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3-09 22:25:10

전국연합학력평가/비문학 지문


1. 개요2. 고13. 고24. 고3

1. 개요

전국연합학력평가의 국어 영역 에 출제된 지문을 보기 편하게 올린 것이다(텍스트만). 학습은 물론 상식을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2. 고1

2018학년도
9월
열차 운행의 중요한 과제는 열차를 신속하게 운행하면서도 열차끼리의 충돌 사고를 방지하는 것이다. 열차를 운행할 때는 일반적으로 역과 역 사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간을 설정하고 하나의 구간에는 한 대의 열차만 운행하도록 하는데, 이러한 구간을 ‘폐색구간’이라고 한다. 폐색구간을 안전하게 관리하면서도 열차 운행의 속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열차나 선로에는 다양한 안전장치들이 설치되어 있다.
‘자동폐색장치(ABS)’는 폐색구간의 시작과 끝에 신호를 설치하고 궤도회로*를 이용하여 열차의 위치에 따라 신호를 자동으로 제어하는 장치이다. 폐색구간에 열차가 있을 때에는 정지 신호인 적색등이 켜지고, 열차가 폐색구간을 지나간 후에는 다음 기차가 진입해도 좋다는 녹색등이 표시된다. 이를 바탕으로 뒤따라오는 열차의 기관사는 앞 구간의 열차 유무를 확인하여 열차의 운행 속도를 제어하고 앞 열차와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열차 사고를 방지한다.
그런데 악천후나 응급 상황으로 기관사가 신호기에 표시된 정지 신호를 잘못 인식하거나 확인하지 못해 충돌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충돌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를 설치하는데, 이를 ‘자동열차정지장치(ATS)’라고 한다. ATS는 선로 위의 지상장치와 열차 안의 차상장치로 구성되는데, 열차가 지상장치를 통과할 때 지상장치에서 차상장치로 신호기 점등 정보를 보낸다. 이때 차상장치에 ‘정지’를 의미하는 적색등이 켜지면 벨이 울려 기관사에게 알려 준다. 그러면 기관사는 이를 확인하고 제동장치를 작동하여 열차를 감속하거나 정지시키는 등 열차 전반의 운행을 제어하고 앞 열차와의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벨이 5초 이상 계속 울리고 있는데도 열차 속도가 줄어들지 않으면 ATS는 이를 위기 상황으로 판단하고 제동장치에 비상 제동을 명령하여 자동으로 열차를 멈춰 서게 한다. 이렇게 ATS는 위기 상황으로 인한 충돌 사고를 예방해 준다. 하지만 평상시 기관사의 운전 부담을 줄여 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자동열차제어장치(ATC)’는 신호에 따라 여러 단계로 나누어진 열차 제한 속도 정보를 지상장치에서 차상장치로 전송한다. 그리고 전송된 제한 속도를 넘지 않도록 열차의 속도를 자동으로 감시하고 제어함으로써 선행 열차와의 충돌을 막아주고 좀 더 효율적인 열차 운행이 가능하게 해준다. ATC는 송수신장치, 열차검지장치, 속도신호생성장치, 속도검출기, 처리장치, 제동장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 개의 궤도회로로 나뉜 선로 위를 A열차와 B열차가 달리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A, B열차가 서로 다른 궤도회로에 각각 진입하면 지상의 송수신장치에서 열차검지장치로 신호를 보내고 열차검지장치는 이 신호를 바탕으로 선로 위에 있는 A, B열차의 위치를 파악한다. 속도신호생성장치는 앞서가는 A열차의 위치와 뒤따라오는 B열차의 위치를 바탕으로 B열차가 주행해야 할 적절한 속도를 연산하여 B열차의 제한 속도를 결정한다. 이 속도는 B열차가 위치하고 있는 궤도회로에 전송되고 지상의 송수신장치를 통해 B열차에 일정 시간 간격으로 계속 전달된다.
그러면 B열차의 운전석 계기판에는 수신된 제한 속도와 속도검출기를 통해 얻은 B열차의 현재 속도가 동시에 표시되어 기관사가 제한 속도를 확인하며 운전할 수 있도록 한다. 이때 열차의 현재 속도가 제한 속도를 초과하면 처리장치에서 자동으로 신호를 보내고 신호를 받은 제동장치가 작동되며 열차의 속도를 줄여 준다. 속도가 줄어 제한 속도 이하가 되면 제동이 풀리고 기관사는 속도를 높이게 된다. ATC는 열차가 제한 속도를 넘지 않도록 자동으로 속도를 조절하기 때문에 과속으로 인한 사고를 예방해 주지만, 제한 속도 안에서는 기관사가 직접 속도를 감속하고 가속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관사의 부담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열차의 특성상 열차 충돌 사고가 발생하면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진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열차 사이의 안전거리를 확보하면서도 운행 간격을 최대한 단축하고 열차의 운행 속도를 높이는 기술에 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궤도회로: 레일을 전기회로의 일부로 사용하여 레일상의 열차를 검지하는 회로. 신호와 경보기 등을 제어하고 지상에서 차상에 정보를 전달함.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코나투스(Conatus)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실존하는 모든 사물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사물의 본질인 코나투스라는 것이다. 정신과 신체를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로 보았던 그는 정신과 신체에 관계되는 코나투스를 충동이라 부르고, 다른 사물들과 같이 인간도 자신을 보존하고자 하는 충동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특히 인간은 자신의 충동을 의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물과 차이가 있다며 인간의 충동을 욕망이라고 하였다. 즉 인간에게 코나투스란 삶을 지속하고자 하는 욕망을 의미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코나투스를 본질로 지닌 인간은 한번 태어난 이상 삶을 지속하기 위해 힘쓴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 삶을 지속하기 어렵다. 인간은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삶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언제나 타자와 관계를 맺는다. 이때 타자로부터 받은 자극에 의해 신체적 활동 능력이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변화가 일어난다. 감정을 신체의 변화에 대한 표현으로 보았던 스피노자는 신체적 활동 능력이 증가하면 기쁨의 감정을 느끼고, 신체적 활동 능력이 감소하면 슬픔의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했다. 또한 신체적 활동 능력이 감소하는 것과 슬픔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코나투스가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다시 말해 삶을 지속하고자 하는 욕망이 줄어드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인간은 코나투스의 증가를 위해 자신의 신체적 활동 능력을 증가시키고 기쁨의 감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한편 스피노자는 선악의 개념도 코나투스와 연결 짓는다. 그는 사물이 다른 사물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선이 되기도 하고 악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코나투스의 관점에서 보면 선이란 자신의 신체적 활동 능력을 증가시키는 것이며, 악은 자신의 신체적 활동 능력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이를 정서의 차원에서 설명하면 선은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모든 것이며, 악은 자신에게 슬픔을 주는 모든 것이다. 한마디로 인간의 선악에 대한 판단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생각을 토대로 스피노자는 코나투스인 욕망을 긍정하고 욕망에 따라 행동하라고 이야기한다. 슬픔은 거부하고 기쁨을 지향하라는 것, 그것이 곧 선의 추구라는 것이다. 그리고 코나투스는 타자와의 관계에 영향을 받으므로 인간에게는 타자와 함께 자신의 기쁨을 증가시킬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안에서 자신과 타자 모두의 코나투스를 증가시킬 수 있는 기쁨의 관계를 형성하라는 것이 스피노자의 윤리학이 우리에게 하는 당부이다.
범죄란 사회 질서를 파괴하고 타인의 육체나 정신에 고통을 주거나 재산 또는 명예에 손상을 입히는 행위로, 사회의 안녕과 개인의 안전에 해를 끼친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러 논의를 통해 범죄 발생률을 낮추려고 노력해 왔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범죄학’이다.
‘고전주의 범죄학’은 법적 규정 없이 시행됐던 지배 세력의 불합리한 형벌 제도를 비판하며 18세기 중반에 등장했다. 고전주의 범죄학에서는 범죄를 포함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자유 의지에 입각한 합리적 판단에 따라 이루어지므로, 범죄에 비례해 형벌을 부과할 경우 개인의 합리적 선택에 의해 범죄가 억제될 수 있다고 보았다. 고전주의 범죄학의 대표자인 베카리아는 형벌은 법으로 규정해야 하고, 그 법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문서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형벌의 목적은 사회 구성원에 대한 범죄 행위의 예방이며, 따라서 범죄를 저지를 경우 누구나 법에 의해 확실히 처벌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범죄를 억제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러한 고전주의 범죄학의 주장은 각 국가의 범죄 및 범죄자에 대한 입법과 정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세기 중반 이후 사회 혼란으로 범죄율과 재범률이 증가하자, 범죄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한 ‘실증주의 범죄학’이 등장했다. 실증주의 범죄학은 고전주의 범죄학의 비과학성을 비판하며, 범죄의 원인을 개인의 자유 의지로는 통제할 수 없는 생물학적·심리학적·사회학적 요소에서 찾으려 했다. 이 분야의 창시자인 롬브로소는 범죄 억제를 위해서는 범죄자들의 개별적 범죄 기질을 도출하고 그 기질에 따른 교정이나 교화, 또는 치료를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그는 범죄자만의 특성과 행위 원인을 연구하여 범죄자들의 유형을 구분하고 그 유형에 따라 형벌을 달리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출생부터 범죄자의 기질을 타고나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범죄자의 경우 초범일지라도 무기한 구금을 해야 하지만,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수감에는 반대했고, 이러한 생각은 이후 집행 유예 제도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비록 차별과 편견이 개입됐다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롬브로소의 연구는 이후 범죄 생물학, 범죄 심리학, 범죄 사회학의 탄생과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범죄학의 큰 흐름들은 범죄를 억제하려는 그동안의 법체계와 정책의 근간이 되어 왔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이러한 시도들의 범죄 감소 효과에 대한 비판이 일면서, 환경에 의한 범죄 유발 요인과 환경 개선을 통한 범죄 기회의 감소 효과 등을 연구하는 ‘환경 범죄학’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가운데 건축학이나 도시 설계 전문가들은 범죄의 원인과 예방의 해법을 환경과 디자인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셉테드(CPTED)’라 불리는 범죄 예방 설계가 그것이다. 셉테드는 건축 설계나 도시 계획 등을 통해 대상 지역의 방어적 공간 특성을 높여, 범죄 발생 가능성을 줄이고 지역 주민들이 안전감을 느끼도록 하여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종합적인 범죄 예방 전략을 의미한다.
셉테드는 다음의 원리로 이루어진다. 우선 ‘자연적 감시의 원리’는 공간과 시설물에 대한 가시권을 확보하고 잠재적 범죄자의 은폐 장소를 최소화시킴으로써 내부인이나 외부인의 행동을 주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관찰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다음으로 ‘접근 통제의 원리’는 보행로, 조경, 문 등을 통해 사람들의 통행을 일정한 경로로 유도하여 허가받지 않은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거나 차단하는 것을 말한다. ‘영역성의 원리’는 안과 밖이라는 공간 영역을 조성하여 외부인의 침범 기준을 명확히 확립하는 것을 말한다. 이 외에도 공공장소 및 시설에 대한 내부인들의 활발한 사용을 유도하여 그 근방의 범죄를 감소시킨다는 ‘활동의 활성화 원리’, 공공장소와 시설물이 처음 설계된 대로 지속적으로 유지 및 관리되어야 한다는 ‘유지 및 관리의 원리’가 있다. 이 모든 원리는 범죄 예방의 전략과 목표를 범죄자 개인이 아닌 도시 및 건축 환경의 설계와 계획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우리나라는 2005년 즈음부터 셉테드를 도입하여 도시 설계와 건축물에 범죄 예방 설계 활용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법과 정책, 그리고 셉테드가 동시에 강화된다면 좀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6월
고대 중국인들은 인간이 행하지 못하는 불가능한 일은 그들이 신성하다고 생각한 하늘에 의해서 해결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하늘은 인간에게 자신의 의지를 심어 두려움을 갖고 복종하게 하는 의미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일을 책임지고 맡아서 처리하는 의미로까지 인식되었다. 그 당시에 하늘은 인간에게 행운과 불운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힘이고, 인간의 개별적 또는 공통적 운명을 지배하는 신비하고 절대적인 존재라는 믿음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하늘에 대한 인식은 결과적으로 하늘을 권선징악의 주재자로 보고, 모든 새로운 왕조의 탄생과 정치적 변천까지도 그것에 의해 결정된다는 믿음의 근거로 작용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하늘에 대한 인식은 인간 지혜의 성숙과 문명의 발달로 인한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의해서 대폭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순자의 하늘에 대한 주장은 그 당시까지 진행된 하늘의 논의와 엄격히 구분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매우 새롭게 변모시킨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 순자는 하늘을 단지 자연현상으로 보았다. 그가 생각한 하늘은 별, 해와 달, 사계절, 추위와 더위, 바람 등의 모든 자연현상을 가리킨다. 따라서 하늘은 사람을 가난하게 만들 수도 없고, 병들게 할 수도 없고, 재앙을 내릴 수도 없고, 부자로 만들 수도 없으며, 길흉화복을 줄 수도 없다. 사람들이 치세(治世)*와 난세(亂世)*를 하늘과 연결시키는 것은 심리적으로 하늘에 기대는 일일 뿐이다. 치세든 난세든 그 원인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하늘과는 무관하다. 사람이 받게 되는 재앙과 복의 원인도 모두 자신에게 있을 뿐 불변의 질서를 갖고 있는 하늘에 있지 않다.
하늘은 그 자체의 운행 법칙을 따로 갖고 있어 인간의 길과 다르다. 천체의 운행은 불변의 정규 궤도에 따른다. 해와 달과 별이 움직이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것은 모두 제 나름의 길이 있다. 사계절은 말없이 주기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물론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고 비바람이 아무 때나 일고 괴이한 별이 언뜻 출현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항상 벌어지는 것은 아니며 하늘이 이상 현상을 드러내 무슨 길흉을 예시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즉, 하늘은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데 사람들은 하늘과 관련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순자는 천재지변이 일어난다고 해서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순자가 말하는 불구지천(不求知天)의 본뜻이다.
순자가 말한 ‘불구지천’의 뜻은 자연현상으로서의 하늘이 아니라 하늘에 무슨 의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그것을 알아내겠다고 덤비는 종교적 사유의 접근을 비판하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억지로 하늘의 의지를 알려고 힘을 쏟을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자연현상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오직 인간사회에서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 즉, 재앙이 닥치면 공포에 떨며 기도나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행위로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순자의 관심은 하늘에 있지 않고 사람에 있었다. 특히 인간사회의 정치야말로 순자가 중점을 둔 문제였다. 순자는 “하늘은 만물을 낳을 수 있지만 만물을 변별할 수는 없다.”라고 말한다. 이는 인간도 만물의 하나로 하늘이 낳은 존재이나 하늘은 인간을 낳았을 뿐 인간을 다스리려는 의지는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은 혈기나 욕구를 지닌 존재도 아니다. 그저 만물을 생성해 내는 자연일 뿐이다.

*치세: 잘 다스려져 태평한 세상.
*난세: 전쟁이나 사회의 무질서 따위로 어지러운 세상.
냉수 속 얼음은 1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녹아버린다. 반면 북극 해빙 또한 얼음이지만, 10℃가 넘는 한여름에도 다 녹지 않고 바다에 떠 있다. 왜 해빙의 수명은 냉수 속 얼음보다 긴 걸까?
해빙의 수명이 긴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냉수 속 얼음에 작용하는 열에너지의 전달에 관한 두 가지 원리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열에너지는 온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전달되는데, 이 때문에 온도가 다른 물체들이 서로 접촉하면 ‘열적 평형’을 이루려고 한다. 열적 평형은 접촉한 물체들의 열이 똑같아져 서로 어떠한 영향도 주거나 받지 않는 상태이다. 예를 들어 3℃인 냉장고 속에 얼음이 든 냉수를 오랜 시간 동안 두면, 냉수와 얼음의 온도는 모두 3℃가 되어 얼음이 모두 녹아 버릴 것이다. 둘째, 열에너지는 두 물체 사이의 접촉 면을 통해서만 전달되며, 접촉 면이 클수록 전달되는 열에너지의 양은 커진다. 앞서 말한 상황에서는 열에너지가 냉수와 얼음이 맞닿는 면을 통해 전달되므로, 얼음이 냉수와 더 많이 맞닿을수록 전달되는 열에너지도 커진다. 따라서 열적 평형을 이루기 전까지 두 물체 간 전달되는 열에너지의 양은 둘 사이의 온도 차, 접촉 시간, 접촉 면의 면적과 비례함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얼음이 모두 녹아 물로 변하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이를 알아내기 위해서 3℃로 유지되는 냉수 속에 정육면체인 얼음 하나를 완전히 잠기게 해서 공기와 접촉할 수 없는 상황을 설정해 보자. 실험 결과 한 변의 길이가 1㎝인 정육면체 얼음이 완전히 녹는 시간은 약 2시간이다. 한편, 같은 냉수 속에 한 변의 길이가 1㎝인 정육면체 얼음 8개를 담근다고 해 보자. 8개의 얼음이 모두 물에 잠겨 있을 때에도 얼음이 완전히 녹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여전히 약 2시간이다. 왜냐하면 각각의 얼음 주변을 물이 완전히 둘러싸고 있어 각각의 얼음이 접촉한 면적은 모두 같으며, 각각의 얼음의 부피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즉, 물에서 각각의 얼음으로 전달되는 열에너지의 양은 물과 얼음의 접촉 면이 모두 동일하다면 개수가 얼마든 변함이 없다.
그런데 한 변의 길이가 1cm인 정육면체 8개를 붙여 한 변의 길이가 2cm인 정육면체 하나로 만들어 냉수 속에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때는 결과가 달라진다. 얼음덩어리 전체의 부피는 8㎤로 같지만, 물과 접촉한 정육면체 얼음의 총 면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 변의 길이가 1㎝인 정육면체 얼음 8개가 각각 물에 잠겨 있다고 할 때의 물에 접촉하는 얼음의 총 면적은 48㎠이지만, 이것을 붙여 각 변의 길이를 2㎝로 만든 정육면체 얼음이 물과 접촉하는 총 면적은 24㎠이다. 물과 접촉하는 면적이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에 같은 시간 동안 물에서 얼음으로 전달되는 열에너지의 양도 반으로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이 얼음이 다 녹는 데 필요한 시간은 2배만큼 늘어난 약 4시간가량이다.
이를 북극 해빙에 적용해 보자. 이때 해빙은 정육면체이며 공기와 접촉하지만 공기와 열에너지를 교환하지 않는다고 가정하자. 해빙은 바다 위에 떠 있기에 물에 잠긴 정육면체 얼음과 달리 바닥 부분만 바닷물과 접촉하고 있다. 그래서 바닷물의 열에너지는 해빙과 바닷물이 접촉하는 바닥 부분으로만 전달된다. 이는 정육면체의 여섯 면 중 한 면만 닿는 것이기 때문에, 같은 부피의 해빙은 물에 잠긴 정육면체 얼음덩어리보다 녹는 시간이 6배 오래 걸린다. 따라서 수명이 훨씬 긴 것이다.
북극 해빙이 쉽게 녹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부피와 면적 간의 관계 때문이다. 먼저 얼음이 녹는다는 것은 얼음의 부피가 없어진다는 것이기 때문에, 얼음의 부피가 클수록 녹아야 할 얼음의 양은 많다. 또한 얼음이 녹는 것은 앞서 살펴봤듯이 얼음이 물에 닿는 면적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물에 닿는 면적이 넓을수록 얼음이 녹는 양은 많다. 따라서 얼음이 녹는 시간은 부피가 클수록 길어지고 물에 닿는 면적이 클수록 짧아짐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길이가 L배 커지면 면적은 L2, 부피는 L3만큼 비례하여 커진다는 ‘제곱-세제곱 법칙’을 적용하면 얼음이 녹는 시간은 L배만큼 길어짐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변의 길이가 2㎝인 정육면체 얼음은 한 변의 길이가 1㎝인 정육면체 얼음보다 길이가 2배 길기 때문에 녹는 시간도 2배 긴 약 4시간가량이 된다. 또한 여기서 면적이 늘어나는 것보다 부피가 늘어나는 비율이 훨씬 큼도 알 수 있다. 북극 해빙의 면적은 수천만㎢가 넘지만 부피는 이보다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크기 때문에 해빙이 녹는 시간은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다. 결국 해빙은 실제 다양한 조건을 고려하더라도 물에 닿는 면이 한 면뿐이고, 닿는 면적에 비해 부피가 매우 크기 때문에 10℃가 넘는 북극의 한여름에도 다 녹지 않고 바다에 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집단생활을 하기 때문에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거나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규칙을 만든다. 여러 규칙 중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라 만들어지고 강제성을 가진 규칙을 법이라고 한다. 이때 강제성은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이 동의할 때만 발휘될 수 있다. 이러한 법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먼저 법은 행동의 결과를 중시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행동을 평가할 수 있고 그 변화도 확인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한다. 만약 법이 없다면 권력자나 국가 기관이 멋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법은 최소한의 간섭만 한다. 개인이 처리해도 되는 일까지 법이 간섭한다면 사람들은 숨이 막혀 평온하게 살기 힘들 것이다.
대표적인 법에는 민법과 형법이 있다. 민법은 국가 기관이 아닌, 사람들 간의 권리관계를 다루는 법률로서 재산 관계와 가족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근대 사회에서 형성된 민법의 원칙은 오늘날까지도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중요 원칙 중 하나는 개인의 사유 재산에 대해 절대적 지배를 인정하고 국가를 비롯한 단체나 개인은 다른 사람의 사유 재산 행사에 간섭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끼친 손해는 그 행위가 위법이고 동시에 고의나 과실에 의한 경우에만 책임을 진다는 원칙도 있다. 그런데 이 원칙들은 경제적 강자가 경제적 약자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하여 20세기에 들면서 제한이 생겼다. 그 결과 개인의 사유 재산에 대한 지배는 여전히 보장되지만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행사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수정된 원칙들이 적용되고 있다.
반면, 형법은 범죄와 형벌을 규정하는 법률로서 ‘죄형법정주의’라는 기본 원칙이 있다. 죄형법정주의는 범죄의 행위와 그 범죄에 대한 처벌을 미리 법률로 정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범죄 발생 당시에는 없었던 법이 나중에 생겨도 그것을 소급해서 적용할 수 없다. 또한 민법과 달리 어떤 사항을 직접 규정한 법규가 없을 때, 그와 비슷한 사항을 규정한 법규를 유추하여 적용할 수도 없다.
형법을 위반한 범죄가 발생하면, 먼저 수사 기관이 수사를 한다. 수사를 개시하는 단서로는 고소, 고발, 인지가 있는데, 이 중 고소는 피해자가 하는 반면 고발은 제3자가 한다. 일반적으로 범죄는 수사기관이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수사를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명예훼손죄, 폭행죄 등은 수사를 진행했더라도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다. 수사 결과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면 구속 영장을 받아 체포해 구속한다. 만약 범죄를 실행 중인 경우는 구속 영장 없이 체포 가능한데, 이 경우 48시간 이내에 구속 영장을 신청해야 하고, 법원은 신청서가 접수된 시간으로부터 48시간 이내에 구속 영장의 발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수사 결과 범죄 혐의가 인정되면 검사는 재판을 청구하는데 이를 기소라고 한다. 이때 검사는 피의자의 나이, 환경, 동기 등을 참작하여 기소를 하지 않을 수 있다. 기소로 재판 절차가 시작되면 법원은 사건을 심리*하여 범죄 사실이 확인된 경우 유죄를 선고한다. 유죄가 인정되면 법원이 형을 선고하고 집행 절차에 들어간다.
그런데 만약 동물이 위법한 행동을 하여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면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동물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 법에서는 인간 이외의 것들은 생명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두 물건으로 보는데 물건에는 법적 권리가 없다. 법적 권리가 없는 것은 의무와 책임도 없다. 그러므로 동물은 민, 형법상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다만 손해를 입은 사람은 민법에 따라 동물의 점유자*에게 배상을 받을 수 있다.
*피의자: 수사 기관으로부터 범죄의 의심을 받게 되어 수사를 받고 있는 자.
*심리: 재판의 기초가 되는 사실이나 법률적 판단을 심사하는 행위.
*점유자: 어떤 물건을 소유하고 사실상 지배하는 사람.

