 셰브첸코의 의지가 바뀔 가능성은 조금도 없어 보였고, 자치군 역시 난감한 입장에 처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중원 중위는 마치 물가에 어린 애를 보내는 것 처럼 호들갑을 떨어대면서도, 안젤라 박사의 말대로 뭔가 발견했을 때를 대비해 강력한 포격 지원을 요청할 수 있도록 신호탄을 손에 쥐어 주었다. 아마도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일 것이다. 결국, 몇 명의 용병과 시민군 정도로 구성된 소수의 인력을 바탕으로 맑은 숲 공원의 수색이 시작되었다.

맑은 숲 공원은 공원이라는 이름이 무색케도 그저 진입로를 따라 쭈욱 이어진 산책로에 가까웠다. 좁고 길게이어진 길인 만큼, 변이생명체를 피해서 우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수색의 목적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런 단순한 구조가 나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변이생명체를 상대해가며 얼마나 걸었을까, 전방에 몇몇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별다른 특이한 점을 찾지 못해 그냥 지나치려던 참이었다.

시야에 뭔가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의 건축물이 들어왔다. 멀리서 보기에는 그냥 특이하게 생긴 2층 건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거대한 식물형 변이생명체가 건물 전체를 휘감고 있어서 더욱 크게 보였던 나지막한 단층 건물이었다. 여태까지 보았던 뿌리 형태의 변이생명체와는 다소 다른 형태에 의아해 하고 있을 때 즈음, 건물 지붕에서 '그 것'을 발견 하고야 말았다,

'그 것'은 말 그대로 하늘을 향한 '대포'와 같은 것이었다.
하늘을 향해 굴뚝처럼 치솟은 그 것은 얼핏 보기에는 잘려버린 나무 밑동 같이 보였지만, 그 속이 얼마나 깊을지 모를 텅 빈 아가리가 유유히 꿈틀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가리는 간헐적으로 하늘을 향해 무언가를 툭툭 뱉어내고 있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전율이 온몸을 감쌌고, 그때 순간적으로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변이생명체와는 다른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안젤라 박사의 예상은 적중했다. 정말로 대공 공격이 가능해보이는 변이생명체는 존재 했고, 이것은 반드시 파괴해야 할 대상이었다. 당장이라도 이중원 중위가 건네준 신호탄을 집어던져 포격을 퍼붓고 싶었지만, 먼저 베이스 캠프로 통신을 시도했다.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로 나타났음을 안젤라 박사에게 알려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사의 목소리에는 그다지 놀라는 기색이 없었고, 무심한 말투로 그걸 포격으로 박살내버리는 건 좋지만, 그 전에 반드시 연구용 샘플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 만을 강조했다.

샘플을 확보하기 위해 대공포처럼 생긴 변이생명체에 대검을 들이 대자, 예의 그 기분 나쁜 박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것 역시 샘플을 채취하기 위해 상처를 내면 온갖 변이생명체들이 튀어나오는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의외로 주변에서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충분히 샘플을 채취하고 난 뒤, 신호탄을 시커먼 구멍이 뻥 뚫린 변이생명체의 줄기에 설치하고는 멀찌기 떨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 망경대 방향에서 포성이 들려왔고, 하늘을 가르며 날아온 포탄은 기괴하기 짝이 없는 그 변이생명체를 묵사발로 만들어 버렸다.

복귀하기에 앞서 다시 베이스 캠프에 통신을 시도했는데, 이중원 중위와 연결이 된 순간 갑작스럽게 괴상한 울림과 함께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지진에 안그래도 상태가 좋지 않던 통신은 금세 잡음에 휩싸였고, 이중원 중위는 거의 울부짖는 수준으로 즉시 베이스 캠프로 복귀하기를 종용했다.

베이스 캠프로 돌아오자 이 중위가 심각한 표정으로 포격 지원 이후에 맑은 숲 공원에서도 지진이 느껴졌는지를 물었다. 이에 그곳에서도 꽤나 심한 진동이 있었다고 대답하자, 이 중위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이쪽 망경대에서는 거의 사람이 서있을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는데, 그 지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엄청난 괴성과 같은 울림과 함께 시작되었다가 그 울림이 멈추는 동시에 잦아들었다는 것이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다른 사람들도 뭔가 넋이 나간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뭔가를 건드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2.18. Lv.34 콘크리트 동굴

이중원 중위는 진심으로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청계산에서 그 고생을 했으니 한동안은 쉴 수 있겠다며 좋아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자치군에서는 그를 지하철 9호선 공사장의 변이생명체 퇴치 임무에 배정해버린 것이다.
성난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는 이중원 중위에 비해 서현우 중위는 이미 예상한 일이라는 듯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그저 이중원 중위를 다독일 뿐이었다. 한참을 투덜대던 이중원 중위는 사령부의 지시이니 별 수 없지 않냐는 서현우 중위의 말에 결국 체념한 것처럼 보였고, 서현우 중위는 때를 놓치지 않고 임무 브리핑을 시작했다.

서 중위의 말에 따르면 최근 지하철 9호선 공사장에서 대량의 변이생명체가 출현했다는 보고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자치군 사령부는 대량의 변이체의 출몰이 청계산의 거대한 변이생명체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지하철 9호선 공사장에 또 다른 거대 변이생명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품고 있었다. 청담역에서도 싱크홀이 발견되었던 만큼,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매우 위험한 임무가 될 것이었다.

지하철 9호선 공사장의 어두컴컴한 지하는 청계산의 동굴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콘크리트 동굴이라는 점이었다. 또 다시 발 밑에서 튀어나오는 촉수같은 뿌리들을 상대할 생각에 잠시 아득해 졌지만, 정작 이곳의 변이생명체들은 청계산에서 보이던 놈들과는 많이 달랐다.

놈들을 상대하며 어두운 지하를 여기저기 뒤지던 중, 이중원 중위가 원하던 공사장 설계도를 찾아낼 수 있었다. 엄청난 먼지를 뒤집어쓰로 있었지만 의외로 크게 손상된 부분 없이 상태는 좋아 보였다. 혹시나 유실된 부분은 없는지 이리저리 살피던 도중, 설계도가 놓여진 책상 너머로 뭔가 이질적인 물체가 눈에 띄었다. 순간 변이생명체라고 생각하고 총을 움켜쥐었지만, 움직임은 없었다. 조심스럽게 살펴보니 그건 비쩍 말라 굶어 죽은 사람의 시체였다. 그제서야 설계도면 주변에 널려있는 각종 식료품 포장지와 빈 통조림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물품의 양을 볼때 사망자는 이 컨테이너 안에서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거주한 모양이었다.

외로운 죽음을 맞이한 시체를 뒤로하고 자리를 뜨려는 찰나, 시체가 어딘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선 시체의 비틀린 팔이 눈에 들어왔는데, 다시 한번 살펴보니 팔 뿐만이 아니라 사지 전체가 있을 수 없는 기괴한 방향으로 비틀려 있었다. 굶어죽은 사람의 시체로 보기에는 그 형상이 너무나 기괴했고, 변이생명체에게 당해서 뒤틀린 것이라고 보기에는 아사의 흔적이 너무나 명백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이렇게 뒤틀린체로 살아왔다는 것도 믿기 어려운 생각이 들었다. 청계산의 그 식물은 인간의 체액을 빨아먹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안젤라 박사는 특이한 변이생명체를 발견하거나 혹은 작더라도 의심이 가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상황을 기록하고 샘플을 수집해 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어쩌면 이 시체도 안젤라 박사의 연구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를 위해 주변 상황을 자세히 확인한 후 시체의 샘플을 수집해서 자치지구로 돌아가기로 했다.

2.19. Lv.35 방치

지하철 공사장에서의 임무는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령부에서는 이중원 중위에게 이번 임무에서 빠지고 대신, 성수 전진기지 탈환 작전을 담당하라는 갑작스러운 명령을 내렸다.

사령부의 변덕에 이중원 중위는 되려 병력 동원 권한도 없는 서현우 중위가 지하철 9호선 공사장 임무를 혼자 수행하게 될 것을 걱정했다. 시민군과 용병을 동원해서 어느 정도 진행해야 가능하겠지만, 아직 임무의 시작단계일 뿐인 상황에서 언제 대규모의 병력이 필요한 상황이 닥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령부는 이중원 중위에게 성수 전진기지 탈환을 명령했고, 그 명령을 철회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이 중위는 별 수 없이 영동 전진기지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중원 중위는 자신이 작전 회의에 참여하는 동안에 영동 전진기지와 인접한 올림픽 대로의 변이생명체 퇴치를 주문했다. 그의 요청대로 올림픽 대로의 변이생명체들을 퇴치한 후 영동 전진기지로 향하자, 작전 회의를 벌써 끝마쳤는지 이 중위가 먼저 도착해서는 반겨 주고 있었다. 그는 내심 답답했던 자치지구를 벗어난 것이 홀가분한 모양이었다. 그는 지루하고 별 볼일 없던 작전회의에 대한 푸념을 한참을 늘어 놓더니 또 금세 진지해져서는 성수 전진기지 탈환 작전을 실행하기에 앞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2.20. Lv.36 새로운 임무

다른건 몰라도 병력의 손실은 어떻게든 최소화 하겠다는 이중원 중위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예전 영동 전진기지가 고립되었을 때, 서치 라이트를 설치하기 위해 나섰다가 병사들이 희생된 것을 자신의 판단 미스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그 때문인지, 그는 올림픽 대로부터 차근히 안전지역을 확보해가며 대원의 안전과 작전의 성공 모두를 이룰 계획을 이미 구상해 놓았다며 자신만만했다. 첫번째 구역 끝자락에 안전구역을 먼저 확보해서 작전 진행중 부상당하거나 피로한 병사들이 쉴 수 있게 한 뒤, 두번째 구역을 확보하는데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생각대로만 진행 된다면 나쁘지 않은 작전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그의 자신에도 불구하고 그의 계획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안전지역을 '확보한다'로 끝나버린 그의 계획에는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때, 그 결여된 계획을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이 작전이 누구에게 맡겨질 것인가 역시도 뻔한 일이었다.

목표로 했던 안전구역을 정리한 후, 이중원 중위에게 무전을 시도하자 그는 즉시 안전구역으로 달려와서는 빠르게 진지를 꾸리기 시작했다. 그가 한동안 자리를 비웠음에도 영동 전진기지의 병사들은 여전히 그와 손발이 잘 맞았고, 안전구역은 빠르게 정돈되어갔다. 작업이 완료된 안전구역은 심지어 아늑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의 장기는 여기에 있었던 모양이다. 과연, 돌아온 기지장님 이었다.

2.21. Lv.37 방랑자들

안전지역을 확보한 이중위가 흐뭇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순간 갑작스러운 무전이 울려왔다. 이중원 중위는 내심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혹시라도 정탐차 다음 구역에 먼저 보냈던 수색대의 안전에 문제라도 생긴 것인지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수색대에서 발신된 무전은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흔적을 발견했다는 것 이었고, 이 중위는 변이생명체가 들끓는 올림픽 대로에 남아 있는 사람의 흔적이 혹시 약탈자들의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정말로 그 흔적들이 약탈자의 것이라면 변이생명체들을 상대하고 있는 수색대의 뒤를 공격 해올지도 모르는 상황. 확실한 조사가 필요해 보였다.

첫번째 흔적은 강가에 남아있는 불을 피운 흔적과 음식 찌꺼기가 남아있는 식기류 따위였다. 누군가 그곳에서 끼니를 해결한 듯 보였다. 이럼 위험한 장소에서 식사를 했다는 것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지간한 변이생명체 따위는 순식간에 박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거나, 아무 생각없이 멍청하거나.

수색을 다시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까지도 잔불이 남아있는 모닥불을 발견했다. 모닥불 옆에는 빵빵하게 가득찬 가방이 놓여져 있었고, 그 가방 안에는 옷가지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정황상 그리 멀리가지는 못 했을 것 같았고 역시나, 바로 옆 건물에서 흔적들의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걱정과는 달리 그들은 피난민들이었다. 한강 상류에서 뗏목을 만들어 남하해온 모양이었는데, 그들이 남긴 흔적 만큼이나 대담한 행동이었다. 이중원 중위에게 보고하자, 그는 안도하며 피난민들의 인솔은 수색대에게 맡기고 그들이 안전하게 복귀할 수 있도록 피난처 주변의 변이생명체 퇴치를 부탁했다.

2.22. Lv.38 불청객

사령부와 무전을 마친 이중원 중위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이유를 묻자, 그는 사령부에서 피난민들을 자치지구로 이송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했다. 자치지구의 피난민들이 외부의 피난민들을 수용하는 것에 극도로 반발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사령부에서는 당분간 그들을 임시로 보호하면서 성수 전진기지 탈환 작전을 계속 진행하라고 했다는 것 이었다.

하지만 병력 부족으로 피난민들을 영동 전진기지까지 후송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 전진기지 탈환작전 만으로도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이 중위는 거의 무전기에 침을 뱉을 기세였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고 2구역의 임시 거점을 최대한 빨리 확보해서 병사들과 피난민들이 가급적 함께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을 세웠다. 그다지 내키는 방법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안그래도 부족한 병력이 피난민들의 보호를 위해 더욱 나뉘게 된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임시 거점의 확보에는 가능한 모든 병력을 동시에 투입하기로 했다. 이 중위의 팀이 임시 거점 내부를 정리하는 동안 올림픽 대로의 변이생명체들이 임시 거점으로 난입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임무는 다행히 성공적이었고, 이중원 중위는 무엇보다 병사들이 다치지 않은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피난민들 역시도 얼기설기 대충 구축 해뒀던 안전구역 보다는 확실한 설비가 갖춰진 임시 거점을 더 마음에 들어하는 듯 했다.

2.23. Lv.39 다리 밑 탈환작전

작전이 차근차근 성공적으로 진행되자, 의기양양해진 이중원 중위는 멋지게 피날레를 장식 하겠다며 본격적인 성수전진기지 탈환작전을 개시함을 알렸다.
그간 고생했던 수색대는 임시 거점에서 피난민들을 보호하고, 타격대가 먼저 성수 전진기지에 진입해 내부를 정리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 동안 임시 거점 확보때와 마찬가지로 밖에서 유입되는 변이생명체들을 막아달라는 부탁을 한 이 중위는, 그의 무자비 해보이는 기관총을 짊어지고는 성수대교 방면으로 사라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웅웅대는 무전기를 켜자 이중원 중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진기지 내부에 무언가 엄청난 것이 있다며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전진기지로 들어서자, 거의 교각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거대한 변이생명체가 병사들을 쫓고 있었다. 그나마 타격대로 편성된 병사들이 노련했던건지, 아직까지 위급한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은 듯 보였다.

힘겹게 놈을 퇴치하고나자, 병사들은 쉴 틈도 없이 팔을 걷어부치고는 빠르게 전진기지 복구와 진지 구성에 총력을 다했다. 지휘관인 이중원 중위 역시 직접 중장비의 레버를 잡고 힘을 보탠 것은 물론이었다. 다행히도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전진기지 복구 공사는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고, 그 즈음 수색대가 피난민들을 인솔해서 성수 전진기지에 들어섰다. 부상자 셋, 사망자 없음. 대 성공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자치지구 복구 공사가 끝나갈 즈음, 발생했다.

갑작스럽게 EL.A 연방의 요원들이 몰려와서는 전진기지의 경계와 방역 상태를 확인 하겠다며 기지 운영권한을 이관할 것을 요청한 것이다.
자치군 병사들은 예상치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그리고 이내, 죽을힘을 다해 싸워서 차려낸 밥상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듯한 행태에 분노가 폭발했다. 그 중에서도 이중원 중위가 특히 그랬는데, 그는 연방에서 자신을 엿먹이기 위해 아예 작정하고 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였는지, 연방 요원의 요구에 이 중위는 결코 살갑게 답하지 않았고, 그의 비아냥대는 태도에 덩달아 화가 난 연방 요원은 연방의 권한까지 들먹이며 목적을 관철하려 했다.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이중원 중위는 결국 당신들이 하고 싶다면 하고싶은 일을 하되, 우리는 우리쪽대로 우리의 권한 하에 있는 일을 하겠다는 식으로 막무가내로 대응했다.
결국 연방 요원도 없는 규정을 고집할 수는 없었고, 연방의 권한인 방역 확인이라는 전제 하에 성수 전진기지에 합류하는 형태가 되어 버렸다.

이상한 자존심 까움이 되어버린 결과였지만, 실은 이 자체로도 충분히 이상한 일이었다. 어차피 변이생명체가 들끓는 이런 전진기지에 굳이 방역상태 확인이 필요한지도 의문이었고, 연방 요원이 전진기지를 운영하고 경계까지 책임지고 하겠다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는 이야기였다. 아니, 애초 연방 요원들이 이렇게 떼지어 다니는 모습 자체가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이 중위의 말대로 그를 엿먹이기 위한 목적이였다면 매우 성공적이었겠으나, 연방이 한낮 현장 장교 하나를 엿먹이자고 많지도 않은 연방 요원 다수를 이런 위험한 곳까지 보냈을리는 만무하다.
이 중위의 말마따나 무슨 의도로 하는 일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 이유도 없는 행동은 분명 아닐터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3. 조사단

3.1. Lv.19 습격을 받은 사람들

연방 조사관 주재 회의는 처참 했다.서현우 중위의 의견은 철저히 묵살 당했으며, 모든 인원 손실 사건은 약탈자들의 소행으로 귀결되었다.[2]
자기할 말을 모두 쏟아부은 연방 조사관 셰브첸코는,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서현우 중위를 지상 작전에서 제외시키라는 골자의 성명을 자치군 사령부에 보내겠다면서 쐐기를 박아버렸다. 완전히 손발이 묶여버린 서현우 중위는 결국 연방 조사관의 요구대로 지상 임무를 보류하고 삼성역 지하철 임무를 주선해 주었다.그리고 주인공은 그를 도와 지하철 임무를 수행해본 후에야 왜 서현우 중위가 삼성역 지하 임무라는 말에 그렇게나 벌레 씹은 표정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요는, 기본도 되어있지 않은 얼빠진 대원들 부터가 문제였던 것이다.

3.2. Lv.19 모여드는 약탈자

무엇이 그리 두려웠는지 군장마저 내팽겨친 채 삼성역 지하에서 허겁지겁 도망쳐나온 배인협 하사는 자신의 군장을 되찾아 달라는 어처구니없는 부탁을 했다. 구내에 변이생명체가 우글우글하다는 말로 자신의 두려움을 표현한 배인협 하사의 말대로 수많은 변이생명체들이 지하철 역 내부를 뒤덮고 있었다.
배인협 하사의 군장은 오래지 않아 찾을 수 있었지만, 이상한 것은 군장에서 음식류가 여려 개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변이생명체가 사람의 음식에 관심을 가질리 없는 만큼, 이는 다른 누군가의 소행이 될 것이다. 하지만 경계 소대장인 이현중 소위는 아무런 고민 없이 이를 약탈자의 것으로 단정지었다. 물론 그런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약탈자가 굳이 변이생명체가 우글대는 지하철역에서 군장을 뒤지고 있었을까 라는 의문은 누구나 가질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현중 소위는 연방 조사관의 말을 인용하며 어떠한 의심도 없이 이를 확신했다. 상부의 의견에 반하는 어떠한 의문도 갖지 않는다는 경직된 자세, 자신과 같은 말단 계급은 그저 상부의 지시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은 자치군 장교의 자질마저 의심케하는 결과를 낳았다.

3.3. Lv.19 약탈자에 대해서

배인협 하사의 징계 처분은 확정된 듯 했다. 모든 의욕을 잃은 그는 마치 당장이라도 삶이 끝날 것처럼 굴었고, 삼성역 지하철 역사 설계도를 건네는 그의 손은 시체처럼 창백하기가 그지 없었다.

하지만 삼성역 지하철에서 강력한 변이생명체를 발견했다는 소식에, 징계의 절망에 빠져 빛을 잃었던 그의 눈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언뜻 보기에도 경계조만으로 상대하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변이생명체였기 때문에, 자신이 앞뒤 가리지 않고 도망친것이 정당하다는 논리, 말 그대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절호의 논리였다.

3.4. Lv.23 타지에서 온 자들

연방 조사관의 호출은 그다지 달가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동안의 여러 정황들이 셰브첸코의 생각을 조금은 바꿔주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기대는 기대로 끝났을 뿐이었다. 그는 모든 정보를 종합한 결과, 최근의 자치군 병력손실의 가장 큰 원인은 약탈자였음을 재차 강조하며, 통신대대와 약탈자간의 치열한 전투 흔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변이생명체에 대항해 자치군과 약탈자가 연합한 흔적을 발견했다는 이야기에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단칼에 일축해 버렸다.
그는 쓸데없는 의견제시 보다는 당분간 포스코 사거리에서 약탈자 소탕 작전을 수행중인 자신의 직할팀을 지원하라고 요구했다.

약탈자 소탕 작전이 진행중이라는 포스코 사거리의 한 건물에 도착하자, 역시나 셰브첸코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는 약탈자는커녕, 변이생명체만 득시글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바람에 진압작전용 경무장 상태였던 타격팀은 변이생명체를 상대로 충분치 못한 저지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결국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한 체 전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타격팀은 애꿎은 자치군 사령부를 탓하며 자치지구로 돌아가 자신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3.5. Lv.24 말이 없는 사람들

셰브첸코의 반응은 격렬했다. 병사들이 조우한 것은 약탈자가 아닌 변이생명체였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음을 알리자, 그는 먼저 무능한 자치군 지휘관과 병사들을 욕해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추가적인 병력 손실은 원치 않았는지, 몇 정의 분대지원화기와 탄약, 그리고 구조헬기 신호용 연막탄을 떠넘기듯 건네주었다.

타격팀에게 장비를 전달하자, 그들은 감사를 표하며 다른 타격팀들이 이미 집결지점에서 대기중일 것이라는 정보를 전했다. 덕분에 다른 타격팀을 찾아 포스코사거리를 뒤지고다닐 수고는 덜 수 있을 듯 보였다.
그러나 집결지점에 도착하자, 정보와는 달리 합류해있어야 할 두 타격팀중 하나의 팀이 도착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나마 먼저 도착한 팀도 이전의 타격팀과 비슷한 상황이었는지, 여기저기 부상을 당한 병사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지정된 시간이 지나도록 합류하지 않는 3팀을 걱정하며 그들의 작전지역으로 찾아가 상황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3팀의 작전지역은 말 그대로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도대체 무엇에 당한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정도로 찢겨진 시체들은 마치 보란듯이 이곳 저곳에 흩뿌려져 있었다. 물론 생존자는 없었고, 할 수 있는 일은 2팀이 기다리고 있는 집결 지점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집결 지점의 상황은 눈을 의심케 했다. 살해당한 3팀보다도 더욱 처참하게 훼손당한 2팀 전원의 시체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불과 십여 분 사이, 포스코 사거리의 블록 몇 개를 지나는 그 잠깐의 시간동안 살해자들은 마치 자리를 비우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2팀까지 유린하고는 유유히 사라진 것이다.

3.6. Lv.26 끝나가는 이야기

셰브첸코는 병력지원을 요청하는 서현우 중위의 지휘서신이 마치 항복문서라도 되는 듯 양껏 비웃었다. 다만, 또다시 병력 손실이 발생하는 것은 피하고 싶었는지 지원병력은 별 말 없이 보내주기로 했다.

이에 서현우 중위의 팀원 구출에 합류하려 했지만, 그는 한사코 자신의 병사들을 믿으라며 서현우 중위 쪽은 신경끄고 선릉역에서 작전중인 약탈자 소탕팀을 지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지금까지와는 다를것이라는 셰브첸코의 말대로, 선릉역의 약탈자 소탕작전은 포스코 사거리에서의 상황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었다. 띄엄띄엄 숨어든 약탈자의 저항은 미약했고, 작전은 지나칠 정도로 순조로웠다. 심지어 일부 병사들은 이를 일방적인 학살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와는 상관없이 작전은 계속되었고, 마지막 한명의 약탈자까지 모두 소탕될 때 까지 작전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3.7. Lv.27 가려진 세상

소탕팀이 별 탈없이 작전을 마무리지어가는 중이라고 전하자, 셰브첸코는 더욱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무전병에게 복귀 명령을 하달했다.
그러나 당초 원활한 명령 하달을 위해 집결지에 설치해두었던 유선 통신은 응답하지 않았고, 작전을 멋들어지게 마무리하려던 셰브첸코는 결국 짜증을 냈다. 그는 통신소인 하늘소로 돌아가서 작전종료와 병력의 복귀 명령을 직접 전달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통신병이 졸고 있을 것이라는 셰브첸코의 장담과는 달리, 집결지는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인적은 찾아볼 수 없었고, 엉망진창의 집결지에서 들려오는 것은 유선통신기로부터의 잡음 뿐이었다.
불길한 예감도 잠시, 난장판 속에서 작은 혈흔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점점히 흩어진 핏자국의 끝에는 참혹하게 짖이겨진 소탕팀의 시체더미가 나타났다. 중간 중간 보이는 자치군의 전투복이 아니었다면, 이것이 누구의 시체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분명한 것은 힘에의해 뜯기고 짖이겨진 것으로, 사람의 짓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셰브첸코에게 상황을 보고하자, 그는 완전히 얼이 빠진채 계속해서 모든 작전이 성공적인 종료 단계였음을, 병사들이 변이생명체들에게 당했을리가 없다는 말만을 계속해서 되풀이 할 뿐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모든 사건의 책임을 약탈자로 확신했고, 그가 추진한 약탈자 소탕작전은 현장의 병사로부터 일방적인 학살에 가깝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끝았을 것이라는 그의 생각과는 달리, 정체를 알 수 없는 참혹한 살육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 공황에 빠진듯 보이던 그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연방에 보고해야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소탕팀이 전멸했다는 소식에 서현우 중위는 무리한 소탕작전의 결과에 먼저 우려를 표했다. 자치군이 충분한 근거 없이 약탈자를 학살했다는 이야기가 나올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살육의 당사자가 약탈자가 아니었다면 자치군에 대한 위협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다수의 병력만 잃게 된 셈이었다.
그는 자치군을 공격한 대상으로 판 웨이 하사가 보았다던 빨간 눈의 무리들을 떠올렸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일이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매우 복잡해 보였다.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직감한 것이다.

