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 다르투아 Jean d'Artois | |
생몰년도 | 1321년 8월 29일 ~ 1387년 4월 6일 | |
출생지 | 프랑스 왕국 아르투아 | |
사망지 | 프랑스 왕국 외 | |
아버지 | 로베르 3세 다르투아 | |
어머니 | 발루아의 잔 | |
형제 | 루이, 잔, 자크, 로베르, 샤를 | |
아내 | 이자벨 드 멜룬 | |
자녀 | 잔, 장, 로베르 4세, 필리프, 샤를, 이자부 | |
직위 | 외 백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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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 시기 잉글랜드군을 상대로 맞서 싸웠다.2. 생애
1321년 8월 29일 프랑스 왕국 아르투아에서 아르투아 백작위 주장자 로베르 3세 다르투아와 발루아, 알랑송, 페르세, 샤르트르, 메인, 앙주 등지를 장악하고 아라곤 왕국의 명목상 국왕이자 라틴 제국의 명목상 황제이기도 했고, 프랑스 정계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최강의 위세를 떨쳤던 샤를 드 발루아의 딸인 발루아의 잔의 아들로 출생했다. 형제로 잔[1], 잔[2], 자크, 로베르, 샤를이 있었다.1334년, 아르투아 백작위 계승권을 놓고 소송전을 벌이던 아버지 로베르가 베쑨 성의 영주 하벳 드 디비옹의 딸 잔 드 디비옹과 짜고 아르투아 백국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문서를 비밀리에 위조했다가 발각당했다. 잔 드 디비옹은 화형에 처해졌고, 로베르는 왕실 행정의 신뢰성을 훼손해 국왕의 권위에 모독을 가한 혐의로 형사 재판에 회부된 뒤 1332년 4월에 유죄 판결을 받고 모든 소유물을 영구히 박탈당한 뒤 프랑스에서 추방되었다. 로베르는 플란데런으로 망명했다가 아비뇽으로 이동했고, 1334년 잉글랜드로 피신했다. 이후 장은 어머니 및 형제 자크, 로베르, 샤를과 함께 샤토-가이야르 성에 투옥되었으며, 자크, 로베르가 투옥 중 사망하는 걸 지켜봐야 했다.
1350년 프랑스 국왕이 된 장 2세는 아직까시 살아있던 발루아의 잔과 장, 샤를을 석방했다. 이후 외 백작 올리비에 4세 드 클리송을 처형한 그는 장을 외 백작에 선임했다. 이후 노르망디에서 왕의 중위이자 왕실 의회의 일원이 되었고, 장 2세가 노르망디에서 나바라 왕국의 국왕이자 에브뢰 백작인 카를로스 2세의 영지를 공략하는 원정에 참여해 에브뢰와 브레퇴유 공략에 기여했다. 1356년 장 2세가 푸아티에 전투에서 사로잡혔을 때 보르도에 있었으며, 1357년 3월 흑태자 에드워드로부터 휴전을 약속하는 편지를 가지고 파리로 운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357년 6월 기조르에서 샤를 도팽과 합류했으며, 1359년 11월 4일 대평의회 의원으로 선임되었다.
1360년 브레테니 조약 이후 석방된 장 2세가 1362년 아비뇽으로 여행했을 때 동행했으며, 1363년 12월에 장 2세가 또다시 전쟁이 터지는 걸 막기 위해 자진해서 런던으로 가서 포로 생활을 이어가기로 했을 때 런던까지 동행했다. 1364년 장 2세가 사망하고 샤를 도팽이 프랑스 국왕 샤를 5세로 즉위했을 때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뒤 왕실 평의회의 일원이 되었으며, 1369년 6월 19일 생오메르에서 5명의 독신 기사와 32명의 종자와 함께 피카르디 원정에 참여했다. 1382년 프랑스 국왕 샤를 6세를 따라 플란데런 반란 진압에 참여했고, 11월 29일 루즈베케 전투에서 후위대의 지휘를 맡았다. 1383년에는 베르그와 부르부르를 점령했다. 1384년 릴에서 플란데런 백작 루이 2세와 그의 아내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1387년 4월 6일에 외에서 사망했다. 사후 노트르담에생로랑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3. 가족
- 이자벨 드 멜룬: 멜룬 자작 장 1세 드 멜룬의 딸.
- 잔 다르투아(1353 ~ 1420년 이후): 드뢰 백작 시몽 드 투아르의 부인.
- 장 다르투아(1355 ~ 1363): 요절.
- 로베르 4세 다르투아(1356 ~ 1387): 두라초 공작, 외 백작.
- 필리프 다르투아(1359 ~ 1397): 외 백작.
- 샤를 다르투아(1359 ~ 1368): 요절.
- 이자부(1361 ~ 1379): 미혼으로 사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