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2-24 23:03:46

임헌근

<colbgcolor=#0047a0> 출생 1920년 4월 25일
충청북도 청주시
사망 1951년 6월 28일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포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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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 인도네시아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한 독립운동가. 2011년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2. 생애

임헌근 1920년 4월 25일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났다.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임헌근은 일본군으로 징집되었고 1942년 5월 연합군 포로감시원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부산에서 2달동안 훈련을 받은 후 그를 비롯한 1400명의 한인 청년들은 1942년 8월 14일 인도네시아 자바의 딴중 쁘리옥 항에 도착하게 되었다.[출처]

연합군 포로감시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그는 일제가 곧 패망할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다른 한인 감시원 동료들과 함께 연합군을 돕는 항일운동 조직을 조직하기로 계획하였다. 당시 임헌근은 이억관,김현재와 협조하였으며 자카르타에서 활동하고 있던 문학선, 세마랑지구에서 활동하고 있던 이상문, 암바라와 지구에서 활동하던 손양섭, 조규홍 등과 함께 무장투쟁을 위해 교류하게 되었다. 세마랑주 스모워노의 교육대에서 재훈련을 받던 한인 연합군 포로감시원들은 1944년 12월 29일 교육대 취사장 뒤편에서 고려독립청년당을 조직하였다. 당시 고려독립청년당은 총령에 이억관, 군사부장에 김현재, 조직부장에 임헌근, 세마랑지구 책임자에 이상문, 암바라와 지부장에 손양섭, 암바라와 부지부장에 조규홍, 자카르타 지부장에 문학선, 자카르타 부지부장에 백문기, 반둥 지부장에 박창원, 반둥 부지부장에 오은석 등이 임명되었다.[출처]

고려독립청년당이 결성된 이후 1945년 1월 4일 중부 자바 암바라와에서 손양섭, 민영학 노병한 등 세명은 일본군,감시원, 어용상인들을 암살하며 저항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암바라와에서 일어난 의거로 인해 후 일본군은 그러한 의거를 막기 위해서 한인들을 대상으로 대규모의 전속을 실시하였다. 이때 조직부장이었던 임헌근과 다른 고려독립청년당원들은 딴중 쁘리옥 항구에 정박 중이었던 수송선을 점거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은 일본군에 발각되었고 결국 고려독립청년당은 일제에 의해서 적발되고 말았다.[출처]

1945년 1월 28일 총령 이억관이 체포되며 조직은 와해되었고 임헌근은 싱가포르에서 압송되어 5월 24일 군사법정에 송치되었다. 임헌근은 1945년 7월 21일 자카르타의 일본군 제16군 군사 재판에서 치안유지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7년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그 후 일제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뒤인 9월 4일 석방되었다.[출처]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출처] [출처]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