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이현웅 李鉉雄 | Lee Hyun-woong |
출생 | 1988년 4월 27일 ([age(1988-04-27)]세)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조건 | 175cm, 68kg |
포지션 | 미드필더 |
학력 | 대동초 - 세일중 - 장훈고 - 연세대 |
프로 입단 | 2010년 대전 시티즌 |
소속팀 | 대전 시티즌 (2010~2012)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3~2016) → 상주 상무 (2014~2015 / 군 복무) 오소사파 사라부리 FC (2016) 경남 FC (2017~2018) → FC 안양 (2017 / 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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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현웅은 대한민국 축구선수 출신2. 선수 경력
경기도 평택에서 친구들과 동네 축구를 하던 중 서울 대동 초등학교 감독에게 스카웃을 받아 5학년 11월에 서울 대동초등학교로 전학가게 된다.서울 대동초등학교에는 유소년대표인 신영록 임상협등 신성팀에서 명문팀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6학년을 마치고 에이스였던 당시 명문팀인 서울 세일중학교로 이적하게 되었고 임상협은 문래중학교로 가게 되었다. 유소년대표인 윤동민과 서울시 1학년대회에서 콤비플레이로 6골과 6도움을 각각기록하며 4강에 진출하였다. 그 이후 2학년때부터 12번을 달고 이현웅 ,13번 윤동민 좌,우 풀백으로 선배경기를 뛰며 춘계대회, 추계대회, 금강대기, 교육감배, 소년체전등 많은 우승에 일조했다.
3학년에도 등번호를 변경하지 않고 세일중 주장을 하며 12번을 달았다.서울시 대표 ,청소년대표에 뽑히며 지도자들과 선수들에게 소문이 나는상황 후배선수들에게 좋은 선례가 되며 후배들인 김동섭 양준아 김찬영 하강진등 진학하게 되었다.
3학년에는 오룡기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하며 최우수선수상과 당시 안양LG(현 FC 서울)에서 오퍼를 받으며 이청용 배해민 고요한 고명진과 같이 중학교 중퇴를 요구했다. 중퇴하면 당시 초등학교졸업은 군대에 가지 않고 프로선수시스템 장점에 혹 했지만 부모님의 만류로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당시 강릉농고 (현 강릉중앙고) 언남고 광양제철고 용인축구센터등 스카웃제의가 여러 있었지만 당시 기술위원 및 명문 동북중 이규준감독이 창단하는 신생팀 장훈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나이키 스폰서를 받으며 체력운동을 하지 않고 패스축구로 신선한 축구를 하는 선수들의 가고싶어하는 팀이였다.
당시 이슬기 조수혁 박상진 김진명 강효 등 선배들이 중심이되었고, 김태연 임상협 윤동민 하강진 이현웅 양준아 김찬영 김동섭 박수창 박종우 구본상 황순민 문선민 등 프로선수 배출이 될만큼 멤버도 짱짱했다.
장훈고8번으로 이름을 날리며 1학년때부터 서울시 1학년대회 우승,전국고등무학기4강을 시작으로 매년 백록기우승, 서울시 협회장배 우승 ,대통령금배 우승, 선수권대회우승 등 전국대회에서 우승팀으로 발돋움 했으며 , 올해의 팀에 뽑히며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 학교이름을 알린 영등포구에서 지원을 해줘 당시 학교에 인조잔디를 깔아주기까지 하였다.
졸업후 J리그와 대학교를 놓고 고민하다가 어릴때부터 연고전을 보며 꿈꿔왔던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신입생부터 등번호 8번을 달며 전 (신재흠)감독 , 현 감독 (최태호) 신임속에 1학년때부터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주전으로 활약하였다. (이상용 박태민 이훈 조용태 서상민 조찬호 정인환 백승민 박현범 김홍일 김동민 공영선 안현식 김응진 정의도 )
남준재 이원규 김다솔 서용덕 박종우 최정한 김민우 조지훈 윤주태 김신철 등 초호화멤버로 춘계우승3번 추계우승3번 U리그 왕중왕전 우승등 싹쓸이 하며 연세대학교 전통면모를 이어나갔다.
대학교 꽃인 정기 연고전에서 1학년부터 3년간 주전으로 활약하였고, 3학년시절 주장을 맡았으며, 1골 1도움으로 멋진 활약을 학교에 선물 해주었다. 이후 3학년을 마치고 fc서울에서 이야기를 해서 드래프트를 신청하였으나 ,대전이 fc서울보다 먼저 결정권이있어 지명하게 되었고, 1순위로 대전으로 가게되었다. 대전시티즌(현 대전하나시티즌)의 상징인 8번을 신인이 부여받으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fc서울과의 개막전에서 8분만에 데뷔전 데뷔골을 넣으며 프로데뷔를 멋지게 시작하였다.
2년차에 개막 5경기3승3무로 신드롬을 보여주며 여러팀에서 이적제의를 받으며 주가를 올릴때 쯤 경기중에 발목부상으로
수술하며 시즌 아웃 되었다.
3년차에 복귀하며 제주, 강원, 인천 등 이적을 타진 하였으나
유상철감독이 새로 부임하면서 등번호10번을 받으며 잔류하였고받았다. 첫 강등시스템이 생기며 스플릿 시스템에서 힘들었지만 강등을 면하며 잔류 하였다.
계약 만료로 FA가 되어 제주 강원 울산 성남 수원삼성 등 추진하였으나 선수들의 로망이였던 부자구단 수원 삼성 팀으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정대세 김두현 곽희주 이정수 백지훈 오범석 이용래 박현범 박종진 최재수 조동건 오장은 양상민 권창훈 홍철 이종민 정성룡 조원희 이상호 등 국가대표선수들이 즐비하였던 시절.
첫시즌 ACL 3경기 리그 10경기 (R리그포함)정도 밖에 출전하지 못하여 다음해 상주상무로 입대하게 된다.
상주상무 박항서 감독체제에서 주전으로 잘 뛰지 못하였다.
당시 이호 이근호 정훈 이승현 이상호 하태균 김동찬등 좋은선수들이 많았으며 임상협 이정협 권순형 서상민 이용 조동건 한상운 강민수 이승기 박기동 배일환 박진포 김성환 최현태 김오규 박준태 등 국가 대표 선수들이 추가로 들어오며 입지가없었고 당시에 k2에서 우승하며 k1으로 승격을 맛보았다.
제대후 수원으로 복귀한 이현웅은 이적을 타진했고 마침 태국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하여 7월부터 시즌끝까지 13경기 동안 출전해 강등권팀을 잔류 시키며 몸값을 높혔다.
다시 K리그 경남 FC 김종부 감독의 부름을 받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잦은 부상과 컨디션 실패로 경기에 많이 못뛰었지만 K2에서 K1로 승격하였고 이듬해에는 K1리그 준우승을 하였다.
이후 계약이 끝나며 팀을 모색하였지만 연봉과 나이가 걸림돌이 되며 은퇴하게 되었다.
3. 지도자 경력
지도자준비를 하며 제2의 진로를 고민하던중서울 JP 연세 FC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