3월
18세기 경험론의 대표적인 철학자 흄은 ‘모든 지식은 경험에서 나온다.’라고 주장하면서, 이성을 중심으로 진리를 탐구했던 데카르트의 합리론을 비판하고 경험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철학 이론을 구축하려 하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경험만을 중시한 나머지, 그는 과학적 탐구 방식 및 진리를 인식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비판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흄은 서양 근대 철학사에서 극단적인 회의주의자로 평가받는다.
흄은 지식의 근원을 경험으로 보고 이를 인상과 관념으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인상은 오감(五感)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감각이나 감정 등을 말하고, 관념은 인상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을 말한다. 가령, 혀로 소금의 ‘짠맛’을 느끼는 것은 인상이고, 머릿속으로 ‘짠맛’을 떠올리는 것은 관념이다. 인상은 단순 인상과 복합 인상으로 나뉘는데, 단순 인상은 단일 감각을 통해 얻은 인상을, 복합 인상은 단순 인상들이 결합된 인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짜다’는 단순 인상에, ‘짜다’와 ‘희다’ 등의 단순 인상들이 결합된 소금의 인상은 복합 인상에 해당한다. 그리고 단순 인상을 통해 형성되는 관념을 단순 관념, 복합 인상을 통해 형성되는 관념을 복합 관념이라 한다. 흄은 단순 인상이 없다면 단순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런데 ‘황금 소금’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에 대한 복합 인상은 없지만, ‘황금’과 ‘소금’ 각각의 인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복합 관념이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복합 관념은 복합 인상이 없더라도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흄은 ‘황금 소금’처럼 인상이 없는 관념은 과학적 지식이 될 수 없다고 말하였다.
흄은 과학적 탐구 방식으로서의 인과 관계에 대해서도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인과 관계란 시공간적으로 인접한 두 사건이 반복해서 발생할 때 갖는 관찰자의 습관적인 기대에 불과하다고 말하였다. 즉,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라는 속담이 의미하는 것처럼 인과 관계는 필연적 관계임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까마귀가 날아오르는 사건’과 ‘배가 떨어지는 사건’을 관찰할 수는 있지만, ‘까마귀가 날아오르는 사건이 배가 떨어지는 사건을 야기했다.’라는 생각은 추측일 뿐 두 사건의 인과적 연결 관계를 관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인과 관계란 시공간적으로 인접한 두 사건에 대한 주관적 판단에 불과하므로, 이런 방법을 통해 얻은 과학적 지식이 필연적이라는 생각은 적합하지 않다고 흄은 비판하였다.
또한 흄은 진리를 알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전통적인 진리관에서는 진술의 내용이 사실(事實)과 일치할 때 진리라고 본다. 하지만 흄은 진술 내용이 사실과 일치하는지의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소금이 짜다.’라는 진술이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실제 소금이 짜야 한다. 그런데 흄에 따르면 우리는 감각 기관을 통해서만 세상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소금이 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소금이 짜다.’라는 진술은 ‘내 입에는 소금이 짜게 느껴진다.’라는 진술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비록 경험을 통해 얻은 과학적 지식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진리인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흄의 입장이다.
이처럼 흄은 경험론적 입장을 철저하게 고수한 나머지, 과학적 지식조차 회의적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성만 중시했던 당시 철학 사조에 반기를 들고 경험을 중심으로 지식 및 진리의 문제를 탐구했다는 점에서 근대 철학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이 등장하면서 회화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再現)하는 역할을 사진에 넘겨주게 되었고, 그에 따라 화가들은 회화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19세기 말 등장한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는 전통적인 회화에서 중시되었던 사실주의적 회화 기법을 거부하고 회화의 새로운 경향을 추구하였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색이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화하기 때문에 대상의 고유한 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인상주의 화가 모네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회화적 전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빛에 따라 달라지는 사물의 색채와 그에 따른 순간적 인상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모네는 대상의 세부적인 모습보다는 전체적인 느낌과 분위기, 빛의 효과에 주목했다. 그 결과 빛에 의한 대상의 순간적 인상을 포착하여 대상을 빠른 속도로 그려 내었다. 그에 따라 그림에 거친 붓 자국과 물감을 덩어리로 찍어 바른 듯한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대상의 윤곽이 뚜렷하지 않아 색채 효과가 형태 묘사를 압도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기법은 그가 사실적 묘사에 더 이상 치중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네 역시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표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이전 회화에서 추구했던 사실적 표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은 재현 위주의 사실적 회화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는 새로운 방식을 추구하였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 세잔은 “회화에는 눈과 두뇌가 필요하다. 이 둘은 서로 도와야 하는데, 모네가 가진 것은 눈뿐이다.”라고 말하면서 사물의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까지 찾아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회화란 지각되는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본질을 구현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세잔은 하나의 눈이 아니라 두 개의 눈으로 보는 세계가 진실이라고 믿었고, 두 눈으로 보는 세계를 평면에 그리려고 했다. 그는 대상을 전통적 원근법에 억지로 맞추지 않고 이중 시점을 적용하여 대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려 하였고, 이를 한 폭의 그림 안에 표현하였다. 또한 질서 있는 화면 구성을 위해 대상의 선택과 배치가 자유로운 정물화를 선호하였다.
세잔은 사물의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그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결과 자연을 관찰하고 분석하여 사물은 본질적으로 구, 원통, 원뿔의 단순한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를 회화에서 구현하기 위해 그는 이중 시점에서 더 나아가 형태를 단순화하여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려 하였고, 윤곽선을 강조하여 대상의 존재감을 부각하려 하였다. 회화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그의 이러한 화풍은 입체파 화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조세는 국가의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경제 주체인 기업과 국민들로부터 거두어들이는 돈이다. 그런데 국가가 조세를 강제로 부과하다 보니 경제 주체의 의욕을 떨어뜨려 경제적 순손실을 초래하거나 조세를 부과하는 방식이 공평하지 못해 불만을 야기하는 문제가 나타난다. 따라서 조세를 부과할 때는 조세의 효율성과 공평성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조세의 효율성에 대해서 알아보자. 상품에 소비세를 부과하면 상품의 가격 상승으로 소비자가 상품을 적게 구매하기 때문에 상품을 통해 얻는 소비자의 편익*이 줄어들게 되고, 생산자가 상품을 팔아서 얻는 이윤도 줄어들게 된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얻는 편익이 줄어드는 것을 경제적 순손실이라고 하는데 조세로 인하여 경제적 순손실이 생기면 경기가 둔화될 수 있다. 이처럼 조세를 부과하게 되면 경제적 순손실이 불가피하게 발생하게 되므로, 이를 최소화하도록 조세를 부과해야 조세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조세의 공평성은 조세 부과의 형평성을 실현하는 것으로, 조세의 공평성이 확보되면 조세 부과의 형평성이 높아져서 조세 저항을 줄일 수 있다. 공평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준으로는 편익 원칙과 능력 원칙이 있다. 편익 원칙은 조세를 통해 제공되는 도로나 가로등과 같은 공공재*를 소비함으로써 얻는 편익이 클수록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공공재를 사용하는 만큼 세금을 내는 것이므로 납세자의 저항이 크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공공재의 사용량을 측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고 조세 부담자와 편익 수혜자가 달라지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능력 원칙은 개인의 소득이나 재산 등을 고려한 세금 부담 능력에 따라 세금을 내야 한다는 원칙으로 조세를 통해 소득을 재분배하는 효과가 있다. 능력 원칙은 수직적 공평과 수평적 공평으로 나뉜다. 수직적 공평은 소득이 높거나 재산이 많을수록 세금을 많이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특정 세금을 내야 하는 모든 납세자에게 같은 세율을 적용하는 비례세나 소득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점점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누진세를 시행하기도 한다.
수평적 공평은 소득이나 재산이 같을 경우 세금도 같게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런데 수치상의 소득이나 재산이 동일하더라도 실질적인 조세 부담 능력이 달라, 내야 하는 세금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소득이 동일하더라도 부양가족의 수가 다르면 실질적인 조세 부담 능력에 차이가 생긴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여 공평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에서는 공제 제도를 통해 조세 부담 능력이 적은 사람의 세금을 감면해 주기도 한다.

*편익: 편리하고 유익함.
*공공재: 모든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

초고층 건물은 높이가 200미터 이상이거나 50층 이상인 건물을 말한다. 이런 초고층 건물을 지을 때는 건물에 작용하는 힘을 고려해야 한다. 건물에 작용하는 힘에는 수직 하중과 수평 하중이 있다. 수직 하중은 건물 자체의 무게로 인해 땅 표면에 수직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이고, 수평 하중은 바람이나 지진 등에 의해 건물에 가로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이다.
수직 하중을 견디기 위해서 고안된 가장 단순한 구조는 보기둥 구조이다. 보기둥 구조는 기둥과 기둥 사이를 가로지르는 수평 구조물인 보를 설치하고 그 위에 바닥판을 놓은 구조이다. 보기둥 구조에서는 설치된 보의 두께만큼 건물의 한 층당 높이가 높아지지만, 바닥판에 작용하는 하중이 기둥에 집중되지 않고 보에 의해 분산되기 때문에 수직 하중을 잘 견딜 수 있다.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수직 하중과 달리 수평 하중은 사방에서 작용하는 힘이기 때문에 초고층 건물의 안전에 미치는 영향이 수직 하중보다 훨씬 크다. 수평 하중은 초고층 건물의 안전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인데, 바람은 건물에 작용하는 수평 하중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건물이 많은 도심에서는 넓은 공간에서 좁은 공간으로 바람이 불어오면서 풍속이 빨라지는 현상이 발생해 건물에 작용하는 수평 하중을 크게 만든다. 그리고 바람에 의해 공명 현상*이 발생하면 건물이 매우 크게 흔들리게 되어 건물의 안전을 위협하게 된다.
건물이 수평 하중을 견디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뼈대에 해당하는 보와 기둥을 아주 단단하게 붙여야 하지만, 초고층 건물의 경우 이것만으로는 수평 하중을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코어 구조이다. 코어는 빈 파이프 모양의 철골 콘크리트 구조물을 건물 중앙에 세운 것으로, 코어에 건물의 보와 기둥들을 강하게 접합한다. 이렇게 하면 외부에서 작용하는 수평 하중에도 불구하고 코어로 인해 건물이 크게 흔들리지 않게 된다. 그런데 초고층 건물은 그 높이가 높아질수록 수평 하중이 커지고 그에 따라 코어의 크기도 커져야 한다. 코어 구조는 가운데 빈 공간이 있어 공간 활용의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현대의 초고층 건물은 코어에 승강기나 화장실, 계단, 수도, 파이프 같은 시설을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초고층 건물의 높이가 점점 높아지면 코어 구조만으로는 수평 하중을 완벽하게 견뎌 낼 수 없다. 그래서 아웃리거-벨트 트러스 구조를 사용하여 코어 구조를 보완한다. 아웃리거-벨트 트러스 구조에서 벨트 트러스는 철골을 사용하여 건물의 외부 기둥들을 삼각형 구조의 트러스로 짜서 벨트처럼 둘러 싼 것으로 수평 하중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삼각형 구조의 트러스로 외부 기둥들을 연결하면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이 철골 접합부를 통해 전체적으로 분산되기 때문에 코어에 무리한 힘이 가해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그리고 아웃리거는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건물 외벽에 설치된 벨트 트러스를 내부의 코어와 견고하게 연결한 것으로, 아웃리거와 벨트 트러스는 필요에 따라 건물 중간중간에 여러 개가 설치될 수 있다. 그런데 아웃리거는 건물 내부를 가로지를 수밖에 없어서 효율적인 공간 구성에 방해가 된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아웃리거를 기계 설비층에 설치하거나 층과 층 사이, 즉 위층 바닥과 아래층 천장 사이에 설치하기도 한다.
초고층 건물은 특수한 설비를 이용하여 바람으로 인한 건물의 흔들림을 줄이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TLCD, 즉 동조 액체 기둥형 댐퍼이다. TLCD는 U자형 관 안에 수백 톤의 물이 채워진 것으로 초고층 건물의 상층부 중앙에 설치한다. 바람이 불어 건물이 한쪽으로 기울어져도 물은 관성의 법칙에 따라 원래의 자리에 있으려 하기 때문에 건물이 기울어진 반대 쪽에 있는 관의 물 높이가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그 관의 아래로 작용하는 중력도 커지고, 이로 인해 건물을 기울어지게 하는 힘을 약화시켜 흔들림이 줄어들게 된다. 물이 무거울수록 그리고 관 전체의 가로 폭이 넓어질수록 수평 방향의 흔들림을 줄여 주는 효과가 크다. 하지만 그에 따라 수직 하중이 증가하므로 TLCD는 수평 하중과 수직 하중을 함께 고려하여 설계해야 한다.

*공명 현상:진동체가 그 고유 진동수와 같은 진동수를 가진 외부의 힘을 받아 진폭이 뚜렷하게 증가하는 현상.

2017학년도
11월
길거리에서 넘어져 무릎을 다친 사람이 “아!”라고 소리를 지른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통증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타인의 의도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을 ‘공감’이라고 한다. 공감은 인간 생활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공감으로 인해 사람은 소외감을 극복할 수 있고, 서로 협력할 수 있으며, 이타적인 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20세기까지 공감은 ‘이론-이론(Theory-Theory)’과 ‘모의 이론(Simulation Theory)’을 통해 주로 설명되어 왔다. 이론-이론은, 사람이 세상을 접하면서 마음의 작동 방식에 대한 개념적 이론을 갖게 되는데 이를 바탕으로 논리적 추론을 함으로써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사람은 누구나 넘어졌던 경험이 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자신이 다쳤다는 사건, 통증을 느낀다는 마음, 소리를 지른다는 표현, 이 세 가지 사이에는 인과적 법칙이 있다는 개념적 이론을 갖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넘어져 다친 타인이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관찰했을 때 개념적 이론에 근거하여 그가 통증을 느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이론-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4세부터 마음의 작동 방식에 대한 개념적 이론을 갖게 되어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를 통해 비로소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모의 이론은 자신이 타인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어떠할지를 상상함으로써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모의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타인의 상황에 자신을 투사시킨 후 그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 상태를 상상하는 모의실험을 하고, 그로 인해 얻은 생각을 다시 타인에게 투사함으로써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넘어져 다친 사람이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았을 때, 그 상황에서 자신이라면 어떤 마음이었을지를 상상으로 재현해 봄으로써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동일한 상황에서는 모의실험을 한 자신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이 서로 유사하다는 것과, 타인의 마음보다 자신의 마음에 접근하기가 더 쉽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론-이론과 모의 이론은 한동안 상호 배타적인 논쟁을 해 왔다. 모의 이론 측에서는 마음의 작동 방식에 대한 개념적 이론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하였고, 이론-이론 측에서는 모의실험이 타인의 마음을 정확하게 재현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최근에는 두 이론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리버먼은 두 이론을 통합한 두 체계 이론을 내세운다. 리버먼에 따르면 사람은, 모의 이론에서 말하는 모의실험으로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거울 체계’뿐만 아니라 이론-이론에서 말하는 마음의 작동 방식에 대한 개념적 이론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심리화 체계’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런데 “타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타인의 상황을 곧바로 이해할 수 있을 때는 거울 체계가 작동하고, “타인이 왜 그렇게 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추상적 이유를 알고자 할 때는 심리화 체계가 작동한다. 다시 말해 낮은 수준에서 타인의 행위를 이해하기 위해 ‘무엇’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순간에는 거울 체계가, 높은 수준에서 타인의 신념이나 동기를 이해하기 위해 ‘왜’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순간에는 심리화 체계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리버먼의 주장에서 주목할 점은 두 체계의 서로 다른 작동 방식과 두 체계 사이의 순차적인 관계이다. 한 사람이 타인의 행위를 관찰할 경우 거울 체계가 무의식적이면서 자동적으로 작동한다. 이후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 생각에 몰입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심리화 체계가 작동한다. 이는 어떤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 ‘왜’ 그렇게 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에 선행하면서 논리적 추론의 전제가 됨을 의미한다.
다만, 리버먼은 더욱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공감이 완성되지 않는다면서 진정한 공감은 거울 체계와 심리화 체계의 작동을 바탕으로 정서적 일치와 실천적 동기까지 나아가야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즉, 타인의 감정 상태와 동일한 느낌을 가지게 되고, 이후 타인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형성되었을 때 비로소 공감이 완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청진기를 통해 들리는 심장음*으로 환자의 상태를 점검한다. 심장은 우리 몸에 혈액을 안정적으로 순환시키는 기관으로 펌프와 같은 작용을 하는데, 매우 짧은 시간에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이러한 심장의 주기적인 리듬을 ‘심장 박동’이라고 하며 이 과정에서 심장음이 발생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심장 박동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나며, 심장음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심장의 구조와 혈액의 순환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심장은 [그림]과 같이 우심방과 우심실, 좌심방과 좌심실로 구성되어 있다. 각 심방과 심실 사이에는 방실판막이 있고, 우심실과 폐동맥 사이, 좌심실과 대동맥 사이에는 동맥판막이 있다. 여기서 판막은 혈액을 한 방향으로만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마치 한쪽으로만 열리는 출입문에 비유될 수 있다. 방실판막은 심방에서 심실로만 열리는데, 심방의 압력이 심실의 압력보다 높을 경우에만 열린다. 동맥판막 역시 압력의 차이로 인해 심실에서 동맥으로만 열린다. 그리고 혈액의 순환 과정은 다음과 같다. 혈액은 몸 전체의 세포와 조직에 산소를 공급하고 이들로부터 이산화탄소를 받은 후 우심방, 우심실을 거쳐 폐동맥을 통해 폐로 이동된다. 이후 폐에서 산소를 공급받은 혈액은 좌심방으로 되돌아와 좌심실을 거쳐 대동맥을 통해 몸 전체로 나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심실과 좌심실은 동시에 수축됨으로써 같은 양의 혈액을 폐나 몸 전체로 내보내는데, 혈액을 폐로 보내는 것보다 몸 전체로 보낼 때 더 강한 힘이 필요하므로 좌심실 벽이 우심실 벽보다 더 두껍다.
심장의 박동은 심실 확장기, 등용적 심실 수축기, 심실 수축기를 포함하는 수축 단계와 등용적 심실 이완기, 심실 채우기를 포함하는 이완 단계를 반복적으로 거친다. 이 과정은 약 0.8초를 주기로 하여 좌심방과 좌심실, 우심방과 우심실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먼저 동방결절*에서 발생한 전기 신호가 심방의 근육으로 전달되면 심방이 수축된다. 이로 인해 심방의 압력이 심실의 압력보다 조금 높아지므로 심방에서 심실로 혈액이 흘러 심실의 크기가 지속적으로 커지는데 이를 심실 확장기라고 한다. 이 시기에는 심방을 수축시킨 전기 신호가 방실판막과 심방 벽을 진동시켜 ‘제4심장음’이 발생한다. 그리고 동방결절에서 발생한 그 전기 신호가 방실결절*을 통해 심실 전체로까지 전달되면 심실이 수축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심실의 압력이 증가하여 심방의 압력보다 높아지므로 방실판막이 닫힌다. 그런데 심실의 압력은 동맥의 압력보다 여전히 낮기 때문에 동맥판막은 닫혀 있다. 따라서 수축으로 인한 심실의 압력 증가가 일정 수준에 이르기 전까지는 4개의 판막은 모두 닫혀 있다. 이는 혈액의 이동이 순간적으로 중지된 상태이므로 심실의 크기는 일정하게 유지되는데 이를 등용적 심실 수축기라고 한다. 이 시기에는 방실판막이 닫힐 때 길고 둔한 소리가 발생하는데 이를 ‘제1심장음’이라고 한다. 수축 단계의 마지막 과정인 심실 수축기는, 계속 증가해 온 심실의 압력이 동맥의 압력보다 높아지게 되어 동맥판막이 열리고 혈액이 심실에서 몸 전체나 폐로 빠져나가는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에는 심실의 압력이 심방의 압력보다 높기 때문에 방실판막은 여전히 닫혀 있고, 혈액은 심실 밖으로 빠져나갔으므로 심실의 크기는 이전 시기보다 작아진다.
전기 신호로 인한 수축 단계가 끝나고 심실이 이완되면 심실의 압력이 동맥의 압력보다 낮아져 동맥판막이 닫히게 된다. 그런데 심실의 압력은 심방의 압력보다 여전히 높으므로 방실판막은 열리지 않는다. 따라서 이완으로 인한 심실의 압력 감소가 일정 수준에 이르기 전까지는 4개의 판막이 모두 닫혀 있다. 이 상태에서는 등용적 심실 수축기처럼 심실의 크기가 일정하게 유지되는데 이를 등용적 심실 이완기라고 한다. 이 시기에는 동맥판막이 닫힐 때 ‘제1심장음’보다 짧고 예리한 소리가 발생하는데 이를 ‘제2심장음’이라고 한다. 이후 심실이 이완되면서 계속 감소해 온 심실의 압력이 심방의 압력보다도 낮아지면 방실판막이 열려 심실로 혈액이 조금씩 들어오는데 이를 심실 채우기라고 한다. 이때 방실판막이 열리면서 ‘제3심장음’이 발생한다.
이처럼 심장의 박동은 심장의 수축과 이완에 따른 압력 또는 크기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시기별로 일정한 심장음을 발생시킨다는 특성이 있다. ‘제1심장음’과 ‘제2심장음’은 일반적으로 의사들이 청진기를 통해 분명하게 들을 수 있다. ‘제3심장음’은 그 소리가 약해서 소아나 청소년들에게서만 들리며, ‘제4심장음’은 음정이 낮고 짧아 드물게 들린다. 만약 판막이나 혈관 등에 이상이 생길 경우 정상적인 심장음 이외의 소리가 발생하고 이를 통해 질병이 감지될 수 있는 것이다.

