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 드 릴 Jean de Lille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
출생지 | 프랑스 왕국 | |
사망지 | 미상 | |
직위 | 푸아투의 세네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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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왕국의 세네샬. 백년전쟁에서 잉글랜드군을 상대로 맞서 싸웠으나 루나롱주 전투에서 생포되었다.2. 생애
푸아투의 세네샬(senechal: 남부 프랑스의 지방관)로, 1349년 여름에 푸아투 민병대를 동원해 잉글랜드-가스코뉴 수비대가 주둔한 뤼지냥 시를 포위했다. 이 소식을 접한 가스코뉴의 세네샬인 토머스 코크는 500명의 잉글랜드-가스코뉴 연합 기병대를 이끌고 보르도에서 뤼지냥을 구하러 진격했다. 1349년 5월 말 또는 6월 초, 뤼지냥으로 진군하던 토머스 코크의 잉글랜드군은 루나롱주에서 장 드 릴이 이끄는 프랑스군의 급습을 받았다.잉글랜드군이 급히 진지를 세우고 말을 수하물 마차 뒤편으로 보낸 뒤 방어 태세를 갖추자, 장 드 릴은 이들을 정면에서 공격하면 큰 손실을 볼 게 자명하다고 보고, 적 주위를 돌면서 수하물 마차를 탈취하고 말을 포획했다. 이후 3개 부대로 나뉜 프랑스 기병대가 2개 부대를 동원해 적을 공격했지만, 잉글랜드-가스코뉴 연합군이 원형 방진을 세우고 랜스를 즉석 파이크로 사용하며 버텨서 상당한 손실을 입었다. 3번째 프랑스 부대는 전투에 투입되지 않고 공격 기회를 기다리며 위치를 유지했다.
해질녘까지 잉글랜드군 전열을 뚫는 데 실패하고 지휘관 장 드 릴이 전투 도중 사로잡히자, 프랑스 병사들은 포획한 말들을 데리고 뤼지냥으로 후퇴했다. 이 전투에서 300명의 프랑스 병사가 전사했고 릴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포로 신세로 전락했다. 잉글랜드-가스코뉴 연합군의 피해는 알려진 바 없으나, 말을 모두 잃었기에 걸어서 인근 요새로 철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프랑스군은 뤼지냥 포위 공격을 포기하고 귀환했지만, 1350년 여름 새로운 프랑스군이 잉글랜드군이 버리고 떠난 뤼지냥을 점령했다. 장 드 릴의 이후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