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09 21:01:17

입이 있다 그러나 비명 지를 수 없다

단편집 독재자에 수록된 박성환의 단편.

제목은 SF, 공포 소설가 할란 엘리슨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를 변주한 것이다. 참고로 이 할란 엘리슨의 원작은 1995년 게임으로도 만들어지기도 했고, 한글화되어 국내에 발매되기도 했다. 인간의 무의식으로 구성된 불안정한 가상 세계를 마치 하나의 꿈/악몽과 같이 그려낸 묘사가 뛰어나다.

인간의 모든 뇌가 네트워크로 통합된 세계관으로 의식들이 무럭무럭 모여 하나의 꿈 덩어리를 만들었고, 접속된 사람들은 이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끊임없이 허우적대는 세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예 자신이 네트워크에 접속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려 나갈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는 세계. 즉 모든 사람들은 현실 세계의 육체가 영양 고갈로 죽어갈 며칠 동안의 시간을 영원처럼 느끼면서 가상현실에 빠져 살아가는 중인 것이다. 주인공 '나'는 이 네트워크를 만들던 당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람으로 이 세계가 꿈이라는 것을 아는 몇 안되는 사람이다. 동료였던 통칭 '바보'가 붙잡혀 처형될 위험에 놓이고, 어떻게 구하나 고민하는 주인공 앞에 노인 한명이 나타난다.

네트워크 꿈 세계는 정체불명의 '그'라 불리는 독재자가 독재하며 감히 그 누구도 저항조차 못하는 공포정치를 펼치는 세상이기도 했다. 노인은 일종의 저항군 수령 같은 느낌으로 주인공과 힘을 합쳐 '그'와 맞선다. 스스로를 지배자의 탑 크기까지 거대화한 노인이 거대한 문을 열어 로그아웃 하시겠습니까?라는 창까지 도달하지만, 역시 거대화한 '그'에게 가로막힌다. 노인은 얼른 문으로 넘어가 로그아웃하라고 소리치지만 민중들은 꿈에서 깨는 것 따위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왕을 응원하고 노인을 욕하기 시작했다. 노인에게 밀리던 '그'가 갑자기 사람들을 빨아들여 흡수해 더 강해졌고, 단숨에 노인은 패배하게 된다. 저항은 실패로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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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혼란의 와중에 주인공은 깨닫게 된다. '그'의 정체는 어떤 구체적인 개인이 아닌 이 네트워크 세상에 접속한 수많은 사람들의 어두운 욕망이 뭉쳐 구현화된 존재였고, 처음엔 인간이 꾸는 꿈에 불과했었으나 마지막에는 인간이 '그'가 꾸는 꿈이 되어버린 것. 결국 '그'와 몇몇의 인간만 남기고 멸망한 세계를 떠돌며 주인공은 마지막으로 나는 입이 있다. 그러나 비명 지를 수 없다.고 되뇌이며 끝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