* 심장음: 심장 기능에 의해 생기는 음.
* 동방결절: 전기 신호를 생성하여 심장을 수축시킴으로써 심장 박동의 리듬을 결정하는 심장의 한 부분.
* 방실결절: 특수 심장 근육의 하나로 동방결절에서 진행된 흥분을 심실 근육 쪽으로 전달하는 기능을 가진 심장의 한 부분.

경제학에서는 디지털화되어 있는 상품과 아날로그 형태로 존재하나 디지털화될 수 있는 상품, 이 모두를 ‘정보재’라 일컫는다. 예를 들어 각종 컴퓨터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영화, 방송 등의 콘텐츠 및 이들을 디지털화한 것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정보재는 어떠한 특성이 있으며, 생산자는 어떤 전략으로 정보재를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있을까? 이를 정보재의 하나인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수요 측면의 특성으로 정보재를 사용하는 소비자에게서 나타나는 ‘잠김효과’를 들 수 있다. 잠김효과란 어떤 정보재를 사용하기 시작한 소비자가 그것에 익숙해지면 다른 정보재보다 이미 사용하던 것을 계속 사용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이러한 경향은 새로운 정보재를 이용하려면 그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많은 돈, 노력, 시간 등의 ‘전환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물론 치약이나 비누 등 일반적인 상품에도 잠김효과는 나타난다. 하지만 정보재는 그 효과가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가령 일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의 경우 의무 사용 기간을 지키지 않았을 때 지불해야 하는 위약금과 같은 것까지도 전환비용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정보재의 이러한 수요 측면의 특성을 고려하여 새로운 정보재를 판매하려는 기업은, 소비자가 그 정보재 사용에 익숙해지도록 일정 기간 소비자에게 상품을 무료로 사용하게 하거나 상품의 일부 기능만을 제공하는 판매 전략을 사용한다. 이는 기업이 소비자를 배려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수요 측면에서 드러나는 정보재의 특성에 맞는 판매 전략을 쓰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음으로 공급 측면에서, 정보재는 원본의 개발에 드는 초기 고정비용*은 크지만 디지털로 생산·유통되기 때문에 원본의 복제를 통한 재생산에 투입되는 추가적인 한계비용*은 매우 작다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원본을 개발하지 않고 재생산만 하는 신규 기업이 시장에 진입할 경우 적은 비용으로 원본의 재생산이 가능하다. 원본을 개발․재생산하는 기업과 원본을 재생산만 하는 기업들이 있고 이들이 동일한 정보재로 시장에서 경쟁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러한 상황에서 가격 인하 경쟁이 일어나 정보재 가격이 낮아지면, 원본을 개발․재생산하는 기업은 초기 고정비용을 회수할 수 없어 이윤을 남길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지적재산권, 상표권, 특허권 등과 같은 법적 제도를 통해 정보재 원본을 개발․재생산하는 기업을 보호하기도 한다.
한편, 법제도의 보호를 받게 된 기업은 정보재의 소비자를 고려하여 판매 전략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는 정보재에 대한 소비자의 기호나 가치에 따른 ‘상품차별화’나 ‘가격차별화’ 전략으로 나타나게 된다. 기업은 시장의 상황에 따라 두 전략을 각각 혹은 동시에 사용하기도 한다. 상품차별화 전략에는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상품의 내용이나 기능을 약간씩 다르게 만든 ‘버전(version)’ 등을 활용하는 방식이 있다. 그리고 가격차별화 전략은 동일한 정보재라도 소비자에 따라 가치가 달리 평가되는 경향을 활용하는 방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생산자는 소비자의 정보를 사전에 최대한 파악하여, 모든 소비자에게 동일한 가격을 책정하기보다는 소비자가 평가하는 정보재의 가치에 따른 최대 지불 의사*를 기준으로 정보재의 가격을 결정하게 된다. 가령 소비자 사이에 재판매가 불가능한 시장에서 소비자의 유형별 정보를 사전에 알고 있는 기업이 어떤 정보재를 판매하고, 각 소비자는 가격이 자신의 최대 지불 의사 금액 이하일 때 반드시 구입하며 최대 구입 횟수는 1회라고 가정한다. 그 정보재의 초기 고정비용은 1,000원, 한계비용은 0원이며, 소비자 유형에는 갑과 을이 존재하고, 최대 지불 의사 금액은 갑 유형이 800원, 을 유형이 400원이다. 만약 생산자가 두 유형의 최대 지불 의사 금액 중 하나만 선택해서 가격을 책정할 경우, 즉 800원 혹은 400원으로 책정한다고 하면 정보재를 갑 유형만 구매하는 경우와, 갑과 을 유형이 모두 구매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때 두 경우 각각 800원의 수입만을 올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생산자가 각각의 최대 지불 의사 금액을 기준으로 가격을 다르게 책정해 정보재를 각각 판매한다면, 두 유형으로부터 받은 금액의 합은 1,200원으로 초기 고정비용인 1,000원을 초과하게 되어 생산자에게 200원의 이윤이 발생하게 된다.

* 고정비용: 생산량의 변동 여하에 관계없이 불변적으로 지출되는 비용.
* 한계비용: 생산물 한 단위를 추가로 생산할 때 필요한 총비용의 증가분.
* 최대 지불 의사: 어떤 품질의 어느 물건에 대해서는 최대 얼마까지 지불하고 사겠다는 의도.

9월
종이가 개발되기 전, 인류는 동물의 뼈나 양피지 등에 필요한 정보를 기록해 왔다. 하지만 담긴 정보량에 비해 부피가 방대하였고 그로 인해 보존과 가독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종이의 개발로 부피가 줄어들면서 종이로 된 책이 주된 기록 매체가 되었고 책의 보존성과 가독성, 휴대성 등을 더욱 높이기 위한 제책 기술의 발달이 요구되었다.
서양은 종이 책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제지 기술이 동양에 비해 미숙했고 질 나쁜 종이로 책을 제작해야 했기에 책의 내구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이 필요했다. 그래서 표지에 가죽을 씌우거나 나무판을 덧대는 방법을 개발했는데 이를 양장(洋裝)이라 한다. 양장은 내지 묶기와 표지 제작을 따로 한 후에 합치는 방법이다. 내지는 실매기 방식을 활용해 실로 단단히 묶고, 표지는 판지에 천이나 가죽 등의 마감 재료를 접착하여 만든다. 표지와 내지를 결합할 때는 책등*과 결합되는 내지 부분에 접착제를 발라 책등에 붙인다. 또한 내지보다 두껍고 질긴 종이인 면지를 표지와 내지 사이에 접착제로 붙여 이어줌으로써 책의 내구성을 높인다. 표지 부착 후에는 가열한 쇠막대로 앞뒤 표지의 책등 쪽 가까운 부분을 눌러 홈을 만들어 책의 펼침성이 좋도록 한다.
18세기 말에 유럽은 산업혁명으로 인쇄가 기계화되면서 대량 생산을 위한 기반이 갖추어지고, 경제의 발전으로 일부 계층에만 국한됐던 독서 인구가 확대되어 제책 기술도 대량생산이 가능한 방식으로 발전해야 했다. 이를 위해 간편하게 철사를 사용해 매는 제책 기술이 개발되었는데 처음에는 ‘옆매기’라 불리는 기술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옆매기는 책장 넘김이 용이하지 않아 ‘가운데매기’라 불리는 중철(中綴)이 주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중철은 인쇄지를 포개놓고 책장이 접히는 한가운데 부분을 ㄷ자형 철침을 이용해 매었는데, 보통 2개의 철침으로 표지와 내지를 고정하지만 표지나 내지가 한가운데서부터 떨어지는 경우가 잦아 철침을 4개로 박기도 하였다. 중철은 광고지, 팸플릿 등 오랜 보관이 필요 없거나 분량이 적은 인쇄물에 사용해 왔으며, 중철된 책은 쉽게 펼치거나 넘길 수 있고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간편하게 휴대할 수도 있다.
20세기 중반에는 화학 접착제가 개발되며 무선철(無線綴)이라는 제책 기술이 등장했다. 이름처럼 실이나 철사 없이 화학 접착제만으로 책을 묶는 방식이다. 이 방법은 자동화가 가능해 대량 생산에 더욱 적합했고, 생산 단가가 낮아지면서 판매 가격을 낮출 수 있어 책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습기경화형 우레탄 핫멜트가 개발되면서 개발 초보다 내구성이 더욱 강화된 책을 만들게 되었다. 무선철 기술은 지금도 계속 보완, 발전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오늘날 대부분의 책은 무선철 방식으로 제작되고 있다.
  • 책등: 책을 매어 놓은 쪽의 표지 부분
18세기 조선에서는 진경산수화가 유행하였다. 진경산수화는 우리나라의 산하를 직접 답사하고 화폭에 담은 산수화이다. 무엇보다 진경(眞景)은 대상의 겉모습만을 묘사하지 않고, 대상의 본질을 표현한 그림임을 강조한 말이다. 하지만 대상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작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인 겸재 정선은 중국의 화법인 남종문인화 기법을 바탕으로 우리 산하를 주체적으로 그려내었다. 성리학에 깊은 이해를 가졌던 겸재는 재구성과 변형, 즉 과감한 생략과 과장으로 학문적 이상과 우리의 산하에 대한 감흥을 표현했다. 또한 겸재는 음과 양의 조화를 화폭에 담고자 했다.
<구룡폭도>에서 물줄기가 내 눈 앞에서 쏟아지는 듯한 감흥을 표현하기 위해 겸재는 앞, 위, 아래에서 본 것을 모두 한 그림에 담아냈다. 폭포수를 강조하기 위해 물줄기를 길고 곧게 내려 긋고 위에서 본 물웅덩이를 과장되게 둥글게 변형하였다. 그림을 보는 이들이 폭포수의 감흥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실재하는 폭포 너머의 봉우리를 과감히 생략했다. 절벽은 서릿발 같은 필선을 통해 강한 양의 기운을 표현한 반면 절벽의 나무는 먹의 번짐을 바탕으로 한 묵법을 통해 음의 기운을 그려냈다.
진경산수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이는 단원 김홍도이다. 국가의 공식 행사를 사실대로 기록하는 화원이었던 단원은 계산된 구도로 전대에 비해 더욱 치밀하고 박진감 넘치는 화풍을 보였다. 그는 초상화에 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인물의 정신까지 담아내려고 한 것처럼 대상의 완벽한 재현으로 자연에서 느낀 감흥에 충실하려고 하였다. 특히 중국을 거쳐 들어온 서양화법 중 원근법, 투시법 등을 수용해 보다 사실적인 경치를 그려내었다.
정조의 명을 받아 단원이 그린 <구룡연>은 금강산의 구룡폭포를 직접 찾아가 그 모습을 담은 것이다. 흘러내리는 물줄기, 폭포 너머로 보이는 봉우리, 폭포 앞의 구름다리까지 사진을 찍은 듯이 생략 없이 그렸다. 과장과 꾸밈이 없이 보이는 그대로의 각도로 그린 것이다. 그리고 절벽 바위 하나하나의 질감을 나타내기 위해 선의 굵기와 농담에 변화를 주어 입체감 있게 표현하였다.
진경산수화는 우리나라의 산천이 곧 진경이라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담고 있는 소중한 전통인 것이다. 우리 산하를 진경으로 표현함에는 우리 국토에 대한 애정,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담겨 있다. 이러한 진경산수화는 19세기 여러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금리는 이자 금액을 원금으로 나눈 비율로 ‘이자율’이라고 한다. 자금의 수요자에게는 자금을 빌린 대가로 지급하는 비용이 발생하며, 공급자에게는 현재의 소비를 희생한 대가로 이자 수익이 생긴다. 금융시장에서 금리는 자금의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금리는 일반적으로 ‘명목금리’와 ‘실질금리’로 구분한다. 명목금리는 금융 자산의 액면 금액에 대한 금리이며, 실질금리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금리로 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빼면 알 수 있다. 물가상승률이 높아지면 돈의 실제 가치인 실질금리는 낮아지고,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면 실질금리는 높아진다. 예를 들어 1년 만기 정기예금의 명목금리가 6%인데 1년 사이 물가가 7% 올랐다면, 실질금리는 -1%로 예금 가입자는 돈의 가치인 구매력에서 손해를 본 셈이다.
그리고 명목금리보다는 일정 기간 실현된 실제의 이자 수익률인 ‘실효수익률’을 따져 보아야 한다. 실효수익률은 이자의 계산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보통 ‘만기 1년의 연리 6%’는 돈을 12개월 동안 은행에 예치할 경우 6%의 이자가 붙는다는 의미이다. 정기예금은 목돈인 100만 원을 납입하고 1년 뒤에 이자로 6만 원을 받지만, 매월 일정액을 불입해 목돈을 만드는 정기적금은 계산법이 다르다. 정기적금은 첫째 달에 불입한 10만 원은 만기까지 12개월 분 6%의 이자가 붙지만, 둘째 달에 불입한 10만 원은 11개월의 이자 5.5%만 받는다. 돈의 예치 기간이 줄면 이자도 줄어 실효수익률은 3.9%에 불과하다. 이런 이자 계산의 방식은 대출금리도 유사하다. 1년 뒤에 원금을 한 번에 갚는다면, 대출금리가 연 6%일 경우 6만 원을 이자로 내야 한다. 하지만 원금을 12개월로 나누어 갚으면, 줄어든 원금만큼 매월 이자도 적어진다.
또 예금이나 적금의 기간이 길어서 이자를 여러 번 받는다면, 매번 지급된 이자가 원금이 되어서 이자에 이자가 붙는 복리인지, 원금에 대한 이자만 붙는 단리인지도 살펴야 실효수익률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이자는 금융소득이어서 소득세 14.0%와 주민세 1.4%를 내야 한다는 것도 생각해야만 실제로 내 손에 들어오는 이자 금액이 나온다.
결국 돈을 어떻게 쓰고, 모으고, 굴리고, 빌릴지의 선택 상황에서 정확한 계산을 해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 현재의 소비를 늦추고 미래를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자산을 안전하게 형성할 필요가 있다. 금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계산이 현재의 소비와 미래의 소비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주 탐사선이 지구에서 태양계 끝까지 날아가기 위해서는 일정 속도 이상에 이르러야 한다. 그러나 탐사선의 추진력만으로는 이러한 속도에 도달하기 어렵다. 추진력을 마음껏 얻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추진체가 달린 탐사선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탐사선을 다른 행성에 접근시키는 ‘스윙바이(Swing-by)’를 통해 속도를 얻는다. 스윙바이란, 말 그대로 탐사선이 행성에 잠깐 다가갔다가 다시 멀어지는 것이다. 탐사선이 행성에 다가갔다가 멀어지는 것만으로 어떻게 속도를 얻을 수 있는지 그 원리에 대해 알아보자.
스윙바이의원리를이해하기 위해서는 행성이 정지한 채로 있지 않고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점을 떠올려야한다. 그리고 뒤에서 바람이 불면 달리기 속도가 빨라지듯이 외부의 영향으로 물체의 속도가 변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탐사선을 행성에 접근시켜 행성의 공전을 이용하는 스윙바이는 그림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탐사선이 공전하는 행성에 접근하여 중력의 영향권인 중력장에 진입할 때에는 행성의 공전 방향과 탐사선의 진입 방향이 서로 달라 탐사선의 속도 증가는 크지 않다. 그런데 탐사선이 곡선 궤도를 그리며 방향을 바꾸어 행성의 공전 방향에 가까워지면 탐사선의 속도는 크게 증가된다. 왜냐하면 탐사선이 행성에서 멀어지는 방향이 행성의 공전 방향에 가까울수록 스윙바이를 통한 속도 증가의 효과는 크기 때문이다.
탐사선의 속도 증가에 행성의 중력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탐사선이 행성에 다가가다 보면 행성이 끌어당기는 중력의 영향으로 탐사선의 속도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윙바이를 마친 후 탐사선의 ‘속도의 크기’ 변화에 행성의 중력이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탐사선이 행성 중력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면서 중력의 영향으로 얻은 만큼의 속도를 잃기 때문이다. 탐사선을 롤러코스터에 비유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롤러코스터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속도가 증가하지만, 가장 낮은 지점을 지나 다시 위로 올라가면서 속도가 감소한다.
스윙바이는 행성의 공전 속도를 훔쳐오는 것이다. 그런데 운동량 보존 법칙에 따라 스윙바이를 통해 탐사선과 행성이 주고받은 운동량은 같다. 이 말은 탐사선의 속도가 빨라진 것처럼 행성의 속도는 느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 주고받은 운동량은 질량과 속도 변화량을 곱한 것이므로 행성에 비해 질량이 작은 탐사선은 속도가 크게 증가하지만, 질량이 매우 큰 행성은 속도가 거의 줄어들지 않는다. 실제로 지구와의 스윙바이를 통해 초속 8.9㎞의 속도를 얻은 ‘갈릴레오 호’로 인해 지구의 공전 속도는 1억 년 동안 1.2cm 쯤 늦어지게 되었다.

