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전구서 田龜書 | |
출생 | 1927년 2월 7일 |
평안남도 강동군 | |
사망 | 1950년 10월 7일 |
경상남도 통영 | |
복무 | 대한민국 공군 |
최종계급 | 공군 소위 |
복무 기간 | 1948~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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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구서(田龜書, 1927년 2월 7일 ~ 1950년 10월 7일)은 대한민국의 6.25전쟁 참전 군인이다.2. 생애 및 군 경력
초기 생애 및 공군 입대전구서는 1927년 2월 7일,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출생하였다.
평양 제2공립중학교를 졸업한 후, 1945년 8월부터 조선항공협회에서 조종사로 활동하였다.
1948년 9월, 육군항공기지사령부 항공병 제2기로 입대하였으며, 같은 해 11월 이등중사로 임관하여 대한민국 공군의 창설 초기부터 활약하였다.
6.25 전쟁 참전
정찰비행대 활동 및 영천 전투 (1950년 8월~9월)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한 후,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전선을 방어하며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1950년 7월, 대전에 창설된 공군 정찰비행대는 김천 → 의성 → 영천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적정(敵情) 정찰과 연락 임무를 수행하였다.
① 1950년 8월 24일 : 포항 전투 지원
당시 북한군의 포항 및 영천 지역 공세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전구서는 L-4 정찰기 조종사로 제2군단에 파견되어 있었다.
그는 8월 24일, 포항 서북쪽 기계 방면으로 침입하는 적 2개 대대를 발견하였고, UN 공군의 F-51 전투기를 유도하여 적을 전멸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② 1950년 9월 : 영천 전투 지원
9월 초, 북한군은 영천-포항 연결도로 남쪽까지 진격하며 국군을 포위하려 하였다.
전구서는 L-4기를 몰고 영천 시가지 및 인근 지역을 정찰하였으며, 남쪽 1km 지점에서 2개 연대 규모의 적 이동 병력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를 즉각 아군에 보고하였고, 제2군단은 신속히 반격 작전을 개시하여 적의 공격 기도를 무력화하였다.
그의 저공비행을 통한 정찰 정보 제공은 영천 전투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최후의 전투 : 화천 상공에서의 희생(1950년 10월 7일)
1950년 10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선을 돌파하여 북진 작전을 개시하였다.
전구서는 10월 7일, 중부전선을 따라 북진하던 제6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화천 상공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는 적의 대공포 사격에도 불구하고 정찰을 계속하며 아군 포격을 유도하였다.
그러나 결국 적의 대공포에 피격되어 정찰기는 산중턱에 추락, 그는 조국을 위해 장렬히 전사하였다.
전구서 소위는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 공군 최초의 정찰조종사 중 한 명으로, 지상군 작전에 핵심적인 공헌을 한 "군단의 눈"으로 평가된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전구서 소위의 희생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공군 소위로 1계급 특진하고,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또한 2015년,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는 그를 "10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3. 공훈
충무무공훈장 추서 (대한민국 정부, 1951년)공군 소위 1계급 특진 (추서, 1951년)
국가보훈처 이달의 6.25전쟁영웅(2015년 10월)
4. 참고 자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태극무공훈장에 빛나는 6.25전쟁 영웅", 2003국방부, "호국전몰용사공훈록 제3집", 1997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6.25 전쟁영웅 전구서 공군 소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