3.8. Lv.27 리버티 프론트

선릉전진기지에 억류중인 루이스 잭슨의 행동은 이미 그를 여러 차례 봐온 나로서도 수상쩍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소탕작전이 끝나 난장판이 되어버린 약탈자의 은거지를 뒤지고 다녔다는 것 부터가 의심스러웠고, 그가 지속적으로 약탈자와 접촉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를 억류한 이중원 중위는 꽤나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루이스 잭슨을 약탈자의 주요 인물, 혹은 적어도 약탈자의 정보를 캐낼 수 있는 중요한 정보 전달자 정도는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전에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약탈자 소탕작전 때와는 달리 약탈자에 대한 상당한 정보를 캐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약탈자가 아니라는 건 여러 정황을 볼때 거의 확실한 사실이었다. 더구나 최근들어 격양된 자치군의 분위기로볼때 그가 약탈자로 낙인찍힐 경우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그가 약탈자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말로 신원 보증을 해주자 이중원 중위는 금방 풀이 죽어서는 루이스를 결박하고 있던 포박을 풀어 주기 시작했다. 매듭을 풀어내는 매 순간마다 계속해서 정말로 아는 사람이 맞는지, 약탈자가 아닌 것이 확실한지를 물어봄으로써 깊은 아쉬움울 내비치긴 했지만.

반면 루이스는 여전히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그는 장시간 포박당해 굳어있던 어깨를 가볍게 풀면서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그러나, 나 역시 의심이 완전히 풀린 상황은 아니었다. 반복되는 오해를 살 만한 상황에 대한 해명을 위해서라도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볼 필요가 있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약탈자들의 은거지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캐물었지만, 그는 여태까지 반복해왔던대로 '강북으로 가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라는 말로 모든 설명을 끝 마치려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지난번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내가 신원을 보증해 풀려날 수 는 있었지만, 아직 완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 한 이중원 중위와 자치군 병사들은 여전히 그를 매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곳은 도망칠 곳도 없는 전진기지의 방벽 안이었다.
결국, 확실하게 해 두지 않는 이상 나도 언제까지나 무작정 도와줄 수는 없다는 말에 루이스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을 만한 곳에서 이야기를 계속하자고 했다. 그리고 감시자들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다다르자 루이스는 마침내 진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그에게서부터 나오리라 기대했던 그런 부류의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루이스가 처음 말한 것은 자신이 '리버티프론트' 라는 조직에 속해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강북의 폭발에 대한 조사는 자치지구는 물론, 전 세계를 거대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 '리버티프론트' 라는 조직이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에 대항하는 사람들에 의해 결성된 조직이라는 것이다.

그는 말을 이었다. 아직은 크게 드러나고 있지 않지만, 머지 않아 어떤 거대한 힘이 세계를 위험에 빠트릴 것이며, 인류는 예정된 종말을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그게 언제, 어떤 방법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자신은 한시라도 시급히 강북으로 가서 그 폭발에 대해 조사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 위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또한 그가 조사하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아니, 어쩌면 그조차도 확실히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위협이 실존하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가 하려던 조사가 자치지구는 물론, 전 세계를 거대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세계가 위험에 빠진다니, 지금 이 상황에서 더 나빠질 것이 있다는 이야기일까.
지금 상황에서 더 나빠질만 한 것이 남아있기라도 할까, 만약 그렇다면 그건 대체 무엇일까.

만약 강북의 폭발에 대한 조사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차라리 자치지구의 도움을 받는 것이 훨씬 빠른 길이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지만 루이스는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는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은 절대로 좋은 생각이 아니며, 그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나는 물론,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과 어쩌면 자치지구 전체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주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경고였다.

어쩌면 단지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 하기에는 루이스의 표정과 목소리는 지나칠 정도로 진지했고 또한, 진심으로 보였다. 그가 말했다. 세상에는 모르고 있는 편이 나은 일들이 있다고, 어차피 닥치게 될 일이라고 하더라도 모르고 있다면 재앙이 닥치는 순간 까지는 발 뻗고 잘 수 있지 않겠느냐고,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9. Lv.30 나무뿌리 조사단

조심스럽게 들어선 연방 조사관 막사 분위기는 서늘하기 그지 없었다.

있는대로 짜증스러운 표정의 조사관과 무표정하지만 얼굴이 상기 된 것을 보아 마찬가지로 적잖이 성질이 난 것 같은 자치군 사령관은 작전 지휘권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느라, 내가 막사 안으로 들어온 것 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청계산에 추락한 연방 소속 생물학자를 찾는 수색 작전에 대한 지휘권을 가지고 싸우는 것 같았는데, 특이한 점은 서로 지휘권을 갖겠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지휘권을 넘기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연방 조사관은 자신은 조사관으로서의 역할을 할 뿐이며, 병력의 운용과 지휘는 당연히 병력의 운용권한을 가진 자치지구에서 책임지고 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고 자치군 사령관은 연방 소속의 요원이 연방의 지령에 따라 진행되는 조사인 만큼 연방의 활동 중 발생한 사건으로 보아야 하며, 자치지구에서 병력은 지원할 지언정 병력의 운용과 과정, 그리고 결과에 이르기까지 모두 연방이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로 맞섰다.

이는 아마도 선릉역에서의 작전 실패로 인한 대규모 병력손실과 같은 일이 재차 발생했을 경우의 책임소재로 인한 문제인 것으로 보였는데, 셰브첸코로서는 작전권이 확실히 넘어온 상태가 될 경우 선릉역에서처럼 자치군의 현장 지휘관의 책임으로 넘길 수 없다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는 듯 했고, 자치군 사령관은 사령관대로 실질적으로 선릉역 작전을 이끈 것이 셰브첸코임을 모르지 않는 상황에서 에둘러나마 그 책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 했다.

결국 연방 조사관은 지휘권 인계를 끝끝내 거부했고, 자치군 사령관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이번 청계산 작전의 지휘권은 자치군 사령부에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서현우 중위를 지휘관으로 임명함으로서 연방 조사관 셰브첸코의 빛나는 이마를 벌겋게 달아오르게 만드는데 성공했는데, 서현우 중위에게 적잖은 악감정을 가진 그는 격렬히 반대했으나, 사령관은 이번 조사와 작전의 지휘권이 모두 자치지구에 있다는 조금 전의 합의를 재차 확인해 줌으로서 연방 조사관의 입을 틀어막아 버리고야 말았다.

청계산의 작전 지휘권을 갖게 된 서현우 중위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는 그저 알았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어느새 작성해 두었던 지휘서신을 건네며 청계산으로 가서 이것을 판 웨이 하사에게 전달한 뒤 그녀를 도와주라고 했다. 그는 마치 지휘권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미리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했고, 그제서야 자치군 사령관이 지었던 묘한 표정의 의미를 이해 할 수 있었다.

지휘 서신을 전달 받은 판 웨이 하사는 서현우 중위가 작전 책임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에 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이중원 중위 만으로는 솔직히 불안했는데 서현우 중위가 있으면 한결 믿음이 간다면서 크게 안도했다. 평소 이중원 중위의 행실이 믿음직해 보이지 않다는 것이야 사실이었지만 판 웨이 하사가 그렇게 대놓고 서현우 중위에 의지하는 모습은 흥미롭게 보였다.

판 웨이 하사의 요청에 따라 이상한 나무뿌리가 어디까지 이어져있는지 조사하던 중, 그것이 거대한 동굴 속으로 연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굴 속에서는 익숙한 변이생명체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는데, 청담역 진입로의 붕괴 지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판 웨이에게 돌아가 나무뿌리가 거대한 동굴 속으로 이어지는 것을 확인했다고 보고하자, 그녀는 청계산에 그렇게 큰 동굴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면서 우선 서 중위에게 보고를 하겠다고 말했다.

3.10. Lv.31 발밑의 공포

판 웨이의 말에 따르면 서현우 중위는 지휘권을 인계 받자 곧바로 용병들을 대거 동원해서 청담역 진입로의 붕괴 지반을 대대적으로 재조사한 것 같았다. 충분한 용병들을 투입한 탓인지 이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발견된 모양이었는데, 그건 바로 나무뿌리에 체액이 흡수당한 사람들의 시체였다.

나무뿌리가 변이생명체를 자극한다는 것도 괴이한 일이었는데, 이제는 한술 더떠 나무뿌리가 인간을 공격하고 체액을 흡수한다니, 이제는 더 이상 나무뿌리가 아닌 변이생명체라고 불러야 할 판이었다.
더구나 그 나무뿌리는 이곳, 청계산에서도 발견되고 있었다. 만약 청담역 진입로의 나무뿌리들이 그랬다면 이곳의 그것들 역시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았다.

확인을 위해 다시 돌아간 헬기 잔해는 여전히 나무뿌리에 휘감겨 있었고, 그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는 도통 보이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나무뿌리를 건드렸다가는 변이생명체들이 몰려들 것이 뻔하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던 찰나, 땅바닥의 잡초 사이로 슬쩍 사람의 하반신 같은 것이 보였다. 추락하던 도중 튕겨져나와 헬기에 깔려 즉사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노출된 시체의 피부는 헬기의 녹슨 정도나 옷가지의 상태에 비해 기괴할 정도로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그건 마치 미이라와 같은 모양새였는데, 아마도 서현우가 말한대로 헬기 밑의 나무뿌리가 시체의 체액을 빨아먹는 것이 사실인 듯 보였다.

시체의 신원도 확인할 겸, 조금 더 확실한 확인을 위해 시체의 다리를 잡아당긴 순간, 발밑에서 무언가가 순식간에 땅을 뚫고 치솟아 오르더니 눈앞에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그건, 거대한 나무의 뿌리 혹은 촉수처럼 보이는 것이었는데, 마치 채찍처럼 몸통을 이리저리 휘저어대며 공격을 해대기 시작했다. 뾰족한 뿌리의 공격을 피하며 대체 이 물체의 어디를 공격해야 하는 건지 당황해하던 중, 나무뿌리의 밑동 부분을 완전히 박살내 버리자 그것은 곧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지만 안심도 잠시, 그것이 처음 나타났을 때와 같은 진동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한군데가 아닌 사방에서 울려대는 진동이었다.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자리를 피하자, 진동은 마치 내 발자국 소리를 따라오기라도 하는 듯, 순식간에 다시 발 밑으로 이동해왔다. 다시 한번 기겁해서 옆으로 이동하자 이번에도 다시 발 밑으로 진동이 이동해오는 것이 아닌가?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위협에 소스라치게 놀란 채 미친듯이 편의점 방향으로 달렸다. 헐레벌떡 뛰쳐 들어오는 모습에 덩달아 놀란 수색 1팀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어쩌면 그 기분 나쁜 진동이 나를 따라 이 편의점까지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상상에 다른 대답은 생각해볼 겨를도 없었다. 그저 정신나간 사람마냥 수색 1팀원들에게 발 밑을 조심하라며 울부짖었고, 수색 1팀 역시 패닉 상태에 빠진 내 모습에 더욱 놀라서는 바닥에서 몸을 떼어내기 위해 진열대나 냉장고 위로 기어올라가느라 한바탕 난장판이 벌어졌다.
그리고 순간적인 침묵,

어느순간 발 밑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공포에 모두들 입을 굳게 다물었고,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냉장고 위에 매달린 병사 조차도 총부리는 필사적으로 바닥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바닥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고, 병사들은 점차 그들의 현실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진열대나 냉장고 위로 올라간 병사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병사 중 하나는 벽면의 가스 파이프에 매미처럼 붙어 있었고, 또 다른 병사는 심지어 천장의 환풍기를 박살내고는 거기에 상체를 우겨넣고 있었다.

잠시 후 아무것도 그들을 위협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병사들은 하나 둘 바닥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들이 해야만 했던 민망한 행동과 자세들에 대한 원망과 조롱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판 웨이 하사에게 서현우 중위의 추측대로 청계산의 나무뿌리들도 시체의 체액을 흡수한 흔적을 발견했다고 전하자, 그녀는 황급히 서 중위에게 보고해야 할 것 같다면서 수색 1팀과 함께 베이스 캠프로 복귀하라고 말했다. 수색 1팀은 이에 환호성을 지르면서도 자신들은 군장을 챙길 시간이 필요하니 먼저 베이스 캠프로 복귀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물론, 민망함을 뒤로한 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먼저 베이스 캠프로 향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3.11. Lv.32 요격

연방의 생물학자인 안젤라 박사의 등장을 통해 별로 달갑지 않은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EL.A 연방 측에 등록된 자료에는 청담역 진입로 식물 이상증식 현상에 대한 최초 보고자가 셰브첸코로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에 서현우 중위의 보고서를 가로챈 것이 들통 날 것을 우려한 셰브첸코는, 안젤라 박사와 구면인 것을 빌미로 서 중위와 안젤라 박사의 면담을 방해하기 위해 온갖 수작을 부려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젤라 박사는 셰브첸코와 채 열마디도 나누기 전에 그가 최초 보고서 작성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파했고, 현장의 담당자를 원한다는 그녀의 단호한 한마디에 완전히 체면을 구긴 연방 조사관은 그대로 씁쓸히 자치지구로 돌아가는 헬기에 탑승할 수밖에 없었다.

셰브첸코가 뭘 어쩌든 신경조차 쓰지 않던 안젤라 박사는 서현우 중위가 최초의 보고서 작성자임을 밝히자 이번에는 그에게 생물의 체액을 흡수하는 나무뿌리에 대한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질문 폭격에 서현우 중위 역시 적잖아 당황한 듯 보였지만 침착하게 답변을 이어갔고, 이에 박사는 실무자가 서현우 중위라는 것을 확신했는지, 갑자기 충격적인 정보를 집어던져대며 가뜩이나 정신없어 보이는 서현우 중위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요는, 체액을 흡수하는 나무뿌리는 사실 식물이 아니라 변이생명체이며, 청계산 전체를 뒤덮고 있는 그 변이생명체는 어쩌면 다수의 개체가 아닌 거대한 단일 개체일지도 모른다는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더구나, 안젤라 박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대공 공격을 하는 변이생명체가 있으며, 그것이 자신이 탄 헬기를 공격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말로 모두의 할말을 잃게 만들었다.

한참을 멍해져있던 우리에게 박사는 바로 이것이 그 증거라며, 간단하다고 했지만 전혀 간단해 보이지 않는 탄도학과 같은 계산식을 몇가지 보여줬고, 이어서 그 계산식을 바탕으로 대공 공격을 하는 변이생명체의 구체적인 위치정보까지 알려줬다. 그리고는 그곳에가면 자신을 공격했던 그 변이생명체가 있을테니 그 변이생명체의 연구용 샘플을 확보해 오라며 속사포같은 말을 쏟아냈다.

워낙 순식간에 처리 불가능해 보이는 수 많은 정보와 일거리 폭격을 함께 맞은 우리는 여전히 멍한 상태였고, 박사는 그런 우리들에게 자신은 출출하니 뭔가 먹어야겠다는, 즉 이제 이야기는 끝났으니 각자 해야 할 일을 하라는 의미가 담긴 한마디를 하는 것으로, 그녀가 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아무래도 안젤라 박사에게 적응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3.12. Lv.33 파종

안젤라 박사의 말대로라면 청담역 진입로에서 발견했던 식물형 변이생명체 조차도 망경대 동굴안에 있는 본체의 곁 뿌리일 뿐일지도 모른다. 물론 청담동과 청계산 간의 거리를 생각할 때 상식을 벗어나는 주장이자, 누가 들어도 비웃음을 살말한 주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맑은 숲 공원에서 변이생명체를 포격했을 때 지진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괴성과 같은 진동이 들려온 것도 사실이다. 만약 안젤라 박사의 주장대로 그 모든 뿌리들이 하나의 상상할 수 없이 거대한 본체와 연결되어 있다면, 그렇다면 그 본체의 뇌를 파괴하는 것 만으로 엄청나게 많은 수의 변이 생명체를 동시에 제거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게 될 것이다. 물론 꿈같은 이야기이다. 솔직히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안젤라 박사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유 모를 확신이 왠지모르게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아니 이해할 생각조차 없어 보이는 연방 조사관은 당연하게도 병력의 투입을 불허했고, 결국 변이생명체의 본체를 찾기위한 망경대 동굴의 수색은 기존의 인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망경대 동굴 안은 말 그대로 변이생명체들의 소굴이었다.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엄청나게 넓었는데 이런 동굴이 한국에, 하물며 청계산에 있을리가 없었다. 분명 무언가에 의해 깎여나가고 무너져내렸을 것이며 그것은 분명, 이곳 깊은곳에 있을 무언가가 만들어 놓은 작품일 것이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변이생명체들은, 마치 내부의 무언가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필사적인 것 처럼 보였다. 특히 동굴 벽면을 휘감고 있는 식물형 변이생명체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며 날뛰었는데, 다른 곳의 식물형 변이생명체를 건드렸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였다.

막아서는 변이생명체들을 처리하며 탄약을 반쯤 소모했을 때 즈음, 어디선가 예의 그 기분 나쁜 맥박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갈 수록 점점 더 강해졌다. 소리가 강해질 수록 왠지 모르게 더 이상 깊이 들어가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극도의 불안감마저 증폭되고 있었다. 그때, '그 것'이 눈앞에 나타났다.

심장.
심장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것은 이제는 거의 쿵 쿵 거리는 듯한 맥동의 소음을 내며 동굴 한 가운데에서 격렬히 고동치고 있었다.

'안젤라 박사의 말이 사실이었어!'

그랬다. 그곳에는 정말로 엄청나게 거대한 변이생명체의 심장이 고동치고 있었다. 한 동안 그 모습에 압도당해 베이스 캠프에 연락을 취하는 것 조차 잊어버렸을 정도로 그것은 엄청난 광경이자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베이스 캠프에 통신을 시도하자 소식을 들은 서현우 중위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할 말을 잃은 무전기 너머의 고요 속에서, 그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안젤라 박사가 원하는대로 샘플을 채취해. 그 사이에 판 웨이가 고폭탄을 가지고 동굴 입구로 갈거야. 그리고 샘플을 확보하면 모조리 무너트려버려.'

그의 결단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안젤라 박사가 연구할 샘플만 확보한 뒤 동굴 전체를 폭파시켜 변이생명체를 모조리 파 묻어버리겠다는 그의 결정은, 대규모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가장 손쉽고도 합리적인 방법이자, 다른 선택지가 없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 심장에서 샘플을 채취하는 과정은 사투와 같았다. 하지만 결국 모든 방해를 뚫어냈고, 샘플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동굴의 파괴 뿐. 동굴 밖으로 나오니, 판 웨이 하사가 양손 가득 고폭탄을 짊어지고 대기하고 있었다. 고폭탄 더미를 대신하여 샘플을 건네 받은 그녀는 잠시 몸서리를 치더니 동굴을 무너뜨리려면 벽면이 아닌 기중에 폭탄을 설치해야 한다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폭탄 설치를 완료하고 베이스 캠프로 돌아가자, 서현우 중위는 비장한 표정으로 기폭 장치를 움켜 쥔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폭탄이 정확한 위치에 설치되었음을 알리자 그는 차분하게 숨을 내쉬고는 모두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1분 뒤 폭파 한다! 모두 진동에 대비해!'

폭파의 여파는 대단했다. 단순히 동굴이 무너지는 수준의 진동이 아니었다. 마치 산 전체가 들썩이는 것 같은 진동이었고, 그것은 몇분 동안이나 계속됐다. 흙과 바위가 무너져내리는 굉음 사이로 뭔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성공적인 폭파였고, 문제의 식물형 거대 변이생명체는 완전히 침묵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결국 우리가 해낸 것이다.

3.13. Lv.34 정체불명의 세포

이중원 중위가 성수 전진기지 탈환 작전에 배정되어 이탈하면서 안젤라 박사와 서현우 중위의 지하철 9호선 공사장 조사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더 이상 이 중위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된 서현우 중위는 또다시 용병과 시민군으로만 구성된 병력으로 지하철 9호선 공사장의 변이생명체를 상대해야 한다는 부담에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는 듯 했다. 그런 서 중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젤라 박사는 비틀린 시체의 샘플을 확인하고서는 추가적인 조사를 위해서는 표본 전체를 확보해야 한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지하철 9호선 공사장은 여전히 어둡고 음습했다. 처음 비틀린 시체를 찾았을 때에도 충분히 많은 변이생명체를 퇴치 해 뒀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이 있기나 했냐는 듯 수많은 변이생명체들이 여전히 어둠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표본이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던 안젤라 박사의 말이 떠올라 마음이 조금 다급해졌을 때 즈음, 설계도를 찾아냈던 문제의 컨테이너가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변이생명체들은 말라붙은 시체에는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의자에 엎어진 형상의 시체는 이전의 모습 그대로였고, 변이생명체들의 주의를 끌기 전에 서둘러 바디백을 펼쳐놓고 표본을 옮길 준비를 했다.

표본에 손을 대려는 순간, 등 뒤에서 낯선 인기척을 느꼈다. 우호적인 상대라면 말없이 등뒤로 다가오는 일은 없을 터, 적대적인 상대임을 확신하고 즉시 뒤를 돌며 방아쇠를 당겼다. 습격자는 금세 꼬꾸라지며 바닥을 굴렀고, 미동도 없이 침묵했다. 습격자는 인간의 형상이었다. 처음에는 좀비일 것으로 짐작했지만, 변이생명체 특유의 신체적 결손이나 조직이 변이되어 부풀어 오르는 등의 특징은 보이지 않았다. 즉, 상대는 인간이었고 약탈자 정도로 생각되었는데, 다 헤져서 너덜너덜해진 의상이나 사방에 찌들어 말라붙은 피, 게다가 변이생명체를 상대할만한 그럴듯한 무기조차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볼때 아마도 제정신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런 위험한 곳에서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가 되려 궁금할 지경이었다.
아무튼 약탈자이건 미치광이건 간에, 놈의 주변에 동료가 있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서둘러 표본을 챙겨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표본을 확인한 안젤라 박사는 생각보다 표본의 상태가 좋지 않았는지 내심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녀는 표본과 비슷한 형상의 다른 시체는 발견하지 못했냐며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는데, 그 눈빛에는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어서 다른 표본을 구해오라는 요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관심은 표본을 확보하던 도중 약탈자의 습격을 받았다는 말에서 급작스럽게 다른 방향으로 옮겨갔다. 그녀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그런 곳에 약탈자가 있을 수 있겠냐며 정말로 약탈자가 확실했는지, 외모는 어땠는지를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3.14. Lv.35 수상한 시체

서현우 중위는 안젤라 박사가 정체모를 습격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보다는 한시라도 빨리 지하철 9호선 공사장에 변이생명체들이 가득 찬 이유에 대한 해답을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되려 변이생명체들의 발생 이유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서현우 중위를 다그치고는, 당장이라도 습격자의 시체를 확보해 줄 것을 요청했다.

문제는 사살했다고 생각했던 습격자의 시체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현장에는 습격자의 것으로 보이는 혈흔만이 남아 있었다. 그 혈흔은 점점히 이어져 있었는데, 갑자기 살아나서 스스로 걸어간 것이 아니라면 변이생명체가 건드렸을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조심스럽게 흔적을 따라가자 혈흔은 공사장 벽면까지 이어졌고, 무슨 이유로 설치해 놓은 것인지 모를 뜯겨져나간 가설벽 너머로 속을 알 수 없는 구멍이 뚫려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청계산 망경대 동굴이 생각 날 정도로 깊어 보이는 구멍 속으로 무작정 들어가기에는 위험 부담이 커 보였다. 일단은 뜯겨진 가설벽을 먼저 조사해 볼 필요가 있었다.

두터운 철판으로 덧댄 가설벽은 막무가내로 부숴버렸다기 보다는 도구를 사용해서 해체된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살펴봐도 변이생명체의 흔적은 아닌 것 같았다. 당시에 놈이 방탄복을 입고 있었던가? 라는데 까지 생각이 미쳤지만,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았다. 수색을 더 이상 진행하기에는 힘들어 보였고, 결국 바닥에 떨어진 혈흔을 조금 채취하는 것으로 조사는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시체를 찾지 못했다는 말에 안젤라 박사는 인상을 잔뜩 찌뿌리며 그러기에 서둘러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며 다그쳤다. 그리고는 역시나 그것은 약탈자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며 연구가 진척되지 못하게 된 것을 더욱 아쉬워했다. 하지만 혈액 샘플이 있다는 한마디에 그녀의 눈은 레이저를 쏘아올리듯 번쩍였다. 받아든 혈액 샘플을 흥미롭다는 듯 흔들어대며 총총히 연구실로 사라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변이생명체의 연구 외에 그녀가 관심을 갖는 것이 과연 있기나 할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3.15. Lv.36 더 깊은 곳으로

한참을 미간을 찌뿌린채 서류철을 들여다 보던 서현우 중위는, 지하철 9호선 공사장에서 사망한 용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망자와 동행 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동료 용병은 약탈자의 습격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그런곳에 약탈자가 있다는 말이 믿어지지는 않지만, 아무튼 생존자를 찾아가서 정확한 증언을 듣고 정말로 지하철 9호선 공사장에 약탈자가 존재하는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 해보자고 했다.

