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03 01:28:55

일흔두 글자

Seventy-Two Letters

1. 개요2. 내용

1. 개요

테드 창의 SF 중편. 2000년 앤솔러지 <Vanishing Acts>에서 발표하였다. 이후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수록되었다. 사이드와이즈상을 수상하였다. 원문은 여기서 읽을 수 있다.

2. 내용

유대교의 골렘설화를 모티프로 한 듯한 '이름'이 과학으로서 중요한, 일종의 평행세계 비슷한 세계관이 바탕이다. 사물의 진명을 알아내어 그 이름을 붙이면 그대로 사물의 성질이 변화하거나 혹은 그 이름대로 사물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세계로, 그 이름을 다루는 학문이 '명명학'으로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주인공은 이 명명학에서 이름을 날린 젊고 유망한 학자로, 세계를 구하기 위해(!) 종횡무진 활약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렇게 쓰면 무슨 영웅활극 같지만 내용은 지극히 학술적인 분위기로 진행한다.

처음 주인공의 적이 되는것은 자동인형 주조자들이었다. 주인공 로버트 스트래튼은 이름을 통해 손가락을 따로 따로 움직일 수 있는 아주 특수한 자동인형을 만들어내었는데, 주조장 윌러비가 이 자동인형이 대량생산되면 주조자들의 일거리를 빼앗을것 같다며 반대해 온것이다. 스트래튼은 이 자동인형으로 방직공장 노동자들을 해방시키려는 혁명적인 생각을 하였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주조장의 도움을 받으려한것이었으나 바로 반대에 부딪쳤던것.

그러다가 영국 왕립과학회의 큰 손 필드허스트 경의 부름을 받고 그를 찾아간 스트랜튼은 앞으로 약 다섯세대 정도만 지나면 현생인류는 더 이상 출산을 못하게 되고[1] 그대로 인류라는 종의 끝으로 이어질것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된다. 몇몇 저명한 명명학자들이 모여 연구를 거듭한 끝에 여성의 난자에 특정한 글자를 닿게 하면 태아와 유사한 형태로 발현시키는 방법을 찾았지만 태아의 손은 손가락이 없는 벙어리장갑 형태였다. 이에 자동인형의 손가락 다섯개를 섬세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스트랜튼의 연구를 듣고 그 이름짓는 능력으로 인간의 출산에도 해결책을 찾아내 달라는 부탁을 하려던 것이었다. 스트랜튼은 자신의 방직공 해방 계획을 도와주는 조건하에 승낙한다.

하지만 갈 길은 멀어서 글자를 이용해 발현시킨 태아 중 여성은 괜찮았지만 남성은 생식능력이 없었다. 결국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선 끊임없는 인공수정이 요구되었다. 한편 이에 더해 카발라 학자까지 끼어들어 스트랜튼이 계발한 이름을 알려달라고 졸라대고, 주조업자들과의 관계는 점차 악화되어 암살 위험까지 받는다. 이 과정에서 카발라 학자가 살해당하고 스트랜튼도 상당히 위험직전까지 가지만 필드허스트이 고용한 사람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는다. 그러나 이 필드허스트 경 조차 도저히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어서 인류의 불임 문제를 해결하면 하층계급의 수를 법안을 만들어 규제하자는 사상을 갖고 있었고, 스트랜튼은 이 음모를 극복하기 위해 단순히 출산만 해결하는게 아니라 세대를 이어나갈 수 있는 이름을 찾고 있었다.

카발라 학자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며 연구소에 돌아온 스트랜튼은 학자가 남겼던 히브리어 문서를 보다가 자신이 찾고 있던 이름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일종의 재귀형 이름으로, 이름을 넣은 인형이 스스로 자기에게 들어간 이름을 다른 물체에 새길 수 있는 이름이었다. 즉 자신이 연구 중인 종을 이어갈 수 있는 이름과 그걸 스스로 반복할 수 있는 이름을 조합하면 남성은 정자의 머리에 난자를 태아로 발현시키는 이름을 새길 수 있고, 인류는 단 한번만 인공수정을 하면 앞으로는 인공수정 없이 스스로 대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인류는 자신을 나타내는 일흔 두글자를 자손에게 남길 것이고 스트랜튼은 나중에 자신이 속았다는 걸 안 필드허스트 경에게 파멸을 맞겠지만 인류는 결코 멸망치 않으리라는 독백과 함께 끝을 맺는다.

그런데 왜 일흔 두글자인지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다. 만약 마흔 여섯 글자였으면 인간 게놈과의 연관성이 부각돼서 어느정도 떡밥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을텐데.[2]


[1] 호문쿨루스 설화의 유명한 모순점 중 하나다. 항목을 참조해 보면 알겠지만 중세에는 남성의 정액 속에 이미 완전한 형태의 인간이 작은 사이즈로 들어 있다고 믿었는데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호문쿨루스의 정소 속에는 더욱더 작은 호문쿨루스의 호문쿨루스가 들어 있을 테고, 그 호문쿨루스의 호문쿨루스의 정소 속에는 호문쿨루스의 호문쿨루스의 호문쿨루스가...?[2] 다만, 카발라 학자가 나온다는 것으로 볼 때, 카발라적인 해석을 도입하면, 카발라에서 72는 신의 이름을 표현하는 수단이다.(YHVH를 게마트리아에 의해서 수비론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총 합이 72가 나온다.) 다만 작가가 밝힌게 아닌 만큼 그런 해석도 있다 라는 정도로만 참고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