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15:26:48

인민전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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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民電車事件.

파일:SEdCYO9.jpg

1. 개요2. 원인3. 전개4. 결론5. 이야깃거리

1. 개요

1949년 일본의 국철노조에 의해 발생한 파업이며, 어떻게 보면 전동차 납치사건이라 할 수 있다.

2. 원인

1949년 철도성을 거쳐 운수성 철도총국으로 체질 개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적자가 발생하였다.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일본 국철의 상태를 보고 버틸 수가 없다를 외치며 일본 국철의 공기업화를 요구했고, 그에 따라 일본국유철도가 발족했다. 일본국유철도는 발족 직후, 체질 개선을 이유로 구 철도성, 운수성 철도총국 시절 인력들을 많이 해고하였는데, 이후 얼마 되지도 않아 열차 다이어 개정을 이유로 승무원들의 교대 근무를 실시한다고 하였다.

3. 전개

국철 노조에서는 승무원 감축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이유로 반대하게 된다.

국철노조 카나가와와 치바 차장 분회에서는 이러한 국철의 방침을 무시한채 기존 철도성-운수성 철도총국 당시의 근무 시간을 준수하는 방식으로 근무를 하였으며 이에 따라 국철에서는 해당 승무원들을 면직 처분하게 된다.

이러한 조치에 분노한 국철노조에서는 1949년 6월 9일부터 파업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연합군 전용차량으로 징발된 전동차를 포함해 4량의 전동열차를 무단으로 점거하여 차체에 '인민 전차'라는 글귀와 붉은 깃발을 걸고 조합의 지시대로 (한마디로 조합원들이 도쿄로 가자고 하면 도쿄로 가는거고 오미야로 가자고 하면 오미야로 가는 식으로) 정규 행선판을 무시한채 운행하게 되었다.

4. 결론

한편 파업은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명령으로 11일에 종료되었다.

5. 이야깃거리

탈취된전동차는 모하50계 전동차이며 17미터급 3도어로 미니사이즈 전동차다. 훗날 쿠모하 11 400번대로 개정된다. 자세히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납치된 전동차 중 1량은 연합군 전용차량으로써 사진과 같이 하얀띠를 두르고 있었다.

일설에는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전동차를 탈취해서 파업이 빨리 끝나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