약탈자의 습격에서 살아남았다는 생존자는, 처음에는 차분하게 지하철 공사장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습격당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하자 이내,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겁에 질린 목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빨간...빨간 눈! 나를 보며 웃고 있어! 나를 죽일거야! 그 놈이 나를 죽일거라고!"

일종의 충격에 의한 정신착란 증세처럼 보였다. 그를 간호하던 간호사는 격렬한 반응에 놀라면서 환자의 안정에 방해가 된다며 자리를 비켜주기를 요구했다. 습격 당시의 상황을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었지만, 더 이상 정보를 얻기에는 그의 상태가 심각해보였다. 조사는 이 정도로 중단하고 서현우 중위에게 돌아가 생존자의 증언을 전하기로 했다.

약탈자로 의심되는 습격자가 약에 취한 듯 제정신 아닌 것처럼 보였다는 생존자의 증언에, 서현우 중위는 약탈자들 사이에 일시적인 신체 능력 향상을 위해 제조된 마약이 비싼값에 거래가 되고 있다며 그의 증언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약탈자가 붉은 눈을 가졌고, 생존자가 극도의 공포를 느껴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다는 대목에 이르자 서현우 중위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잠시 후 마음을 먹은 듯, 더 이상 안젤라 박사의 분석 결과가 나올 때 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 만은 없으니 지하철 공사장을 다시 수색해서 놈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지하철 공사장의 더욱 깊은 곳까지 수색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한 용병의 시체와 습격자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식칼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마저도 그 식칼이 용병을 살해하는데 쓰인 것인지 조차 불명확한 상황, 안젤라 박사는 식칼에 묻은 혈액을 살펴보고는, 용병을 살해하는데 쓰인 식칼임은 분명해 보이나, 그 외의 별다른 정보는 찾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속 시원한 해답이 나오지 않자, 서현우 중위의 표정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생존자의 끔찍한 목격담과 정신착란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자치지구에 널리 퍼져있었고, 지하철 공사장에서 괴물이 나타난다는 소문마저 돌면서 용병과 시민군들은 벌써부터 그쪽 임무를 기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치군 가용 병력은 모조리 성수기지 탈환 작전에 투입 되어있다보니 지원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서현우 중위의 고민은 더욱 깊어가고 있었다.

3.16. Lv.37 괴상한 사람

성수전진기지 탈환 작전 때문에 기용할 수 있는 자치군 병력이 없다는 말에 안젤라 박사는 EL.A 일본 지부로 돌아간다면 자신의 연구를 방해한 사람들에게 기필코 책임을 물겠다며 분을 삭히지 못했다. 그러나 그건 그녀가 연구를 끝내고 일본 지부로 돌아갔을 때의 이야기일 뿐, 당장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가장 애매한 사람은 서현우 중위였다. 그로서는 자치군 사령부의 명령대로 지하철 9호선 공사장의 변이생명체 출몰 이유에 대한 조사 결과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안젤라 박사의 변이생명체 연구에 대한 지원보다는 지역 전역에 대한 수색에 더 힘을 쏟아야만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안젤라 박사는 자신의 연구에 확신을 갖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서현우 중위로서는 그런 안젤라 박사의 요청을 무시할 수만도 없는 상황일 것이다. 결국 별달리 뾰족한 수가 없던 서현우 중위는 안젤라 박사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용병을 살해한자의 정체를 밝히는 것을 우선 진행하기로 했다.

지하철 9호선 공사장에서 발견한 흔적은 여전히 용병을 살해한자가 사람일 것이라는 심증을 굳히게 만들고 있었다. 아무리 뭐라고 해도 포장지를 뜯어 음식을 꺼내 먹는 변이생명체라는 건 상상하기 어려우니 말이다. 다만 한가지 이상한 점은 어디에도 불을 피운 흔적이 없다는 것 뿐이었다.
흩어진 여러 흔적을 쫓아 한 사무실에 들어서자 이번에는 확실히 누군가 사무실을 거처로 삼은듯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곳 저곳에 손바닥 모양의 갈색 얼룩들이 묻어 있었는데, 아마도 거주자의 것일 터였다. 하지만 여기에도 마찬가지로 불을 피운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은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때, 녹슨 철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사무실 내부로 들어왔다. 재빨리 화기를 겨누고 동향을 살폈지만, 상대는 의외의 상황에 당황했는지 별다른 반응 없이 그저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다만, 그 붉게 물든 눈으로 말이다. 다시는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섬뜩한 순간이었지만,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자제하고 있었다. 만약 저것이 변이생명체라면 당장이라도 달려들었을 터,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단지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사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심호흡을 한 후 트리거에 손가락을 걸어둔 체로 소속을 물었다. 그러자 아무런 반응도 없던 그는 순간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자신이 들어왔던 문을 통해 밖으로 사라졌다.

놈을 쫓는 것이 위험할 것은 자명했지만, 이번에야말로 놈들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막다른 곳에 도달한 놈은 격렬하게 소리지르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왜 생존한 용병이 겁에 질려 울부짖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적개심, 증오, 파멸. 놈은 마치 그러한 단어들의 집합체라도 되는 것과 같았다. 기필코 상대를 찢어놓고야 말겠다는,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악마적인 공격성은 놈의 전투 능력과는 상관없이 상대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공포심만 극복해낼 수 있다면 의외로 상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대는 아니었다. 사람의 움직임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빠른 움직임과 괴력을 보였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몇 발의 탄환이 명중하자 놈은 이내 고꾸라졌고, 그 와중에도 저주스러운 눈빛으로 증오를 드러내며 버둥거렸지만, 얼마 못가 그 움직임 마저도 멎고야 말았다.

분명히 외형은 사람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다. 아니, 실은 전혀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검붉은 썩은 피를 내뿜는 좀비와는 달리 선명한 붉은 피마저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의 상황을 돌이켜보면 이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안젤라가 원하는대로 놈의 사체에서 샘플을 확보한 후 돌아가기로 했다.

예상대로 안젤라 박사는 크게 기뻐하며 반겨줬다. 샘플을 받아드는 그녀의 표정에서 그녀도 저런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을 수 있구나 싶을 정도였다. 만족스러워하기는 서현우 중위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곧 놈의 정체가 밝혀지면 불안에 떨던 용병과 시민군은 물론, 자치군 사령부에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만한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만족하던 그 순간, 그다지 달갑지 않은 손님이 나타났다.
셰브첸코는 다짜고짜 서현우 중위에게 지하철 9호선 조사 상황을 보고하지 않은 것을 문책하기 시작했다. 자치군 소속인 서 중위가 사령부의 명령을 받아 진행중인 임무를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을 따지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정상적인 논리를 바라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라는 건 서현우 중위가 더욱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반박으로 일을 크게 만드는 대신 대충 말을 얼버무리는 것으로 상황을 넘겨보려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서현우 대신 독설을 쏟아낸 것을 있는대로 성질이 난 안젤라 박사였다. 그녀는 맹렬히 셰브첸코를 비난하기 시작했는데, 자신이 가진 변이생명체 조사에 대한 권한을 내세우며 연방 조사관을 몰아세우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한마리 성난 사자와도 같았다. 조목조목 따지고드는 박사의 말에 뭐라 반박할 겨를도 없이 완전히 박살이난 셰브첸코는 두고보자는 무의미한 한마디를 남기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셰브첸코의 비참한 퇴장에 안젤라 박사는 충분히 만족해 하는 듯 했다.

결국, 이로 인해 더운 머리속이 복잡해진 사람은 서현우 중위 뿐이었다.

3.17. Lv.38 실타래

연방 조사관의 시비가 폭풍처럼 지나가고 난 뒤, 안젤라 박사는 편을 들어줘서 고맙다는 서현우 중위의 인사를 별일 아니라는 듯 넘겨버리고는 곧바로 샘플을 분석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새로 확보한 이 정체불명의 샘플과 원래 지하에서 서식하던 변이생명체들의 샘플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며 지하철 9호선 공사장의 더욱 깊은 곳에서 다른 변이생명체들의 샘플을 확보해달라고 부탁해왔다.

지하철 9호선 공사장 끝자락은 말 그대로 암담한 상황이었다.
구불구불한 터널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강력한 변이생명체들의 군락이 있었고,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들' 역시도 변이생명체들과 함께 그곳에서 글자 그대로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더구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다. 놈들은 예의 그 빠른 몸놀림으로 쉴 새 없이 달려들었지만,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다만 놈들의 행동 패턴은 일반적인 변이생명체와는 전혀 달랐고, 가끔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행동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공격성만은 변이생명체 이상이었는데, 놈들과 변이생명체가 조합된 상황은 다시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끔찍한 것이었다.

변이생명체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놈들의 샘플을 전달하자, 안젤라 박사는 뿌듯한 표정으로 샘플을 확보하는 동안 사무실에서 확보했던 최초의 샘플 분석이 방금 막 끝났다고 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방금 가져온 변이생명체들의 샘플과 비교 분석만이 남은 것 같다. 시간이 좀 걸리는 듯 하긴 했지만.

3.18. Lv.39 약탈

비교 분석을 마친 안젤라 박사의 표정은 한마디로 미묘했다.
그녀는 표정을 감추려 했지만, 모든것이 감춰 지지는 않았다. 성공적인 연구 결과에 대한 만족감과 전혀 새로운 것을 발견해낸 과학자로서의 흥분, 순수한 호기심과 함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약간의 공포심까지 어려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서현우 중위와 나를 불렀고,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해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원칙대로라면 안젤라 박사가 진행중인 모든 연구 결과는 연방에 직접 보고가 되어야 하며 바이러스에 대한 사안인 만큼 최상급의 기밀을 유지해야 한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자치군 소속인 서현우 중위는 물론, 일개 시민군일 뿐인 나와 공유가 될 수준의 정보는 결코 아니라는 것으로 첫 마디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 결과에 대해 우리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전해주려 한 연구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의 신체 구조와 기관들은 거의 100% 인간의 것과 동일했는데, 그들의 장기 내에는 실제로 식사를 한 흔적이 있으며, 그 음식물들은 일반적인 인간의 소화기관을 통한 것과 마찬가지로 소화가 진행되어 있었다고 했다. 즉, 그들은 사람처럼 음식물을 섭취해서 열량을 확보하고 있으며, 지하철 공사장에서 발견한 그 무수한 식사의 흔적들이 그 가설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먹지 못하면 아마도 굶어 죽을 것으로 추측된다는 말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근골격계 역시도 일반적인 인간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했다. 대부분 크게 손상되어 있기는 했지만, 변이로 인해 추가적인 조직이 발생했거나 괴사하는 등의 모습 역시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초인과 같은 괴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그녀는 단지 그들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예를들면 승용차에 깔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차를 들어올린 어머니의 이야기가 좋은 예인데, 사람의 신체적 한계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나지만 그 한계를 모두 발휘할 경우 신체가 버텨내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이라는 경고 시스템을 통해서 신체에 과도한 부하가 가지 않도록 통제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즉, 그 알 수 없는 자들은 고통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신체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며, 외관상 보이는 나이에 비해 월등히 손상되고 노화된 근육과 관절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현우 중위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그렇다면 그건 단지 '인간'인 것 아니냐는 의문을 표했다.
안젤라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누가봐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놈들은 분명, 변이생명체들과 함께 공존하고 있었고 그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바였다. 그들이 인간이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문제에 대해 안젤라 박사의 답변은 이랬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놈들의 조직에서는 분명히 바이러스가 검출 되었지만, 그들은 '감염' 되었다기 보다는 '보균' 하고 있는 것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며, 앞서 말했듯이 좀비나 변이생명체와 같이 감염된 조직이 변이하며 증식하는 현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언제까지나 그렇게 안정화된 상태로 있을 것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언제라도 그들이 보균하고 있는 변이바이러스가 이상 증식하고 그들이 변이생명체 혹은 좀비로 돌변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즉, 현재로서는 그들을 변이생명체라고 볼 수는 없으며, 굳이 비교하자면 인간에 매우 가까운 형태로서, 인간과 완전히 동일한 외형에 완전히 동일한 신체 구조와 생물학적인 특징을 가졌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들을 '인간' 으로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안젤라 박사 역시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어쩌면 그동안 본 적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변이 바이러스일 수도, 아니면 변이 바이러스를 보균하고 있음에도 변이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곧 그들이 변이 바이러스에 '면역'된 인간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조심스럽게 결론을 말했다. 지금까지 발견 된 적 없는 변이되지 않는 새로운 바이러스의 발견, 혹은 변이 바이러스에 '면역'된 인간의 발견. 어느 쪽이든 우리가 그토록 꿈에 그려왔던 변이 바이러스 백신 개발의 초석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 이었다.

안젤라 박사의 결론 이후 한동안 아무도 말이 없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너무나 엄청남 이야기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 지긋지긋한 생존 투쟁에 마침표를 찍을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얼른 실감이 나질 않았다.

"꿈결 같은 사랑 타령들 하시느라 바쁘신데 이것 참 미안하군 그래."

잠시간의 침묵을 깬 것은 연방 조사관 셰브첸코였다.
연방 요원들을 잔뜩 대동하고 나타난 그는 다짜고짜 안젤라 박사가 연구중인 샘플과 표본 및 모든 연구결과는 연방법에 따라 전량 압류될 것임을 선언했다. 상황이 파악되지 않아 순간 얼어붙었던 안젤라 박사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짓을 벌이느냐고 강하게 항의하자, 그는 예의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연방 명령서를 들이밀었다. 명령서에는 안젤라 박사의 모든 권한과 직위가 정지 되었고, 조만간 있을 내부 감사를 위해 근신하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문서를 확인한 안젤라 박사는 더욱 광분하며 대체 어디서 누가 결재해서 날아온 명령서냐며 따져 물었지만, 셰브첸코는 고갯짓으로 대원들에게 자료의 압류를 지시할 뿐이었다.

자신만의 연구 결과를 송두리째 빼앗길 상황이 된 안젤라 박사는 길길히 날뛰었지만 연방 요원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던 셰브첸코는 이번에는 서현우 중위에게 연방의 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정보에 접근한 혐의로 곧 기소 될 것임을 알리고는, 그러게 연애질을 작작하지 그랬냐며 비웃음을 남기고는 사라졌다.

셰브첸코가 떠난 뒤, 안젤라 박사는 진상을 밝혀 기필코 이 굴욕을 벗고 말겠다며 극렬히 분노 했고, 서현우 중위는 말 없이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4. 용병단

4.1. Lv.11 부고

임무를 막 끝낸 주인공 앞에서 자신을 검은 탄환 용병단의 크리스 웨버라고 소개한 남자는,오래전 약탈자들에게 입은 부상 때문에 용병단에서 사무업무나 처리하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을 표했다.얼핏 보기에는 별 볼일 없는 한량으로 보였으나,경기고 사거리에서 뭔가에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동료의 유품을 전달하자,그는 대번에 동료를 살해한 범인은 두말 할 것 없이 약탈자일 것이라며 주인공에게 정보수집을 해주기를 요청했다. 주인공이 사건으로 인해 겁먹고 있는 북부 방어선 관측병에게 해당 사건에 대해 물어보자 관측병은 그 당시 자신이 본것들을 빠짐없이 이야기 해주었다. 한 밤중에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일련의 무리들,그리고 그들이 경기고 사거리의 한 건물로 들어간 이후 아직까지 나오고 있지 않다는 정보. 크리스 웨버가 원했던, 바로 그 정보였다.

4.2. Lv.12 헛 바람

단장과 자신의 임무 복귀에 대해 담판 지은 크리스 웨버는 내심 수줍은 표정으로 예전의 전투감각을 되찾을 수 있도록 잠시만이라도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막상 경기고 사거리에 진입한 그는 아직 녹슬지 않은 실력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효율적인 수색을 위해 각자 다른 건물을 조사하자는 제안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각자의 수색 중에 발견한 것은 이미 죽은지 한참은 지나버린 용병단의 시체와 무언가에게 처참하게 짓뭉개진 약탈자의 시체뿐이었다. 그의 기대와는 달리, 용병 동료들은 약탈자가 아닌, 약탈자무리를 학살해버린 무언가에게 당한 것이다.

결국 동료의 복수를 위해 약탈자들을 쓸어버리겠다며 자신이 해야 할 일들까지 리사에게 맡기고 나선 그로서는 헛다리를 짚은 꼴이 되고야 말았지만, 용병단장은 웨버가 그저 부상 없이 복귀했다는 것에 만족하면서 용병 임무에 복귀시켜주었고, 웨버는 도움에 대한 감사인사로 '오메가 팀' 이라는 용병단을 소개해주었다.

4.3. Lv.14 오메가 팀

크리스 웨버의 소개로 찾아간 용병단 오메가 팀의 단장은 놀랍게도 여성이었다. 시노노메 유우키라는 이름의 용병단 단장은 용병단 가입 시 부여되는 혜택에 대해 설명하면서, 가입하지 않더라도 의뢰나 임무 중개를 받고 싶다면 두 차례에 걸친 테스트에 응해야 한다고 했다.
테스트의 내용은 간단했고, 이에 응하기로 했다.

4.4. Lv.15 용병단장의 걱정

첫 테스트를 가볍게 해결하자, 그녀는 더이상의 실력에 대한 검증은 필요치 않을 것 같다면서도, 얼마 전 부상 당했던 부하 용병이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걱정된다며 상황을 확인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정작 찾아간 부하 용병은 단장의 지나친 관심과 보호가 약간은 성가시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말이다.
부하 용병의 반응은 나만 알고 있기로 했다.

4.5. Lv.16 용병의 삶

검은 탄환 용병단이 자치군과 장기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크리스 웨버의 표정은 어딘가 걱정스러워 보였다. 부상을 딛고 성공적으로 임무에 복귀했지만, 그에게 배당된 실내에서의 임무가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는 자신의 회복 정도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위험을 회피하려는 행동으로 보기에는 그의 용병 생활에 대한 열의가 강했다. 작은 도움만 준다면 그는 머지 않아 자신이 원하는 충분한 역할을 해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있었다. 바로 약탈자가 크리스 웨버를 공격해온 것이다.
약탈자에 대한 크리스 웨버의 강한 증오는, 그동안 그가 보여줬던 조금은 껄렁하고 호탕한 모습을 다시금 바라보게 만들었다. 약탈자는 사람이 아니라고 태연히 말하는 모습에서, 약탈자와 반군에 대한 용병들의 길고 깊이 새겨진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4.6. Lv.17 동료애

임무중 실종된 용병에 관심을 갖는 것을 오직 크리스 웨버뿐인 것 처럼 보였다. 동료를 포기할 수는 없다며 길길히 날뛰던 그는, 결국 단장을 속이고서라도 실종된 동료를 수색하겠다며 나섰다. 아마도 용병 단장이 아니라 자치군 사령관이 왔더라도 절대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뛰쳐나간 그가 정말로 동료를 구해낼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마지막까지 삶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던 동료를 구하는데 성공했다. 감사를 표하는 동료에게, 그저 살아있으니 되었다는 그의 대답은 그만의 동료애와 함께 용병 생활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4.7. Lv.20 자치군의 의뢰

시노노메 유우키에게는 일생 일대의 사건인 듯 했다. 자신이 성사시킨 자치군과의 임무협약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10분마다 해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실상은 오메가 팀의 용병들 만으로 수행하기 버거운 임무들을 나눠받는 것이었고 그만큼 위험한 임무들이었지만, 그녀는 충분한 사전답사를 통해 자신의 용병들이 충분한 안전을 확보하고 위험요소들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강남구청에서의 임무들은 혹독했고 그렇기 때문에 노련한 오메가팀에 임무가 배정된 것이었다. 그곳에서 본 부상자나 사망자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그녀의 얼굴을 점차 잿빛이 되어갔다.
결국, 그녀는 자치군과의 임무 협약을 철회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4.8. Lv.21 비열한 습격

자신의 용병들이 위험에 빠질것을 우려하던 시노노메 유우키는 협약을 철회하는 대신 자신이 직접 모든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것으로 마음을 바꿔먹은 모양이었다. 용병단에 할당된 강남구청의 모든 임무를 홀로 소화하겠다는 끔찍한 생각은, 아마도 그녀가 아니었다면 아무도 할 수 없는 발상일 것이다.
실력이 부족한 부하 용병들의 안전을 생각해 위험한 지역에서는 임무를 수행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그녀의 마음 씀씀이는 아름다웠으나, 홀로 모든것을 해결하겠다는 것은 말 그대로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정말로 행동에 옮겼고, 결과는 예상치 못했던 약탈자의 습격이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이것은 분명 과중된 임무로 지친 그녀의 방심에서 비롯된 일임이 확실했다.

단장이 강남구청에서 부상당해 도움이 필요함을 알리자 오만가지 호들갑을 떨며 그녀를 걱정하던 오메가 팀 용병 아가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도와 줄 사람을 찾아보겠다며 부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4.9. Lv.22 훈계

이곳 저곳 수소문을 하며 도움을 청하던 오메가팀의 용병은, 마침 자신이 아는 유능한 용병하나가 강남구청에서 임무를 수행하러 방금 떠났다며, 그가 유우키 단장을 구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만난 유능하다는 용병은 예상 외로 크리스 웨버였는데, 그가 과연 '유능한 용병'인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더라도, 어찌되었던간에 시노노메 유우키를 구하는데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그는 유우키를 구출하는 내내 그동안 보여줬던 용병 동료에 대한 애정 따위는 전부 잊어버린 듯, 그녀에서 얼음장 같은 독설만을 내뱉었다. 요지는 단장으로서 단원들의 실력을 믿지 못하는 것은 큰 잘못이고 그러한 행동이 단원들을 더욱 약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는데, 시노노메 유우키 역시도 크리스 웨버의 거침없는 발언에 분개했고, 그들의 충돌은 자치지구로 돌아온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용병의 세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누가 옳은지를 판단할 수는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의 관계가 쉽사리 회복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었다.

4.10. Lv.24 좋은 일과 나쁜 일

크리스 웨버는 리사가 한 말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리사는 이전에도 만난 적 있던 여성 용병이었는데, 얼마전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아 부상을 당한 체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정신을 차리자 놀랍게도 약탈자가 그녀에게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약탈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용병이 그녀를 발견해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는데, 그녀는 여전히 자신을 치료해 준 것이 약탈자였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약탈자가 용병을 도울리 없다고 생각한 크리스는 심지어 그녀가 약탈자의 공격에 머리를 다쳐서 헛소리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했고, 결국 리사가 부상당했던 건물을 찾아가서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알아봐주기를 부탁했다.

약탈자가 용병을 도왔다는 말이 다소 의심스러웠지만, 찾아간 건물에는 놀랍게도, 정말로 약탈자 한명이 기거하고 있었다.
자신을 진세창이라고 소개한 중국인 약탈자에게 최근에 자치지구의 용병을 본적이 있냐고 묻자, 그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녀가 자치지구로 안전하게 복귀했는지를 되물었다. 순간 당황해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자, 자신이 동료를 찾기 위해 자리를 비운사이 그녀가 사라져 버려서 많이 걱정했다는 말로 말문을 막아버렸다.

약탈자가 왜 자치지구의 용병을 도왔냐고 묻자 그는 한껏 여유로운 표정으로 이런 세상에서 서로 돕고 사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며, 괜찮다면 이번에는 자신이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4.11. Lv.24 일그러진 현실

진세창을 도운 뒤, 당초 약속대로 크리스 웨버와의 만남을 위해 자치지구로 복귀했다. 리사를 구한 것이 정말 약탈자였다는 이야기에 크리스는 다들 어떻게 된 것이 아니냐며 자신이 직접 만나봐야겠다며 약탈자들이 기거하고 있는 건물로 갈 준비를 했다.

다시 돌아간 약탈자들의 은거처에는, 리사를 구해준 은인이 약탈자였다는 사실과 함께 크리스 웨버에게는 한층 더 충격적일 장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진세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시노노메 유우키를 발견하는 순간, 크리스의 눈에서는 불똥이 튀었다.

두명의 용병과 두명의 약탈자,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대화들이었지만, 리사를 구한 이유를 묻는 크리스의 굳어진 얼굴은, 무표정하다 못해 마치 돌로 만들어진 조각상과 같아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크리스의 입에서 떠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험악한 말이 나오자, 시종일관 여유롭고 온화한 태도를 보이던 진세창의 얼굴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러나, 먼저 화를 낸쪽은 시노노메 유우키였다. 그녀는 진세창이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음에도 적대적으로 대하는 크리스를 해묵은 증오에 휘둘려 과거에 얽매어버린 멍청이로 표현했다. 이에 크리스는 그녀를 약탈자에게 이용당하는 순진한 여자로 만들어 버렸고, 졸지에 그 순진한 여자를 이용하는 악랄한 약탈자가 되어버린 진세창의 입에서도 드디어 험악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유우키의 중재로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유우키와 크리스의 사이에는 더 깊은 골이 생긴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서로 한 번은 겪어야만 할 일일지라도 말이다.

4.12. Lv.27 마음 편한 일

시노노메 유우키는 크리스 웨버가 자신을 약탈자 내통 혐의로 자치군에 신고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유우키는 금방 용병단장의 위치로 돌아가 최근 부자 의뢰인이 공표한 경쟁의뢰를 해결해 어마어마한 보수를 손에 넣을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의뢰는 다른 용병단이나 정커들 보다 먼저 '트와일라잇'이라는 고급술을 찾아오는 것, 가장 먼저 물건을 확보한쪽이 모든 보수를 가져가는 것으로써, 어설프게 달려들었다가는 아무런 보수도 받지 못하고 시간만 낭비하게 되는 악랄한 의뢰였다.