6월
고려 말 중앙 집권 체제의 약화와 왕권의 쇠퇴 속에서 조선 왕조를 세운 신흥 사대부들은 지주층이었기 때문에 노비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들은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의 확립을 위해 국역(國役)* 대상인 양인 계층의 폭을 넓히려 하였다. 따라서 노비가 꼭 있어야 하더라도 되도록 양인을 더 많이 확보하려는 것이 새 왕조가 추구한 국역 정책의 기본 방향이었다.
이처럼 국역 대상의 확보를 새 왕조 통치 체제의 발판으로 추구하면서, 법제적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을 일단 양인과 천인으로 나누었다. 이들 사이에는 의무와 권리에서 차등이 있었는데 먼저 의무 면에서 양인 남자는 국역인 군역(軍役)과 요역(徭役)*의 의무가 있었다. 이에 비해 천인은 군역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권리 면에서 양인과 천인은 신체와 생명의 보호와 같은 인간의 기본권을 공권력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지에서 뚜렷이 차이가 났다. 천인인 노비는 재산으로 보아 매매‧상속‧양도‧증여의 대상이 되었으며, 사는 곳을 옮길 자유가 없었다. 노비와 양인이 싸우면 노비가 한 등급 더 무거운 벌을 받는 것은 양‧천 사이의 법적 지위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그보다 권리 면에서 양‧천의 가장 분명한 차이는 관직 진출권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양인 중에도 관직 진출권이 제한된 사람이 적지 않았으나 양인은 일단 관직 진출권이 있었다. 더러 노비가 국가에 큰 공로를 세워 정규 관직인 유품직(流品職)을 받기도 하였으나 이때는 반드시 양인이 되는 종량(從良) 절차를 먼저 밟아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양‧천 구분은 국가의 법적 구분이었지, 실제 사회 구성은 좀 더 복잡했다. 양‧천이라는 법적 구분 아래 사회 구성원은 상급 신분층인 양반 계층, 의관‧역관과 같은 기술관이나 서얼등의 중인 계층, 양인 중 수가 가장 많았던 평민 계층, 노비가 주류인 천민 계층으로 나뉘었다.
조선을 양반 관료 사회라고 규정하듯이 양반은 정치‧사회‧경제 면에서 갖가지 특권과 명예를 독점적으로 누리면서 그 아래인 중인‧평민‧천민과는 격을 달리했다. 이를 반상(班常)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반상은 곧 신분을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눈 것으로서, 반상의 반(班)에는 중인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상(常)에는 평민부터 노비까지 포함되었다. 이러한 구분은 법적 구분과는 달리 사회 통념상으로 최고 신분인 양반의 지배자적 위치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식에서 생겼다고 하겠다.
이처럼 국가 차원의 법적 규범인 양천제와 당시 실제 계급 관계를 반영한 사회 통념상 구분인 반상제가 서로 섞여 중세의 신분 구조를 이루었다. 중세 사회가 발전하면서 신분 구조는 양천제라는 법제적 틀에서 차츰 사회 통념상의 신분 규범이 규정 요소로 확고히 자리 잡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이는 지주제의 확대와 발전, 그리고 조선 사회의 안정과 변동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였다.

*국역: 나라에서 백성들에게 지우던 부역.
*요역: 나라에서 16세 이상 60세 미만의 남자에게 관아의 임무 대신 시키던 노동.

희소성 높은 최고급 커피의 생두 가격은 어떻게 결정 될까? 그것은 바로 경매이다. 경매를 통한 가격 결정 방식은 수요자들이 해당 재화의 가치를 서로 다르게 평가하고 있거나, 해당 재화의 가치를 정확히 가늠할 수 없을 때 주로 사용된다. 커피나무는 환경에 민감한 식물로, 일조량과 온도와 토질에 따라서 생두의 맛과 품질이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같은 지역이라 하더라도 매년 커피 생두의 품질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처럼 생두의 품질이 매년 다양한 이유로 달라지는 상황에서 해당 커피 생두의 가치를 결정하는 가장 수월한 방법은 단연 경매라 할 수 있다.
경매를 통한 가격 결정 방식을 사용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구매자와 판매자의 숫자가 극단적으로 불일치할 때 가격을 결정하는 유용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특정 재화의 판매자가 한 명인데, 이를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이 여러 명이라면 경매를 통해 가장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판매할 수 있다. 최고급 커피 생두 역시 이러한 이유에서 경매로 가격을 결정한다. 이 밖에도 골동품, 미술품 등은 현재 동일한 이유로 경매를 통해 가격을 결정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특정 재화의 구매자는 한 명인데, 이를 판매하고자 하는 사람이 여러 명일 경우에도 경매는 유용한 방식이다. 가장 저렴한 가격을 제시한 사람에게서 구매하면 되기 때문이다. 현재 전투기와 같이 정부만이 유일한 구매자라 할 수 있는 국방 관련 물품이 일종의 경매인 경쟁 입찰로 결정된다.
경매는 입찰* 방식의 공개 여부에 따라 공개 구두 경매와 밀봉 입찰 경매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공개 구두 경매는 경매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누가 어떠한 조건으로 경매에 응하는지를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러한 공개 구두 경매는 다시 영국식 경매와 네덜란드식 경매로 구분할 수 있다. 영국식 경매는 오름 경매 방식으로, 우리가 가장 흔히 접하는 낮은 가격부터 시작해서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사람이 낙찰자*가 되는 방식을 말한다. 이러한 영국식 경매를 통해 가격을 결정하고 있는 대표적인 품목으로는 와인과 앞서 소개한 최고급 생두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와는 반대로 판매자가 높은 가격부터 제시해 가격을 점점 낮추면서 가장 먼저 응찰*한 사람을 낙찰자로 정하는 방식이 네덜란드식 경매다. 이것이 내림 경매 방식이다. 내림 경매 방식은 튤립 재배로 유명한 네덜란드에서 오래 전부터 이용해오던 방식이며, 국내에서도 수산물 도매시장에서 생선 가격을 결정할 때 이 방식을 통해 가격을 결정한다.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경매와는 달리 경매 참여자들이 서로 어떠한 가격에 응찰했는지를 확인할 수 없는 밀봉 입찰 경매가 있다. 밀봉 입찰 경매는 낙찰자가 지불하는 금액을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최고가 밀봉 경매와 차가 밀봉 경매로 구분된다. 최고가 밀봉 경매는 응찰자 중 가장 높은 가격을 적어 냈을 때 낙찰이 되는 것으로 낙찰자는 자신이 적어 낸 금액을 지불한다. 차가 밀봉 경매의 낙찰자 결정 방식은 최고가 밀봉 경매와 동일하다. 그러나 낙찰자가 지불하는 금액은 자신이 적어 낸 금액이 아니라 응찰자가 적어 낸 금액 중 두 번째로 높은 금액이다.

*입찰: 경매 참가자에게 각자의 희망 가격을 제시하게 하는 일.
*낙찰자: 경매나 경쟁 입찰 따위에서 물건이나 일을 받기로 결정된 사람.
*응찰: 입찰에 참가함.

인체는 70%가 수분이다. 수분은 인체의 세포를 유지하고 세포가 일을 하면서 생성하는 여러 가지 노폐물을 배출하는데 관여한다. 인체의 세포는 일종의 화력 발전소이다. 연기가 나지 않을 뿐이지 들어오는 음식을 잘 분해하고 연소시켜서 에너지를 만든다. 몸은 이 에너지를 이용하여 축구도 하고 달리기도 한다. 이때 여러 가지 노폐물이 발생하는데, 이 노폐물들을 인체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그래야만 몸이 늘 일정한 상태, 즉 항상성을 유지하게 된다.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은 주로 신장이 한다.
신장의 주 역할은 노폐물을 걸러내어 오줌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이 일이 진행되는 곳은 네프론이라는 장치인데, 신장 하나에 100만 개 정도가 있다. 네프론은 사구체, 보먼주머니, 세뇨관으로 이루어지는데 이곳에서 노폐물이 여과되고 필요한 영양분, 즉 포도당, 수분 등이 재흡수되기도 한다. 포도당은 100% 재흡수되는데, 당이 재흡수되지 않고 소변에 섞여 나오면 당뇨병을 의심해 볼 수 있다. 몸 안의 수분량에 따라 수분을 재흡수하는 양이 결정되므로 몸 안의 수분이 적으면 배출하는 수분의 양을 줄인다. 이 때문에 소변이 노랗게 되는데 이것은 몸의 수분이 적다는 신호이다.
노폐물은 혈액의 압력 차이에 의해 모세혈관 덩어리인 사구체를 통해 보먼주머니에 모이고 이것이 세뇨관을 거쳐 방광에 모아져 오줌으로 배설된다. 물론 분자량이 큰 세포나 단백질 등은 그대로 혈액 속에 남아 있다. 이때 노폐물뿐만 아니라 인체에 필요한 무기염류, 아미노산, 물 등도 혈액의 압력에 의해 보먼주머니로 나온다. 보먼주머니에 모인 물질 중 필요한 것은 세뇨관에서 다시 모세혈관 속으로 재흡수된다. 이와 같이 신장은 신체 내의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여과와 필요한 것은 계속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재흡수의 기능으로 우리 몸을 항상 일정 상태로 유지한다. 이러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장에 이상이 생기면 우리 몸은 중대 위기에 봉착한다.
신장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인체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우선 노폐물이 걸러지지 않고 농도가 높아짐으로써 세포가 제대로 작용을 하지 못하게 되고, 얼굴이 붓는 증상에서부터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하는 신부전증의 단계에까지 이른다. 이러한 경우 생명이 위험해진다. 물론 신장 이식 등의 방법도 있지만, 기증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인공 신장에 의지해야 한다. 신부전 환자는 한 번에 4~5시간은 소요되는 괴로운 혈액 투석을 일주일에 서너 번씩 해야 한다.
사실 인공 신장은 정확한 말이 아니다. 인공 신장이라면 신장을 대신하여 몸 안에 장착하여 계속 쓸 수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인공 신장이란 일종의 혈액 투석기이다. 즉 체외에서 신장의 기능인 노폐물의 여과 기능을 대신하는 수단이다.
인공 신장에서는 노폐물인 요소 등을 제거해야 하는데 요소가 제거되는 근본 원리는 물질의 농도 차이이다. 물이 담긴 컵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렸을 때, 잉크가 퍼져 나가는 것은 컵 속의 잉크 농도를 균일하게 하려는 성질 때문이다. 노폐물인 요소도 농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인공 신장에서도 같은 원리로 노폐물이 제거된다. 즉 반투막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노폐물이 있는 혈액을 통과시키고 다른 한쪽에는 노폐물이 없는 투석액을 통과시키면 노폐물은 농도 차이에 의해 농도가 높은 혈액에서 낮은 투석액으로 이동한다. 물론 혈액 속의 세포들과 분자량이 큰 단백질 등은 반투막을 통과하지 못하므로 다시 몸속으로 들어간다. 또한 무기염류, 포도당 등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려면, 반투막을 중심으로 양쪽이 같은 농도가 되도록 하면 된다.
실제 병원에서 쓰이는 혈액 투석기는 가는 여과관이 여러 개 모여 있는 구조의 중공사막*을 사용한다. 가는 여과관이 수백 개 다발로 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투석을 진행할 수 있다. 혈액이 흐르는 방향과 투석액이 흐르는 방향이 같으면 처음에는 노폐물 농도 차이가 있어서 노폐물이 이동하지만 농도가 비슷해지면 노폐물의 이동이 줄어든다. 따라서 혈액과 투석액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흐르도록 해 노폐물의 농도 차이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한다.

*중공사막: 사람의 혈액을 걸러주는 인공신장 투석기의 필터.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의 교향곡을 소리로 재현해 내지 않는다면 베토벤의 명곡은 결코 우리 앞에 ‘생생한 소리’로서 존재할 수 없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작곡가의 악보를 소리로 바꾸는 과정에서 ‘음악 해석’이라는 것이 이루어진다. 지휘자는 자신의 음악적 관점을 리허설을 통해 전달하고, 여러 가지 손동작과 표정, 몸짓 등으로 감정을 표현하거나 음악의 느낌을 단원들에게 전달하며 훌륭한 연주를 이끌어 낸다. 그 순간 지휘자는 단지 박자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음악 해석이란 말은 조금 낯설지도 모른다. 엄연히 작곡가가 남긴 악보가 있고, 지휘자나 연주자는 악보에 써 있는 대로 음악을 지휘하거나 연주를 하면 될 테니 연주의 차이도 거기서 거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악보를 보고 연주를 해보면 이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가령 ‘점점 느리게 연주하라’는 뜻의 ‘리타르단도’라든가 ‘점점 빠르게 연주하라’는 뜻의 ‘스트린젠도’라는 기호가 나타났을 때 과연 어디서부터 어떻게 느려져야 하고 어떻게 빨라져야 할까? 작곡가가 아무리 악보를 정교하게 그린다 해도 작곡가는 연주자들에게 자신이 의도한 음악을 정확하게 전달해 낼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악보의 불완전성’이며 이 불완전성이야말로 다양한 음악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럼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이 지휘자의 관점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연주될 수 있는지 살펴보자. 1악장 도입부만 해도 지휘자마다 천차만별이다.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여는 ‘따따따딴~’의 네 음은 베토벤의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라고 해서 흔히 ‘운명의 동기’라고 불린다. 운명의 동기가 나타나는 1악장의 첫 페이지에 베토벤은 ‘알레그로 콘 브리오’ 즉 ‘빠르고 활기 있게’ 연주하라고 적어 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정확한 템포를 지시하기 위해 2분 음표를 메트로놈 108로 연주하라고 적어 놓았다. 1악장은 2/4박자의 곡이므로 2분 음표의 템포는 곧 한 마디의 템포인 셈인데, 한 마디를 메트로놈 108의 속도로 연주한다는 것은 연주자들을 긴장시킬 만한 매우 빠른 템포이다.
하지만 정확하고 무자비하기로 유명한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정확하게 베토벤이 원하는 템포 그대로 운명의 동기를 연주한다. 그리고 운명의 동기를 반복적으로 구축하며 운명이 추적해오는 것 같은 뒷부분도 사정없이 몰아친다. 그의 해석으로 베토벤 음악의 추진력은 더욱 돋보인다.
반면 음악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기로 유명한 푸르트벵글러는 베토벤이 적어 놓은 메트로놈 기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푸르트벵글러의 지휘로 재탄생한 운명의 노크 소리는 매우 느린 템포로 연주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음 한 음 힘 있고 또렷하게 표현된 그 소리는 그 어느 노크 소리보다 가슴을 울리는 웅장함을 담고 있다. 두 번째 노크 소리의 여운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작되는 ‘운명의 추적’ 부분에서도 푸르트벵글러는 이 작품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보여 준다. 그는 여기서 도입부의 느린 템포와는 전혀 다른 매우 빠른 템포로 음악을 이끌어 가면서 웅장하게 표현된 운명의 동기와는 대조적으로 더욱 긴박감 넘치는 운명의 추적을 느끼게 한다. 푸르트벵글러는 비록 1악장 도입부에서 베토벤이 적어 놓은 메트로놈 기호를 지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입부에 나타난 두 번의 노크 소리를 느리고 웅장하게 연주한 후 뒷부분의 음악은 빠르고 긴박감 넘치게 이끌어 감으로써 베토벤 음악이 지닌 웅장함과 역동성을 더욱 잘 부각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푸르트벵글러의 해석이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악보에 충실하고자 했던 토스카니니와 악보 너머의 음악적 느낌에 더 충실하고자 했던 푸르트벵글러 중 누가 옳은 것일까?
음악에선 틀린 음을 연주하는 것 이외에 틀린 것이란 없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여러 가지 ‘다름’을 허용하는 것이야말로 클래식 음악을 더욱 생동감 넘치는 현재의 음악으로 재현하는 원동력이 된다.

3월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많은 일들을 판단하면서 살아간다. 판단을 할 때마다 필요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여 이용하고자 하면,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힘들뿐더러 그 정보를 처리하는 것도 부담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어림짐작을 하게 되는데, 이를 휴리스틱이라고 한다. 이러한 휴리스틱에는 대표성 휴리스틱과 회상 용이성 휴리스틱, 그리고 시뮬레이션 휴리스틱 등이 있다.
대표성 휴리스틱은 어떤 대상이 특정 집단에 속할 가능성을 판단할 때, 그 대상이 특정 집단의 전형적인 이미지와 얼마나 닮았는지에 따라 판단하는 경향을 말한다. 우리는 키 198㎝인 사람이 키 165㎝인 사람보다 농구 선수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 판단한다. 이와 같이 대표성 휴리스틱은 흔히 첫인상을 형성할 때나 타인에 대해 판단을 할 때 작용한다. 그런데 대표성 휴리스틱에 따른 판단은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특정 집단의 전형적인 속성에만 주목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판단은 신속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항상 정확하고 객관적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회상 용이성 휴리스틱은 당장 머릿속에 잘 떠오르는 정보에 의존하여 판단하는 경향을 말한다. 사람들에게 작년 겨울 독감에 걸린 환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물어보면, 일단 자기 주변에서 발생한 사례들을 떠올려 추정하게 된다. 이러한 추정은 적절할 수도 있지만, 실제 발생 확률과는 다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최근에 자신이 경험한 사례, 생동감 있는 사례, 충격적이거나 극적인 사례들을 더 쉽게 회상한다. 그래서 비행기 사고 장면을 담은 충격적인 뉴스 보도 영상을 접하게 되면, 그 장면이 자꾸 떠올라 자동차보다 비행기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 사고 발생 확률을 고려하지 못한 잘못된 판단이다.
시뮬레이션 휴리스틱은 과거에 발생한 특정 사건이나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마음속에 떠올려 그 장면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범죄 용의자를 심문하는 경찰관이 그 용의자의 진술에 기초해서 범죄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이때 경찰관은 그 용의자를 범인으로 가정해야만 그가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려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상적 장면을 자꾸 머릿속에 떠올리다 보면, 그 용의자가 정말 범인인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그가 범인임을 입증하는 객관적인 증거를 충분히 수집하기도 전에 그를 범인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처럼 휴리스틱은 종종 판단 착오를 낳기도 하지만, 경험에 기반하여 답을 찾는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판단과 추론이 항상 합리적인 사고 과정을 거쳐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결정을 위한 시간이 많지 않다.’는 가정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다. 휴리스틱은 우리가 쓰고 싶지 않아도 거의 자동적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수많은 대안 중 순식간에 몇 가지 혹은 단 한 가지의 대안만을 남겨 판단하기 쉽게 만들어 준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인지적 구두쇠’라고 할 만하다.

두 나라가 자발적으로 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두 나라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만일 무역 당사국이 이익을 전혀 얻지 못하거나 손실을 본다면, 이 나라는 무역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역을 통해 이익이 발생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무역에서 수출입 재화는 각각 어떻게 결정될까?
A국과 B국에서 자동차와 신발을 생산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아래 <그림>과 같이 A국은 이용 가능한 생산요소*를 모두 투입하여 최대 자동차 10대 혹은 신발 1,000켤레를 만들 수 있다. 한편, B국에서는 동일한 조건하에 자동차 3대 또는 신발 600켤레를 생산할 수 있다.
이때 국가 간 비교 우위 산업의 차이에 의해서 무역의 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 비교 우위란 어떤 재화 생산의 기회비용이 다른 나라보다 작은 경우를 의미하며, 이때 기회비용이란 그 재화 생산으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다른 재화의 가치를 말한다. 위의 상황에서 A국이 자동차를 1대 더 생산하기 위해서는 신발 생산을 100켤레 줄여야 한다. 즉, A국 입장에서 자동차 1대 생산의 기회비용은 신발 100켤레와 같다. 한편, B국은 자동차 1대 생산의 기회비용이 신발 200켤레가 된다. 이 경우 A국의 자동차 생산의 기회비용이 B국의 그것보다 작으므로, A국이 자동차 생산에 있어 비교 우위를 갖고 있다. 반면, B국은 신발 생산에 있어 비교 우위를 갖게 된다.
따라서 A국이 자동차를 특화해 B국에 수출하고, B국은 신발을 특화해 A국에 수출하면 무역을 하지 않을 때에 비해 양국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위 <그림>에서 A국이 자동차만 10대 생산(a)하고 B국이 신발만 600켤레를 생산(b)해서 양국이 무역을 한다고 하자. 이때 A국이 자동차 2대를 수출하고 그 대신 B국으로부터 신발 300켤레를 수입한다면, A국은 자동차 8대와 신발 300켤레의 조합(a′)을, B국은 자동차 2대와 신발 300켤레의 조합(b′)을 소비할 수 있다. 즉 무역을 통해 양국은 무역 이전에는 생산할 수 없었던 재화량의 조합을 생산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갖게 되어 무역을 통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각국의 비교 우위 산업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20세기 초의 경제학자 헥셔는 국가 간 생산요소 부존량*의 상대적 차이가 비교 우위를 낳는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각국은 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풍부한 생산요소를 집약적으로 사용하는 재화의 생산에 비교 우위를 갖는다. 즉 재화마다 각 생산요소들이 투입되는 비율이 다르기 마련인데, 어떤 재화 생산에 특정 생산요소가 집약적으로 사용된다면 그 생산요소를 다른 나라들에 비해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국가가 해당 재화의 생산에 비교 우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국가가 자동차·선박 등 자본 집약재의 수출국이고 신발·의류 등 노동 집약재의 수입국이라면, 그 국가는 타국에 비해 자본은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노동은 그렇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다.
각국의 비교 우위 산업은 국가 간 생산요소 부존량의 상대적 차이가 변화함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우리나라도 과거 경공업 위주의 노동 집약적 산업에서 자본 집약적인 중화학 공업, 최근의 지식 집약적인 IT 산업까지 주요 산업 및 수출품이 변화해 왔다. 이는 경제 성장에 따라 각 생산요소들의 부존 비율이 변화함으로써 우리나라의 비교 우위 산업이 변화해 왔기 때문이다.

