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11 02:25:04

잔재


1. 개요2. 사례

1. 개요



쓰고 남은 찌꺼기를 뜻한다. 여기에서 과거의 낡은 사고방식이나 생활 양식 등을 뜻하게 되었다.

인습과 유사한 말이고, 전통과는 상이하다. 전통은 좋은 의미의 잔재를 말하지만 인습은 나쁜 의미의 잔재를 말하기 때문.

2. 사례

국내 기준으로 작성.
  • 중국발 잔재
    • 사농공상 :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안 그래도 공무원 선호도가 미친 듯이 올라가는 바람에, 2023년 기준 20대~30대 청년들(생일이 지나지 않은 1983년생 ~ 생일이 지난 2003년생)[1] 공무원 시험에 미친 듯이 몰리고 공무원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을 강력히 지닌 바람에, 사기업이 가뜩이나 엄청나게 어려운데 추가로 인력난까지 겪고 있다. 또한 사기업에서도 사무직과 생산직의 차이를 매우 엄격하게 두며, 사무직 직원이 매우 큰 잘못을 하면 바로 해고 시키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스스로 나가게끔 일부러 생산직으로 떠밀어 보내는 그런 나쁜 습관도 바로 이 사농공상에 의한 것이다.
  • 일본발 잔재
    • 결혼식 : 현재 우리나라에서 하는 결혼식은 거의 일본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다. 일제강점기 당시 결혼식장을 일본인들이 운영했던 경우가 상당히 많았는데, 해방 이후 우리나라가 그대로 물려받게 된다.
    • 장례식 : 현재 우리나라에서 하는 장례식은 거의 일본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다. 역시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당시 장례식장을 일본인들이 운영했던 경우가 상당히 많았는데, 해방 이후 우리나라가 그대로 물려받게 된다. 고인에게 꾀죄죄한 삼베옷을 입히는 것, 유족들이 검은색 양복에 완장을 달고 댕기는 것, 화환이 흰색 국화인 것 등은 죄다 일본식 장례 문화이다. 추가로 화장장과 납골당 문화 역시 일본의 것을 그대로 물려받았는데, 국내 화장장 소각로도 일본산이 압도적으로 많다.[2] 납골당은 애초에 일본 문화로 화장률이 99%인 일본답게 시신을 매장하는 유교식 문화와 시신을 화장하는 불교식 문화가 절충되어 세계 최초로 납골당이 생겨난 나라가 일본이다. 단 우리나라의 장례 문화가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뀐 것은 단순히 국토 문제와 인식의 변화 등으로 인한 것으로 일본의 잔재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거기다 현재의 코로나 사태처럼, 질병이 번지는 경우 비록 법적으로는 매장도 허용하고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전염병은 사체를 약품처리 하거나 완전히 태워버려야 사체로부터 흘러나와 주변을 오염시켜 질병이 다시 번질 염려가 없는데다, 안그래도 비싼데다 사람 손이 더 들어갈수밖에 없는[3] 약품으로 약품처리해서 따로 묫자리까지 돈주고 사거나 임대해서 매장하고 관리하는 것보다는 태워버리고 납골당같은데 안치하는게 차라리 돈도 덜들고 공간이 작은데다 석재를 주로 쓰기에 잡초가 자랄 일도 없고 더러워지면 잘 닦으면 돼서 관리소요도 적고 관리편의성도 높으면서 방역 관련하여 긍정적 효과도 있는등 매우 효율적이므로 전염병 사망자는 가급적 화장하는게 모두에게 좋다.
    • 구타가혹행위 : 일본군의 엄청난 잔재로, 현재 직계 후손인 자위대와 방계 후손인 대한민국 국군, 조선인민군 등이 2023년 기준 지금까지도 엄청나게 골칫덩어리일 정도로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다.
    • 대한민국 국군 : 비록 광복 후에 생긴 집단이지만, 그 전신인 조선국방경비대 창설 당시에 일본군들이 초기부터 내부를 장악하는 바람에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일반인 출신자 및 독립군들이 이들과의 대립 과정에서 학을 떼고는 군을 나가버렸다던지 하는 등의 문제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이렇게 창설된 국군은 직후의 한국전쟁으로 인해 일전에 나가버렸던 독립군들과 일반 청년들까지 싹 끌어모아 소모하면서 결국 초기부터 일본군이 많던 후방의 고위 장교들만 남아 이후의 국군을 이끌게 됐다. 그리고 이로 인해 상술한 구타 및 가혹행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물론 시대가 변하면서 점점 청산되고 있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지속적 개선 작업이 필요한 상황이다.

[1] 외환위기 당시 청년층은 생일이 지나지 않은 1957년생 - 생일이 지난 1977년생인데 정확히는 1977년생 이후이다.[2] 과거 화장장에는 1965년 한일수교 직후 일본인 기술자들이 파견을 와서 소각로가 고장 났을 때를 대비해 화장장에 상시 근무했다. 지금은 기술력이 발달되어 화장장 소각로를 국내산을 쓰는 경우도 점점 많아지고 있고 아직까지도 일본산 화장장 소각로를 이용하는 곳(주로 소도시 및 시골인 경우가 많다.)을 제외하면 일본인 기술자들도 본국으로 다 철수해서 거의 없다.[3] 인건비가 그만큼 추가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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