서둘러 이동했지만 생각보다 경쟁자가 많았던 모양이었다.
유우키가 알려준 건물을 한참 뒤져보았음에도 의뢰품인 '트와일라잇'이라는 술은 포장상자만 뒹굴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이곳 저곳 더 찾아보았지만, 이미 누군가 전부 챙겨버린 것인지 전부 허탕이었다.

헛수고에 실망하고 그냥 돌아가려던 찰나, 지하에서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잔뜩 긴장하고 지하로 내려가자, 범인은 의외로 상태가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는 크리스 웨버였다. 그는 얼굴을 한참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나를 알아보았고, 조명탄을 사용하다가 와인랙을 박살내버렸다는 둥, 헛소리를 잔뜩 지껄이고 나서야 비틀거리며 자치지구로 돌아갔다. 그는 마치, 술에 취한 듯 보였다.

의뢰품은 찾지 못하고 술에 취한 듯한 크리스를 발견했다는 이야기에 유우키는 기겁했다. 그녀 역시 술취한 용병이 변이생명체들이 가득한 선릉역 한복판을 돌아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의뢰 실패의 아쉬움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금방 심각해진 그녀는 크리스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아봐야겠다고 말했다.

4.13. Lv.27 어쩔 수 없는 사이

시노노메 유우키의 말대로라면 선릉역에서 목격한 크리스 웨버는 자치지구로 복귀한 이후에도 한참동안이나 숙소에서 나오질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누가 봐도 완전히 술에 취해 골아떨어진 상황. 유우키는 어쩌면 그가 제일 처음으로 '트와일라잇'을 찾은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빈 박스를 발견했다는 건 누군가가 술을 찾아냈다는 증거임에도 그렇게 고가의 의뢰가 아직까지 성사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고 있는 것이 그런 의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녀는 최악의 경우, 크리스가 의뢰품인 '트와일라잇'에 손을 댄것이 아닌지 걱정했다. 의뢰품에 손을 댄 용병은 신뢰를 잃을테고, 신뢰를 잃은 용병에게 임무를 맡길 용병단은 없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유우키는, 그가 발견된 의뢰장소로 돌아가 다시한번 '트와일라잇'을 찾아봐주기를 부탁했다. 하지만 원래의 목적과는 조금 다른 이유였다. 크리스가 정말로 술에 손을 댄거라면 분명히 다른 박스에 옮겨 담았을 것이고, 그래서 찾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손을 댄 술을 발견한다면 그 술병을 깨버려서, 술에 손을 댔다는 증거를 없애 달라고 했다.

의뢰 장소를 다시 찾았지만 그사이에 또 누군가 의뢰장소를 뒤져본 흔적이 남아있었다. 사방의 수색 흔적에 불안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것 같은 허름한 상자안에서 너댓병이나 남아있는 '트와일라잇'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크리스가 의뢰품에 손을 댄 것인지, 그중 한병은 반쯤 비어있는 상태였다.

유우키의 요청대로 빈 술병은 깨어버리고 그녀에게 돌아갔다. 그때 때마침 의뢰인이 들이닥쳤는데, 유우키는 당황하지 않고 남은 '트와일라잇'을 건네면서 부족한 한 병은 수색 중 피치못하게 손상되었으니, 위약금으로 보상하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그녀의 애교에 기분이 좋아진 의뢰인은 호쾌하게 부족분은 눈감아 주었고, 그렇게 의뢰는 성공적으로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의뢰인이 떠나가자마자 아직도 술이 덜 깬듯 눈이 벌개진 크리스 웨버가 나타나더니 자신이 찾아놓은 의뢰품을 훔쳐갔다며 유우키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우키 역시 의뢰품에 손을 댄 크리스의 약점을 공격했고, 결과적으로 불리한 입장일 수밖에 없는 크리스는 말문이 막혀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용병생활에 대한 자부심으로 먹고 사는 크리스로서는 상처가 될 만한 일이었다. 자신의 독설 한마디에 완전히 침울해져 돌아가는 크리스를 바라보던 유우키는 슬그머니 의뢰보수의 일부가 담긴 주머니를 내밀면서 그에게 전해주기를 부탁했다.
그녀 다운 화해 방식이었다.

4.14. Lv.30 벌통

상의 할 것이 있다던 시노노메 유우키가 꺼내놓은 말은, 자치지구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귀를 의심케 할 만한 것이었다.

진세창이 편지를 통해 선릉역에서 새로운 약탈자 무리를 발견했다는 정보를 전해왔는데, 시노노메 유우키는 어처구니없게도 그 약탈자 무리를 만나서 서로 협력하는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대화를 해보겠다고 했다. 그녀의 순진한, 혹은 발칙한 상상력 속에는 호전적인 집단이니 조심하라는 진세창의 경고 따위는 안중에 없는 듯 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짐을 꾸리기 시작한 그녀는 당장이라도 선릉역으로 향할 기세였다. 그녀가 한번 마음을 먹었다면 말린다고 말려질 것 같지도 않았다. 그나마 그녀를 자제시킬 수 있을 만한 사람이라면 크리스 웨버 외에는 없을 것이다.

진짜 볼만한 것은 유우키가 단신으로 약탈자 소굴로 향했다는 소식을 들은 크리스의 벙찐 얼굴이었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린 그는 세상에 없는 멍청한 생각이라며 오만가지 비난을 쏟아내더니 그녀의 그 멍청한 짓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자신은 임무를 미루기 위해 용병단장과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으니 먼저 유우키를 쫓아가 그녀를 말려 주기를 부탁했다.

찾아간 선릉역 빌딩 공사장은 입구부터 음험 해보이기 짝이 없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철제 문짝은 살짝 열려있었고, 밑으로는 무수한 발자국들이 어지러이 찍혀 있었다. 그것은 분명, 변이생명체들의 것은 아니었다.

공업용 엘리베이터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그리고 우렁찬 소음을 동반하며 공사장 1층에 멈춰섰다. 더구나 오랫동안 방치되어 바싹 말라버린 시멘트 바닥은 발소리를 숨기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조심스레 숨어들어가서 상황을 살피려던 계획은 시작부터 무산된 셈이었다. 그리도 아니나다를까, 건물에 들어선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거적데기를 대충 걸친 약탈자 한명과 마주치고야 말았다.

"그 일본인 여자 용병? 보존식품 100상자와 1000만 EL 정도면 어때? 그정도 내놓는다면 아주 조용하고 깨끗이 돌려보내주지."

어차피 서로간에 거래의 의사는 없었을 터였다. 협상이 결렬되었음을 알리는 그의 휘파람 소리에 어둠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약탈자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놈들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어중이 떠중이 같은 약탈자들과는 달라보였다. 조직적인 움직임, 적절한 속임수, 위험한 함정까지.
문득, 이번 일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들 때 즈음, 공사중인 어느 방 한켠에서 시노노메 유우키가 사용하던 것으로 보이는 소총을 발견했다. 이것으로 유우키가 이들에게 감금당한 것은 확인 된 셈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크리스 웨버에게 알려야만 한다.

4.15. Lv.31 역전의 용사들

시노노메 유우키가 약탈자들에게 감금 당했다고 전하자, 크리스 웨버는 당장 보복을 다짐하며 자신의 동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선릉역에서 임무를 마친 검은탄환 용병단 소속 용병 두명을 수배했다. 총 네명이면 적당한 인원으로 보였지만, 크리스 웨버는 약탈자들이 얼마나 더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며 네명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바로 그때, 머리위로 한껏 두 팔을 치켜올리며 스트레칭을 하던 리사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부상 이후로 크리스 웨버와 항상 티격대는 모습을 보여왔지만, 그녀 역시 용병이었고, 다른 용병의 위험을 그냥 보고 넘어가지는 않았다. 크리스 웨버는 잠시 그녀의 부상을 염려하는 듯 했지만, 합류를 막지는 않았다.

이제, 구출대의 인원은 다섯명으로 불어났고, 크리스 웨버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음을 선언했다. 리사와 자신이 준비하는 동안 선릉역의 용병 집결지에서 다른 동료 두명과 먼저 합류할 것을 당부했다.

임현소, 그리고 아만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두 용병은 리사와 크리스 웨버 만큼이나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듯 했다. 물론, 그 둘 만큼 티격태격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새로운 용병들의 소개가 끝나기가 무섭게, 한껏 굳어서 이제는 돌덩어리에 가까운 표정이 되어버린 크리스 웨버와 여전히 여유롭기 그지없는 리사가 들이닥쳤다. 서로 인사를 채 나누기도 전에 준비해온 단파 무전기를 나눠준 크리스는 간단한 연결상태 점검만 하고는 곧바로 층을 나눠 수색을 시작하자고 했다. 홀 수 인원인 탓에 팀 배분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리사의 나사빠진 농담 한마디에 한바탕 떠들썩한 웃음과 함께 각자 수색지역으로 향할 수 있었다.

크리스 웨버와 수색을 시작한 2층에서 발견한 것은, 약탈자들에게 납치당한 피난민 몇 명 뿐이었다. 아마도 마땅히 몸값을 받고 넘길 곳이 없어서 그저 며칠이고 가둬두기만 한 모양이었다.
그 때, 무전기를 통해 크리스가 뭔가를 발견했음을 알려왔다. 급히 그가 있다고 알려준 실내에 들어서자, 비릿한 피냄새 사이로 미묘한 화약 냄새가 느껴졌다.

크리스 웨버는 사망한 약탈자의 시체를 유심히 살펴보고는 유우키가 탈출에 성공한 것 아닐까라고 말했다. 이 약탈자는 자신이 사살하지 않았고, 다른 팀은 3층을 수색중인만큼, 제 3의 누군가가 이 약탈자를 사살했다는 것인데 그것이 아마도 유우키일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탈출에 성공한 유우키와 3층에서 수색중인 다른 용병들이 서로 오인해서 서로 공격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 무전기를 들었다.

그때, 무전기 너머로부터 누군가의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늦은 것일까? 얼굴이 사색이 된 크리스는 번개처럼 3층으로 달려올라갔다.

4.16. Lv.32 낙오

크리스를 따라 급히 3층의 실내로 들어서자,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는 임현소와 걱정스러운 표정의 나머지 세 용병이 눈에 들어왔다. 수색 도중 임현소가 약탈자들의 공격에 부상을 입은 듯 했다. 출혈량을 보아 가벼운 부상은 아닌듯 보였다.

리사의 말대로라면 위험에 빠진 아만다를 구하려다가 송곳 형태의 무기에 옆구리를 깊게 찔린 모양이었다. 불행중 다행으로 뼈나 장기를 다친것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출혈이었다. 더구나 다들 급히 합류하느라 응급약품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부상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수색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우선은 임현소의 출혈을 막을 수 있는 물건을 찾는 것이 시급해 보였다.

크리스는 약탈자들이 갖고 있을 의약품을 노획 해주기를 요청했다. 아만다는 그보다는 현소를 한시 바삐 자치지구로 후송해야 한다며 따져들었지만, 임현소는 아직은 버틸만 하다는 말로 아만다를 달랬다. 덩달아 샐쭉한 표정으로 크리스를 바라보던 리사 역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약탈자들을 제압해가며 의약품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애초에 의약품 자체가 약탈자가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을만한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자치지구로 돌아가서 의약품을 가져오는 것 보다는 이들이 갖고 있을지 모를 의약품을 찾아보는 게 빠를 터였다. 결국 깨끗하진 않지만 쓸만은 해보이는 지혈대와 거의 바닥이 보이는 소량의 지혈제를 확보하긴 했지만, 아무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확보한 의약품들을 가지고 돌아가자, 기대했던 환영과는 달리 무겁고 심각한 기운이 용병들을 감싸고 있었다. 아마도 약탈자들의 무기에 독이 발라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비열한 행위에 모두가 분노했지만, 그런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의약품을 구하는 사이, 임현소의 상처는 급격히 부어오르기 시작했고, 뒤이어 호흡곤란 증세마저 보이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독에 중독된 환자를 방치한체 쓸데없이 시간만 허비해버린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유우키 때문에 동료를 잃게 생긴 크리스 웨버는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져 버렸고, 아만다는 훌쩍이며 새파랗게 질려가는 임현소를 부둥켜 안고 어쩔줄 몰라 하고 있었다. 자치지구로 후송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상황, 그때 리사가 중요한 단서 하나를 제공했다.

살모사의 독, 그녀는 예전에 뱀에 물린 사람이 현소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것을 본적이 있다고 했다. 아무런 시설이 남아있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손쉽게 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아마도 독사로부터의 추출일 것이며, 독을 다루는 놈들이라면 그 독에 실수로 중독되었을 경우를 대비해 어딘가에 분명히 해독제를 비치해 두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확실한 근거가 있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 말에라도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리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약탈자들은 공사장 한켠에 뱀들을 잔뜩 사육하고 있었고, 사육통 근처에는 그 용도가 미심쩍은 누런 액체들로 가득한 앰플들이 잔뜩 굴러 다니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해독제인지 아니면 뱀에게서 추출한 독인지를 구분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고민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손에 잡히는대로 몇개의 앰플을 움켜쥐고는 용병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달렸다.

독인지 해독제인지 모를 앰플들을 노려보며 아만다는 자신이 먼저 투약해 독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겠다며 울부짖었다. 그녀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멀쩡한 사람을 또다시 중독시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때, 임현소는 만약 이것이 해독제가 아니라면 어차피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없으니 그게 무엇이든 자신이 투약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해독제가 아니라면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착찹한 심정으로 앰플을 바라보는 찰나 약탈자들의 습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제는 정말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습격자들의 기세가 한풀 꺾인 후, 걱정스레 살펴본 임현소의 얼굴은 다행히 이전보다는 한결 편안해진 표정이었다. 아마도 해독제가 맞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안도의 한숨들.

리사는 아무리 해독제를 투약했더라도 현소를 데리고 수색을 재개하는 것은 무리라며 어서 자치지구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크리스는 수색의 의지를 꺾지 않았고, 결국 리사와 아만다가 임현소를 보호하고 크리스 웨버와 나, 둘이서 나머지 4층을 수색해 보기로 결정했다.

4.17. Lv.33 빗나간 탄환

4층의 수색은 만만치 않았다. 더욱 거세진 약탈자들의 저항은 확실히 4층에 뭔가가 있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건 탈출한 시노노메 유우키의 생사가 더욱 불분명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렇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수색을 진행하던 중, 크리스 웨버에게서 유우키를 찾아냈다는 무전이 들려왔다.

현장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들려온 것은 기가 죽은 유우키를 잡아먹을 듯 비난하는 크리스의 성난 음성이었다. 스스로의 잘못을 깨달은 것인지, 평소 같았으면 한마디도 지지 않았을 유우키도 고분고분 미안하다는 말 뿐이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 결국 크리스도 평정심을 찾고는 그녀에게 다치지는 않았는지를 물었고 유우키는 다쳤다는 동료가 괜찮은지를 되물었다. 모든것이 좋게 마무리 되려는 순간이었다. 그때 였다.

여기저기 구타 당한 듯 몰골이 말이 아닌 아만다와 임현소가 힘겹게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의 등 뒤로 칼을 겨눈 약탈자가 비릿한 웃음을 띄며 들어섰다. 처음, 빌딩 공사장으로 들어섰을 때 시노노메 유우키의 몸값을 요구하던 바로 그 자였다. 놈은 매우 유쾌한 표정으로 우리들을 비웃어대며 자신이 협상 테이블에서 극히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음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크리스는 그런 약탈자의 행동보다는 리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에 당황하고 있었다.

크리스가 리사의 행방을 묻자 약탈자는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아마 우리들 넷이 구출대의 전부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뜻밖의 전개에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대는 놈의 배후에서, 소리도 없이 스며들어온 리사가 놈의 머리에 총을 겨눴다. 전세역전이자, 깔끔한 반전이었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놈에게 무기를 버리라고 종용하던 리사는 안도한 크리스의 인사에 활짝 웃어보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하지만, 반전은 거기까지였다.

리사는 순간 방심했고, 찰나의 기회를 잡은 약탈자는 몸을 뒤틀더니 리사의 복부에 단검을 깊게 찔러넣었다.
리사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크리스의 비명과 같은 고함에 반사적으로 놈을 쫓아 튀어 나갔다.
하지만, 잠깐 스쳐가면서 본 리사의 상처는 섬뜩 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놈에게 응징의 탄환을 퍼붓고 돌아왔을 때, 리사는 온통 붉게 물들어버린 바닥위에 힘없이 누워 있었다. 이미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크리스는 리사의 손을 부여잡고는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되고나서야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크리스가 얄미웠는지 리사는 살풋 웃으면서 그를 원망했다.
크리스는 어떻게든 해달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을리 없었다. 리사는 힘없는 손이 다시금 그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려놓았다.

"나, 너랑 연애라는 거...한번 쯤 해보고 싶었는데...꽤 괜찮았을 것 같지 않아?...우리 말이야..."

맥없이 떨어지는 그녀의 손, 크리스는 믿기지 않다는 듯 리사를 힘껏 흔들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잔인한 이별이었다.

4.18. Lv.34 비난

시노노메 유우키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은 공사장에서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크리스의 오랜, 소중한 친구를 잃게 했다는 자책감이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크리스에게 사과를 하고 싶지만 그럴 용기조차 나지 않는다며 혹시 자신을 대신해서 그를 만나봐 줄 수 있을지를 부탁했다.

하지만 크리스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가 즐겨 기대 서있던 자리도, 그리고 지루한 대기시간 동안 크리스에게 핀잔을 주며 시간을 보내던 리사의 자리도 주인을 잃은 체, 비상구의 초록빛 램프만이 우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자치지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수소문한 결과, 다행히 포스코 사거리로 이어지는 서문 방향에서 그를 찾아낼 수 있었다.

서문 너머 먼 곳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자, 축 처진 어깨가 힘없이 돌아섰다. 크리스는 애써 씨익 웃어 보였지만 그가 느끼고 있는 크나큰 상실감 마저 감춰주지는 못했다. 다시금 멍하니 서문을 바라보던 그는, 여기에서 기다리다보면 왠지 리사가 금방이라도 저 문을 열고 흙먼지를 털어내며 돌아올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녀와 있었던 추억들을 하나씩 털어놓았다. 자신을 항상 구박하고 핀잔만 늘어놓았던 리사이지만,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챙겨주었던 친구이자, 믿고 등을 맡길 수 있었던 소중한 동료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걸 이제서야 깨닫게 된 것이 가장 가슴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숱하게 많은 동료들을 떠나보냈을 그였다. 그럼에도 그가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는 건 그에게 있어서 리사는 동료 이상의, 어쩌면 가족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리사와의 기억을 추억하던 크리스는 유우키의 말을 전하자 금세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리사의 죽음이 그녀의 오판으로 인한 것으로 단정했고, 또한 그러한 행동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유우키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하는 수 없이 그를 다독이며 사무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4.19. Lv.35 상심

검은 탄환 용병단의 지인으로부터 크리스의 소식을 전해들은 유우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보였다. 요 근래 크리스가 단장조차 당황해서 말릴 정도의 임무를 무더기로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리사의 일을 잊기 위해 임무에 매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정도가 너무나 지나치다는 것에 있었다. 유우키는 크리스의 무모한 행동으로 인해 그에게마저 안좋은 일이 생길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내, 용기를 내서 그를 직접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유우키과 함께 북문으로 서둘러 찾아갔을 때, 크리스는 막 임무 지역으로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임무를 수행했는지, 얼마전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전혀 다른사람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핼쑥해진 몰골을 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의 눈빛은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몰라볼 정도로 어둡고 날카로워진 모습의 크리스는 마치 혼자만의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유우키가 다급하게 불렀지만 그는 상종조차 하고 싶지 않다는 듯,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영동대로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우키는 그의 행동에 다시 한번 허탈감을 느끼는 듯 했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상태에 대해 걱정부터하기 시작했다. 그는 분명 정상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런 상태로 무리하게 임무를 수행하다가는 언제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유우키는 결국 그를 찾아봐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가 위험에 처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도록 그의 뒤를 봐달라는 부탁이었다.

하지만 광활한 올림픽 대로에서 그를 찾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격이었다.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 변이생명체를 퇴치했음에도 결국 그를 찾을 수는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자치지구로 돌아가려던 찰나, 무언가가 타고 있는 듯한 역한 냄새가 흘러왔다. 그 불길한 냄새의 근원을 찾아간 건물 앞에는 약탈자의 시체가 한 구 널브러져 있었다.
하지만 역한 냄새의 근원은 그 약탈자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건물 안에는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수 많은 약탈자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진 채 불태워지고 있었다. 마치 B급 호러영화와 같은 장면에 구역질을 참을 수가 없었다.

불태워진 약탈자들의 시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유우키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예전에 만났던 약탈자로부터 약탈자간의 세력 전쟁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며, 만약 올림픽 대로 부근에서 그들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라면 반드시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나 무모할 정도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크리스가 걱정된다며 그를 말려야만 할 것 같다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4.20. Lv.36 무자비

예전, 선릉역에서 행해진 약탈자 소탕 작전으로 인해 입지가 줄어든 몇몇 약탈자 세력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올림픽대로 지역으로 이동했다. 우선 자치군의 영향력이 크게 미치지 않는 지역이였던 데다, 강북에 모체를 둔 세력의 경우에는 연계에도 보다 수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내와는 달리, 생존 가능한 지역이 많지 않았던 탓에 약탈자간의 지역 다툼 역시도 심심치않게 벌어졌다.
약탈자간의 전쟁은 실로 치열한 것이었다. 세력 다툼에 패해한 세력에게는 무자비한 보복이 가해졌고 다시는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무차별적인 살육이 이어졌다.
그것이 그들의 생존 방식이었다.

약탈자들에 대한 정보를 많이 접했던 유우키는 이러한 상황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크리스가 또 다시 올림픽대로 지역에서의 임무를 수락했다는 사실에, 더 이상은 그를 위험 속에 방치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다시금 그를 찾아 나섰다.

유우키는 임무를 위해 떠나는 크리스의 등에 소리치며 말렸지만 그는 매몰찬 대답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지 힘없는 목소리로 검은 탄환 용병단의 지인으로부터 그의 상황에 대해 들어보겠다며 자리를 떴다.

그녀의 격양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였다.
크리스가 임무 복귀 예정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지인의 말에 결국 약탈자에게 당한 게 아니냐며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유우키는 그가 무사히 돌아와서 자신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영원히 괴로움 속에 살아가게 될 것만 같다며 그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의 부탁대로 올림픽 대로를 수색하던 중, 크리스의 수첩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크리스는 임무의 내용 등, 중요한 것은 전부 수첩에 메모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그가 수첩을 소홀히 다룰 리 없는 만큼,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더욱 불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수첩에 적혀있는대로 임무 지역인 건물로 조심스럽게 들어섰는데,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놀랍게도, 시체 더미 앞에 선 크리스의 모습이었다. 그의 손에는 기름이 줄줄 흘러내리는 천이 들려 있었고, 크리스는 그 천에 막 불을 붙이려는 참이었다. 다급하게 그를 불러 제자하려 했지만, 그는 아랑속하지 않고 불은 붙이더니 시체더미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수첩을 낚아채고는 이건 단지 벌레들을 박멸하는 과정일 뿐이라며 아무런 감정도, 죄책감도 없는 없는 표정으로 타오르는 시체 더미를 뒤로한 채 자리를 떠났다.

유우키에게 사실을 알려주자,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잠시 후, 더 이상은 안 되겠다며 검은 탄환 용병단 단장에게 직접 그를 자제시켜줄 것을 요청하겠다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4.21. Lv.37 약탈자 전담 용병

시노노메 유우키는 검은 탄환 용병단장이 마지막 방법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더 이상 자신으로서는 폭주하는 크리스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단장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그녀를 더욱 좌절스럽게 만들었다. 단장 또한 크리스의 상황을 잘 알고 있고 그를 자제시키고 싶지만, 분노가 극에 달한 그를 무작정 막아섰다가는 그가 또 다른 어떤 방향으로 폭발할지 그로서도 알 수가 없다는 말로 유우키의 요청에 고개를 저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크리스가 수집해 오는 약탈자에 대한 정보는 매우 정확하고 스스로 약탈자의 처리까지도 도맡아 하고 있기에 놀라운 활약을 보이고 있는 그의 활동을 제지할 명분도 없다는 게 단장의 입장이었다.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희망의 패마저 실패로 돌아가자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더 이상 방법이 없는지 포기하려던 찰나, 단장과의 대화를 곱씹던 그녀가 무언가를 알아챈 듯 눈을 크게 떴다.
크리스가 약탈자의 처리는 물론, 약탈자에 대한 정보까지도 스스로 수집하고 있다는 말이 그녀의 관심을 끈 부분이었는데, 그가 어떻게 약탈자에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있는지를 알아낸다면 앞으로 그가 움직일 동선까지도 모두 알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크리스가 아무리 무모한 임무에 뛰어들더라도 최소한 그를 도울 수 있는 여지는 생길 것이며, 만약 정히 어려운 일이라면 그의 임무를 미리 해치워 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는 말이었다.