*생산 가능 곡선:한 경제의 이용 가능한 생산요소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투입하여 생산할 수 있는 각 재화 생산량의 조합을 나타낸 선.
*생산요소:재화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 자본 등의 투입 요소.
*생산요소 부존량:한 경제 내에 존재하고 있는 생산요소의 양.

절에서 시간을 알리거나 의식을 행할 때 쓰이는 종을 범종이라고 한다. 범종은 불교가 중국에 유입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하여 우리나라와 일본의 사찰로 퍼져 나갔다. 중국 종의 영향 속에서도 우리나라와 일본의 범종은 각각 독특한 조형 양식을 발전시켰는데, 우리나라 범종의 전형적인 조형 양식은 신라에서 완성되었다. 신라에서는 독창적이고 섬세한 조형 양식을 지닌 대형 종을 주조하였는데, 이는 중국이나 일본의 주조 공법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러한 신라 종의 조형 양식은 조선 초기를 기점으로 한 큰 변화가 나타나기 전까지 후대의 범종으로 계승되었다.
신라 종의 몸체는 항아리를 거꾸로 세워 놓은 것과 비슷하게 가운데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모습을 하고 있다. 이와 달리 중국 종은 몸체의 하부가 팔(八) 자로 벌어져 있으며, 일본 종은 수직 원통형으로 되어 있다. 범종의 정상부에는 종을 매다는 용 모양의 고리인 용뉴(龍鈕)가 있는데, 신라 종의 용뉴는 쌍용 형태인 중국 종이나 일본 종의 용뉴와는 달리 한 마리 용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용뉴 뒤에는 우리나라의 범종에서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음통이 있다.
주조 공법이 발달했던 신라의 범종에는 섬세한 문양들이 장식되어 있어 중국 종이나 일본 종과 차이를 보인다. 신라 종의 상부와 하부에는 각각 상대와 하대라고 부르는 동일한 크기의 문양 띠가 있는데, 여기에는 덩굴무늬나 연꽃무늬 등의 불교적 상징물이 장식되어 있다. 상대 바로 아래 네 방향에는 사다리꼴의 유곽이 있으며 그 안에 연꽃 봉우리 형상이 장식된 유두가 9개씩 있어, 단순한 꼭지 형상의 유두가 있는 일본 종이나 유두와 유곽 모두 존재하지 않는 중국 종과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가장 불룩하게 튀어나온 종의 정점부에는 타종 부위인 당좌(撞座)가 있으며, 이 당좌 사이에는 천인상(天人像)이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어 가로 세로의 띠만 있는 일본 종과 차이가 있다.
고려 시대에는 이러한 신라 종의 조형 양식이 미약한 변화 속에서 계승된다. 전기에는 상대와 접하는 종의 상판 둘레에 견대라 불리는 어깨 문양의 장식이 추가되고 유곽과 당좌의 위치가 달라지며, 천인상만 부조되어 있던 자리에 삼존불 등이 함께 나타난다. 그리고 고려 후기로 가면 전기 양식의 견대가 연꽃을 세운 모양으로 변하고, 원나라의 침입 이후 전래된 라마교의 영향으로 범자(梵字) 문양 등의 장식이 나타난다. 한편, 범종이 소형화되어 신라 종의 조형 양식이 계승되면서도 그러한 조형 양식을 지닌 대형 종의 주조 공법은 사라지게 된다.
조선 초기에는 새 왕조를 연 왕실 주도로 다시 대형 종이 주조된다. 이때 조선에서는 신라의 대형 종 주조 공법을 대신하여 중국 종의 주조 공법을 도입하게 된다. 그러면서 중국 종처럼 음통이 없이 쌍용으로 된 용뉴가 등장하며, 당좌가 사라지고, 신라 종의 섬세한 장식 대신 중국 종의 전형적인 장식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후 불교를 억제하는 정책에 따라 한동안 범종 제작이 통제되었고, 16세기에 사찰 주도로 소형 종이 주조되면서 사라졌던 신라 종의 조형 양식이 다시 나타난다. 그 후 이러한 혼합 양식과 복고 양식이 병립하다가 복고 양식이 사라지면서 우리나라의 범종은 쇠퇴기에 접어들게 된다.

과학에서 관심을 갖는 대상을 ‘계(system)’라고 하고, 계를 제외한 우주의 나머지 부분은 ‘주위(surroundings)’, 계와 주위 사이는 ‘경계(boundary)’라고 한다. 계는 주위와 에너지나 물질의 교환이 모두 일어나지 않는 ‘고립계’, 주위와 물질 교환 없이 에너지 교환만 일어나는 ‘닫힌계’, 주위와 물질 및 에너지 교환이 모두 일어나는 ‘열린계’로 나눌 수 있다.
열역학 제1법칙에 따르면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므로, 계와 주위의 에너지 합 또한 일정하다. 계와 주위 사이에 에너지 교환이 있다면, 계의 에너지가 감소할 때 주위의 에너지는 증가하며, 계의 에너지가 증가할 때 주위의 에너지는 감소하게 된다. 계와 주위 사이에 에너지 교환이 일어날 때, 계의 에너지가 증가하면 +로, 계의 에너지가 감소하면 –로 표시한다. 한편, 계가 열을 흡수하는 과정은 흡열 과정, 계가 열을 방출하는 과정은 발열 과정이라고 하는데, 열은 에너지의 대표적인 형태이므로, 흡열 과정에 관련된 열은 +Q로, 발열 과정에 관련된 열은 –Q로 나타낼 수 있다.
계의 에너지는 온도, 압력, 부피 등의 열역학적 변수들에 의해 결정되므로, 열역학적 변수들이 같은 계들은 같은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림>과 같이 피스톤이 연결된 실린더가 있고, 실린더에는 보일-샤를의 법칙을 만족하는 기체가 들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먼저, 피스톤을 고정하지 않은 채 실린더 속 기체의 압력이 P1로 일정하도록 유지한 상태에서 실린더를 가열하여 실린더 속 기체의 온도가 T1에서 T2가 되도록 하면, 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실린더 속 기체의 부피는 증가하게 된다. 한편, 피스톤을 고정하여 실린더 속 기체의 부피를 일정하게 하고 실린더를 가열하면, 실린더 속 기체의 온도가 T1에서 T2가 되는 동안 실린더 속 기체의 압력은 P1에서 P2로 증가하는데, 온도가 T2인 상태를 유지하면서 고정시켰던 피스톤을 풀면 실린더 속 기체의 압력이 P1이 될 때까지 실린더 속 기체의 부피는 증가하게 된다.
전자의 경우를 A, 후자의 경우를 B라고 하면, A는 T1, P1인 초기 상태에서 T2, P1인 최종 상태가 되었고, B는 T1, P1인 초기 상태에서 T2, P2인 상태를 거쳐 T2, P1인 최종 상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두 계라 할 수 있는 A와 B가 같은 상태에 있으면, A와 B의 실린더 속 기체의 내부 에너지*는 서로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때 A의 초기 상태와 B의 초기 상태, A의 최종 상태와 B의 최종 상태는 각각 같지만, 초기 상태에서 최종 상태에 이르는 경로는 다르다. 따라서 두 계가 같은 상태에 있다고 해서 두 계가 만들어진 과정이 같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어떤 계의 변화가 일어나는 경로는 초기 상태에서 최종 상태로 진행하면서 거치는 일련의 상태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두 상태를 연결하는 경로는 무한히 많다.

*기체의 내부 에너지:기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의미하며, 기체의 부피가 일정할 때 기체의 내부 에너지는 온도에 의해 결정된다.

2016학년도
11월
그리스어인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는 일반적으로 ‘행복’이라고 번역된다. 현대인들은 행복을 물질적인 것을 통해 느끼는 안락이나 단순한 쾌감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우다이모니아를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행복과는 다르게 설명한다. 그는 에우다이모니아를 인간 고유의 기능인 이성을 발휘하여 그것을 완전하게 실현한 상태라고 규정하였다. 막스 뮐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에우다이모니아에 시간적 속성을 부여하여 이를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막스 뮐러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감각적 향유로서의 에우다이모니아’는 먹고 마시는 행위와 같은 신체적 감각을 통한 향유가 이성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질 때 얻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정신과 신체의 통일체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감각을 통한 향유도 무시할 수 없다. 다만 감각적 향유가 이성을 벗어나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극단적 탐닉에 빠질 때에는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감각적 향유 자체는 찰나적인 것이므로 감각적 향유의 과정에서 실현할 수 있는 에우다이모니아는 순간적인 것으로 규정된다.
둘째, ‘공동체적 삶을 통해 실현할 수 있는 에우다이모니아’는 공동체 속에서 인간이 자유를 누리면서도 이성을 발휘하여 책임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은 공동체의 훈육을 통해서만 개발될 수 있으므로 인간은 공동체를 떠나서 에우다이모니아를 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공동체에서의 인간의 행위는, 수시로 변화하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에우다이모니아는 역사적 시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셋째, ‘관조(觀照)의 삶을 통해 실현할 수 있는 에우다이모니아’는 인간이 세계의 영원한 질서를 인식하게 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관조’란 쾌락을 목적으로 하는 향락적 활동이나 부를 목적으로 하는 영리적 활동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포착할 수 없는 영원불변한 진리를 학문을 통해 바라보는 영혼의 활동을 말한다. 이는 이성을 통해 이루어지며 인간에게 가장 궁극적인 에우다이모니아를 가져다준다. 이러한 에우다이모니아는 시간적 한계를 뛰어넘는 영원성을 갖는다.
뮐러에 따르면 인간의 이성을 통해 실현되는 에우다이모니아는 모두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는 에우다이모니아의 순간성, 역사성, 영원성이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므로, 인간은 전 생애에 걸쳐 이 세 가지 에우다이모니아를 함께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보았다.


다양한 요인들을 분석하여 공장이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을 산업입지론이라 한다. 고전적 산업입지론에는 비용이나 수요 중 특정 요인 한 가지에 주목하여 가장 효율적인 입지를 설명하려는 최소비용이론과 최대수요이론이 있다. 하지만 비용과 수요 중 어느 한 요소만으로 공장의 입지를 설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 주목한 데이비드 스미스는 이 둘의 통합을 추구하며 준최적입지론을 제시하였다.
스미스는 자신의 이론을 총비용과 총수입의 관계로 설명하였다. 여기서 총비용이란 제품 생산 활동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으로 인건비, 운송비 등의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점인 최적 입지로부터 공장의 위치가 멀어질수록 총비용은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총수입이란 재화를 공급하여 생산자가 벌어들인 총액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요가 최대화되는 지점인 최적 입지로부터 공장의 위치가 멀어질수록 총수입은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총비용과 총수입을 모두 고려할 때, 총비용이 총수입보다 크면 손실이 발생하고 총수입이 총비용보다 크면 이윤이 발생하게 되는데, 스미스는 총수입이 총비용과 같아서 더 이상 이윤을 획득할 수 없는 지점들을 이윤의 공간적 한계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공간적 한계의 범위 안쪽에서는 이윤이 최대가 되는 최적 지점이 아니더라도 이윤이 발생하는 곳이라면 공장은 어디든지 입지할 수 있다는 것이 준최적입지론의 핵심이다.
그는 이윤의 공간적 한계가 다음과 같은 요인들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고 보았다. 첫 번째 요인은 경영자의 경영 수완으로, 경영자가 효율적인 경영을 통해 생산비를 낮춘다면 이윤의 공간적 한계는 그 전보다 넓어질 수 있다. 다음으로 재정적 보조금이나 세금 등의 요인을 들었다. 공장이 보조금을 받으면 총비용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반면에 특정 지역에서 공장에 세금을 추가로 부과한다면 총비용이 증가하게 되어 공장이 입지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마지막 요인은 같은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들이 한곳에 모이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생산 규모가 커지면 원료의 공동 구입, 제품의 공동 판매 등으로 총비용을 절감하여 이윤을 발생시킬 수 있다.
결국 스미스의 이론은 비용과 수요를 통합적으로 고려했다는 점과, 이윤의 공간적 한계 내에서 최적입지 외에도 실제로 공장이 입지해 있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산업입지론들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려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던 과거의 작가들과 달리 현대의 많은 작가들은 자신이 인식하고 해석한 세계를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중, M.C. 에셔는 기하학적 표현을 활용하여 공간에 대한 자기만의 새로운 인식을 표현한 작가이다.
에셔는 먼저 ‘평면의 규칙적 분할’을 활용하여 2차원의 평면 구조를 표현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우선 그는 새, 물고기 등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사물들을 단순화하여 평면 구조를 표현하기 위한 기본 형태로 설정했다. 이것을 반복하여, 상하좌우로 평행 이동시키거나 한 지점을 축으로 다양한 각도로 회전시키기도 하고, 평행 이동한 후 거울에 비친 것처럼 반사시키기도 하면서 분할된 평면을 빈틈없이 채웠다. 또한 기본 형태를 점점 축소하거나 확대하는 과정을 반복하여 평면을 무한히 분할하는 듯한 효과를 주어 평면이 가진 무한성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때 인접한 기본 형태들은 명도 대비*를 이루며 윤곽선을 공유하면서 반복된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사물의 형태를 인지하기 위해서는 해당 사물의 윤곽선을 기준으로 그 윤곽선의 밖을 배경으로 인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에셔의 작품 <대칭 105>에서는 평행 이동하는 형태들의 윤곽선을 기준으로 흰 말을 사물의 형태로 인지할 경우 다른 색의 말은 사물이 아닌 배경으로 인식되고, 반대로 다른 색의 말을 사물의 형태로 인지할 경우 흰 말은 배경으로 인식된다. 이를 통해 에셔는 어떠한 형태들이 배경이나 사물로 인식되는 것은 절대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선택에 의해 상대적으로 달라질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는 어떠한 형태도 배경 없이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평면 분할에서 나아가 3차원의 형태인 원통이나 원뿔, 구의 표면을 평면 분할 기법을 적용하여 분할하기도 하고, 이를 다시 평면으로 그려낸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더 나아가 하나의 작품 안에서 평면과 공간을 넘나드는 순환 체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작품에서는 2차원의 평면 분할에 활용된 기본 형태를 3차원의 실제 사물처럼 입체적으로 변형시켜 표현하고, 이를 다시 평면의 기본 형태로 바꾸는 과정을 통해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드는 새로운 차원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에셔의 작품에 사용된 평면의 규칙적 분할은 현재 다양한 제품의 디자인에 활용되고 있으며, 차원을 넘나들며 순환하는 환상적 공간 구성은 영화 및 광고 매체의 중요한 모티프로 응용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에셔의 작품 세계는 오늘날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명도 대비: 밝기가 다른 두 색이 서로의 영향을 받아서 밝은색은 더 밝게, 어두운색은 더 어둡게 보이는 현상.

우리 몸에 상처가 났을 때 피가 멈춘 후에도 다친 부위가 빨갛게 부어오르고 열과 통증이 동반되기도 하며, 고름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를 ‘염증 반응’이라고 한다. 우리 몸에서 염증 반응은 왜 일어나며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
염증 반응은 우리 몸에 침입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등의 병원체를 제거하여 병원체가 몸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고, 손상된 세포나 조직을 제거하여 수리를 시작하기 위한 면역 반응의 하나이다. 면역 반응에서는 병원체에 대항하여 신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혈액 속 백혈구가 주로 관여하게 되는데 염증 반응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체내로 들어오는 특정 병원체를 표적으로 하는 다른 면역 반응과 달리 염증 반응은 병원체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다면 염증 반응은 어떻게 일어날까? 가령 뾰족한 핀으로 찢긴 피부에 병원체가 침입해 감염을 일으키는 상태가 되면, 병원체들은 우리 몸의 여러 조직에 상주하고 있는, 세포 섭취 능력을 가진 ‘대식 세포’에 의해 포식되어 파괴되기 시작한다. 대식 세포 표면에는 병원체의 고유한 특징을 인식하는 수용체가 있어서 이것이 병원체 표면의 특징적인 분자들을 인식해 병원체와 결합하면 대식 세포가 활성화되어 병원체를 삼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과 더불어 피부나 내장 기관을 둘러싸고 있는 조직의 일부에 분포하는 ‘비만 세포’가 화학 물질인 히스타민을 분비한다. 분비된 히스타민은 화학적 경보 신호로 작용하여, 더 많은 백혈구가 감염 부위로 올 수 있도록 혈관을 확장시킨다. 혈관이 확장되면 혈관 벽을 싸고 있는 내피세포들의 사이가 벌어져 혈장 단백질, 백혈구 등의 혈액 성분들이 혈관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
이때 백혈구의 일종인 단핵구가 혈관 벽을 통과하여 병원체가 있는 감염 부위로 들어오게 된다. 혈관 속에 있을 때 세포 섭취 능력이 없던 단핵구는 혈관 벽을 통과한 후 대식 세포로 분화*하여 병원체를 포식하게 된다. 이러한 대식 세포는 사이토카인과 케모카인이라는 단백질을 분비해 병원체를 제거할 다른 방어 체제를 유도한다. 사이토카인은 혈관 내피세포에 작용하여 혈관을 확장시키고, 또 다른 백혈구의 일종인 호중구가 혈관 벽에 잘 달라붙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케모카인은 혈관 벽에 붙은 호중구가 혈관 벽 내피세포 사이로 빠져나와 감염 부위로 이동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감염 부위로 이동한 호중구는 대식 세포와 같은 방법으로 병원체를 삼킨다.
한편 세포들이 병원체를 포식하여 파괴하는 과정에서 병원체와 함께 죽는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죽거나 죽어 가는 세포나 병원체 등은 고름의 주성분이 된다. 고름은 대식 세포에 의해 점차적으로 제거되기도 하고 압력에 의해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또한 히스타민에 의해 혈관이 확장되면서 상처 부위가 혈장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빨갛게 부어오르고, 상처 부위가 부어올라 신경을 물리적으로 누르면 통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분화: 생물체나 세포의 구조와 기능 따위가 특수화되는 현상.

