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서정주가 지은 시.
1. 내용
애비는 종이었다.[1]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2]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3]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4]
갑오년[5]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6]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7]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8]에는
몇 방울의 피[9]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10]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3]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4]
갑오년[5]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6]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7]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8]에는
몇 방울의 피[9]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10]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2. 분석
애비는 종이었다., 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등 이 시의 화자가 상당히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에서 알 수 있듯이 화자는 이러한 자신의 불행하고 가난하던 자신의 삶을 당당히 고백하고 이에 대해 당당히 맞서려는 의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1연 맨 마지막 시구에서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라는 시구는 동학농민운동에 참가해 사회의 부정의에 항거한 외할아버지의 모습을 자신이 닮았다 하면서 자신 역시 그러한 성향을 가졌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해일]시의 내용이 암울하나 시의 어조 역시 단정적이어서 이를 이겨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윤동주 시인의 시 자화상(윤동주)도 있는데 둘 다 자신의 삶을 회상하거나 자신을 성찰하는 자기 성찰의 자세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으나 본질적으로 그러한 성찰의 자세에서 이끌어내려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제목과 화자의 행동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으로 동일시 할 수는 없다. 두 시를 읽어보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한 번 알아보자.
[1] 아버지의 신분이 미천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실제로 서정주의 아버지는 마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마름은 현재로 보면 최소한 중간 관리직 이상이기 때문에 비천한 신분인 종과는 거리가 있다. 더구나 호남 최대 지주 김성수 집안의 마름이어서 시골 유지처럼 대접 받았고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여유로웠다. 그럼에도 소년시절 서정주의 감수성에는 상당한 부담이 되었던 듯하고 아버지가 인촌집안의 마름을 그만두는 동기가 되기도 했다[2] 아버지의 부재, 죽음을 암시한다고 해석되기도 한다.[3] 어머니가 서정주 자신을 임신했을 때를 의미한다.[4] 자신을 3인칭 객관화하고 있다. 아들은 화자인 나를 의미.[5] 갑오개혁을 생각하겠지만 여기에서는 동학농민운동을 의미한다.[6] 고난, 시련, 역경을 상징하는 단어. 윤동주 시의 '바람'과 유사한 의미라고 볼 수 있다.[7] 미래에 대한 낙관, 희망을 의미한다.[8] 화자가 바라는 것[9] 희생, 고통, 고난을 상징[10] 생명력을 상징한다.[해일] 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시인의 다른 시인 '해일'을 보면 딱히 갑오년에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 정말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일 수도 있다. 받아들이는 것은 알아서 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