크리스를 뒤쫒던 중 그를 발견한 것은 올림픽대로의 한 아파트 복도에서였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기 전 수첩을 꺼내더니 적힌 내용을 꼼꼼히 확인했고, 이후 그가 들어간 건물 내부에서는 곧 총성과 비명이 뒤섞여 울려퍼졌다. 그리고 수 분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심한 표정의 크리스는 다시금 수첩을 꼼꼼하게 확인한 후 자리를 떠났다.
그가 떠난 뒤 확인한 내부 상황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수많은 약탈자들이 쓰러져 있었는데, 이 많은 수의 약탈자들이 크리스 한 사람을 당해내지 못했다는 것이 의아할 정도였다. 더구나 그동안 보아온 크리스는 솔직히 말해 엄청나게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라고는 말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어떻게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일을 해낼 수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뒤이어 그를 쫒아간 곳에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크리스는 수첩을 꼼꼼히 확인하고 건물에 진입했으며, 잠시 후 수 많은 시체들을 남긴 채 걸어나왔다. 아마도 그가 하고 있는 임무 대부분의 내용은 그가 그렇게도 소중히 여기는 수첩에 담겨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내용을 전해들은 시노노메 유우키는 그 수첩만 있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4.22. Lv.38 정보원

수첩만 있으면 모든게 해결 될 것이라던 시노노메 유우키의 자신감에 비해, 그녀가 선택한 수첩의 확보 방법은 참으로 간단하고도 단순한 것이었다. 그녀는 당당하게 크리스의 수첩을 훔칠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런 어처구니 없는 방법으로 되겠느냐는 물음에 유우키는 자세히 알 필요는 없지만 자신이 목표로 한 소매치기를 실패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며, 비밀이라는 듯 검지 손가락을 입술 위에 올려 보이고는 기세좋게 사무실을 나갔다.

잠시 후 의기양양하게 돌아온 그녀의 손에는 크리스의 수첩이 들려 있었다. 확인해 본 수첩에는 예상대로 약탈자에 대한 내용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는데, 그외의 다른 메모는 찾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것이 약탈자에 대한 내용들 뿐이었다. 약탈자에 대한 정보 자체도 굉장한 수준이었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내용들의 대부분에 이미 빨간 줄이 쳐져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는 곧, 그가 이미 처리한 것 들이라는 의미일 터였다.

그때, 크리스가 불같이 화를 내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평소 잘 마주치지 않던 유우키와 스쳐지나간 후 수첩이 사라진 것을 의아하게 여긴 크리스가 유우키의 손에 수첩이 들려있는 것을 보고는 들이닥친 것이었는데, 수첩을 거칠게 낚아챈 크리스는 그녀를 도둑이라고 몰아세우며 모욕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유우키는 그의 모욕에 대응하는 대신, 수첩에 적힌 약탈자에 대해 되물었다. 무언가 걸리는 부분이 있는지, 잠시 움찔하던 크리스는 무언가를 웅얼거리더니 이내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니 신경 끄라며 으름장을 놓고는 돌아갔다.

그런 으름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우키는 즉시 메모장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크리스의 수첩에서 봐 두었던 올림픽대로의 약탈자 집단에 대한 정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기억에는 이 집단이 수첩에 적혀있던 약탈자 정보의 마지막 이었다며 이 약탈자 집단을 내가 먼저 처리해 버리면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진 크리스는 분명히 또 다른 약탈자들의 정보를 얻기 위한 행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자신이 그의 뒤를 밟아서 어떤 방법으로 정보를 얻어내고 있는지 알아내겠다는 것이 그녀의 계획 이었다. 나름대로의 역할 분담인 셈인데,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약탈자 제압을 마치고 무전기를 통해 상황 종료를 알리자 유우키는 크리스가 이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급히 알려왔다. 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서둘러 방 안으로 몸을 피한 지 얼마 않아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약탈자가 이미 처리된 상황이 어리둥절한지 어깨를 으쓱이더니 수첩을 꺼내 뒤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첩에 더 이상 남은 정보가 없다는 것은 이미 확인되어 있었다. 크리스는 이내 뒷머리를 긁적이며 자리를 떠났다.
무전기를 통해 그가 떠났음을 알리자, 그녀 역시 그를 발견하고는 그가 이동한 장소를 확인한 후 연락을 주기로 했다. 이번에는 미행 담당인 그녀가 활약할 차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우키에서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어느 한 건물에 들어선지 꽤 되었는데도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곳이 크리스가 약탈자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는 장소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유우키는 그녀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고, 그녀와 무사히 합류할 수 있었다.

4.23. Lv.39 뜻밖의 재회

크리스는 그가 들어간 건물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유우키는 마치 그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아마도 정보를 얻는 루트는 정보원인 것 같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누군지 모를 정보원의 접선을 기다리며 유우키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자 그녀는 정보원과의 접선을 막아 크리스가 약탈자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약탈자에게 강한 증오심을 갖고 있는 크리스인 만큼 무모한 행동은 상당부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크리스는 그 사실을 몰라야 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녀의 생각처럼 쉽게 풀려가지는 않았다.

마침내 나타난 정보원의 정체를 확인한 유우키는 무엇에 그리 놀랐는지, 크리스에게 알려져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잊은 채 그들의 접선 장소에 들이닥쳤다. 유우키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그녀를 따라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접선 장소에서 마주한 것은 초대받지 못한 사람을 보는 듯, 황당한 표정으로 나와 유우키를 번갈아 바라보는 크리스와, 그와 마주선 진세창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의 조합이기는 이쪽도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누구보다도 흥분한 것은 유우키였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정보원의 정체가 진세창임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왜 그가 이곳에 있는지를 닥달했지만 그와 반대로 진세창은 여유롭게 이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크리스에게 살해 위협을 받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약탈자 집단에 대한 정보를 넘겨줬을 뿐이라며 어깨를 으쓱이는 여유까지 보였다.

차분해 보이는 진세창과는 반대로 크리스는 화를 내며 이 같은 상황을 만든 그녀를 힐난했다. 하지만 유우키는 더 이상 리사의 죽음을 이유로 자신을 학대하지 말아달라고 크리스에게 부탁했다. 모든 것은 자신의 잘못이니 자신을 원망하는 한이 있어도 스스로를 학대해서는 안된다는 말로 크리스를 설득하려했다. 하지만 크리스는 대답 대신,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에게 각인되어버린 상처는 쉽게 아물 것 같지 않아 보였다.

흥미로운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진세창에게 유우키는 더 이상 약탈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답변을 기다리던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진세창의 반응은 싸늘한 것이었다.
그는 도리어 유우키가 자신의 일을 망친 셈이라며 크리스가 하던 일을 대신이라도 해줄 셈이냐고 물었다. 그동안 그가 제공했던 약탈자에 대한 정보들은 그에게 있어서는 경쟁 집단을 스스로의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처리할 수 있는 최고의 비즈니스였는데, 방금 유우키가 그걸 망쳐버린 셈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 아둔한 여자와의 소꿉놀이도 이제는 질렸다며, 전부 없애버린 다음 더욱 폭주할 크리스를 이용해서 그가 죽을 때까지 경쟁 집단의 처리에 이용하겠다는 말로, 그동안 숨겨왔던 발톱을 드러냈다.

유우키는 오랫동안 협력해온 사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실체에 말문이 막힌 모습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그런 것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진세창이 불러낸 부하들이 주변을 포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대화는 나중 일이었다.

약탈자들의 맹공을 뚫고 간신히 자치지구에 돌아오자 유우키는 무너지듯 소파에 주저앉았다. 크리스의 마음을 돌리는데도 실패한데다, 그동안 협력자로서 믿어왔던 진세창이 사실은 자신을 이용하고 있었을 뿐이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지칠대로 지쳐 보이는 그녀를 위로하자, 그녀가 간신히 웃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크리스의 말대로, 저는 주변에 피해만 주는 정말로 멍청한 여자인지도 몰라요."

5. 정커길드

5.1. Lv.11 돈이 되는 쓰레기

전입자가 갑작스럽게 사라지면서 정커 길드를 떠맡게 된 하은영은, 오로지 돈을 위해 존재하고 돈을 위해서만 행동한다는 일반적인 정커들과는 다른 듯 보였다. 타인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존재하는 정커. 그들은 그 자신 조차도 돈에 대한 탐욕으로 찌들어 있었고 그 탐욕으로 인해 목숨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 정커들 사이에서 하은영의 모습은 분명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경영하게 된 길드를 수익에 집착하기 보다는 가능한 구성원들이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노력했고, 능력에 맞지 않는 무리한 임무는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노력에서 작은 길드임에도 적잖은 사람들이 가입을 위해 찾아오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의 테스트를 진행하며 돈에 집착하는 정커들이 왜 위험에 처하고 마는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정크는 과거에 만들어진 물건들이고 누구나 가져가는 사람이 주인이 된다. 때문에 쉽게 가져갈 수 있는 장소에는 더 이상 정크들이 남아있지 않았고, 쓸만한 정크들은 모조리 어둡고 위험한 곳에 있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괜찮은 물건을 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어둠속에 도시린 변이생명체들의 들바구니에서 무슨 가치가 있는지도 모를 잡동사니들을 뒤지고 있자니, 정말이지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5.2. Lv.12 폐허를 누비며

첫번째 테스트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가자, 하은영은 기대했던것 보다 훨씬 괜찮은 정크를 가져왔다며 다음 테스트까지 진행해볼 것을 권유했다.
하은영과 다음 테스트에 대해 이야기하던 도중, 문득 길드에 가입하러 온 사람들의 수가 한참이나 줄어든 것을 느꼈다. 이유를 묻자 그녀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처럼 성공적으로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일부는 테스트를 포기하고 사라지거나, 테스트를 진행하는 도중 실종되는 경우도 있다고했다.

두번째 테스트역시 성공적으로 수행하자, 그녀는 자신의 길드에 가입을 권유하며, 만약 가입이 번거롭다면 의뢰만 중개받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힘든 시기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자원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일단은 가입을 뒤로 미루고 필요할 때 마다 의뢰를 받아서 수행하겠다고 말하자, 하은영은 앞으로 좋은 동업자가 될 것 같다며 함박 웃음을 지어 보였다.

5.3. Lv.14 도토리 찾기

하은영이 언급했던 드미트리라는 정커는 썩 친근감이 가는 인상은 아니었다. 그는 하은영과는 반대로, 의뢰인의 욕망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 보였고, 의뢰의 해결을 위해서라면 다소간의 불법적인 일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듯 보였다. 하지만 정커로써의 능력은 유능해 보였고, 프로로서의 의식도 확실해 보였다.
그는 실력이 못미더워 보였는지, 자신이 이미 확보해둔 정크를 찾아와 '회수'해 달라는 간단한 일을 요구했다.

드미트리가 요청했던 정크들을 찾아가자 그는 빠른 회수에 만족했는지, 생각외의 인재를 만났다면서 앞으로 돈이 필요하면 종종 같이 일을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5.4. Lv.15 애도

그의 유명세 때문인지, 몰려드는 의뢰로 인해 눈코뜰새 없이 바빠지자 드미트리는 자신의 친구 정커까지 동원해서 의뢰를 처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친구는 의뢰인이 의뢰품을 수령하러 올 시간이 다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드미트리는 위약금을 물게 생겼다며 눈에 핏대를 세웠다.
결국 기다리다 못한 드미트리는 나에게 자신의 친구와 함께 의뢰받은 정크를 찾아오라는 부탁을 했다.

그러나, 그가 알려준 장소에 도착했을 때 그의 친구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체가 되어 있었다. 달리 손쓸 방법을 없었고, 드미트리가 이야기했던 의뢰품목을 몇점 회수해서 돌아갔지만, 드미트리는 친구의 죽음보다는 회수해온 정크에 더욱 관심을 갖는 것 같았다.
그는 정크를 수집하다 변을 당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자신의 부족한 실력을 깨닫지 못하고 무리한 일을 맡은 것이 그 원인이었다며, 위험한 지역에서의 활동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에 스스로 책임져야 할 뿐이라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아마도 그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친구의 죽음 보다는 위약금일 터였다.

5.5. Lv.17 사라진 정커

단체로 정크 수집을 나간뒤 돌아오지 않는 자신의 정커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하은영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정커들의 행방을 추적해 주기를 부탁했다. 정커들이 오랜 시간 귀환하지 못하는 경우는 대부분 시체조차 찾지 못하는 실종으로 여겨지지만, 길드장인 그녀 만큼은 그들의 무사 귀환을 여전히 바라고 있었다.

하은영은 정커들의 추적을 위해 정크 감정사를 찾아가 볼 것을 권유했고, 정크 감정사는 다행히도 별다는 조건 없이 하은영의 정커들이 찾던 정크 정보를 넘겨 주었다. 감정사의 표정을 보아하니 찾고 있는 정커들이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걱정하는 하은영의 걱정이나마 덜어주고자 알려주는 듯 보였다.

하지만 조사 결과는 하은영이 원하던 방향은 아니었다.
정커들이 갔을 것으로 생각되는 여러 장소를 모두 확인했음에도 정커는 단 한 명도 찾지 못했고, 그들이 정크를 찾았던 흔적과 그들의 가방만을 찾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순수한 길드 마스터는 시체를 발견한 것은 아니라며 포기하지 않았고, 사방팔방 자신의 정커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5.6. Lv.17 잃어버린 보물들

청담역 진입로에서 정커들을 봤다는 제보가 들어오면서, 어두웠던 하은영의 얼굴에 한줄기 빛이 내리쬐는 듯 했다. 더더욱 다급해진 그녀는 최대한 빨리 자신의 정커들을 찾아봐 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녀의 바램이 무색하게도 찾아낸 정커들은 이미 모두 변이되어 있었다. 좀비가 되었음에도 저마다 자신의 가방을 놓치지 않고 메고 있는 정커들의 모습은, 자신이 생전에 정커였음을 알리고자 하는 마지막 의지처럼 보였다. 그로 인해 영면에 들 수 있었으니, 어쩌면 그들도 만족할 수 있었을 것이다.

5.7. Lv.18 구원의 손길

사망한 정커들을 그리며 슬퍼할 새도 없이, 그들의 빈자리는 하은영에게 현실로 다가온 듯 했다. 부족한 인력탓에 받아놓은 주문의 물량을 대질 못했고, 계약기간이 임박할수록 하은영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갔다. 결국 그녀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동원해서 부족한 의뢰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크는 턱없이 부족했고, 의뢰인이 오기로 약속한 날까지도 겨우 60%정도의 물량만을 확보했을 뿐이었다.

원래 하얀 하은영의 얼굴이 거의 파랗게 질려가는 찰나, 그녀에게 백마탄 왕자님이 나타났다. 그런, 왕자님이라는 칭호에 어울리지 않기로는 자치지구에서 손꼽을만한 드미트리였는데, 여유로운 표정으로 나타난 그는 사정은 이미 알고 있다며, 우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크를 빌려줄테니 급한 상황을 해결하라고 했다. 그 순간, 하은영의 얼굴에서 엄청난 안도감과 함께 함지박만한 웃음꽃이 피었는데, 눈에서 얼핏 하트를 본 것 같기도 했다.

5.8. Lv.21 고집스러운 손길

드미트리가 빌려줬던 정크의 대금을 받기로 한 날, 드미트리는 약속 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돈 거래가 확실한 드미트리인 만큼, 하은영은 정커들이 실종되었을 때 만큼이나 안절부절했다. 그리고는 결국 그녀는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그의 행방을 찾아주기를 요청했다.

5.9. Lv.22 보은

하은영의 요청에 따라 주변을 수소문한 끝에 드미트리가 강남구청으로 향했다는 제보를 입수했는데, 한 건물의 쪽방에서 겨우 찾아낸 드미트리는 크게 다친것은 아니었지만, 생명의 위협보다는 위약금의 손해를 더 중하게 여기는 듯했다. 의뢰품을 확보하기 전까지는 단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며 고집을 부리는 그를 하은영은 모든 비용은 자신이 치를테니 그가 원하는 모든 정크 수집과 함께 그의 구출을 의뢰한다고 했다. 그녀가 드미트리의 도움에 얼마나 고마워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상황을 알게 된 드미트리는 하은영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습관처험 상대의 진의를 의심했다.

5.10. Lv.25 위기의 정커

드미트리는 가뜩이나 날카로운 인상을 더욱 찌뿌리고 있었다. 말을 걸기조차 부담스러운 표정의 이유는 얼마전 하은영과 동업관계를 맺으면서 일이 바빠지는 통에, 예전에 맺어둔 의뢰를 깜빡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뢰품은 '쁘띠 엄마'라는 특정 상표의 향수였는데, 드미트리조차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흔한 물건이 아니었던데다 다른 의뢰로인해 시간마저 촉박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의뢰비용이 비싼만큼 실패시 위약금도 엄청났다.

1분 1초가 급했던 드미트리는, 정크의 위치정보까지 제공하면서 성공만 한다면 보수의 상당부분을 나눠주겠다고 했다. 평소, 그 답지 않은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드미트리가 제공한 정크의 위치정보 그 어디에서도 '쁘띠 엄마'라는 향수는 찾을 수 없었다. 찾지 못한 것을 알면 난리가 날 것이 분명했지만, 이미 의뢰인이 찾아오기로한 시간도 임박한 상황이었다. 하는 수 없이 빈손으로 돌아와 드미트리에게 향수를 찾지 못했음을 알리는 순간, 드미트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의뢰인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생글 생글 웃으며 나타난 의뢰인은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의뢰비용으로 얼마를 지불하면 되는지부터 물어보았다. 이에 드미트리가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향수를 구하지 못했음을 밝히자 의뢰인은 대번에 얼굴이 굳어지며 향수를 선물로 받기로한 여성의 생일이 오늘임을 재차 강조했다.
이에 사색이 된 드미트리는 위약금만이라도 피하기 위해서였는지 비굴한 자세로 계약 연장을 부탁했다. 의뢰인은 잠시 고민하는 듯했지만 다행히도 드미트리의 부탁대로 계약을 연장해주는 눈치였다.
의뢰인이 떠난 후, 계약 연장이라는 굴욕을 당한 드미트리는 그 어떤 때 보다도 격렬하게 주위 사람들에게 의뢰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5.11. Lv.25 정커의 자존심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드미트리는 그 자리에서 유선전화기를 뜯어먹을 기세로 이곳 저곳에 전화를 해댔지만, 주변사람으로부터는 정보를 얻지 못했다. 다급해진 그는 결국 의뢰품에 대한 정보를 돈을 주고서라도 구매하기로 했다. 자신이 가져갈 의뢰 보수의 상당 부분을 손해보는 것 까지도 감수할 각오였던 것이다. 아무래도 드미트리에게는 돈 보다도 상처받은 자존심의 회복이 우선인듯 보였다.

과연, 돈을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는 정크 정보는, 그만큼의 값어치를 했다. 드미트리에게 받은 약도에 표시된 위치에서 드디어 '쁘띠 엄마' 향수를 찾은 것이다. 기쁜 마음에 나는 듯이 달려 드미트리에게 돌아가자, 귀신처럼 또 다시 의뢰인이 나타나 향수의 행방에 대해 물어왔다. 이에 드미트리는 전에 없이 당당한 표정으로 향수를 확보했음을 밝혔다.

그런데, 의뢰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드미트리를 경악하게 했다. 이미 다른 생일 선물을 전달했기 때문에 더 이상 향수는 필요 없어졌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드미트리는 잠깐 정신을 놓은듯 했고, 의뢰인은 드미트리가 애초에 의뢰 시간을 넘긴 책임이 있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계약을 파기한 것이니 서로 위약금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말했다. 드미트리 입장에서는 기껏 정보를 구매하기 위해 지불한 돈을 허공으로 날리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

드디어 드미트리가 폭발했다.
의뢰 연장때는 비굴하기까지 했던 그가 의뢰인에게 욕설과 막말을 쏟아낸 것이다. 하지만 의뢰인은 분노한 그를 비웃으며, 당신이 직접 향수를 구해오지 않은 것도 알고 있다고 했다. 이 향수는 단지 돈으로 산 정보를 통해 돈으로 산 사람을 시켜서 찾아온 정크일 뿐이라며 나에게 이런 '무능한 정커'와 일하지 말고 돈이 필요하면 자신을 직접 찾아오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 드미트리의 자존심에 결정타를 날리고야 말았다.

의뢰인이 떠난 후 씹어 먹을 듯 그 뒷모습을 노려보던 드미트리는, 언젠가는 그가 값을 치르게 될 것이라는 섬뜩한 말을 남겼다.

5.12. Lv.27 의뢰인

오랜만에 찾아간 하은영에게, 누군가 나를 찾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게 누구였냐고 묻자, 그가 '쁘띠 엄마' 향수라고 말하면 내가 알아들을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드미트리와 문제가 있었던 그 의뢰인인듯 했다.

문제의 향수를 의뢰했던 의뢰인 하비는, 예상과는 달리 정크 수집 의뢰가 아닌 드미트리에 대한 소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와 일하는 사람의 태반이 죽거나 실종된다는 소문. 오래전 하은영이 드미트리를 소개하면서 말해주었던 바로 그 소문이었다. 하지만 하비는 그게 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드미트리가 지금처럼 유명한 정커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선릉역의 두 용병과 한 정커 사이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래전, 선릉역이 지금보다 훨씬 위험하던 시절에 두명의 용병과 정커 한명이 사람의 발길이 아직 닿지 않은 선릉역에서 값나가는 정크를 찾아 인생역전을 노렸다는 이야기, 그러나 결국 두 용병은 모두 실종되고 오로지 정커 한명만이 값비싼 정크를 확보해 살아 돌아왔다는 그 이야기는, 바로 드미트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비는 실종된 용병 중 한명이 자신의 형이였음을 밝혔고, 드미트리가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자신의 형과 다른 용병 한명을 죽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하은영은, 돌아오지 못한 두 용병 중 한명을 알고 지냈었는데 그가 하비의 형일줄은 몰랐다면서, 하비가 형을 잃은 상심에 애꿎은 사람에게 분노를 투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5.13. Lv.28 동행

드미트리가 나를 찾는다는 말을 전하면서, 하은영은 조심스럽게 하비가 이야기했던 의혹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음을 밝혔다. 드미트리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지만, 조심해서 나쁠것은 없다는 이유였다. 아무래도 같이 일한지 얼마 되지 않는 드미트리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오래 일한 나를 먼저 걱정하는 듯 했다.

드미트리는 선릉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비와의 일은 벌써 잊은건지, 아니면 오랜만에 직접 현장에 나와서 기분이 들뜬 건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그의 모습은 자못 낯설어 보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굳이 하비에게 들은 이야기를 꺼내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 필요는 없어 보였다.

정크 수집은 순조로웠다. 목표로하는 건물에 진입해 변이생명체들을 퇴치한뒤 안전을 확보했음을 알리고 나면, 드미트리가 진입해 한결 정돈된 작업환경에서 정크들을 살펴보는 식이었다. 얼마간의 순환식 정크 수집이 끝나자, 드미트리는 나에게 먼저 자치지구로 복귀해 하은영에게 미리 맡겨둔 보수를 찾아가라고 했다. 드미트리를 혼자 두는 것이 내심 불안했지만, 한사코 괜찮다는 그를 감시하듯 지키고 서있을 이유도 없었다.
일단 하은영에게 돌아와 하비의 말과는 달리 드미트리가 혼자서 정크를 수집하는데도 전혀 문제가 없음을 알리전던 참이었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폭발음, 자치지구 내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오발 사고라도 일어난 것인지 밖으로 나가보니, 한켠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웅성이며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에, 몰려든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자 무슨일이 벌어진 것인지 즉시 알 수 있었다.

가슴높이에서 벌어진 폭발의 여파에 새까맣게 그을려버린 시체, 그것은 바로 하비의 시체였다.

하비가 원인 불명의 폭발에 휩쓸려 사망했다는 소식에, 하은영은 즉각 드미트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했다. 복귀하기 전까지 선릉역에서 따로 정크를 수집하겠다던 드미트리는 이미 자신의 가게 앞으로 돌아와 있었다. 폭발음을 들었냐는 물음에, 그는 약탈자가 폭탄공격이라도 했냐면서 자신은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말고 모르는 것인지,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결국 하은영은 드미트리에게 대한 판단을 보류했지만, 내막을 알게 되기 전까지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말로 그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했음을 표현했다.

5.14. Lv.30 뒷 조사

한참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하은영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하비의 죽음, 그리고 불거진 드미트리에 대한 의심, 하지만 물증은 없었고, 알리바이조차 드미트리에게 불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하은영은 나름대로 그의 행적에 대해 따로 조사를 해본 모양이었다. 결국 별다른 증거는 찾을 수 없었지만 말이다.

더구나 하은영은 그녀 자신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사라진 정커들로 인해 부족해진 인력은 날이 갈수록 그녀를 압박하고 있었다. 일전에는 드미트리에게 도움을 받음으로서 급한 불을 끌 수 있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마당에 또다시 드미트리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드미트리에 대한 의심은 일단 미뤄두고 잔뜩 밀려버린 의뢰들을 먼저 처리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의뢰들은 평이했다. 마지막에 최고조의 짜증을 선물했던 금고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놈의 망할 금고는 비밀번호를 틀릴 때마다 도난방지용 경보가 미친듯이 울어댔고 그때마다 경보 소리에 자극받아 몰려오는 변이생명체들을 퇴치하는 것으로 실수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심지어 경보와 다이얼과 씨름해가며 오만 고생을 다 했음에도, 그 결과로 얻은 것은 텅 비어 버린 금고였다. 놈은 새까만 아가리를 양껏 벌린채, 누군가 이미 목표물을 가려가 버렸음을 비웃듯이 알려주고 있었다.