9월
기술이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에서 사용된 ‘테크네’에서 유래하였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아 사물의 본질을 밝혀 내는 정신적인 활동을 에피스테메, 삶의 가치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생산해 내는 실용적인 활동을 테크네로 구분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이에 동의하였지만, 플라톤과 달리 정치, 법률 등은 어떤 이론을 지니고 있지 않은 실제적인 활동이라는 측면에서 테크네에 속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삶의 정신적 가치보다는 물질적인 가치를 더 중시한다는 이유로 기술을 부정적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기술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근대 초기의 마키아벨리, 베이컨, 데카르트 등에 의해 강한 비판을 받았다. 예컨대 16세기 영국 철학자인 베이컨은 인쇄술이나 화약 발명 등의 기술이 정치적인 정복이나 철학적인 논쟁보다 훨씬 이롭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독일의 철학자 피히테는 기술이 인간을 자연의 강압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기술을 통한 자연의 정복을 선(善)으로 규정하였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에 따라 기술이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기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철학적 관점이 등장하였다. 20세기에 이르러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를 필두로 기술의 진정한 본질은 무엇인지, 기술은 인간에게 어떤 존재적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지 등에 대한 진지한 철학적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하이데거는 기술을 도구로 파악하였지만, 그 기술은 인간이 세계의 사물들과 교섭하는 창구로서 사물들의 존재 의미를 구성하는 능력을 지닌 비중립적 존재임을 강조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거대한 우주를 관측할 때 우리는 전파 망원경 같은 도구를 통해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는데, 이때 도구가 세계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 우리가 갖는 세계에 대한 존재론적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가령 맨눈으로 황금빛 보름달을 관찰하는 경우, 천체 망원경으로 달의 운동을 관측하는 경우, 그리고 특수 기능의 전파 망원경으로 달을 구성하는 물질들의 성분을 관측하는 경우, 이때 각각의 도구를 통해 드러나는 달의 존재 의미는 달라진다. 첫 번째 달은 시적인 존재로서의 의미를, 두 번째 달은 지구 주위를 도는 위성으로서의 존재 의미를 갖게 된다. 하지만 세 번째 달은 특정한 광물질의 보고(寶庫)로서의 존재 의미를 갖게 된다. 이렇게 기술은 세계의 존재론적 의미를 새롭게 구성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이데거는 주장한다.
이처럼 하이데거는, 기술은 더 이상 인간과 세계에 중립적으로 작용하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며,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왜곡시키거나 변형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기술이 더 이상 인간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보도록 압박하는 존재일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소도시에 위치한 마트는 대도시의 마트와 규모 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이는 ‘전략적 공약’이라는 경제학적 개념을 통해 답을 찾을 수 있다.
‘전략적 공약’은 자신의 선택 가능성을 스스로 제한하여 상대를 압박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상대의 의사 결정에 따라 자신의 이익이 변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자신의 선택 범위를 제한할 때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만약 소도시에 적당한 규모의 마트를 연다면 상황이 어려울 때 매장을 철수하거나 위치를 변경하는 등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경쟁사로 하여금 새로운 마트가 진출해도 공존이 가능하리라고 판단하게 만드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소도시에 먼저 진출한 마트는 해당 지역의 시장성에 비해 과잉 투자로 비칠 만큼 규모가 커지는 것이다. 물론 소도시에 처음 진출한 대규모 마트의 단기적 이익은 떨어질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경쟁사의 진입을 차단하여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략적 공약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할까? 자신의 선택이 무엇인지 상대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인식하도록 하는 가시성과 인식 가능성, 그리고 동시에 그 선택이 실행될 것이라는 충분한 믿음을 주는 신뢰성이 필요하다. 이 중, 신뢰성을 획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후퇴할 길을 스스로 봉쇄하는 ‘배수진 전략’이 있다. 일례로 유명 미술가가 몇 장의 판화 작품만을 제작한 후 공개적 장소에서 그 판화의 원판을 부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를 통해 그 원판으로 동일한 작품을 더 이상 찍어내지 않을 것임을 사람들이 믿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계약 내용을 통해 기업이 기존에 내린 결정을 변경할 수 없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어떤 기업이 ‘신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추가 할인 혜택을 부여하는 경우, 동일한 계약을 맺은 기존 고객들에게도 같은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넣는 것이 그 예에 해당한다. 이렇게 되면 해당 기업은 계약 준수의 법적 의무를 지게 되며, 이로 인해 소비자와 경쟁사는 해당 기업이 계약 내용을 준수할 것임을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기업의 공약 내용을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을 별도의 독립적 대상에게 위임해 번복 가능성을 낮추는 방법이 있다. 특정 수준의 물가 유지를 공약한 정부는 오랫동안 경기 침체를 겪게 될 경우, 화폐의 유통량을 확대하여 경기 부양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면 물가가 인상된다. 이것을 막기 위해 화폐 유통에 대한 의사 결정 권한을 독립성이 보장된 중앙은행에 두는데 이것이 바로 권한 위임의 사례이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는 소인국과 거인국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걸리버와 같은 인간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소인국 사람들은 걸리버보다 12배 작게, 거인국 사람들은 걸리버보다 12배 크게 묘사되어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일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왜 불가능할까?
우선, 면적과 부피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각 변의 길이가 1m인 주사위의 표면적은 1m×1m×6(개)=6㎡, 부피는 1m×1m×1m=1㎥이다. 변의 길이를 2배로 늘리면 표면적은 24㎡, 부피는 8㎥로 커진다. 즉 길이가 L배 길어지면 표면적은 L2 {L}^{2}, 부피는 L3 {L}^{3}에 비례하여 커지게 되는데, 이러한 법칙을 ‘면적-부피의 법칙’이라 한다. 이 법칙은 밀도가 일정하고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크기만 바뀌는 경우라면 물체가 어떤 형태이든 그대로 적용된다.
소인국 사람과 거인국 사람에게도 이 법칙을 적용할 수 있다. 걸리버의 키와 몸무게를 174㎝, 68㎏이라고 가정하여 이 법칙을 적용해 보면, 소인의 키는 걸리버의 1/12인 14.5㎝이고, 거인의 키는 걸리버보다 12배 더 큰 약 21m이다. 물체의 밀도가 일정하다면 무게는 부피에 비례하기 때문에 소인은 걸리버의 1/123 {12}^{3}인 40g, 거인은 걸리버보다 123 {12}^{3}배 더 무거운 117t 정도 나가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소인국 사람과 거인국 사람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인간과 같은 항온 동물은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몸에서 끊임없이 에너지를 생산하고 발산해야만 한다. 그런데 세포의 대사 활동을 통해 생산되는 열에너지는 몸의 부피에 비례하고, 적정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체외로 발산되는 열에너지는 몸의 표면적에 비례한다. ‘면적-부피의 법칙’을 적용하면 소인국 사람은 걸리버에 비해 부피는 1/123 {12}^{3}로, 표면적은 1/122 {12}^{2}로 줄어든다. 이는 에너지 생산량은 1/123이나 줄었는데 몸 밖으로 나가는 에너지의 양은 1/122 {12}^{2}밖에 줄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되는 에너지의 양보다 발산되는 에너지의 양이 더 많아진 소인국 사람은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어질 것이다.
거인국 사람도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동물은 근육의 힘으로 무게를 지탱하는데, 근육이 낼 수 있는 힘의 세기는 근육의 단면적에 비례한다. 만일 근육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채 몸의 길이가 2배가 된다면, ‘면적-부피의 법칙’에 따라 근육 단면적이 22 {2}^{2}인 4배가 되어 힘의 세기도 4배로 커지게 된다. 거인국 사람은 걸리버보다 12배 더 크기 때문에 다리 힘의 세기는 122 {12}^{2}배 늘어나지만 무게는 123 {12}^{3}배 늘어난다. 이는 거인국 사람의 무게가 다리로 버틸 수 있는 힘의 세기보다 커진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거인국 사람은 다리가 부러지거나 땅에 주저앉게 될 것이다.
크기는 형태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뿐만 아니라 크기는 생명체의 생존 방식과도 연관이 깊다. 만약 『걸리버 여행기』의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소인국과 거인국 사람들은 결코 걸리버와 같은 인간의 형태와 생존 방식을 지니고 있지 못할 것이다.
한옥 공간은 막히지 않고 순환한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가는 길은 좁은 복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갈래이며 그 형식도 여러 가지이다. 때로는 그 길이 방끼리 통하기도 하고 마당과 대청마루를 건너기도 한다. 막으면 방이 되지만 그 막음이란 것이 콘크리트 벽처럼 앙다문 것이 아니어서 언제든지 틀 수 있다. 방과 방 사이에 문이 난 경우도 제법 많아 문을 트면 길이 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한옥은 사방으로 적당히 뚫려 있고 적당히 막혀 있다.
한옥 공간이 순환한다는 것은 시작과 끝이 없고 하나로 ‘통(通)’한다는 뜻이다. ‘원(圓)’은 완전 도형이라 해서 동서양 모두에서 최고의 상태로 간주했는데 한옥에서는 이를 공간에 적용해서 막힘 없이 둥글둥글 도는 동선 구조로 만들어 냈다. ‘원’에 ‘통’을 결합해서 ‘원통’한 공간으로 만들어 낸 경우는 한옥밖에 없다. 원통은 원처럼 둥글어서 통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뒤돌아서는 일 없이 직각으로만 꺾다 보면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의미이다. 가령 대청으로 오르면 방으로 들어간 뒤 옆방으로 이어 가거나 방 밖으로 빠져나오는 식으로 다시 대청 앞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원’한 공간은 자연히 ‘통’하게 되어 있으니, 한옥은 ‘원’이라는 것에서 기하학적 형상을 읽은 것이 아니라 ‘통’하는 가능성을 읽은 것이다.
한옥의 원통 구성은 ‘외파 증식’의 방식으로 발전해 온 한옥의 형성 과정과도 관련이 깊다. 한옥의 평면 구성을 보면 개별 채에서부터 한 번 꺾인 ‘ㄱ’자형, 두 번 꺾인 ‘ㄷ’자형, 세 번 꺾여 에워싸는 ‘ㅁ’자형, 에워싼 다음 한 번 더 뻗어나간 ‘ㅂ’자형 등 그 구성 방식이 다양하다. 이처럼 씨앗이 발아하듯 방 하나의 기본 공간 단위가 밖으로 증식하면서 분할하는 것이 외파 증식이다. 이는 윤곽을 먼저 정하고 안으로 잘라 들어가며 구성하는 서양의 ‘내파 분할’ 구성과 반대되는 한옥만의 독특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한옥 공간에서는 여러 공간을 거쳐 가는 돌아가기와 최단 거리로 가는 질러가기가 모두 가능하다. 돌아가는 동선은 여러 개인데, 이는 이동 과정을 선택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경험의 종류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동의 목적과 성격, 이동하는 사람의 상황과 마음 상태 등의 여러 조건에 따라 동선을 선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한옥에는 급할 때 이쪽에서 저쪽까지 한걸음에 달려갈 수 있는 지름길도 있다.
이처럼 한옥은 공간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 준다. 한옥은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안팎의 분별을 없애 어울림을 추구하려는 한국인의 가치관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6월
다음 상황을 생각해 보자. 가 등교하는 길에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가 횡단보도 건너는 것을 도와 달라고 하였다. 지금 학교에 가지 않으면 지각을 하여 벌점을 받게 된다. 는 할머니를 도와야 할까, 아니면 학교에 가야 할까? 이런 상황을 도덕적 딜레마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준을 우리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제시할 수 있다. 하나는 의무론적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목적론적 관점이다.
의무론적 관점은 행위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도덕 법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이 관점은 도덕 법칙을 지키려는 의지를 의무로 보았으며 결과와 무관하게 행위 자체의 옳고 그름에 주목하였다. 도덕 법칙은 언제나 타당하고 보편적인 것이기에 ‘왜’라는 질문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도덕 법칙은 지켜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의무론적 관점을 법칙론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의무론적 관점에는 한계가 있다. 두 개의 옳은 도덕 법칙이 충돌할 때 의무론적 관점에 따르면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예를 들어 1번 철로에는 3명의 인부가, 2번 철로에는 5명의 인부가 일을 하고 있을 때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의 기관사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 의무론적 관점은 이 상황에서 어떤 철로를 선택해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없다.
한편, 목적론적 관점은 행복이나 쾌락을 인간이 추구해야 할 목적으로 보았다. 이 관점은 오로지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가 옳은 행위이며, 경험을 통하여 도덕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도덕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행복을 가져오는 행위’이다. 따라서 어떤 행위를 결정할 때는 미래에 있을 결과를 고려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목적론적 관점을 결과론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목적론적 관점도 한계가 있다. 똑같은 결과라도 사람마다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예에서 1번 철로를 선택하는 것이 목적론적 관점에서는 옳은 선택이지만 1번 철로에 있던 인부의 가족에게 물었을 경우 대답은 달라질 것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목적론적 관점은 도덕 법칙에 대해 많은 예외를 허용할 우려가 있다.

컴퓨터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장치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3가지 요소는 중앙처리장치(CPU), 주기억장치, 보조기억장치이다. 보통 주기억장치로 ‘램’을, 보조기억장치로 ‘HDD(Hard Disk Drive)’를 쓴다. 이 세 장치의 성능이 컴퓨터의 전반적인 속도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CPU나 램은 내부의 미세 회로 사이를 오가는 전자의 움직임만으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반도체 재질이기 때문에 고속으로 동작이 가능하다. 그러나 HDD는 원형의 자기디스크를 물리적으로 회전시키며 데이터를 읽거나 저장하기 때문에 자기디스크를 아무리 빨리 회전시킨다 해도 반도체의 처리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게다가 디스크의 회전 속도가 빨라질수록 소음이 심해지고 전력 소모량이 급속도로 높아지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CPU와 램의 동작 속도가 하루가 다르게 향상되고 있는 반면, HDD의 동작 속도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HDD의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SSD(Solid State Drive)’이다. SSD의 용도나 외관, 설치 방법 등은 HDD와 유사하다. 하지만 SSD는 HDD가 자기디스크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반도체를 이용해 데이터를 저장한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부품이 없기 때문에 작동 소음이 작고 전력 소모가 적다. 이런 특성 때문에 휴대용 컴퓨터에 SSD를 사용하면 전지 유지 시간을 늘릴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SSD는, 컴퓨터 시스템*과 SSD 사이에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연결하는 부분인 ‘인터페이스’,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 그리고 인터페이스와 메모리 사이의 데이터 교환 작업을 제어하는 ‘컨트롤러’, 외부 장치와 SSD간의 처리 속도 차이를 줄여주는 ‘버퍼 메모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에 주목해야 할 것이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다. 이 메모리를 무엇으로 쓰는지에 따라 ‘램 기반 SSD’와 ‘플래시메모리 기반 SSD’로 나뉜다.
램 기반 SSD는 매우 빠른 속도를 발휘하는데, 이것을 장착한 컴퓨터는 전원을 켠 후 1~2초 만에 윈도우 운영체제의 부팅을 끝낼 수 있을 정도다. 다만 램은 전원이 꺼지면 저장 데이터가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컴퓨터의 전원을 끈 상태에서도 SSD에 계속해서 전원을 공급해 주는 전용 전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단점 때문에 램 기반 SSD는 많이 쓰이지 않는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SSD는 플래시메모리 기반 SSD를 지칭한다. 플래시메모리는 전원이 꺼지더라도 기록된 데이터가 보존되기 때문에 HDD를 쓰던 것처럼 쓰면 된다. 그리고 플래시메모리 기반 SSD를 장착한 컴퓨터는 램 기반 SSD를 장착한 컴퓨터보다 느리긴 하지만 HDD를 장착한 동급 사양의 컴퓨터보다 최소 2~3배 이상 빠른 부팅 속도와 프로그램 실행 속도를 기대할 수 있다.

*컴퓨터 시스템: CPU, 램 등 컴퓨터를 동작시키는 장치의 집합체.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생산 혁명은 19세기 백화점이 일으킨 유통 혁명을 통해 소비 혁명으로 이어졌다. 대량 소비 시대가 되자 사람들의 소비 형태도 바뀌었다. 무엇을 소유했는지 여부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면서 사람들은 주위를 의식하며 자기를 나타내기 위한 상품을 고르게 되었다. 소비를 결정하는 요인이 ‘필요’가 아니라 ‘자기 과시’로 옮겨간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에 주목한 베블런은 자신의 책『유한계급 이론』을 통해 개별 소비자의 소비 형태는 독립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다른 소비자의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보통 사람들과 신분이 다르다’는 점을 과시하는 부유층이나 이를 모방하려는 계층이 과시적 소비를 한다고 말했다. 과시적 소비가 일어나면 저렴한 상품 대신 고가의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 가격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렇게 과시적 소비로 인해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을 ‘베블런 효과’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시적 소비의 대상이 되는 상품을 ‘베블런 재(財)’라고 한다.
라이벤스타인은 이와 같은 현상을 보다 깊이 있게 다루어 ‘밴드왜건 효과’와 ‘스놉 효과’를 발표하였다. 과시적 소비는 일부 상류층과 신흥 부유층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지만 주위 사람들이 이를 흉내 내면서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는 현상을 밴드왜건 효과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밴드왜건은 행진할 때 대열의 선두에서 행렬을 이끄는 악대차를 의미하는데 악단이 지나가면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무작정 뒤따르면서 군중들이 더욱더 불어나는 것에 비유한 것으로 밴드왜건 효과는 ‘모방 효과’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모방 효과가 널리 퍼져 더 이상 과시적 소비가 차별 효용*을 상실하게 될 때 일부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상품 대신 더욱 진귀한 물건을 찾는다. 이로 인해 기존 상품의 수요가 줄어들게 되는데 이를 ‘스놉 효과’라고 한다. 즉 모방 효과와는 반대로 특정 제품에 대한 소비가 증가하게 되면 그 제품의 수요가 줄어들고 새로운 상품의 수요로 옮겨 가는 현상이다. 보통 가격이 비싸서 쉽게 구매하기 어려운 고가의 명품 등이 이에 해당되는데, 명품이라 알려진 제품이 대대적인 판촉 행사를 한 후 단골 고객이 줄어드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남보다 돋보여야 한다’는 속물근성에 기반을 두고 있어 ‘속물 효과’라고도 부른다.
이와 같이 베블런은 재화의 가격이 하락하면 소비량이 증가한다는 기존의 경제 이론과는 다른 관점에서 현실의 소비 형태를 설명했고, 라이벤스타인은 현대인들이 주위 사람들의 소비 형태에 따라 자신의 소비 형태를 결정하는 두 가지 모습을 이론으로 나타내었다. 그들의 연구는 소비 형태로 계층을 판단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차별 효용: 어떤 물건에 대해, 남과 다르게 보인다고 판단하는 개인의 주관적인 만족감.

근대 건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안토니오 가우디이다. 가우디는 기존 건축의 어떠한 흐름에도 얽매이지 않은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건축가였다. 그는 아이디어의 원형을 자연에서 찾아 바르셀로나에 합리적이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만들어냈다.
그가 살았던 1900년대 바르셀로나에서는 위생적이지 못한 도시 환경을 개조하기 위해 ‘에이샴플라’라는 이름의 도시 계획 공모전을 열었고 바르셀로나 전체를 그림과 같이 20m 폭의 도로로 둘러싼 정사각형 모양의 주거 블록으로 채우는 획기적인 결정을 했다. 블록의 높이는 모든 건물에 빛이 45도로 내리쬘 수 있도록 6층 높이 이하로 제한했다. 이로써 도심 주택에 어느 정도 채광과 환기가 이루어졌지만 블록 모퉁이에 지어진 집은 햇빛과 바람이 잘 들지 않았다.
밀라는 모퉁이에 지을 자신의 집을 가우디에게 의뢰했다. 가우디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직과 수평에 근거한 고전적인 건축의 엄격함을 벗어던지고, 자유로운 형태로 건물을 디자인함으로써 역동감과 활기가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건물을 설계했다. ‘카사밀라(밀라의 집)’는 바위로 이루어진 몬세라트 산의 모양을 본떠 내부도 직각으로 이루어진 부분이 하나도 없다. 그는 지붕을 햇빛 방향에 따라 비스듬하게 설계하고 옥상 난간을 반투명 철망으로 만들어 주택 안으로 빛과 바람이 최대한 들어올 수 있게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철골 구조를 적절하게 이용함으로써 석조 건물의 유기적인 형태를 만들어 냄과 동시에 당시 스페인에 하나도 없었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라는 새로운 주거 환경을 마련하였다.
바르셀로나에는 카사밀라 말고도 다양한 가우디의 건축물이 남아 있다. ‘뼈로 지은 집’이라는 별명이 있는 ‘카사바트요’는 창문과 창살이 뼈 모양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구엘 공원’에는 자연을 돌 자체로 묘사해 놓은 ‘돌로 만든 세상’이 펼쳐져 있기도 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기둥에는 플라타너스 나무의 모습을 덧입혔다. 덕분에 그곳에서는 숲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와 같은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자연은 나의 스승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자연에서 작품의 모티프*를 따 와 대부분 직선이 없고 포물선과 나선 등 수학적인 곡선이 주를 이룬다.
그렇다고 가우디가 단순히 자연을 흉내만 낸 것은 아니다. 그는 10여 년의 세심한 관찰과 실험을 통해 다중 현수선 모형을 고안하여 중력까지 치밀하게 계산한 건축모형을 만들었다. 그 결과 고딕 건축에서 필수적인 버팀벽 없이 날렵하고 균형 잡힌 건축물을 설계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술력과 창의성의 결합체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거대한 조각품과 같은 예술성을 보여준다. 그는 자연을 본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력이라는 자연의 본성을 합리적으로 사고함으로써 건축에 감성을 담아낼 수 있었다.

*모티프(motif): 예술 작품에서 표현의 동기가 된 작가의 중심사상.

3월
바이러스란 스스로는 증식할 수 없고 숙주 세포에 기생해야만 증식할 수 있는 감염성 병원체를 일컫는다. 바이러스는 자신의 존속을 위한 최소한의 물질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생명 활동에서 숙주 세포를 이용한다. 바이러스를 구성하는 기본 물질은 유전 정보를 담은 유전 물질과 이를 둘러싼 단백질 껍질이다.
1915년 영국의 세균학자 트워트는 포도상 구균을 연구하던 중, 세균 덩어리가 녹는 것처럼 투명하게 변하는 현상을 관찰했다. 뒤이어 1917년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데렐은 이질을 연구하던 중 환자의 분변에 이질균을 녹이는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 미지의 존재를 ‘박테리오파지’라고 불렀다. 박테리오파지는 바이러스의 일종으로 ‘세균을 잡아먹는 존재’라는 뜻이다.
박테리오파지는 머리와 꼬리, 꼬리 섬유로 구성되어 있다. 머리는 다면체로 되어 있고, 그 밑에는 길쭉한 꼬리가, 꼬리 밑에는 갈고리 모양의 꼬리 섬유가 붙어 있다. 머리에는 박테리오파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유전 물질이 있는데, 이 유전 물질은 단백질 껍질로 보호되어 있다. 꼬리는 머릿속의 유전 물질이 세균으로 이동하는 통로 역할을 하며, 꼬리 섬유는 세균에 단단히 달라붙는 기능을 한다.
박테리오파지는 증식을 위해 세균을 이용한다. 박테리오파지가 세균을 만나면 우선 꼬리 섬유가 세균의 세포막 표면에 존재하는 특정한 단백질, 다당류 등을 인식하여 복제를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세균인지의 여부를 확인한다. 그리고 이용이 가능한 세균일 경우 갈고리 모양의 꼬리 섬유로 세균의 표면에 단단히 달라붙는다. 세균 표면에 자리를 잡은 박테리오파지는 머리에 들어 있는 유전 물질만을 세균 내부로 침투시킨다. 세균 내부로 침투한 박테리오파지의 유전 물질은 세균 내부의 DNA를 분해한다. 그리고 세균의 내부 물질과 여러 효소 등을 이용하여 새로운 박테리오파지를 형성할 유전 물질과 단백질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유전 물질과 단백질이 조립되면 새로운 박테리오파지가 복제되는 것이다.
박테리오파지에는 ‘독성 파지’와 ‘용원성 파지’가 있다. ‘독성 파지’는 충분한 양의 박테리오파지가 복제되면 복제를 중단하고 세균의 세포벽을 파괴하는 효소를 만든다. 그리고 그 효소로 세균의 세포벽을 터뜨리고 외부로 쏟아져 나온다. 이와 달리 ‘용원성 파지’는 세균을 이용하는 것은 독성 파지와 같지만 세균을 파괴하지는 않는다. 대신 세균 속에서 계속 기생하여 세균이 분열함에 따라 같이 늘어난다.

