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6-17 14:07:06

장창종

張昌宗
(? ~ 705년)

1. 개요2. 생애3. 계보

1. 개요

중국 무주 시기의 권신으로, 형제인 장역지과 함께 측천무후의 총애를 받은 측근이었다. 당나라의 역사를 다룬 중국의 정사서인 구당서신당서에서는 장행성 열전에 부전으로 나오며 족손 관계임이 언급된다.

2. 생애

옹주 사호참군을 지냈던 장희장(張希臧)의 아들로 태어났다. 태평공주의 추천으로 입궁하여, 형제인 장역지와 함께 측천무후의 남총으로 총애를 받았다. 장창종은 측천무후의 총애를 바탕으로 운휘장군(雲麾將軍)으로 임명되었고, 은청광록대부, 좌산기상시를 역임하였다. 장역지와 마찬가지로 측천무후의 일파는 장역지, 장창종 형제와 연을 맺었고, 측천무후 일파는 감히 그의 이름을 거론하지 못하고 각각 오랑(五郞)과 육랑(六郞)으로 불렸다.

뒤에 장창종은 사복경이 더해졌고 업국공(鄴國公)으로 책봉되었으며, 실봉 300호를 식읍으로 받았다. 측천무후가 당시 연로한 나이였기 때문에, 장역지, 장창종 형제에게 정사를 위임하였고, 장창종은 장역지와 함께 이를 바탕으로 정사를 좌우하며 전횡을 부린다. 황태자 이현의 아들인 이중윤과 영태공주, 무연기가 장역지, 장창종 형제의 전횡에 불만을 품자 이들을 참소하여 제거하였고, 이후에는 조정 대신들과의 갈등이 점점 커지게 된다.

705년, 측천무후가 병으로 눕게되자, 장창종은 측천무후의 병을 모시며 변고가 일어날 것에 대비하였다. 장역지, 장창종 형제에 대한 규탄 여론이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마침내 궁중 쿠데타가 일어났고, 장창종은 결국 환언범, 경휘, 장간지, 최현위, 원서기 일파에 의해 살해당하여 다른 형제들과 함께 천진교 남쪽에 효수되었다.

3. 계보

신당서 종실세계표에 근거한 장역지, 장창종 형제의 계보는 다음과 같다.
  • 장장해(張長諧)
    • 장행균(張行鈞)
      • 장희장(張希臧)
        • 장창기(張昌期)
        • 장창의(張昌儀)
        • 장동휴(張同休)
        • 장역지
        • 장창종
    • 장행성(張行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