하은영에게 마지막 정크를 찾지 못했음을 알리자,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의뢰이자, 고가의 금액을 치르고 얻은 정보였다며 크게 낙담했다. 하지만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다른 유명 정크 길드에라도 다시 수소문을 해봐야겠다며 다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5.15. Lv.31 돌려막기

이곳 저곳에 정크 정보를 수소문 해보던 하은영은, 결국 백기를 들고야 말았다. 이제 남은 것은 위약금 폭탄과 '의뢰를 실패한 정크 길드'라는, 정커로서는 치욕적일 수밖에 없는 딱지만 남은 상황. 결국 그녀는 드미트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비의 사망사건 이후로 드미트리를 극도로 경계하던 그녀로써는 정말로 큰 결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드미트리 역시도 밀려드는 의뢰로 인해 눈코 뜰새없이 바쁜 모양이었다. 하은영의 정크 길드와 드미트리가 동업관계라는 것이 와전되어, 조만간 그가 하은영의 길드로 편입되면 가뜩이나 비싸기로 유명한 드미트리의 의뢰비용이 더 오를 것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소문이 퍼진 모양이었다. 그 바람에 여지껏 그에게 의뢰를 해오던 사람들이 사실 확인차 우르르 그를 찾아왔고, 아니라는 해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했던지 오만가지 잡다한 것들을 의뢰해 왔다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기에, 그 역시 하은영에게 잡다한 의뢰품 중에 가지고 있는 것이 있는지 물어봐달라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에게 세가지 의뢰품 중에 한가지 정크는 여유분이 있다는 것.
그런데, 하은영은 드미트리에게 해당 정크를 그냥 넘길 생각이 아닌 모양이였다. 그녀는 드미트리에게 돌아가, 정크의 여유분이 없어 세가지를 모두 찾아야 한다고 거짓말을 한 뒤, 남은 시간에 그의 뒤를 밟아 주기를 부탁했다.

일단은 길드의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나서 생각하겠다고 했던 그녀였지만, 아무래도 하비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못했던 모양이였다. 그녀는 하비가 살해당한 방식에 주목했다. 폭발물에 의한 살해...자치지구 바깥의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폭발물을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나, 하비가 눈치 채지 못 할 정도로 작고 눈에 띄지 않는 무엇인가에 폭발물을 숨겼을 것이고, 그런 것을 제조하려면 평소 철저한 보안을 생명으로 생각하는 드미트리가 보는 눈이 많은 자치지구 내부에서 작업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그녀의 추론은, 나름대로 그럴듯한 이유였다.

결국 그녀의 부탁대로 드미트리에게는 찾아야 할 정크는 여전히 세가지인 것으로 속이기로 했다. 그가 미끼를 물어줄지는 의문이였지만.

5.16. Lv.32 열려라 들깨

다행히 드미트리는 미끼를 물어주었다. 그는 주저없이 가장 값나가는 정크들을 자기가 담당하겠다고 나섰고, 하은영의 계획대로 이미 확보한 정크는 나의 담당이 되었다. 그녀는 드미트리와 정크 수집을 떠나기전에, 그가 움직일만한 경로를 따로 표시한 약도를 주었다. 생각외로 크지 않은 동선이었지만, 시간내로 그의 뒤를 추적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이제는 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드미트리의 말대로 내가 담당한 정크들은 자잘한 것 들이었고, 찾는데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게다가 미리 확보해둔 정크 또한 있었던 만큼,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수집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드미트리의 행방이었다. 하은영이 예상한 동선 중, 벌써 두곳이나 미리 다녀간 듯 했다. 아마도 그의 정크 수집 속도가 하은영의 예상보다 훨씬 빠른 듯 했다.

한참을 해메고 나서야, 한 건물로 들어서는 드미트리의 뒷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건물은 입구에서부터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출입이 꺼려지는 모습이었는데, 사방은 난장판인데다 바닥은 여기저기 무너져내려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드미트리는 익숙한 듯 순식간에 위험한 구역을 지나갔고, 금방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춰버렸다. 조심스럽게 그를 뒤쫓아 건물 내부로 들어섰지만,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그의 행적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구조도 모르는체 무작정 뒤쫓다가 발각되기 보다는 그가 스스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도록 하는 편이 나아 보였다. 그리고 그 역할은 화재 경보기가 해줄 것이다.

미친듯이 울려대는 화재 경보기에 드미트리는 헐레벌떡 나타났다. 신경질적으로 경보기를 끈 그는 주변을 슬쩍 둘러보더니 챙겨둔 정크를 들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타난 방향으로 가보니 텅빈 벽면에 유독 덩그러니 놓인 와인랙에만 여러 손자국들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손자국의 주인은 볼 것도 없이 드미트리일 터였다.

와인랙을 슬쩍 밀어내자 와인랙이 배치된 벽면 전체가 스르르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래전 유행했던 모험 영화에서나 볼 법한 비밀 문에 감탄하는 사이, 벽면 뒤의 미심쩍은 방이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하지만 기쁨은 거기까지였다.

드러난 문은 커다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이리저리 문을 밀어보았지만, 이번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자물쇠 역시 절단기가 있다고해도 끊어낼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아쉽지만 일단은 하은영에게 돌아가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5.17. Lv.33 열려라 참깨

드미트리의 비밀 창고가 자물쇠로 잠겨있었다고 전하자, 하은영은 한결 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드미트리의 비밀 공간을 끝까지 파헤쳐 보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는 문제의 비밀 창고 열쇠를 복사하기 위해 자신이 드미트리를 상대하는 동안 그의 거처에 숨어들어가서 열쇠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의 부탁대로 드미트리를 하은영에게 보낸 뒤, 드미트리의 거처에 숨어들었다. 돈과 정크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는 그의 성격을 대변하듯, 실내는 완전히 난장판에 가까웠다. 덕분에 뻔히 책상위에 굴러다니는 열쇠를 찾는데 상당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열쇠를 찾아낸 뒤부터 시작됐다. 우선, 열쇠가 너무 많았다. 애초에 진짜 필요한 열쇠를 테스트 해볼 자물쇠도 없는 상황. 결국 고민 끝에 열쇠 꾸러미를 통째로 집어들고 황급히 하은영이 알려준 열쇠 기술자 노인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갈수록 태산이었다. 열쇠 기술자는 왠 사기꾼 정커의 술수에 휘말려 변이생명체들이 득시글 거리는 건물에서 창고를 열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었다. 노인이 계약한대로 창고 문을 열지 못했을 때 받을 위약금을 노린 사기로 보였다. 하지만 노인이 다녀오기를 기다리기에는 드미트리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 결국 노인 대신 그 건물의 변이생명체들을 처리해주는 조건으로 드미트리의 열쇠 꾸러미를 즉시 복사해주기로 했다.

다급한 마음에 날듯이 뛰어 노인이 말한 건물 내부의 변이생명체들을 모조리 박살내버린 뒤, 또다시 미친듯이 뛰어 그에게 돌아왔다. 다행히 노인은 열쇠 꾸러미를 모두 복사해 둔 상태였고, 제대로 된 감사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마지막 스퍼트로 하은영에게 돌아와야 했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드미트리에게 시달리는 중이었다. 가격을 깎겠다며 떼를 쓰던 정크 대금을 원래 그대로 주겠다는 말로 드미트리를 돌려보낸 뒤, 하은영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열쇠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는지 물어왔다.

말없이 짤랑이는 열쇠 꾸러미를 들어보이자 그녀는 되려 더욱 긴장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는 혹여나 드미트리가 엿듣기라도 할까 한껏 낮춘 목소리로, 드미트리는 한동안 휴식을 취할테니 지금 즉시 선릉역으로 가서 잠겨있는 문을 열어보는 게 좋겠다고 부탁했다.

드미트리의 비밀 창고는 왠지 모르게 처음 왔을 때보다도 더욱 음침해 보였다. 이미 비밀이 탄로 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닌척, 시치미를 떼고 있는 와인랙을 밀어내자 문제의 자물쇠와 문이 떡하니 나타났다. 이쯤 되니 괜스레 잠긴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강렬한 호기심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열쇠들은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았고, 거의 모든 열쇠를 한번씩 자물쇠에 맞춰보고 나서야 자물쇠는 그 견고했던 입을 열었다.

이제는 호기심을 넘어 어딘가 약간 두렵기까지 한 상황. 문은 열렸고, 이제 그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확인 할 차례였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더욱 튼튼해 보이는 문과, 한번도 본적이 없는 8자리의 번호 입력식 자물쇠였다.

5.18. Lv.34 장인은 도구를 탓하는 법

산 넘어 산 처럼 드미트리의 비밀의 공간은 쉽게 내부를 확인하게 허락하지 않았다. 허탈한 상황에 하은영은 한숨을 내쉬며 상황을 고민하다, 일전에 신세진 적이 있는 열쇠 기술자에게 부탁해서 비밀의 공간을 열어봐 줄 것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녀는 비밀 회동을 위해 열쇠 기술자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줄 것을 부탁했다.

열쇠 기술자는 무척이나 바빠보였다. 미간의 주름은 평소보다 더 굵고 자글자글해진 채로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에게 그녀의 부탁을 전하자 작업하던 도구들을 두말 없이 내려놓고는 서둘러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도구들은 손 때와 기름 때로 시커멓게 변해, 언제 버려도 이상치 않을 정도의 낡은 물건들이었다. 어쩌면 이 오래 된 도구들이야말로 그를 장인이라고 불리워지도록 한 증표와 같은 존재 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은영이 사무실로 들어오자, 이제 막 비밀 회동이 시작될 참이었다. 열쇠 기술자는 하은영의 의뢰에 귀를 기울이더니 번호 입력식 자물쇠라면 최소 몇 시간, 최대 하루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하며 고액의 작업비를 요청했다. 하은영은 난감한 표정이었다. 열쇠 기술자가 요청하는 금액은 길드에서 처리하기에도 제법 부담가는 수준이었는지, 마른 미소를 지어가며 열쇠 기술자에게 가격 조정을 부탁했다. 하지만 열쇠 기술자 역시도 양보하기 어려운 선이 있는 듯, 난감한 표정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서로간의 입장 차이만을 확인한 체 회동을 마치려는 찰나, 열쇠 기술자가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그는 길드에서 USG 사의 공구만 구해준다면 납득할만한 수준의 작업비로 일을 맡아 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은영은 USG 사의 공구 세트라는 새로운 패를 얻었지만, 그다지 구하기 쉬운 물건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9호선 공사장 터널이라면 이 고급 공구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녀 역시 정크의 위치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기에 포인트 지점에서 물건을 찾지 못할 경우에는 그곳의 주변 전체를 둘러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난감한 소식을 전했다.

터널의 여러 곳에서 발품을 팔면서 수집한 USG 사의 공구를 건네자 그녀는 역시나 탐낼만한 수준의 물건이라며 납득했다. 그리고는 열쇠 기술자가 왜 이런 물건 때문에 거액의 의뢰비를 차감해줬는지 알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5.19. Lv.35 보물 터널

USG 사 공구 세트라는 새로운 패로 열쇠 기술자를 맞이할 준비를 마친 하은영은 열쇠 기술자를 다시 이 곳으로 불러주길 요청했다.
더불어, 드미트리가 이 일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주문을 빼먹지 않은 것은 물론이었다.

열쇠 기술자와 함께 하은영의 사무실에 도착하자, 그는 서둘러 물건을 확인하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비록 누군가가 사용하던 물건이고 방치된지 오래되어 더러워진 도구들이었지만, 그 값어치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열쇠 기술자는 공구에 충분히 만족한 듯, 곧 작업에 착수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하은영은 한시라도 빨리 작업을 끝내주기를 요청했는데, 열쇠 기술자는 해체해야 할 물건을 실제로 보지 않고서는 작업 기간을 가늠해보기 어렵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기술자가 도리어 그렇게 급하게 해체를 서두르는 이유에 대해 호기심을 보이자, 하은영은 혹시라도 의심을 사게될까, 우물쭈물 거리며 대충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열쇠 기술자가 작업에 착수했음에도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걱정스러워 보였다. 이유를 묻자, 이번에는 빠듯한 길드 사정이 자신을 걱정하게 만든다며, 열쇠 기술자에게 지출한 거액의 작업비로 인한 타격이 너무나 크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USG 공구로 절약한 금액이 이정도였으니, 역시나 명성만큼 상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기술자였던 모양이다.
결국 손해를 벌충하기 위해 또 다시 9호선 공사장 터널을 다녀올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 곳은 누가 봐도 값 나가는 정크가 많았고, 위험하다고 알려진 만큼, 아직 다른 정커들의 손도 그다지 타지 않은 지역이었다. 그녀의 손해를 메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상당한 양의 정크를 수집해 올 수 있었다.

물건을 받아 든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이제는 웬만한 정커들만큼 정크를 보는 안목이 생겼다는 칭찬이 그냥 빈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기쁜 표정을 지어보이며 정크를 살펴보다가, 혹시 그곳에서 드미트리를 본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여러 곳을 살펴봤지만 그를 본 기억은 없다고 말하자, 그녀는 그런 노다지 같은 곳에 왜 그가 나타나지 않을까를 의아해하며 혹시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 했다.

5.20. Lv.36 괴소문

9호선 공사장 터널에는 예상대로 정커들의 발걸음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하은영의 길드원은 물론, 여러 다른 정크 길드들까지 가세하면서 정크 하나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모두들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드미트리는 지하철 공사장에서나 자치지구에서나 그 모습을 홀연히 감춰버린 상태였다. 돌연 종적을 감춰버린 드미트리의 행방에 대해 하은영은 말없이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그 침묵을 깬 것은 바로 한 용병의 방문이었다.

용병은 부탁한 물건을 전달받으며 자신이 겪었던 9호선 공사장 터널의 공포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하은영이 아는 한 9호선 공사장의 사정은 순조로웠지만, 정작 그곳에 파견된 사람들은 어떠한 소문으로 인해 적잖이 불안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용병이 털어놓은 그 소문의 내용은 그녀를 당황하게 만들었는데, 그 곳에는 어떤 괴물같은 약탈자가 용병과 정커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습격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던 것이다.
다만, 아직 피해 사례가 정식으로 집계된 것은 아니었기에 누군가가 정크의 독점을 위해 의도적으로 퍼트린 소문으로 생각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소문은 이미 지하철 9호선 공사장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입을 통해 꾸준히 퍼져나가고 있었고, 마냥 헛소문으로 치부하기에는 분명 불안한 요소가 있었다.

하은영은 이미 많이 부족해져버힌 길드원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양질의 정크가 쏟아져 나오는 9호선 지하철 공사장의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내, 길드원의 안전과 양질의 정크를 두고 저울질하는 스스로를 탓했고, 그녀는 길드원들에게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 줄 것을 요청할 겸, 그들의 빠른 복귀를 위해 그들의 작업을 도와줄 것을 부탁했다.

그녀가 부탁한대로 길드원들을 한명씩 도와가며 마지막 길드원을 만나러 갔을 때, 그로부터 드미트리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건 둔기로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 것 처럼 아찔한 내용이었는데, 이곳에 괴물같은 약탈자가 나타난자는 소식을 들은 드미트리는 굳이 그런 위험한 곳에서 작업하느니, 차라리 사람이 부쩍 줄어든 선릉역에서 작업하는 게 낫겠다며 선릉역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하은영 역시 충격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드미트리가 향한 선릉역에서는 이미 열쇠 기술자가 작업 중이었지 때문이었다.

5.21. Lv.37 빈 창고

드미트리가 선릉역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에 하은영은 매우 혼란스러워 보였다. 열쇠 기술자가 그에게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자칫하면 우리가 해왔던 뒷조사 사실까지 전부 드미트리에게 알려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불안을 더욱 증폭시킨 것은 열쇠 기술자가 예정된 작업 시간이 훨씬 넘어서까지 자치지구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서둘러서 열쇠 기술자의 안전을 확보해줄 것을 요청했다.

다시 한번 드미트리의 비밀 공간에 들어섰을 때는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적막할 정도로 조용했던 공간에는 덩치 큰 변이생명체들이 마치 터줏대감인 양 돌아다니고 있었고, 사방은 부서지고 깨져나간 흔적들 뿐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변이생명체의 유입에 당황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한시라도 서둘러 열쇠 기술자를 만나지 않으면 그가 드미트리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서둘러 작업 의릐 장소인 창고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고 입구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으스스할 정도로 약한 불빛을 내는 전등으로 간신히 내부를 밝히고 있었다. 변이생명체는 보이지 않았고, 내부는 고요하기만 했다. 한 가지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입구를 막고 있던 입력식 비밀번호가 제거된 상태라는 점이었다. 아마도 열쇠 기술자가 문을 여는데 성공한 듯했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진입해 내부를 조사했지만 열쇠 기술자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창고 내부는 깨끗이 비어있었고, 흩어진 핏자국만이 점점히 떨어져 있었다. 아마도 창고의 주인이 무언가를 눈치채고 창고를 정리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더 이상의 조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하은영에게 돌아가 창고의 상태에 대해 설명하자, 그녀는 기절할 듯이 당황했다.
열쇠 기술자는 행방불명되었고, 창고는 비어버렸다. 앞으로 닥쳐 올 상황이 어떤 것이 될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 순간이었다.

5.22. Lv.38 정당 방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드미트리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조파 모르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냥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들처럼 그저 가시방석에 앉아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때, 드미트리가 찾아왔다.

갑작스러운 그의 방문에 하은영은 거의 비명을 지를뻔 했다. 혹시나 의심을 살까 필사적으로 참는 모습이었지만, 이미 새빨개진 얼굴에 말까지 더듬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드미트리는 전혀 개의치 않아하며 부탁받은 정크를 그녀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굉장히 좋지 않았고, 별다은 말도 없었다.
침묵이 도움이 될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하은영이 그의 표정을 살피며 무슨일이 있었느냐고 간신히 묻자, 그는 여전히 험악한 표정으로 자신의 창고에 침입했던 쥐새끼같은 놈이 하나 처리되었을 뿐이라고 털어놨다. 도저히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는 상황.
하은영은 딸꾹질을 했고, 나역시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차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을 벗어난 그의 다음 말은, 열쇠 기술자가 어디에 있느냐며 그를 찾아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는 열쇠 기술자가 급히 해줘야 할 일이 있다며 그를 만나면 자신에게도 바로 알려줄 것을 부탁하고는 이내 떠나버렸다.

그제서야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은영 역시도 한 순간에 천국과 지옥을 다녀온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가 아직 열쇠 기술자에 대해 모르는 것 같다며 안도했다. 이 모든것이 우연히 겹쳐진 결과라며 안심한 그녀는 서둘러 행방이 묘연해진 열쇠 기술자를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열쇠 기술자를 찾기 위해서는 드미트리의 창고로 다시 돌아가보는 방법 밖에는 없어 보였다.

다시 한번 드미트리의 창고 내부를 샅샅히 조사하자 그전에는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단순히 흩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핏자국은 누군가에 의해 파손된 나무 운반함 주변에 몰려 있었고, 그 주변의 핏자국은 입구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이 핏자국의 주인은 열쇠 기술자가 아닐까라는 불길한 생각을 떨치지 못한 채, 핏자국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창고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 상가에서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열쇠 기술자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헐떡거리는 목소리로 이번 일이 드미트리와 연관되어 있다는 말을 왜 하지 않았느냐며 원망의 목소리를 냈다. 출혈이 굉장히 심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를 안정시키려 했지만 그는 이미 아무것도 들리지 않은 듯, 계속해서 드미트리의 창고로 자신을 보낸 우리를 원망하더니 결국 얼마 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자치지구로 돌아와 하은영에게 비보를 알리자 그녀는 우리의 책임이라며 너무나 안타까워 하면서도, 엄청난 상황과 직면하게 되었다며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5.23. Lv.39 현장 보존

열쇠 기술자의 죽음으로 두려움에 떨던 하은영은 다시 마음을 잡고선 그를 위해서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함으로서 그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깨끗이 비어버린 창고에서 더 이상 무엇을 알 수 없을지 난감해 하는 그녀에게 다시 한번 창고를 조사해 보겠다고 제안했다.
지난번에도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핏자국을 발견한 만큼, 조금 더 세심히 조사해보면 전에는 알아채지 못했던 무언가를 찾아낼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은영은 크게 내키지는 않는 표정이었지만, 달리 뾰족한 수도 없었기에, 결국은 동의했다. 하지만 혹시라도 위험에 처하게 될 경우 다른 생각하지말고 어떻게든 도망쳐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도착한 창고 내부는 역시나 단서 하나 없이 깨끗했다. 창고 내부에 있던 물건이나 창고의 용도를 알 수 있을만한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포기하기에도 이른 시점이었다. 되든 안되든 여기저기를 훓어보며 조사해보던 중,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배치된 진열대가 눈에 띄었다. 진열대 주변은 다른 진열대들과는 달리 먼지가 앉아있지 않았고, 자세히보니 얼룩도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열쇠 기술자도 창고 내부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식으로 말을 했었다. 진열대를 이리저리 밀며 면밀히 조사해본 결과, 꼼꼼하게 숨겨진 지하로 이어지는 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사건의 심층부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두근 거리는 마음을 안고 지하로 내려가자 차가운 공기가 가득한 지하 감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하의 공기가 차가운 탓도 있었지만, 쇠 창살로 가로막힌 감옥 풍경을 바라보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곳에 감옥을 만들어 놓았을지는 상상해보자 더욱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몇 개의 감방을 조사하던 중, 사람이 머물었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거칠게 찢겨진 과자 봉지와 널브러진 휴지 등은 분명히 이곳에 갇혀 지내던 사람이 있었음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때, 바로 등 뒤에서 변이생명체의의 찢어질 듯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갑작스럽게 습격해 온 인간 형태의 변이생명체를 쓰러트리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널브러진 놈의 몸을 살피자, 팔 주변에서 풀려버린 손목시계가 눈에 띄었다. 정크로서의 값어치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사연이 있는 물건건이 아닐까 싶어 일단 가져가기로 했다.
치지구로 돌아와 하은영에게 결과를 알리자 그녀는 대체 왜 개인 창고 지하에 변이생명체가 있는지, 무엇보다도 어떻게 놈을 그 곳에 가둘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 물론 그게 드미트리가 가둬놓은 것이라는 증거는 없었지만, 그래도 하은영은 드미트리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때, 손에 들려있던 손목 시계를 본 그녀는 어디선가 봤던 것 같다며 모호한 기억을 끄집어 내려고 노력했다. 분명히 어디선가 본 것 같지만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한참을 기억을 떠올리려 끙끙대던 그녀는 결국 어디선가 정크 수집중에 보았을 지도 모르겟다며 민망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보일 것 같아 그것을 가진 채로 자치지구로 돌아와 하은영에게 결과를 알렸다. 그녀는 대체 그 곳에 왜 변이생명체가 있는 곳 개인 창고로 했는지, 어떻게 놈을 그 곳에 가둘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 물론 그가 일전에도 자신을 공격 변이생명체를 가둔 전적이 있으나 같은 우연이 반복 되는 건 있을 수 없다며 그녀느는 계속해서 드미트리를 의심했다. 하지만 확증이 없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해 더 고민하려던 찰나, 손에 들려있던 손목 시계를 본 그녀는 어디선가 봤던 것 닽다며 모호한 기억을 끄집어 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역시 생각이 나지 않는다다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녀 같은 정커라면 이런 물은 여러 군데에서 봤을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5.24. Lv.42 권유

5.25. Lv.43 회상

5.26. Lv.44 혐의

6. 자치민협회

6.1. Lv.14 피난민의 삶

투병중인 홀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데이브는 유명한 정커에게 치료제 확보를 의뢰했지만, 정커가 엄청난 보수를 요구하는 바람에 대금을 지불하기 위해 몸사리지않고 피난민 임무를 수행해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경기고 사거리에 좀비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그의 유일한 수입원이였던 피난민 임무가 전부 변이생명체 퇴치 임무로 대체되었고, 총을 들고 싸워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난감한 상황임을 감추지 못했다.

데이브를 위해 약간의 도움을 주자, 그는 몇번이고 감사를 표하면서 이런식으로 계속 도움을 받기만 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다른 길을 찾아보기 위해 이리저리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에 '자치민 보호 협회'하는 곳이 피난민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며, 그곳에 가볼 생각이라고 했다.

6.2. Lv.15 자치민 보호 협회

자치민 보호 협회 즉, 자보협 홍보인은 협회에 가입하여 다양한 혜택을 누리라며 울부짖었다.
열성적으로 설명하는 그의 눈은 번쩍였고, 김명진이라는 사람에 대해 설명할 때 즈음에는, 자신의 말에 감동해 눈물이라도 흘릴 기세였다.

자치민 보호 협회는 생각외로 밝고 쾌활한 곳으로 보였다. 사무실은 깨끗했고, 방문자들에게는 무상으로 다과를 제공할 정도였다. 접수인은 김명진이라는 사람에 대한 약력과 협회 가입 시 혜택을 줄줄이 읊고는, 자치군의 부당한 대우를 지탄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도록 자치민 보호 협회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끊임없이 해댔다. 김명진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 정도로 결집력이 강한 걸까?

6.3. Lv.16 사이 좋은 오누이

이진아는 크고 맑은 눈에 양갈래로 땋은 머리를 한 귀여운 소녀였다. 나긋한 움직임과 배려 넘치는 말투는 확실히 이 시대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무언가를 보는 듯 했다. 이런 소녀가 그 큰 눈을 글썽이며 오빠를 찾아달라고 부탁하는데 그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

이진아의 오빠인 이승현은 걱정과는 달리, 별탈 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자신의 동생이 괜한 호들갑을 떨었다며 사과하던 그는, 정크 하나를 내밀면서 정화교 사무실의 미쉘이라는 여성에게 전해주기를 부탁했다.

6.4. Lv.17 고립된 사람들

이승현이 전달을 부탁한 물건은 일종의 기부와 같은 것이었다. 미쉘은 기부받은 물건은 정화교를 통해 자치지구의 약자들을 도와주기 위해 사용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털털한 말투였지만, 남을 돕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멋진 여성이었다.