미술에서 ‘키네틱 아트’는 움직임을 의미하는 그리스 어 키네티코스에서 유래한 말로 움직임을 중시하거나 그것을 주요 요소로 하는 예술 작품을 뜻한다. 키네틱 아트는 산업 혁명에서 비롯된 대량 생산과 기술의 발달로 인해 급격하게 기계 문명 사회로 변화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출현하였다. ‘키네틱’이라는 단어가 조형 예술에 최초로 사용된 것은 1920년대의 일이다.
키네틱 아트 작가들은 기계의 움직임을 예술적 요소로 수용하여 작품 전체나 일부를 움직이게 함으로써 창작 의도를 표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바람이나 빛과 같은 외부적인 자연의 힘이나 동력 장치와 같은 내부적인 힘에 의해 구현되었다. 또한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구조물처럼 보이도록 창작하였다.
키네틱 아트는 ‘우연성’과 ‘비물질화’를 중요한 조형* 요소로 제시하였다. ‘우연성’은 작품의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을 통해 나타나는데 여기에는 감상자의 움직임이나 위치 등에 의한 작품의 형태 변화도 포함된다. ‘비물질화’는 작품이 고정되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상태를 의미한다. 정지된 물체는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물질화되어 있는 반면, ‘비물질화’는 물체가 계속 움직여 물체의 형태가 고정되지 않는 특성과 관련된다. 예를 들어 뒤샹의 「자전거 바퀴」는 감상자가 손으로 바퀴를 회전하도록 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감상자가 바퀴를 돌리는 속도에 따라 바퀴살이 다양한 모습으로 보이는 ‘우연성’과 바퀴살이 고정되지 않고 움직이는 ‘비물질화’가 나타난다.
키네틱 아트의 이러한 조형 요소들은 감상자들의 시각을 자극하여 작품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효과를 준다. 작품이 보여주는 다양하고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으로 감상자들이 풍부한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통해 기존 미술에서 작품 감상에 대해 수동적이었던 감상자들로 하여금 보다 능동적인 태도를 갖도록 하였다.
키네틱 아트는 작품의 움직임에 의미를 부여하고 작품과 감상자의 상호 작용을 중시함으로써 다양한 실험적 예술의 길을 열어 주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 키네틱 아트는 새로운 첨단 매체를 활용하여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비디오 아트, 레이저 아트, 홀로그래피 아트 등과 같은 예술이 출현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조형:여러 재료를 이용하여 구체적인 형태나 형상을 만듦.
인간을 흔히 망각의 동물이라고 한다. 망각이란 기억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일종의 기억 실패에 해당한다. 기억은 외부의 정보를 기억 체계에 맞게 부호로 바꾸어 저장 및 인출하는 것으로 부호화 단계, 저장 단계, 인출 단계로 나뉜다. 심리학에서는 기억 실패가 기억의 세 단계 중 어느 단계에서 일어난다고 보느냐에 따라 망각 현상을 각기 다르게 설명한다.
부호화 단계와 관련하여 망각을 설명하는 입장에서는 외부 정보가 부호화되는 과정에서 정보의 일부가 생략되거나 왜곡되어 망각이 일어난다고 본다. 부호화란 외부 정보를 기억의 체계에 맞게 변환하는 과정으로, 부호에는 음운 부호와 의미 부호 등이 있다. 음운 부호는 외부 정보가 발음될 때 나는 소리에 초점을 둔 부호이고, 의미 부호는 외부 정보의 의미에 초점을 둔 부호이다. 가령 ‘8255’라는 숫자를 부호화할 때, [팔이오오]라는 소리로 부호화하는 것은 전자에 해당하고, ‘빨리 오오.’와 같이 의미로 부호화하는 것은 후자에 해당한다. 의미 부호는 외부 정보가 갖는 의미에 집중하여 부호화하는 것이므로, 음운 부호에 비해 정교화가 잘 일어난다. 정교화는 외부 정보를 배경지식이나 상황 맥락 등의 부가 정보와 밀접하게 관련시키는 것이다. 부호화 단계에서 망각을 설명하는 학자들은 정교화가 잘된 정보가 그렇지 않은 정보보다 기억에 유리하여 망각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저장 단계에서 망각이 일어난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망각을 부호화 단계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저장 단계에서 정보가 사라지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즉 망각은 부호화가 되어 저장된 정보 중 사용하지 않는 정보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상실된다는 것이다. 독일의 심리학자 에빙하우스는 학습을 통해 저장된 단어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망각되는 양상을 알아보는 실험을 하였다. 그 결과 학습이 끝난 직후부터 망각이 일어나기 시작해서 1시간이 지나자 학습한 단어의 약 44% 정도가 망각되었다. 이를 근거로 저장 단계에서 망각을 설명하는 학자들은 망각은 저장 단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며 시간의 흐름에 비례하여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학습 직후 복습을 해야 학습 효과가 높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인출 단계에서 망각이 일어난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망각을 저장된 정보가 제대로 인출되지 못하여 나타나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즉 망각은 저장된 정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밖으로 끄집어내지 못해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저장된 정보를 인출해 내기 위해서는 적절한 인출 단서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저장된 정보와 인출 단서가 밀접할 경우 인출이 잘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인출 실패로 망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가령 ‘사랑’이라는 단어를 인출할 때 이와 의미상 연관이 큰 ‘애인’이라는 단어를 인출 단서로 사용하면 인출이 잘 되지만, 이와 관련이 먼 ‘책상’이라는 단어를 인출 단서로 사용하면 인출이 잘 되지 않는다. 인출 단계에서의 망각은 저장된 정보를 인출할 만한 단서가 부족하거나 부적절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시간이 흐르더라도 적절한 인출 단서만 제시되면 저장된 정보가 떠오를 수 있다.

소비자들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할 때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이를테면 기능은 만족스럽지만 가격이 비싸거나, 반대로 가격은 만족스러운데 기능은 그렇지 않다거나 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처럼 소비자들은 구매 과정에서 흔히 갈등을 겪게 되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접근-접근 갈등’이다. 이는 둘 이상의 바람직한 대안 중에서 하나만을 골라야 하는 경우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해 발생하는 갈등이다. 이때 판매자는 대안들을 함께 묶어 제공함으로써 소비자가 겪는 ‘접근-접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대안들을 함께 묶어 제공받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의 대안만을 선택해야 했던 경우, 소비자들은 선택하지 않은 대안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소비자들은 이러한 심리적 불편함을 없애려 하는데, 이는 인지 부조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태도가 자신이 한 행동과 서로 일치하기를 바라는데, 그렇지 않으면 심리적 긴장 상태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긴장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려 한다. 그렇다면 제품을 구입한 행동과 제품 구입 후에 자신의 선택이 최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사이의 부조화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
인지 부조화 상태를 겪고 있는 소비자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선택하지 않은 제품의 단점을 찾아내거나 그 제품의 장점을 무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자신의 구매 행동을 지지하는 부가 정보들을 찾아냄으로써 현명한 선택을 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신시킨다. 특히 자동차나 아파트처럼 고가의 재화를 구매했을 경우에는 구매 직후의 인지 부조화가 심화되므로 이를 해소하려는 노력도 더 크게 나타난다. 이때 광고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비자들은 광고를 통해 자신이 선택한 제품의 장점을 재확인하거나 새로운 선택 이유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제품을 구매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광고는 전달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인 매체보다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매체를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소비자들이 구매 후에 광고를 탐색하는 것은 인지 부조화를 감소시키고자 하는 노력인데, 기업 입장에서는 또 다른 효과들을 가져오기도 한다. 구매 후 광고는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에게 자신의 구매 행동이 옳았다는 확신이나 만족을 심어주기 때문에 회사의 이미지를 높이고 브랜드 충성심을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따라서 구매 후 광고는 재구매를 유도하거나 긍정적 입소문을 확산시켜 광고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은 제품을 판매한 이후에도 소비자와 제품의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광고를 노출할 필요가 있다.

3. 고2

2018학년도
9월
근대 철학은 근대 과학의 양적인 크기를 중시하는 사고를 수용하며 발달했다. 고대 과학이 사물 변화의 질적인 부분에 주목했던 것과 달리 근대 과학은 갈릴레오의 “자연이라는 책을 펴 보라. 거기에는 수(數)라는 글자로 가득 차 있다.”라는 발언에 나타나듯 양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즉 양화할 수 있는 것을 과학으로 간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근대 과학은 미리 수학적으로 설정한 믿음을 통해 자연에 접근하였다. 일례로 케플러는 우주가 기하학적인 원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믿음에 따라, 이에 맞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자연 세계에 대하여 기하학과 같은 수학적 관점의 선험적 태도를 취한 것이다. 이런 태도는 근대 철학의 이성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수학에 심취했던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는 선험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믿는 직관을 통해 인식한 것들로 세계에 접근하려 하였다. 직관은 ‘순수한 정신의 의심할 여지없는 파악이며, 이것은 오직 이성의 빛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그 어떠한 의심 없이 분명한 인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데카르트는 의심할 수 없는 것을 찾기 위해 대상을 직관으로 분절하여 더 나눌 수 없는 단순 본성을 찾고, 이 단순 본성들을 복합한 개념을 통해 세계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이후 근대 철학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현대 철학자 베르그송은 이러한 근대 철학의 흐름에 반발한다. 그는 이성이 세계를 분절시키며, 질적인 시간마저 양적으로 쪼개는 일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베르그송은 세계의 사물들이 서로 경계가 모호한 채로 연속적인 전체를 이루고, 서로 수많은 관계 속에 처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성이 이러한 세계를 분절시킴으로써 전체성을 잃게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세계에 대한 통찰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베르그송은 세계를 통찰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성 대신 직관과 지속을 제시한다. 그의 직관은 공감적 경험이자 통합적 경험을 의미한다. 즉 그의 직관은 사물의 내부로 들어가 서로를 느끼게 되는 공감적 경험을 통해 각각의 이질성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하나가 다른 하나로 스며가면서 전체를 향해 통합되는 경험인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오렌지색에 공감하는 과정을 보자. 이 과정에서 우리가 직관을 통해 공감을 확장하려는 노력을 하면, 가장 어두운색으로서의 붉은색과 가장 밝은색으로서의 노란색 사이의 이질적인 다양한 색들이 있음을 경험할 수 있으며, 다시 그것들이 모호한 경계 속에서 스며가면서 통합되는 과정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베르그송은 공감과 통합은 지속되는 시간에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근대 철학의 이성론은 시간을 분절하여 공간 안에 정지된 상태로 보았지만, 베르그송은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기 때문에 오히려 공간적인 것이 시간적인 것에서 영향을 받아 생긴다는 주장을 하였다. 예를 들어 활짝 핀 장미꽃을 볼 때, 우리는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장미꽃을 보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꽃잎이 모두 떨어진 가지만을 보게 된다. 이전에 장미꽃이 차지하고 있던 공간은 비었고, 이는 시간에 의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시간이 양적인 변화를 담은 시간이 아닌 개인 체험이 반영된 질적인 시간임도 주장하였다.
미술사에서 이러한 베르그송의 철학과 유사성을 가진 사조가 인상주의이다. 인상주의자들은 색을 혼합하는 방법을 즐겨 사용하였다. 그들은 서로 다른 색들을 합치는 대신 각각의 이질성을 살리면서 색들의 경계를 흐리게 표현하여 한 가지 색이 다른 하나의 색으로 감상자의 눈에 의해 분절됨이 없이 지속적으로 섞여 들어가도록 표현하였다. 또한 평면의 그림판에 그려진 그림이 3차원적 입체감을 갖도록 개발한 원근법과 같은 기법을 자제하고 색채를 중심으로 표현하였다. 더불어 인물화 속에 지성을 통해 포착된 인물의 위대함이나 교훈을 담으려 했던 고전주의와 달리 대상의 인상을 표현하려 한 것도 특징이다. 예를 들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에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의미도 없다. 오로지 검은색과 흰색의 대비라는 색채의 미적 효과를 위해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와 ‘나체의 여자’를 그렸다. 고전주의에서는 풍경이 인간과 인간 행위의 배경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인상주의 회화에서는 인간도 독점적 지위 대신 배경의 일부로서의 의미만을 지니거나 아예 사라지기도 하였다. 심지어 대상에게 받은 인상에 집중시키기 위해 배경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왜냐하면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대상에게 받은 인상을 전달하는 것이었지, 그 대상이 인간인지 풍경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상주의자들은 색들을 합쳐 만든 중간색은 편견이므로 이를 해체해 고유의 색으로 되돌린 후, 빛이 연출하는 색채의 아름다운 변화들을 연속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로써 대상에 어떤 의미나 교훈을 담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인상을 그대로 전달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는 베르그송이 이야기한 근대 철학이 가져온 지성에 의한 분절로부터의 회복과, 이질적인 것의 연속 안에서 공감을 통한 통합으로 전체성을 느끼는 것과 유사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우리가 섭취한 영양소로부터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거나 몸에 필요한 물질을 합성하는 과정은 모두 화학 반응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화학 반응의 속도를 변화시키는 물질이 촉매이다. 촉매는 정촉매와 부촉매로 구분되는데, 활성화 에너지와 반응 속도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활성화 에너지란 어떤 물질이 화학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이다. 활성화 에너지가 낮아지면 반응 속도가 빨라지고, 활성화 에너지가 높아지면 반응 속도가 느려지게 된다. 이러한 활성화 에너지를 낮추는 것이 정촉매이고, 활성화 에너지를 높이는 것이 부촉매이다.
우리 몸속에도 이러한 촉매가 존재하는데, 효소가 그러하다. 대부분의 효소는 생체 내에서 화학 반응을 빠르고 쉽게 일어나게 한다. 예를 들어 소화 효소인 펩신이 분비되어 우리는 음식물을 오랫동안 위장에 담고 있지 않고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효소를 구성하는 주성분은 단백질이며 각 효소는 고유의 입체 구조를 갖는다. 효소는 촉매로 작용하는 과정에서 반응물과 일시적으로 결합한다. 효소에서 반응물과 결합하여 화학 반응이 일어나게 하는 특정 부분을 활성 부위라고 하며, 활성 부위와 결합하는 반응물을 기질이라고 한다. 효소에 의한 촉매 과정에서 효소의 활성 부위와 기질의 3차원적 입체 구조가 맞으면 효소․기질 복합체가 일시적으로 형성되는데, 이처럼 한 종류의 효소가 한 종류의 기질에만 작용하는 것을 효소의 기질 특이성이라 한다. 촉매 과정이 끝나면 기질은 생성물로 바뀌며, 효소․기질 복합체로부터 분리된 효소는 처음과 동일한 화학적 상태로 복귀하여 다음 반응을 준비한다.
그런데 어떤 화학 물질은 효소와 결합하여 효소의 작용을 방해하는데, 이러한 물질을 저해제라고 한다. 저해제는 효소 반응을 방해하는 방식에 따라 경쟁적 저해제와 비경쟁적 저해제로 나누어진다. 먼저 경쟁적 저해제는 기질과 유사한 3차원적 입체 구조를 지니고 있어, 기질이 결합할 효소의 활성 부위에 기질 대신에 경쟁적 저해제가 결합하여 효소·기질 복합체의 형성을 저해한다. 경쟁적 저해제는 기질의 농도가 증가하면 저해 효과는 감소한다. 다음으로 비경쟁적 저해제는 효소의 활성 부위가 아닌 효소의 다른 부위에 결합하여 효소의 입체 구조를 변형시킴으로써 효소의 활성 부위에 기질이 결합하지 못하게 한다. 그 결과 효소·기질 복합체가 형성되지 않아 효소의 작용을 저해한다. 비경쟁적 저해제가 작용하는 경우에는 기질의 농도가 증가해도 저해 효과는 감소하지 않는다.
국가는 자국의 힘이 외부의 군사적 위협을 견제하기에 충분치 않다고 판단할 때나, 역사와 전통 등의 가치가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는다. 동맹결성의 핵심적인 이유는 동맹을 통해서 확보되는 이익이며 이는 동맹관계 유지의 근간이 된다.
동맹의 종류는 그 형태에 따라 방위조약, 중립조약, 협상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방위조약은 조약에 서명한 국가들 중 어느 한 국가가 침략을 당했을 경우, 다른 모든 서명국들이 공동방어를 위해서 참전하기를 약속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립조약은 서명국들 중 한 국가가 제3국으로부터 침략을 받더라도, 서명국들 간에 전쟁을 선포하지 않고 중립을 지킬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협상은 서명국들 중 한 국가가 제3국으로부터 침략을 당했을 경우, 서명국들 간에 공조체제를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차후에 협의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세 가지 유형 중 방위조약의 경우는 동맹국의 전쟁에 개입해야 한다는 강제성이 있기에 동맹국 간의 정치․외교적 관계의 정도가 매우 가깝다. 또한 조약의 강제성으로 인해 전쟁 발발 시 동맹관계 속에서 국가가 펼칠 수 있는 정치․외교적 자율성은 매우 낮다. 즉 방위조약이 동맹국 간의 자율성이 가장 낮고, 다음으로 중립조약, 협상 순으로 자율성이 높아진다. 한 연구에 따르면, 1816년부터 1965년까지 약 150년 간 맺어진 148개의 군사동맹 중에서 73개는 방위조약, 39개는 중립조약, 36개는 협상의 형태인데, 평균 수명은 방위조약이 115개월, 중립조약이 94개월, 협상은 68개월 정도였다. 따라서 동맹관계가 가깝고 자율성이 낮을수록 그 수명이 연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이 동맹관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 이유에 대해 현실주의자들과 구성주의자들은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는데, 이는 국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우선 현실주의자들은 국가는 이기적 존재이며 국제 사회의 유일하고 중요한 행위 주체라고 생각한다. 국제 사회는 국가 이상의 단위에서 작동하는 중앙정부와 같은 존재가 부재하는 일종의 무정부 상태이므로 개별 국가는 힘의 논리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각 나라는 군사적 동맹을 통해 세력 균형을 이루어 패권 안정을 취하려 한다. 특정한 패권 국가가 출현하면 그 힘을 견제하기 위한 국가들 간의 동맹이 형성되기도 하고, 그 힘에 편승하는 동맹이 형성되기도 한다. 이렇듯 힘의 균형점이 이동함에 따라 세력의 균형을 끊임없이 찾는 과정에서 동맹관계는 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구성주의자들 역시 현실주의자들처럼 동맹관계가 고정된 약속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약속이라고 본다. 구성주의자들은 무정부적 국제 사회를 힘의 분배와 균형 등의 요소로 분석할 수 없다고 비판하며, 관계에 주목한다. 구성주의자들은 국제 사회의 구성원들이 상호 작용을 하여 상호 간 역할과 가치를 형성하면서 국제 사회 환경의 변화를 만들어낸다고 본다. 상호 작용의 변화에 따라 동맹은 달라질 수 있는데, 타국이나 국제 사회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고 국제 사회에서의 구성원들의 역할이 가치가 있다고 판단될 때, 긍정적인 동맹관계를 맺고 평화로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동맹은 파기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6월
정조 임금이 애초 10년을 잡았던 수원 화성의 공사를 2년 7개월 만에 끝낼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약용이 발명한 ‘유형거(游衡車)’라는 특별한 수레 덕분이었다. 『화성성역의궤』의 기록에 따르면 성을 쌓는 돌을 운반할 때 유형거를 이용함으로써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비용도 크게 절약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수레에 비해 유형거가 공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 여느 수레는 짐을 나르는 기능에만 치우쳐 있는 것에 비해, 유형거는 짐을 쉽게 운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짐을 싣는 작업도 지렛대의 원리를 반영하여 쉽게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유형거는 무게를 견디고 분산시키는 바퀴와 복토, 짐을 싣는 곳인 차상, 수레 손잡이, 여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돌부리에 찔러 넣어 돌을 들어 올리는 여두(輿頭)는 소 혀와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돌을 쉽게 올려놓을 수 있도록 하였고, 수레 손잡이는 끝부분을 점점 가늘고 둥글게 하여 손으로 쉽게 조작하도록 하였다. 이 손잡이 부분을 잡고 올리면 여두가 낮아져 돌을 쉽게 차상에 올려놓을 수 있고, 다시 손잡이를 내리면 돌이 손잡이 쪽으로 미끄러지게 된다.
둘째, 유형거는 소에서 얻는 주동력 외에 보조 동력을 더할 수 있었다. 이는 수레가 흔들림에 따라 싣고 있는 돌이 차상 위에서 앞뒤로 움직이는 것을 이용한 것으로, 바퀴 축과 차상 사이에 설치한 ‘복토(伏兎)’라는 반원형의 장치덕분이다. 상식적으로는 복토로 인해 짐을 싣는 부분이 높아져 수레가 흔들리는 만큼 무게 중심도 계속 변화하여 수레를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복토를 설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보조 동력을 정약용은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즉, 유형거가 움직일 때 수레 손잡이를 들어 올리면 돌은 정지 마찰력을 극복하고 견인줄에 의해 멈출 때까지 수레의 진행 방향으로 여두 부근까지 미끄러지는데, 이때 생긴 에너지는 수레에 추진력을 더한다. 그리고 수레 손잡이를 내리면 이번에는 돌이 다시 수레의 진행 방향 반대쪽으로 미끄러지다가 한표(限表)라고 하는 조그만 나무토막에 걸려 멈추게 되는데,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는 수레가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하지만 바퀴 축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여두까지의 거리가 길고 한표까지의 거리는 짧은 것을 생각하면, 추진력에 비해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힘은 작으므로 결국 수레를 운전하는 입장에서는 그만큼 보조 동력을 얻는 셈이다. 실제 『화성성역의궤』에서도 1치(약 3㎝)쯤 물러섰다가 1자(약 30㎝) 정도 앞으로 나아간다고 밝히고 있다.
셋째, 유형거는 손잡이의 조작으로 수레에 가해지는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었다. 기존의 수레는 거친 길을 달리면서 받는 충격을 완화하기가 힘들었으나, 유형거는 수레를 운용하는 사람이 손에 익은 경험을 통해 유형거가 받는 충격을 감지하고 그 힘을 상쇄하기 위하여 손잡이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완충 제어를 하였다. 언덕을 오를 때는 손잡이를 올리고 내려갈 때는 손잡이를 내림으로써 수레가 앞뒤로 흔들거리며 진동하는 현상을 제어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왼쪽으로 돌 때에는 왼쪽이 올라가므로 왼쪽 손잡이를 누른다. 또 갑자기 출발할 때는 손잡이를 올리고, 갑자기 정지할 때는 손잡이를 내리는 등 사람의 능동적인 손잡이 조작에 의해 좀더 안정적으로 수레를 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상으로 볼 때 유형거는 단순한 수레라고 할 수 없다. 유형거는 편리하게 짐을 실을 수 있는 지게차이자 운행 중 덤으로 얻을 수 있는 보조 동력까지 갖추고, 불안정한 수레의 움직임을 보다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완충 장치까지 갖춘 위대한 발명품이었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감정노동 종사자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감정노동 종사자들은 특정한 감정 표현을 요구받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감정노동은 업무상 요구되는 특정한 감정 상태를 연출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행하는 일체의 감정관리 활동을 일컫는다.
감정노동 종사자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크게 개인 특성, 직무 특성, 조직 특성으로 나눌 수 있다. 개인 특성을 대표하는 요인으로는 공감적 배려가 있다. 이것은 타인의 감정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공감적 배려가 강한 사람은 타인의 감정에 대응하기 위하여 실제 감정과는 다른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직무 특성을 대표하는 요인으로는 직무 다양성이 있다. 이것은 직무 수행 과정에서 활용해야 하는 기능이나 재능의 복합성과 관련된다. 직무 다양성이 증가할수록 표현해야 할 감정도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서비스 업무에서는 고객의 유형이 다양하면 직무 다양성이 높아진다. 조직 특성을 대표하는 요인으로는 사회적 지원이 있다. 이것은 상급자, 동료 등 조직 내에서 대인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서 얻는 인정이나 조언, 물질적 지원 등의 긍정적인 뒷받침을 의미한다. 사회적 지원이 풍부한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은 감정노동에 대한 스트레스는 낮고 업무 만족도는 높다. 이러한 세 가지 특성의 요인들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감정노동의 양상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실제 직무 수행 장면에서 나타나는 감정노동 양상 중 대표적인 것으로 표면 행위와 내면 행위 두 가지가 있다. 조직이 종사자에게 요구하는 특정한 감정 표현을 조직의 감정 표현 규칙이라고 하는데, 표면 행위는 실제로 느끼지 않는 감정을 조직의 감정 표현 규칙에 맞추어 표현하는 것이다. 내면 행위는 조직의 감정 표현 규칙을 내면화하여 실제 감정으로 느끼면서 표현하는 것이다. 내면 행위는 심리적 안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반면 표면 행위를 할 때 감정노동 종사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위장해야 하기 때문에 감정 부조화를 경험하게 된다. 감정 부조화 상태가 되면 수치심이나 짜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유발된다. 감정 부조화가 지속되면 감정노동 종사자는 스스로를 위선적이라고 생각하며 거짓 자아를 느끼게 되고, 심할 경우 우울증과 같은 정신병리 증세를 겪을 수도 있다.
따라서 감정노동 종사자들은 감정 부조화에 따른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감정조절 전략을 구사한다. 우선 자신이 경험한 부정적 감정에 대하여 스스로 평가를 한다. 그 후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결정하여 적절한 감정조절 전략을 구사한다. 이러한 감정조절 전략에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능동 전략은 부정적 감정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전략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왜 이러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는지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또한 과거 유사한 상황을 떠올리거나 문제에 따른 긍정적 측면을 보면서 자신이 더 성숙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나아가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한 상황을 개선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자꾸 짜증이 나는 이유가 뭘까?’, ‘옛날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잘 극복했으니 이번에도 잘 이겨내면 좋은 경험이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그 예에 해당한다.
둘째, 회피ㆍ분산 전략은 부정적인 감정 상태에 있을 때 의도적으로 다른 생각들을 떠올려 현재의 부정적인 상황을 피하거나 주의를 분산시키는 전략이다. ‘별것 아닐 거야.’, ‘불쾌한 감정은 금방 지나갈 거야.’라고 생각하며 부정적 상황을 외면하거나, 부정적인 상황과 상관없는 즐거운 상황을 떠올리는 것이 그 예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전략을 자주 쓰다 보면 자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주위의 문제에도 무관심한 태도를 가지게 될 수도 있다.
셋째, 지지 추구 전략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자아 개념과 자존감을 안정되게 유지함으로써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려는 전략이다. 친밀한 사람을 만나 자기 감정을 토로하여 공감을 얻거나 주위 사람으로부터 조언이나 도움을 구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이 전략은 타인과의 상호 작용 과정을 통해 감정을 조절하는 것으로, 부정적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활용한다. 세 가지 감정조절 전략 중 회피ㆍ분산 전략과 지지 추구 전략은 일시적인 감정조절에는 유용한 전략이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따라서 궁극적인 감정조절을 위해서는 능동 전략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장에서 임금을 받을 목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정규직 근로자에서부터 단시간 근로자 즉 아르바이트까지 근로자에 포함된다. 그런데 단시간 근로자의 경우 법적으로는 엄연한 근로자이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에서 법적인 보호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사업주가 근로자를 채용할 경우에는 근로 조건을 명시(明示)한 근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근로 계약이란 근로자가 근로 조건에 대해서 사업주와 약속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약속은 구두로 하기보다는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하여 반드시 문서로 작성해야 한다. 근로 계약서에는 일을 하기로 한 기간, 일할 장소, 해야 할 일, 하루에 일해야 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 쉬는 날, 임금과 임금을 받는 날 등 중요한 내용이 반드시 나타나 있어야 한다. 근로 계약서는 사업주와 근로자 본인이 작성해야 하며,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는 없다. 또 1일 근로 시간이 4시간인 경우에는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쉬는 시간이 주어져야 하고, 1주간의 정해진 근로 일수대로 일한 근로자에게는 1주에 1일의 유급 주휴일*이 보장되어야 한다. 4인 이하의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휴일에 근무할 경우 임금의 50%를 가산(加算)하여 받을 수 있으며, 1년간 정해진 근로 일수에 따라 성실히 근무한 경우에는 연차 유급 휴가*를 보장받을 수 있다. 다만 1주간의 정해진 근로 시간이 15시간 미만일 경우에는 퇴직금, 유급 주휴일, 연차 휴가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만약 사업주가 근로 계약서 작성을 거부할 경우 신고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사업주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사업주가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근로자에게 이를 교부(交附)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처벌 대상이 된다.
모든 근로자는 최저임금법에서 정한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일을 하는 만 18세 미만의 연소 근로자도 동일한 적용을 받는다. 근로자로 채용된 이후에 기업의 필요에 따라 교육이나 연수를 받고 있는 수습 근로자의 경우, 일하기 시작한 날부터 3개월 이내에는 최저임금의 90%를, 3개월이 지나면 최저임금 전액을 지급받아야 한다. 하지만 단순노무직 근로자이거나 계약 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의 경우에는 수습 기간에도 100% 임금을 지급받아야 한다. 만약 사업주가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지급할 경우에는 최저임금법 제28조에 의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임금은 ‘정기적으로’, ‘해당 근로자에게 직접’, ‘전액을’, ‘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임금은 일, 주, 월 단위로 지급할 수 있고, 현물이나 상품권은 안 되며, 통장으로 지급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 기준을 지키지 못하면 임금 체불이 된다. 대표적인 임금 체불 사례를 보면, 정기적으로 지급하기로 한 날에 지급하지 않는 경우, 임금 중 일부만 지급하는 경우, 퇴사 후 14일 이내에 당사자 간 약속 없이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 등이다. 그리고 일을 하기 위해 출근하였으나 갑자기 일이 없어 집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경우, 그 이유가 사업주에게 있다면 4인 이하의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평균 임금의 70%에 해당하는 휴업 수당을 받아야 한다. 만약 임금을 받지 못하면 독촉장을 발송하거나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사업주는 근로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다.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경우에도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해고 관련 내용 등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만약 사업주에게 부당하게 해고를 당했을 경우 일정 금액의 해고 수당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일용 근로자로서 3개월을 연속 근무하지 않은 경우, 2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근무하는 경우, 계절적 업무에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근무하는 경우, 3개월 이내의 수습 기간을 정하여 근무 중인 경우에는 해고 수당을 청구(請求)할 수 없다.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를 해고한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일하다가 다쳤을 경우 사업주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근로자 본인의 과실(過失)을 이유로 치료비 지급을 거부하더라도 치료비를 본인이 부담할 필요는 없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에서 치료 및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근로기준법 제7조, 제8조에 따르면 사업주 또는 관리자가 근로자에게 기분이 나쁠 정도의 폭언이나 지나친 성적 농담을 하는 경우 또는 신체적인 체벌을 하는 경우에는 위법이므로 고용노동부나 경찰서 등 관련 기관에 신고할 수 있다.

