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1:15:39

장준호(독립운동가)

파일:장준호.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경팔(景八) / 회산(回山)
본관 인동 장씨[1]
출생 1888년 1월 15일
경상도 인동도호부 석적면 원증리
(현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학산리 원정마을)
사망 1930년 9월 17일
경상북도 칠곡군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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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장준호는 1888년 1월 15일 경상도 인동도호부 석적면 원증리(현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학산리 원정마을)에서 1885년(고종 22)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지낸 아버지 장희학(張希鶴)과 어머니 밀양 박씨 박윤발(朴潤發)의 딸 사이의 네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조선 중기의 유학자 기촌(岐村) 장용한(張龍翰)의 10대손으로, 출생 이후 5촌 당숙인 장희태(張希泰)에 입양되었다.

그는 1906년 정용기 의병장의 부장인 임용상(林龍相)의 부대에 가담해 참모장으로 활약했으며, 이후엔 상영집사(上營執事)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정용기가 입암 전투에서 전사하고 부친 정환직 마저 일본군에게 체포된 뒤 처형되면서 의병이 와해되자 귀가했다가 1910년 임용상이 의병을 다시 일으키자 그를 따라 청도 운문산 등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유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안평전투에서 패한 임용상이 체포되어 징역 10년형에 처해지자 가산면으로 돌아갔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전개되자 가산면에서 발발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했으나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다가 1930년 9월 1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장준호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상장군 금용(金用)계 황상(凰顙)파 13세 호(灝) 항렬. 인동 장씨 30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