몇가지 대화가 끝나자, 그녀는 청담역 진입로의 한 건물에 부상을 당해 고립되어 있는 정커를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자치지구의 약자들을 위해 꾸준히 기부를 해주는 몇 안되는 정커라고 했다. 남을 돕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그녀의 모습만큼, 타인을 도와 달라는 요청 역시도 당연한 듯이 직설적이었다.

거절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찾아나선 부상당한 정커는 다행히 경미한 부상에 그쳐 있었고 안전하게 복귀할 수 있었다.
미쉘은 도움에 감사해하면서도 최근 늘어나고 있는 부상자들에 대한 걱정을 잊지 않았다.

6.5. Lv.19 파업

길에서 마주친 분노한 용병은 끊임없이 자치군의 정책을 욕하고 있었다. 급기야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정체도 모르는 변이생명체들이 돌아다니는 상황에서 방어선을 확장하는 것이 과연 옳은 정책이냐며 따져 물었고, 대다수는 당황하며 그의 물음에 별다른 대답없이 자리를 피할 뿐이었다.

한껏 성질을 부린 용병은 기이어 자신에게 할당된 자치군 임무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마도 자치군 임무 관리관이라면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임무 관리관은 한숨을 내쉬며, 최근들어 파업을 선언한 용병들이 점차 늘고 있어 큰 걱정이라고 했다. 자치민 보호 협회의 이간질에 바람이 들어버린 용병들이 자꾸만 임무를 거부하고 파업을 선언하고 있다는 것 이었다. 용병단 차원에서 이를 재제할 수 있는 조약은 존재하지만, 용병단에서는 아무래도 한솥밥 먹는 식구인데다가 임무는 많고 인원은 부족한 상황이다보니 대체로 재제에 소극적인 듯 했다. 용병단이라고 다 같은 용병단을 아닌 것 같다.

6.6. Lv.24 매도

김명진은 천성이 연설가였다. 그저 평범한 중년의 남성처럼 보였던 그는, 사람들의 앞에 서자 순식간에 돌변해 군중을 확실하게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자치군 임무중 사망한 피난민을 들먹이며 자치군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의 열의에 찬 목소리에, 자치민 보호 협회의 협회원들은 매 순간 환호성과 구호를 외쳐댔다.

미쉘은 그런 그들의 외침을 그저 혼란을 틈타 한자리 차지해보려는 기회주의자들의 발악으로 생각하는 듯 했다. 그녀는 사망한 피난민의 가족을 먼저 생각했으며, 잘못에 대한 질책보다는, 유가족을 위한 도움이 우선 임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6.7. Lv.24 의심

산드라라는 여성은 미쉘을 잘 아는 사람인듯 했다. 자치지구내에서 돌고 있는 충격적인 소문을 이야기하던 그녀는, 미쉘이 너무나도 순수하고 열성적으로 남을 돕는점이 되려 더 수상쩍다는 듯 이야기했다.

미쉘은 자신이 정화교를 등에 업고 피난민들을 현혹해 자치지구를 전복시키려 한다는 소문에 기도 안찬다는 듯 실소를 날렸다. 그저 새롭게 태어날 문명의 씨앗을 올바르게 키우고 싶을 뿐이라는 그녀의 말에서 의심해야 할 부분은 찾을 수 없었다.

물론, 미쉘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난민촌의 고아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요구했다. 정말이지, 그녀에게는 거부를 힘들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6.8. Lv.25 수색

선릉역 지하철 쪽으로 피난민들이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미쉘은 즉각 정커와 용병들에게 수소문해 위치를 파악하며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선릉역 지하철은 어느곳 보다도 위험한 곳이다. 피난민과 함께 스스로를 보호하려면 충분한 준비를 한 뒤에 움직여야 할 것이다.

찾아낸 피난민은 먼저 시간을 물어보았다. 칠흑같은 지하에서 오랜시간 밤낮의 구분없이 지내왔던 탓에 그는 조그마한 빛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나친 긴장과 함께 장시간 굶어온 통에 걷는 것 조차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그는 어둠 속으로 흩어져 도망간 다른 피난민의 생사를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힘겹게 찾아낸 또다른 피난민은 이미 시체가 된지 오래였다. 변이생명체에게 당하던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기라도 하듯, 갈비뼈 부근은 마치 삐걱대는 창문처럼 너덜거리며 활짝 열려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생존한 피난민 만이라도 구출해야했지만, 움직이는 것 조차 힘겨운 그의 상태로 볼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일단 미쉘에게 돌아와 구조대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고, 미쉘은 자치군의 도움을 받아 보겠다고 했다. 그녀는 사망한 피난민에 대해서도 물었지만, 그녀에게 그의 상태에 대해 자세한 묘사를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6.9. Lv.25 길 청소

정화교와 미쉘을 모함하는 세력들의 목적은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 같다. 최근 정화교에 들어오는 기부금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하필 이런 때에 조난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정화교는 부족한 재정에서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용병을 보냈지만 그 용병마저 위험에 처해버리면서 그를 구하기 위해 또 다른 용병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미쉘은 사람을 구하는 일이 고작 돈 때문에 늦어진다는 것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다른 용병을 수소문해보려해도 최근들어 정화교를 통한 피난민 구출임무는 더 이상 받지 않겠다며 의뢰를 거절하는 용병들마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미쉘을 도움을 요청했고, 구조대를 돕기 위해 선릉역으로 향하기로 했다.

발견한 용병은 프로의식이 강해 보였다. 그는 아무도 없는 어두운 실내의 그림자에 몸을 숨긴체 언제든지 습격자에 대응할 수 있도록 총을 겨냥하고 있었다. 겁먹은 민간인들은 다치지 않도록 모두 안쪽에 숨어있도록 지시해 둔 상태였다. 그는 지쳐 보였지만, 그 와중에도 모자로 몸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며 애써 너스레를 떨었다.

'다음에는 절대 혼자서 오지 않을 겁니다. 정말 이대로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임무는 무사히 끝났지만 미쉘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이렇게 부족한 인원으로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는 것은 위험만을 키울 뿐이라며 자치군과 이야기를 해보아야 겠다고 했다.

6.10. Lv.29 담판

자보협의 시위는 날이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었다. 미쉘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김명진과 담판을 짓고 싶어했다. 만약 그럴수만 있다면 미쉘과 정화교에 대한 오해를 풀고 자보협이 일으키는 소음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미쉘의 기대는 완전히 어긋났다.
시위 현장에서의 김명진과의 대화, 그리고 이어진 자치군 장교까지 동석한 자리에 서로 미쉘은 원하는 바를 전혀 얻어내지 못했다.

미쉘은 완전히 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자치군 장교마저 적으로 돌리는 김명진의 거친 언행이야 말로 그들의 주장을 이슈화하고 공론화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던 것이다.
김명진은 자보협이 자치지구의 여러 이익집단들로부터 정당한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 힘없는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치군을 그러한 권력을 남용하는 세력으로서 낙인찍음으로서 그에 대항하는 세력으로서의 자보협의 위치를 확실히 한 것이다.

또한, 자치군과 자치군에 호의적 이었던 정화교와의 사이에 커넥션 의혹을 제기함으로서 항간에 퍼지고 있던 정화교의 자금 확보 방법이나 무조건적인
난민 지원 등에 대한 의혹 혹은 불만마저 수면 위로 끌어올려 공론화시킨 것이다.

자치군으로부터의 권력 분배와 정화교의 견제. 그가 원하는 바를 단번에 이슈화시킨 김명진은 역시 프로 정치인 다운 모습을 보였다.

반면에 미쉘은 미숙했다. 경솔했고, 감정에 치우친 나머지 김명진의 속내조차 모르는 체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김명진이 파놓은 함정에 정확히 빠진 것이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먼저 김명진을 찾은 미쉘이었고 사실상 그들의 시위를 방해한 것 처럼 보인것도
미쉘이었다. 그리고 소란을 우려한 자치군 장교가 별다른 생각없이 중재하여 동석한 자리는 피난민들에게 있어 사실상 공적인 협상 테이블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이제 김명진은 자치군 장교와 얼마든지 협상을 벌일 수 있는 사람으로서 인식되게 된 것이다.

미쉘은 후회했고, 실수를 인정했다. 하지만 미쉘은 언제까지나 침울해 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그런 행동력은 그녀의 장점 중 하나였다.
미쉘은 다른 피난민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를 원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이번 일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한쪽에 대한 일방적인 지지보다는, 대체로 각자의 입장에 따라 지지가 갈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통적이었던 의견은 이렇듯 혼란스러운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자신들을 이끌어줄 누군가가 필요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특출한 누군가가 대중을 이끌어가기 보다는 사람들 각각의 자체적인 각성이 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미쉘로서는 자치지구 사람들의 이런 의견이 그다지 탐탁치 않아 보이는 듯했다.

6.11. Lv.29 원한

정화교를 돕던 용병 중 하나가 임무 도중 선릉역 근교에서 정화교 용 무전 채널로 구조를 요청하는 무전을 들었다고 한다. 여전히 전파 상태가 좋지 않다보니 무전 채널을 이리저리 맞추던 중 들려온 무전이었는데, 용병은 주파수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변이생명체와 맞서며 무전이 동할만한 지역을 찾던 중, 주파수 30.7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전을 따라서 건물 내부를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도 찾아낼 수 없었다. 대신 찾아낸 것은 오직 녹음된 무전기뿐이었는데, 현재 위치는 선릉역이며 3일 안에 아무도 오지 않으면 자치지구로 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아무런 소득 없이 정화교 사무실에 들어가려고 하니 자치군 조사관이 길을 막아섰다. 그러고보니 정화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유를 묻자 조사관은 미쉘이 난민촌에서 일을 돕고 돌아오는 도중에 복면을 쓴 괴한에게 습격을 당했다고 했다. 다행히 미쉘은 크게 다치지는 않았고, 공격한 용의자는 피난민들의 도움으로 체포를 했다고 했다. 미쉘을 습격한 사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도망간 피난민은 무사한 걸까?

6.12. Lv.30 침묵은 금

최근 미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종합해보면 미쉘에게 위험한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에는 틀림이 없다. 지난번처럼 언제 어디에서 기습을 받게 될지 모르는 일인데다, 이번처럼 가벼운 상처로 끝나게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아니, 다음번 기습이 이루어진다면 그때는 아마도 무사히 넘어가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미쉘은 주변상황에 동요하지 않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도 크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듯 보였다. 오히려 그녀는 김명진의 향후 활동을 예측해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보협의 미래에 대한 그녀의 판단은 부정적인 것이었다.
현재 자보협은 생산적인 활동 없이 시위만을 지속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이러한 모습에 사람들은 염증을 느낄 것이고, 결국 등을 돌릴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결국 이들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이며, 오히려 지금이 자보협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시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미쉘은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김명진과 싸우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확실히 함으로써, 과연 어떤 일이 자치지구에 더 도움이 되는 일인지를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털어놓은 미쉘의 표정은 전보다 한층 더 밝아 보였다.

그나저나, 미쉘이 준 임무는 조금은 황당한 것이었다.
용병을 통해 피난민에게 구호품을 전달하려 했으나, 용병이 변이생명체에게 겁을 집어먹고서는 갖고 있던 구호품을 전부 내팽개치고 도망쳐 왔다는 것이었다.
그날이 용병을 그만두려고 했던 마지막 날이 아닌 이상,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용병이 줄행랑을 친 것은 둘째치고라도, 그 용병이 버려두고 온 구호품들은 상당한 분량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미쉘은 그 용병만 생각하면 너무나 화가난다고 했다.

수거한 구호품들을 보니 미쉘이 화를 낸 것도 이해가 됐다. 메기도 어려울 정도로 가방 가득한 구호품들은 이를 필요로 하는 수 많은 사람들을 살려낼 수 있을만큼 상당한 분량이었다.
뿌듯할 정도로 묵직한 구호품들을 들쳐메고 자치지구로 돌아가려는 순간, 지금도 시위 현장에서 목소리를 드높이며 미쉘을 비난하고 있을 김명진이 떠올랐다.
동시에 스스로의 안위보다는 모두를 걱정하며 일하고 있는 미쉘이 오버랩 되었고, 만약 자치지구의 대표같은 것이 생겨나야만 한다면 그건 아마도 미쉘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치지구로 돌아온 후, 미쉘에게 지나가는 말투로 차라리 김명진과 경쟁해서 자치지구의 대표가 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잃어버린 보급품을 전부 찾아온 온것에 싱글벙글하던 그녀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그리고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는 정치적인 역할이 필요치 않으며, 그런 정치와 선동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 한다면 그건 김명진과 다를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답변이었기에 놀랍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어쩐지 타협을 모르는 외골수로 느껴지는 것도 어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튼 그녀는 그녀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그건 존중해줘야 할 것이다.

6.13. Lv.31 오빠는 잘 있단다.

미쉘의 사무실에는 예전에 본 기억이 있는 소녀가 침울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누군가 했더니 지난번에 한번 도와준 적이 있는 이진아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방문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제법 심각한 이야기가 오가는 듯 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자신의 오빠가 돌아오지 않는다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혹시나 지난번처럼 조금 늦어지는 것일 뿐 아니겠느냐고 말해봤지만, 이진아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번에는 정말고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미쉘도 이진아의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용병들과 연락을 취해 봤지만, 용병들 중 아무도 이진아의 오빠인 이승현을 보았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왠지 지난번과 같은 헛걸음이 되지 않을까 망설여졌지만, 이진아의 안절부절하는 모습과, 보수가 필요하다면 자기가 대신 내겠다는 미쉘의 단호한 표정에 일단 속는셈 치고 움직여 보기로 했다.

하지만 편하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이승현은 구석에서 부상당한 다리를 감싼 채 거칠게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이승현은 순간 놀라는 것 같았지만, 이내 상대를 안심시키려는 듯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이미 창백해져 있었고, 그의 부상이 가벼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승현은 이런곳 까지 자신을 찾으러 왔다는 게 의아했는지, 누가 자기를 구하러 보냈는지를 물었다. 물론 사실대로 그의 동생인 이진아와 미쉘이었다고 대답했는데 그 순간 그의 고통스러운 표정 속에 옅은 미소가 번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미쉘' 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서둘러야 했다. 이곳의 변이생명체들이 그리 강한 편은 아니라고는 해도, 험준한 지형 탓에 다리의 부상을 안고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헛디뎌 떨어지거나, 순식간에 변이생명체에게 둘러싸여 버릴 수도 있는 상황.
사실, 이승현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운이 좋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그를 탈출시키기 위해서는 그가 부상을 입은 다리로도 위험에 처하지 않을 수 있는, 충분히 안전한 탈출로를 뚫는 방법 밖에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탈출로가 준비되었고, 즉시 그에게 이동할 것을 지시했다.

자치지구로 돌아온 이승현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되풀이했다. 그리고는 이진아에게 다리를 다쳐버리는 바람에 사고 싶다던 책은 당분간 사주지 못할 것 같다며 미안해했다. 이진아는 오빠가 살아있는 것 만으로도 괜찮다며 손을 내저어가며 위로했지만, 그래도 이승현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그때, 미쉘이 뭔가 생각이 난듯 손뼉을 치더니 이승현에게 사무실에서 자신과 함께 일해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최근 위협을 받고 있는 자신의 경호를 맡는 것과 동시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용병일을 중계하는 일을 겸해보라는 것이었다.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되어버릴 상황에 걱정이 떠나지 않던 이승현의 얼굴에 드디어 화색이 돌았다. 무엇보다도 미쉘과 함께 일할 수 있게 된 것이 그에게는 더욱 큰 기쁨이 되는 듯 했다.\

이승현은 다시 한번 감사의 악수를 청하고는 잘 부탁한다는 말로 인사를 전했다.

6.14. Lv.32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마쉘이 누군가와 함께 일하는 모습은 확실히 낯선 풍경이었다.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 생기자 미쉘 주변에는 전에 없는 생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이승현 또한 미쉘과 일하는 것이 진심으로 기뻤던 모양이다.
그가 단 한번도 해 봤을리 없는 일들이었지만, 그는 그 근육질 팔뚝으로 머리를 싸매가며 어떻게든 처리해갔다. 그런 그의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럽긴 했지만, 어떻게든 진심을 다해 미쉘을 도우려는 그의 마음 또한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이승현은 익숙지 않아 떠듬떠듬 해가면서도, 진지하세 피난민 구조 임무에 대해 설명했다. 미쉘은 그런 이승현을 보며 마치 어린애를 다루듯 박수를 쳐줘가면서 이승현을 격려했는데, 이승현도 미쉘의 그런 반응이 싫지 않았는지 입가에서 미소가 끊이지를 않았다.
말로 설명하는 것이 서툴기는 했지만, 이승현은 자신이 하고 있는 업무가 어떤 것인지는 제대로 파악한 것 같았다. 미쉘도 기대보다는 이승현이 잘 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며, 특히 노력한다는 점에서 더욱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할 것 같다는 첨언까지 덧붙여줬다.
이승현은 잘 해 나가고 있었지만, 하지만 정작 나에게 맡겨진 임무는 이승현의 삶 만큼 쉽게 풀려가지는 않았다.

약탈자와 변이생명체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가장 좋은건 서로가 싸우고 난 후 모두가 약해진 순간을 노리는 것이겠지만, 그런 생각은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약탈자들의 평소의 머리회전은 어떨지 몰라도, 전장에서 만큼은 닳고 닳은 족속들이다보니 전투환경에서의 센스는 나무랄데가 없었다.
어떻게든 상황을 이용해보려 했지만 헛수고였고, 결국은 변이생명체와 약탈자 모두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그전부터 이어졌던 그들 사이의 전투로 약탈자의 수가 어느 정도는 줄어들어 있다는 점이었다.

예상보다 변이생명체가 강했는지 약탈자들은 진땀을 빼고 있었고, 리더로 보이는 자는 욕짓거리를 내뱉으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로 있었다. 아무튼 지금의 내 목표는 약탈자의 처리가 아닌, 피난민의 생환이었다. 피할 수 있는 전투라면 피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는 어쩌면 그들도 지친 와중이니 협상에 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그야말로 순진한 발상이었지만 말이다.

내가 말을 걸기가 무섭게, 놈은 괴성을 질러내며 나를 죽이겠다며 달려들었고, 그 소리에 주변의 다른 부하들까지 합세해서는 떼거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차라리 습격을 할 것을 실수했구나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다행히 그 기세와는 달리 놈들도 지쳐있었는지 크게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었다.

제압당한 약탈자 리더에게 피난민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묻자, 약탈자는 그건 네가 직접 창고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약탈자가 가르킨 창고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는데 단순히 가능성 낮다고 그냥 돌아갈 수 는 없었다.

변이생명체의 기세는 무서울 정도였다. 온 몸은 근육으로 덮여있었고 내 뒤에 뭐가 있는지 신경도 않고 달려들었다. 아마 한 번이라도 잘못 피했다간 으깨진 토마토처럼 박살이 났을 것이다. 다행히 머리가 좋지 않아 움직임이 단순했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더 똑똑한 변이생명체였다면 감당할 수 없었을 거다.

변이생명체를 제압하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피난민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내가 늦은 것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허탈한 마음으로 자치지구에 돌아갔다. 미쉘은 나의 표정을 보고서 임무가 잘못되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약탈자와 변이생명체를 둘 다 상대했지만, 피난민을 찾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미쉘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피난민은 이미 다른 길을 통해 자치지구로 돌아왔다고 알려 주었다. 다행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웃었고, 미쉘은 순간적으로 나의 표정을 캐치하더니 내가 꽤나 멋지게 웃는 사람이라고 했고, 앞으로도 사람들의 미소를 좀 더 자주 보았으면 한다고 했다.

6.15. Lv.33 실리

이승현이 서류 앞에서 쩔쩔매기는 해도 미쉘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미쉘은 자보협에 대응하기 위해 자치군과 보다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운영 방향을 정했는데, 미쉘의 바람대로 이승현은 자치군과 성공적으로 계약을 맺어냈다. 정화교의 인력을 청계산에 파견하는 대가도 자치군으로부터 구호물품을 제공받기로 한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일반적인 용병 계약과 별 다를 것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용병단이 아닌 정화교가 그 주체가 됨으로서 정화교가 자치군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뉘앙스를 줄 수 있고, 또한 병력의 운용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치군을 정화교에서 지원함으로서 자치지구의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일이었다.

미쉘이 자치지구를 위해서 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여기는 건 이승현 역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이승현은 임무를 브리핑하던 중 돌연, 미쉘이 직접 선거에 나가 김명진과 맞서는 것은 어떻겠냐고 물었다. 미쉘은 이전에 그녀가 했던 말과 같이 정중히 거절했고, 이승현은 이를 매우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녀가 그럴만한 인물이라고 판단한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는 것은 확인된 셈이었다.

임무를 위해 이동하던 중, 자치군이 지금 상황에서 청계산 작전을 진행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부로 나가기에는 아직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자치지구로 계속해서 유입되는 피난민들과 기존 피난민들 간의 갈등, 정화교와 자보협의 불화 등 해결해야 할 일은 산더미였다. 사실 자치군이 그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발상이 더욱 웃긴 일이기는 했지만, 자치군 외에는 그러한 문제를 중재하고 해결할 수 있는 조직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자치군을 볼 때마다 그들에게는 그런 고민따위를 할 여유가 없다는 것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방어선을 막아내는 것 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고, 연방에서 또 다른 요구를 하기라도 하면 몸을 두개로 나눠서라도 해내야만 했다. 임무차 찾은 자치군 장교는 바쁠때 무슨 일이냐며 퉁명스럽게 대하다가도 이승현 소개로 왔다는 말에 금세 얼굴에 화색을 보이며 신속하게 임무를 배정해 주었다. 결국 그들은 군인이다. 사람들을 보호하는 게 의무이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을 이끌기 위한 조직이 아닌 것이다. 그럴 수록 내부에서 사람들을 결속시켜줄 수 있을만한 누군가의 존재가 더욱 간절하게 느껴졌다.

자치군으로부터 주어진 임무 자체는 별다를 것 없었다. 언제나처럼 미쉘에게 임무 완료를 보고 하기 위해 터덜터덜 걸어가던 중, 정화교 사무실 앞에서 큰 소란을 목격했다. 바로 이승현과 자보협 회원이 다투는 장면이었다.

자보협 회원은 작정한 듯 이승현을 도발했지만, 이승현은 상대도 되지 않을 상대의 도발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자보협 회원은 이를 갈았지만, 그렇다고 이승현에 대적할 수 있을리도 없었다. 딱히 말로도 완력으로도 당해낼 자신이 없자, 이를 갈아대며 욕짓거리나 날려댈 뿐이었다.
이승현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그저 웃고 있었고, 그런 유치한 도발에 넘어가기에는 이미 성인이었다. 하지만 그 장면을 지켜보던 모두가 성인은 아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이진아가 갑자기 나서더니 오빠와 미쉘에게 욕한 것을 취소하라며 자보협 회원에게 다가가서는 삿대질을 했다. 그리고 자보협 회원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이진아를 거칠게 밀어버렸고, 쓰러진 그녀를 조롱했다. 넘어지는 여동생을 보며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이승현은 결국 자보협 회원에게 돌진했고, 말릴 틈도 없이 난투극이 벌어졌다.

자보협 회원이 이승현에게 깔려서는 묵사발이 되려는 순간, 어디선가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명진이었다. 김명진은 사전에 승인받은 시위이자, 평화적인 시위중이었던 자보협 회원들을 기득권인 정화교가 폭력으로서 탄압한 것으로 규정했다. 그리고는 이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며 자치군에 고소를 함으로서 정화교의 만행을 낱낱히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미쉘이 김명진에게 주도권을 내어주지 않기 위해, 일체의 대응을 자제한 채 행동으로만 보여주려 했던 모든 노력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이승현은 풀이 죽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이진아는 연신 자기 탓이라며 같은 말을 되뇌였다. 그리고 아무리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어지간해서는 생기를 잃지 않았던 미쉘의 얼굴에도 좀처럼 볼 수 없던 그늘이 드리워졌다.
미쉘에게 조금은 쉬는 것이 좋을 거라고 권하자 미쉘은 소파에 앉아 말없이 눈을 감았다.

6.16. Lv.34 회상

6.17. Lv.35 몰락

6.18. Lv.36 불안

6.19. Lv.37 소망

6.20. Lv.38 사라예보

6.21. Lv.39 패배 그리고 달리기

7. 정화교

7.1. Lv.11 난민촌 아이들

용병의 시체에서 발견된 사진은, 정화교라는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사망자는 고아원의 아이들을 위해 꾸준히 기부를 해온 듯했다. 아이들의 사진과 함께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정화교 수녀는 슬픔을 감추지 못하며 망자를 위한 기도를 올렸다.

기도가 끝난 뒤, 정화교 수녀는 망자를 위해 좋은 일을 해주었다며 감사를 표했지만 해맑은 웃음으로도 그녀의 얼굴 한켠에 드리우는 그림자를 가릴 수는 없었다. 그녀는 고아원이 정커나 용병, 시민군들의 기부로 운영되고 있는데, 최근 들어 점차 기부금이 줄어들고 있어 걱정이라고했다. 아마도 계속되는 실종 사건들과 연관이 있어 보였다.



기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있다. 이를테면 용병이나 시민군들이 자신이 완료한 임무증을 기부하면 완료 보상을 정화교에서 수령하는 방식이다. 이런 것도 일종의 재능 기부라고 해야 할까…. 돕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막상 가진 것이 없는 이들에게는 아주 적절한 형태의 기부 방식으로 보였다.

7.2. Lv.12 성녀

실종된 아들을 찾을 때까지 노모를 돌봤다는 미담은, 지금처럼 혼란스런 상황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이야기였다. 열과 성의를 다해 자신의 아내가 정화교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던 코스터는, 곧이어 올리비아라는 정화교 수녀에 대해 이야기했다.



성녀라 불리는 정화교의 수장인 그녀는, 코스터의 말대로 온화하고 아름다운 노년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정화교의 교리와 자신의 바람을 이야기하면서, 앞으로도 어려운 피난민들을 도와주러 종종 교단에 들려주기를 부탁했다.

7.3. Lv.16 괄시

그다지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올리비아의 말에 따르면 자치지구 내부에도 텃세라는 것이 존재하는 듯했다. 최근에 자치지구에 도착해 새롭게 정착하려는 피난민들을 경계하는 기존의 토착(?)피난민들은, 자치지구 내부의 거주 구역과 자원이 부족하다는 점을 내세우며 자치군에게 더이상 외부로부터의 피난민들을 받아들이지 말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올리비아의 말대로, 최근에 자치지구 난민촌에 정착한 박한별이라는 여성은 자치지구에 들어온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자치지 구에서 생활하는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적극적이지 못한 그녀의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아무도 그녀에게 자치지구의 규칙이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탓이 커보였다.

7.4. Lv.17 독립 난민

자치군의 보호를 거부하는 피난민들이 있다는 올리비아의 말은, 쉬이 믿기 어려웠다. 자치지구의 규칙이나 규율에서 벗어나 자치지구 밖에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건데, 도대체 어떻게 자치지구 밖에서 생활이 가능한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더군다나 자치군에서는 그들을 골칫거리로 여기며 경계하고 있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묻자 올리비아는 자뭇 담담하게 설명했다. 자치지구에 편입을 거부했던 사람들을 구슬려 자치지구로 데려온다 하더라도, 다른 피난민들의 항의나 괄시에 못 이겨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고, 그렇다고 외부에 그냥 내버려 두자니 비참한 삶에서 그들이 언제 약탈자로 돌변할지 알 수 없으니 자치군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체 이들을 골칫거리로 여기고 있다는 말이었다.

듣고 보니 분명 일리가있는 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이야기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올리비아는 최근 큰 싸움에서 부상을 당한 듯한 독립 난민 하나가 자치지구로 숨어 들어왔다면서 그와 함께 있던 동료가 위험에 처한 것은 아닌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크게 내키지 않음에도 올리비아의 부탁대로 난민을 찾았지만, 그는 어딘가 모를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였다. 어딘가 찜찜한 느낌을 지우지 못한 체 돌아오자. 올리비아는 그제서야 그들이 약탈자라는 사실을 털어 놓았다. 그녀는 스스럼없이 그들이 약탈자라고 말하면서도 그들은 악한 사람들이 아니라며 그들을 옹호했다.



이것이 과연 종교인으로서의 무조건적인 표용인건지, 아니면 그들에 대한 그녀 나름대로의 판단인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7.5. Lv.18 증발


초췌한 모습의 라클란은, 차라리 올리비아가 처음부터 그를 만나게 해줬다면 단박에 약탈자임을 알아챘을만큼 음험해 보였다. 약간은 퉁명스럽게 말을 건넨 그는 차가운 말투에도 자신의 동생을 도와준것에 대한 감사인사를 잊지 않았고, 그는 곧 동생과 합류해 자치지구를 완전히 떠날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올리비아는 그를 그냥 이대로 보내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부상을 입은 사람을 그냥 보낼 수 없다는 그녀의 주장에 반쯤 채념하고, 왜 약탈자인 그를 돕냐고 묻자 올리비아는 그가 자치지구를 공격하려는 약탈자 무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올리비아도 나름의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7.6. Lv.20 오해

자치민 보호 협회의 시위대가 정화교를 가열차게 비난했지만, 올리비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듯 했다.이 또한 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련일 뿐이라는 그녀의 담담한 말에 또 다시 석연치 않은 기운이 맴돌았다.

역시나, 올리비아는 곧바로 환자들을 치료할 때 필요한 의약품들의 목록을 옮기 시작했다.

의약품들을 받아 든 난민 의료단원은 정말 꽃처럼 활짝 웃었다. 그리고는 언젠가는 꼭 올리비아에게 인사를 하러 가야겠다는 다짐을 말했다.

7.7. Lv.21 경고

약탈자인 조용식이 어떻게 서울 자치지구 한복판을 활보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지만,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그를 모른척 할 수는 없어, 우선 그와 함께 강남구청의 한 아파트 단지로 이동했다.

아파트 단지에 도착한 그는 영동대교 교차로에서 라 클란과 합류할 때, 누군가 라클란을 미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했다. 자치지구에서부터 라클란을 미행 한 그의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합류 지점을 변경하고 역으로 그를 추적하기 시작했지만, 결국은 도리어 그의 함정에 빠져 변이생명체들의 습격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라클란 역시 자치지구를 떠날 때, 낮이 익은 얼굴을 하나 보았다며 말을 거 들었다.

그는 자신을 쫓던 약탈자들 중의 하나 였는데, 자치지구에서 피난민 행새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아마도 강북에서 약탈자들을 규합한 세력이 남하해 자치지구를 노리는 것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왜 자치지구를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지를 묻자, 그는 그저 올리비아로부터 진 빚을 갚는 것 일뿐이라고 말로 대답을 간추렸다.

7.8. Lv.23 사고

7.9. Lv.24 거수자

7.10. Lv.24 추적

7.11. Lv.25 보물찾기

7.12. Lv.27 지원군

7.13. Lv.29 구출

7.14. Lv.30 실종

7.15. Lv.31 불길한 예감

7.16. Lv.32 가능성에 대하여

7.17. Lv.33 짐승의 소굴로

7.18. Lv.34 턴 페이스

7.19. Lv.35 극복

7.20. Lv.36 대담

7.21. Lv.37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7.22. Lv.38 신뢰

7.23. Lv.39 오멘


스토리가 갑자기 끊김 아무나 채워줘요..!


몇년이 지나긴 했지만 이제 채우는 중이에요

8. 리버티 프론트

8.1. Lv.36 기회

이중원 중위로부터 성수 전진기지 탈환 작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 문 뒷편으로 낯익은 남자의 못브이 보였다. 마치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놀라는 기색 없이 가벼운 인사를 건넨 남자는 루이스 잭슨이었다.

마냥 반갑기만 한 얼굴은 아니었다. 그는 처음 만난 이후부터 꾸준히 강북으로
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는데, 그가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는 것은 아마도 그가
아직 강북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말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을 리버티 프론트라는 이름의, 세계를 거대한 위협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단체에 속해있다고 말했고, 강북으로 가려는 이유 또한 그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 리버티 프론트라는 단체가 어떤 조직인지,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행동만을 놓고 볼때, 그는 수상찍기 그지없는 인물이었다. 이 남자를 과연 믿어도
좋을까 라는 생각은 그를 만난 이후로 끊임없이 맴도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들을 전부 허황된 이야기로 일축할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의 첫마디는 놀랍게도 자치군이 성수 전진기지 탈환 작전을 계획하고 있지 않느
냐는 말이었다. 나조차 방금 듣고 나온 이야기를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지 물었지만,
루이스 잭슨은 별다를 것도 없다는 듯, 자신들의 정보력은 당신이 상상하는 이상일
것이라는 말로 간단히 답했다. 그리고는 도리어 혹시 성수 전진기지 확보작전 수립
과정에서 EL.A 연방의 개입이 있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이번 작전에는 분명
연방 으로부터의 압력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런건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연방이 왜 성수 전진기지의 확보
작전에 개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연방이 움직이고 있다면 이번이 강북으로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며 다시금 도움을 요청했다. 그를 도와야 할지, 아니면 더 이상 그의 일에서
발을 빼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언젠가 큰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시 한번 그를 믿고 도와주기로 했다. 단, 그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어서는
안되며, 강북으로의 이동을 도와준 후에는 그가 강북에서 하려는 일에 대한 내용
모두를 털어 놓아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성수 전진기지의 탈환에 성공하면 자신에게 즉시
알려줘야 한다는 당부를 남겨두고는 서둘러 건물 밖으로 사라졌다.

8.2. Lv.36 수상한 움직임

성수 전진기지는 성공적으로 확보했지만, 직후 벌어졌던 연방 요원과의 마찰은
어딘가 모를 찝찝함을 남겼다. 그리고 그 찝찝함은 성수 전진기지 작전에 연방이
개입하고 있을 것이라던 루이스 잭슨의 말과 어우러지며 더욱 좋지 않은 뒷맛을
남기고 있었다.

루이스 잭슨은 성수 기지의 확보 소식에 반색하면서도 연방 요원들의 개입이 있었
는지에 대해 묻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기지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들은 그는
예상대로 일이 귀찮아지게 되었다며, 그들은 무슨 핑계를 대어서라도 성수 전진기지
를 통제하려 할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강북 방향으로 이어지는 다리 모두를 폐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연방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확인된 이상, 머뭇거릴 틈이
없다며 그들이 기지의 통제권을 가져가고 다리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기 전에 서둘러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계획은 야음을 틈하 성수 전진기지로 잠입한 후, 새벽중에 성수 대교를 통과
하겠다는 것이었다. 기지의 경계는 아직 대부분 자치군에서 서고 있으니 지금이라면
해 볼만하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음은 물론이었다.

8.3. Lv.39 잠입

루이스 잭슨은 나링 완전히 어두워지면 성수 전진기지의 샛길 후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전진기지에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어떻게 해서든 경계병을 따돌리고 성수대교
를 통과 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자치군 병사들과 함께 연방 요원들까지도 경계중인
상황이긴 하지만, 그들의 주의를 조금 흐트러놓을 수만 있다면 아마도 가능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밤중에 후문을 열어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겠지만, 경계중인 병사들로부터 의심
받지 않고 어떻게 주의를 끌 것이냐가 관건으로 보였다.

어둠이 모든 것을 가릴 때 즈음, 조심스럽게 성수 전진기지의 샛길 후문으로 향했다.
성수 대교와는 방음벽으로 차단된 탓인지, 다행히 별다른 경계 병력은 없는 듯
보였다. 슬그머니 봉쇄문을 몇번 두드리자, 루이스 잭슨이 맞은편에서 즉각 대답을 해왔다.

전진기지로 들어서 성수 대교 교각의 그늘진 곳에 몸을 숨긴 루이스 잭슨은 자신이
몇가지 일을 처리하는 시간을 벌 수 있도록 대교 진입로 경계병들의 시선을 분산
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성수 전진기지 확보 작전에 참여했었기 때문에 연방 요원들
에게 있어서는 나 역시도 성수 전진기지의 일원으로 인식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과 몇마디 잡담을 나누는 정도는 의심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별 시덥지 않은 이야기로 경계병과 잠시 잡담을 나눈 후 돌아오자, 그는 준비가 다
되었다며 연방 보급 트럭에 손을 써놨으니 불을 질러달라고 부탁했다.

아닌 밤중에 방화라니, 그것도 연방의 트럭에.
눈을 동그랗게 뜬 나에게 루이스 잭슨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서두르라는 손짓
을 보였다. 내키지는 않지만 주의는 확실하게 끌 수 있을터였다.
치솟는 불길, 분주하게 물을 찾는 병사들 사이에서도 유독 당황하며 어찌할 줄
모르는 연방 요원들의 얼굴이 볼만 했다. 아무래도 그들의 군장이며 개인용품들이
모조리 그 보급 트럭에 적재되어있던 모양이다. 트럭의 진화로 혼란이 일어난 틈을
타 성수 대교 진입로로 이동하자, 루이스 잭슨은 말없이 소동이 일어난 성수 전진
기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약속대로 강북에서 무엇을 하려는지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는 예상대로 강북에서의 폭발을 조사하기 위해서 그곳으로 가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폭발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일반적인 폭발물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여태까지 그 폭발을 목격한 수많은 사람들 중, 그 누구도 폭발
이후에 나타났어야 할 버섯 구름을 목격한 사람이 없으며, 폭발의 규모를 생각하면
대규모의 화재 역시 발생했어야 마땅했음에도, 화재를 목격한 사람 역시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
에는 그런 대규모의 폭발을 일으킬만한 무언가가 있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게 폭발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쉽게 말하면 특정 공간의 순간적인 질량 변화에서 비롯된 충격파와 같은
현상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했다.
그것과 유사한 형태의 폭발이 일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이전에도 몇차레
관측된 적이 있는데, 만약 이번에 자신이 그 현장을 직접 관측할 수만 있다면 비로소
그 폭발이 정말로 재앙과 맞물려 있는 것인지에 대해 확실히 알아낼 수 있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전진기지의 불길이 사그러들고 있었다. 루이스 잭슨의 예견대로 인명 피해는 없는
듯 했다. 폭발의 정체에 대해 재차 물었지만 그는 더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리를 뜨며, 만약 강북의 폭발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것이라면
다시는 자신과 만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모든것은 기우에 불과 했을 뿐이고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을테니, 남은 모두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되기를 기원하라는
수수께기 같은 말 만을 남겼을 뿐이었다.

8.4. Lv.40 피곤한 하루

셰브첸코가 다녀간 지휘 통제실의 공기는 무거웠고, 모두가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단지 분위기 뿐이라면 농담이라도 해서 풀어 보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특히 안젤라 박사는 목숨 걸고 얻어낸 연구 결과를
정당하지 못한 이유로 강탈당해버린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반대로 서현우 중위는 어느덧 현실을 받아들이고 평정심을 되찾은 것 같았다.
한동안 함께 일하기는 했지만, 둘의 성향은 분명히 달랐다. 안젤라 박사는 자존심
강한 연구원이었고, 서현우 중위는 결국 군인 이었다.
둘이 걸어온 길이 전혀 다르다는 것은 그들의 반응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서현우 중위의 그런 태도가 안젤라 박사의 심기를 거스른 것 같았다.
안젤라 박사는 이런 상황에서 화도 내지 못하고 그저 바보처럼 명령만 기다리고
있는 게 역시나 군인 답다며 서현우 중위를 비꼬았다.
서현우 중위가 발끈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차분하게 두 가지
이야기를 했다.

첫 째는 셰브첸코가 조사단을 들쑤시며 연방군을 들먹인 만큼, 앞으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셰브첸코의 견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며, 두번째는 그렇기 때문에
라도 더욱 연방과의 마찰을 피해야 하며, 이번 조사의 목표인 감염자의 비밀을 밝혀
내는데에만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안젤라 박사는 셰브첸코의 견제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과연 제대로된 조사가 진행
될 수 있겠느냐며 반박했지만, 서현우 중위는 설렁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상황
에서는 최선책이 안된다면 차선책이라도 궁리해야 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서현우 중위는 이럴 때 일수록 고분고분하게 움직이는 척하면서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차근히 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마침 새로운 개척지역인
구 차관 아파트 사거리의 소탕임무가 들어왔는데, 구 차관아파트 사거리에서
감염자와 비슷한 무리가 관찰되고 있다는 보고가 있는 만큼 그쪽에서 임무를 수행해
가며 샘플을 채취해 볼 것을 제안했다.
안젤라 박사는 서현우 중위의 말을 전부 납득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대로
현재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차관아파트 사거리는 지금까지 임무를 수행했던 개방된 지역들과는 달리 골목이
이어진 매우 좁은 지형이었다. 좁은 지형에서 전투를 치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화력을 집중시킬 수 있다면 편해질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퇴로를 차단당할 경우
그대로 포위되어 버릴 가능성도 높았다.
서현우 중위의 말대로 그곳에는 좀비들과 감염자들이 뒤섞여 있었는데, 느리고
우둔한 좀비와 달리, 감염자들은 전략적으로 움직이며 빠르게 기습을 해왔다.
아무래도 쉽지 않은 임무가 될 것임을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서현우 중위에게 샘플을 전달하면서 그곳의 상황을 보고하자 서현우 중위는 앞으로
의 작전을 위해 전략적인 검토가 필요하겠다며 심각한 얼굴로 받아들였다.
안젤라 박사는 화가 많이 누그러졌는지 서현우 중위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다며
그녀로서는 의외의 사과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서현우 중위가 이렇게까지 차분하게
행동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혹시 연방보다 더한 '빽'이라도 있는 것이 아니
냐고 짓궂게 물었다. 그러자 서현우 중위는 싱긋 웃으면서 그저 자신이 속해 있는
자치군을 믿고 있을 뿐이라고 가볍게 답했다.

8.5. Lv.41 창과 방패

'충성!'안젤라 박사와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서현우 중위는 돌연 입구 쪽을 바라 얼굴의 웃음기를 지우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경례했다. '사령관님 먼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세브첸코가 고약한 베테랑의 인상을 가지고 있다면 자치군 사령관은, 다부지지만 부드러운 덕장의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자치군 사령관은 차렷 자세를 한 자치군들에게 쉬라고 명령을 내리고는 병사 한명 한명의 근무 기강을 살폈다. 그리고 난 뒤에야 서현우 중위에게 이번 사태가 도대체 어떻게 발생한 일인지를 물었는데, 설명을 들은 사령관은 이번 일이 사상 초유의 사태이며 셰브첸코는 이번 일을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계단 쪽에서 무거운 군홧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세브첸코는 지휘 통제실에있는 사람들을 살피고는 씩 웃으며 자치군 사령관에게 다가섰다. '아니, 사령관님 아니십니까.'세브첸코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사령관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의 말투에서 존경이나 존중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사령관은 세브첸코의 태도에 불쾌해하면서도 미소는 잃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자치군 사령관은 밝힐 수도 없는 기밀을 가지고 자치군 장교를 기소하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이냐며 세브첸코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세브첸코는 넉살 좋게 상황을 무마하려했지만, 자치군 사령관의 날카로운 질문이 계속되자 오히려 정색을하며 연방의 모든 활동을 자치군과 일일이 공유할 이유는 없다고 답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은 연방의 조사를 통해 타당한 결과가 나오게 될 것이라며, 그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 줄 것이라는 말로 사령관의 질문을 막았다.

자치군 사령관의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세브첸코가 연방과 자치지구 간 우호적인 관계를 생각한다면 이런 사소한 문제에까지 간섭하는 것은 좋아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자, 사령관은 자치지구에서 발생한 범죄 수사에 대한 일차적인 조사는 자치지구에서 처리하도록 되어있는 조항을 들어 일차적인 조사 압수물에 대한 반환을 요구했다.

당황하는 세브첸코에게 자치군 사령관이 기본적인 조약조차 잊은 것이냐며 공격하자, 세브첸코는 차갑게 웃으며 중대한 상황에는 중대한 상황에 걸맞은 절차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말하며 자리를 떳다.

세브첸코가 돌아간 이후, 자치군 사령관은 안젤라 박사와 서현우 중위에게 도대체 당신들이 조사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하지만 안젤라 박사는 가능한 말을 아꼈고, 서현우 증위 역시도 매우 중요한 연구라면서도 그 이상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망설였다.

사령관은 서현우 중위의 눈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뜻밖에도 서현우 중위에게 보직 해임을 지시했다.

모두가 깜짝 놀랐지만, 서현우 중위만은 의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안젤라 박사는 황당해하며 서현우 중위에게 따졌지만, 서현우는 단순히 보직 해임일 뿐이라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사령관은 보직 해임을 통해 연방에게 행동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그것으로 기소시기를 늦출 것이라고 말했다. 어차피 연방의 요구에 따라 기소를 한다해도 연방 측에서 증거를 공유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증거 불충분으로 끝날 일이었다. 그러니 세브첸코의 목적은 자치지구에서 서현우 중위를 기소하도록 만들어 그의 활동을 중단시키려는 것이었을 테지만, 사령관은 보직을 해임하는 것으로 도리에서 서현우 중위를 자유롭게 풀어준 것이나 다름 없게 된 셈이었다. 그건 자치군 사령관만이 내릴 수있는 묘안이었다.

자치군 사령관이 돌아가고 서현우 중위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안젤라 박사는 서현우 중위에게 걱정되느냐고 물었는데, 그는 좌충우돌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처음 소위로 부임했을 때를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아 이상한 의욕이 되살아나고 있다며 웃었다.

8.6. Lv.42 다시 만난 세계

구 차관 아파트 사거리에서 가져온 샘플이 안젤라 박사 연구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갈다. 안젤라 박사는 이번에 구해온 샘플 덕분에 연구에 진전이 있었다며 자신의 성과를 설명했다.

차관 아파트 사거리에 있는 감염자들의 세포 구조는 일반적인 감염자들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약간씩의 차이가 있다는 점과, 그들에게는 아직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변이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안젤라 박사의 설명이었다.하지만 자세한 것은 그녀가 배려없이 전문 용어를 써대는 통에 내용의 절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발견에 어떠한 의미가있는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안젤라 박사는 감염자들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변이될 지를 알게 될지도 모른다고했다. 물론, 실제로 변이되는 과정을 관찰하지 않는 이상, 단순한 추리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단서가 불기는 했지만 말이다.

안젤라 박사와 이야기를 나눈 서현우 중위는 감염자와 비슷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변이생명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주택가로의 파견을 지시했다.

주택가로 출발하려는 데 안젤라 박사는 어쩌면 그곳에서 자신이 고용한 용병과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말을했다. 사실, 조금은 놀라운 일이었다. 안젤라 박사가 비정규군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왠지 상상이 가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도 셰브첸코와의 사건 이후로 여러가지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 같다.

주택가 1구역에서 임무를 진행하던 중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체를 발견했는데, 시체를 본 순간 안젤라 박사가 고용 한 용병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시체는 피부가 모두 벗겨져버린, 정말로 끔찍한 모습이었고 그 옆으로는 뜯겨진 피부에서 흘렸을 피가 바닥을 점점히 채우며 한 건물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바닥에 뿌려진 피를 따라 들어간 건물 내부에는 변이생명체들이 가득했고, 지하에서는 계속해서 끔찍한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비명의 근원을 찾아 지하로 들어 가던 중 또 다른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 시체는 아예 피부 전체가 녹아버린 모습이었다.하지만 비명 소리는 더욱 깊은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지하 통로를 조사하던 중 벽에 생긴 균열을 통해서 비명이 들려오고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균열 속에서 빛을 항해 나아가니 지하철의 공사 구간 근처로 이어져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하지만 어딘가 스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아까부터 들려오던 비명 소리가 바로 머리 위에서 다시 들려왔다.

컨테이너 위에서 끔찍한 몰골을 한 놈이 예의 그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녀석의 피부는 조금의 남김도없이, 눈꺼풀마저 전부 벗겨져 있었다. 피부가 벗겨진 탓인지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놈은 고통에 소스라치며 비명을 질러 댔고, 그 비명소리와 함께 놈은 미친듯이 덤벼 들었다.

자치지구로 돌아가 그곳에서 본 것들에 대해 두 사람에게 얘기했다. 서현우 중위는 지친 몰골을 보고는 대번에 주택가 지역의 위험도를 가늠했고 임무를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걱정했다. 안젤라 박사는 피부가 벗겨진 놈에 대해 듣자 굉장한 관심을 보였고,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당장 주택가 지역에 연구를위한 배이스 캠프를 꾸릴 것이라고 선언했다.

저널 더럽게 많네 슈밤

8.7. Lv.43 고집쟁이


안젤라 박사가 주택가 지역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할 것을 강하게 주장했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안젤라 박사는 청계산에서부터 연구를 계속해온 자신을 너무 얕보는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했지만, 그때와 비교할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청계산 작전은 공식적으로 진행된 대규모 작전이었고, 이미 상당수의 자치군이 파견된 상태였지만, 주택가 지역은 아무도 발길을 들이지 않는 변이생명체들의 천국이었다.

용병과 정커를 고용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정도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안젤라 박사의 연구 노트를 들춰보면, 앞으로 어떤 이상한 놈들이이 나와도 이상할 것 없어 보일 지경이었다.

서현우 중위는 영상장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이야기했지만 안젤라 박사의 집념은 사그러 들지 않았다. 심지어 연방에서 내린 근신 명령에도 개의치 않아하고 있었다.

결국 안젤라 박사에게 이길 도리는 없었다. 대신, 서현우 중위는 본인이 직접 안전한 베이스캠프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그곳에 갈 수 없다고 못박았다.

안젤라 박사는 자신은 죽으러가는 것이 아니라며 의견에 동의했고, 서현우 중위는 곧바로 주택가에서 베이스 캠프로 사용할만한 건물 하나를 소탕하자고 제안했다.

서현우 중위는 주택가 지역에 지도를 펼치고서 구석에 있는 적당한 건물을 베이스 캠프로 삼기로했다. 구석에 위치해서 포위를 당할 가능성이 있기는했지만, 입구가 좁아 변이생명체들이 몰려 들어오기가 어렵고, 옥상도 있는 구조라 최악의 경우에는 헬기의 지원까지 생각해 볼 수가 있다. 게다가 좀비 유인체나 덫을 설치하기에도 나쁘지 않은 지형이었다.

소탕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서현우 중위는 혹시라도 작전이 늦어질 경우 안젤라 박사가 문을 열고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지나 않을련지 걱정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건물이 생각보다 넓어 임무를 마무리하기 위해 옥상에 올라왔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옥상에 올라선 서현우 중위는 멍한 표정으로 석양을 바라보며 탄성을 질렀다.

'정말 굉장한 석양 이군… 마치…'
남캐면 느낌이 묘해진다
서현우 중위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한다면 서둘러 적응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안젤라 박사와 연구 인력들이 도착하자 곧 밤이 찾아 왔고, 쥐죽은 듯 고요한 주택가 여기저기에서 변이 생명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8.8. Lv.43 지켜보고 있다

8.9. Lv.44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빡쳐서 강해져.

9. 방랑자들


[1] 다만 리버티 프론트 스토리 업데이트 이후에는 리버티프론트 중심으로 흘러간다.[2] 문제는 이게 약탈자의 짓이 아니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