*유급 주휴일: 1주간의 정해진 근로 일수대로 일하였을 때 임금을 받으면서 쉴 수 있는 날.
*연차 유급 휴가: 해마다 종업원에게 주도록 정하여진 유급 휴가.

3월
근대 이전의 조각은 고유한 미술 영역의 독립적인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신전이나 사원, 왕궁과 같은 장소의 일부로서 존재했다. 중세 유럽의 성당 곳곳에 성서와 관련 있는 각종 인물이 새겨지거나 조각상으로 놓였던 것, 왕궁 안에 왕이나 귀족의 인물상들이 놓였던 것이 그 예이다. 이러한 조각은 그것이 놓여 있는 장소의 성격에 따라 종교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왕의 권력을 상징함으로써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조각이 장소와 긴밀한 관련성을 지니고 그 장소의 맥락과 의미를 강조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향은 근대에 들어서면서 큰 변화를 맞이했다. 종교의 영향력 및 왕권이 약화되면서 관련 장소가 지녔던 권위도 퇴색하여, 그 장소에 놓인 조각에 부여되었던 종교적, 정치적 의미도 약해진 것이다. 또 특정 장소의 상징으로서의 조각이 원래의 장소에서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기존의 맥락을 상실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이러한 상황이 전시 및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박물관, 미술관 등 근대적 장소가 출현하는 상황과 맞물리면서 조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조각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놓이면서 미적 감상의 대상인 ‘작품’으로서의 성격이 강조된 것이다. 사람들은 조각을 예술적인 기법이나 양식 등 순수한 미적 현상이 구현된 독립적인 작품으로 감상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19세기 이후 미술의 흐름 속에서 더욱 두드러졌고, 작품 외적 맥락에 구속되기보다는 작품 자체에서 의미의 완결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 작품 바깥의 대상을 지시하거나 재현하기보다는 감상자의 시선을 작품에만 집중시키는 단순하고 추상화된 작품들이 이 시기부터 많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대개 미술 전시장의 전형적인 화이트 큐브, 즉 출입구 이외에는 사방이 막힌 실내 공간 안에서 받침대 위에 놓여 실제적인 장소나 현실로부터 분리된 느낌을 주었다.
이렇게 조각이 특정 장소로부터 독립해 가는 경향 속에서 미니멀리즘이 등장하였다. 미니멀리즘은 1960년대에 미국을 중심으로 발달한 예술 사조로, 작품의 의미가 예술가의 의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최소화하고 꾸밈과 표현도 최소화하여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기하학적 형태를 추구했다.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가공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산업 재료들을 사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무의도성과 단순성을 구현했기 때문에, 그 결과물은 작품이라기보다는 사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또한 미니멀리즘 조각은 감상자들이 걸어 다니는 바닥이나 전시실 벽면과 같은 곳에 받침대 없이 놓임으로써 감상자와 작품 간의 거리를 축소하고, 동선에 따라 개별적이고 다양한 경험과 의미 형성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미니멀리즘 조각은 단순성과 추상성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전 시기의 추상 조각과 공통점을 지니면서도, 전시장이라는 실제 장소의 물리적 특성을 작품에 의도적으로 결부하여 활용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띠게 되었다. 이런 특징은 근대 이전의 조각이 장소의 특성에 종속되어 있었던 것과도 차별화된다.
이후 미술에서는 미니멀리즘을 통해 부각된 작품과 장소 간의 관련성을 새롭게 실현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져 왔다. 미니멀리즘 작품이 장소와의 관련성을 모색하고 구현한 것이기는 해도 미술관이라는 공간 내부에 제한된다는 점을 간파한 일부 예술가들은, 미술관 바깥의 도시나 자연을 작업의 장소이자 대상으로 삼아 장소와의 관련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하려 하였다. 대지 미술은 이러한 시도 중 하나로, 대지의 표면에 형상을 디자인하고 자연 경관 속에 작품을 만들어 냄으로써 지역이나 환경 자체를 작품화하였다. 구체적인 장소의 특성을 작품 의미의 근원으로 삼는 이러한 작품들에서는 작품과 장소, 감상자 간의 상호 작용을 통해 의미가 형성된다는 특징이 드러났다.

빛은 망막의 광수용기 세포에서 수용되어 전기 신호로 변환된 뒤, 뇌의 시각 피질로 전달된다. 후벨과 위젤은 망막에 비춰진 빛에 대해 고양이의 시각 피질 세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실험하였다. 그들은 이를 통해 시각 피질 세포가 망막의 일정 영역 내 광수용기 세포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나의 시각 피질 세포와 연결된 망막상의 일정 영역을 해당 시각 피질 세포의 ‘수용장’이라고 한다.
또한 이 실험을 통해 시각 피질이 하위의 ‘단순 세포’와 상위의 ‘복잡 세포’의 다층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단순 세포와 복잡 세포 모두 각각의 수용장에 비친 특정한 각도를 가진 선분 모양의 빛에 활성화된다. 하지만 단순 세포가 수용장 내 특정 위치의 빛에만 활성화되는데 반해, 복잡 세포는 수용장이 단순 세포보다 넓고, 수용장에 비춰진 빛의 위치 변화에 관계없이 활성화된다. 이는 복잡 세포가 다수의 단순 세포들로부터 전기 신호를 전달받아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그림 1>은 이러한 시각 피질 세포들의 전기 신호 전달 과정을 다층 모형으로 나타낸 것이다. 모형의 각 층은 유닛들로 구성되는데, 계층 1의 각 유닛은 망막의 광수용기 세포에, 계층 2의 각 유닛은 단순 세포에, 계층 3의 유닛은 복잡 세포에 대응된다. 이때, 검은색 유닛은 해당 유닛이 활성화되었음을 의미하며, 계층 1의 사각형 영역은 계층 2의 활성화된 유닛의 수용장을 표시한 것이다. (a)와 (b)는 각각의 사선 패턴의 위치에 따른 각 유닛들의 활성화 상태를 나타낸 것이다. 계층 2의 각 유닛은 자신의 수용장 안의 특정한 위치에 특정한 각도의 사선 패턴이 입력되면 활성화된다. 계층 3의 유닛은 계층 2의 유닛 중에 하나라도 활성화되면 활성화된다.
‘합성곱 신경망’은 이미지 인식(image recognition)*을 위해 만들어진 인공 신경망으로서, <그림 1>과 같은 다층 구조의 신경망 모형을 수학적으로 구조화한 것이다. 합성곱 신경망은 ‘합성곱층’과 ‘통합층’으로 구성되며, 이들은 각각 합성곱 연산과 통합 연산에 의해 출력된다. 먼저, 합성곱 연산은 특정한 크기의 필터가 이미지 데이터의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까지 일정 간격으로 이동해 가며 이미지 데이터와 필터의 곱을 합산하는 과정이다. 이때 필터는 이미지 데이터의 국부 영역에 존재하는 특정한 기하학적 패턴을 검출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그림 2>와같이‘□’의형태를 가진 6×6 크기의 이미지 데이터로부터 수평 방향의 패턴을 추출한다고 하자.이때,각유닛의 숫자는 명암을 0부터 10까지의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필터의 크기가 3×3이고 이동 간격을 1 유닛단위로설정했다면, 필터가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으로 한 칸씩 이동해 가면서 합성곱을 16번 연산하고 4×4 크기의 ‘특징 지도’(feature map, FM)가 출력된다. <그림 2>에서 특징 지도 FM1의 가장 왼쪽 위 유닛 값 ‘6’은 이미지 데이터의 왼쪽 위 3×3의 영역과 필터와의 곱의 총합인 ‘0×0+0×0+0×0+0×1+3×1+3×1+0×0+3×0+0×0’의 연산을 통해 구해진 것이다.
이렇게 필터를 이용해 이미지 데이터에 합성곱 연산을 수행하면 필터의 특성에 맞게 강조된 특징 지도를 얻을 수 있다. <그림 2>는 합성곱 연산 결과 수평 방향의 패턴이 강조되고 데이터 크기는 6×6에서 4×4로 줄어 출력된 특징 지도를 보여 준다. 이때, 필터의 이동 간격이 크게 설정된다면 출력되는 특징 지도의 크기를 줄여 데이터 처리를 빠르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이미지의 특징을 놓칠 가능성이 증가하게 되는 단점이 있다.
다음으로, 통합 연산은 합성곱층의 일정 범위 안에 있는 유닛 값들을 정해진 규칙에 따라 하나의 값으로 통합하는 연산이다. 통합 연산 규칙에는 최댓값 통합 규칙, 평균값 통합 규칙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를 통해 새롭게 출력된 특징 지도로 통합층이 구성된다. <그림 3>은 <그림 2>의 FM1을 2×2 범위로 최댓값 통합 규칙에 따라 통합 연산한 것이다. 이때, 통합 연산의 범위를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까지 1 유닛 단위로 이동하도록 설정하면 3×3 크기의 새로운 특징 지도 FM2가 출력된다.
합성곱 연산을 통해 이미지의 어떤 영역에 어떤 패턴이 있는지를 추출할 수 있으며, 다양한 필터를 통해 이를 반복하면 이미지 속 사물을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연산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패턴의 위치 정보를 계속 유지하게 되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불필요한 정보이다. 왜냐하면, 합성곱 연산을 통해 출력된 특징 지도 내에서 서로 인접한 유닛들은 미세한 위치 정보만 다를 뿐, 거의 비슷한 패턴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통합 연산 수행은 합성곱 연산의 결과에서 위치 정보를 줄여 주는 역할을 한다.
합성곱 연산과 통합 연산을 통해 위치 정보는 축약되고 패턴 정보는 강조된 특징 지도가 출력된다. 그리고 이 특징 지도를 인공 지능 네트워크인 ‘전체 연결층’에 입력하여 이미지 인식 결과를 출력할 수 있다. 또한 입력된 이미지가 많아질수록 인공 신경망의 기계 학습을 통해 합성곱 신경망이 스스로 필터의 수치를 갱신함으로써 이미지 인식의 정확성이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합성곱 연산 및 통합 연산의 횟수, 필터의 크기 및 이동 간격, 통합 연산 규칙 등은 초기 설정 값이 계속 유지되므로 이를 고려하여 합성곱 신경망을 설계해야 한다. 최근 인공 지능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합성곱 신경망은 사진 자동 분류, 필기 인식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미지 인식:이미지 속 사물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

지대는 토지를 빌려주고 얻는 대가를 말한다. 지대의 개념과 성격에 관한 논의는 고전경제학파의 리카도로부터 이론적으로 정교화되기 시작했다. 그의 차액지대론은 지대가 발생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가령, 어떤 나라의 A, B, C 지역에 쌀 생산에만 쓰이는 토지가 있는데 그 비옥도에 차이가 있어 각 지역 토지에서의 쌀 한 가마당 생산비가 5만 원, 6만 원, 8만 원이라고 하자. 여기서 생산비는 투입한 노동과 자본에 대한 대가로, 쌀의 가격은 생산비와 일치하는 것으로 본다. 이 나라의 쌀 수요량이 적어서 A 지역 토지의 일부만 경작해도 그 수요를 충당할 수 있을 때 전국의 쌀 한 가마당 가격은 A 지역 토지에서의 쌀 생산비인 5만 원에서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쌀 수요량이 증가하게 되면 어느 순간 A 지역 토지들로 모자라 B 지역 토지도 경작되기 시작할 것이다. 이때 B 지역 토지를, 경작되는 토지 가운데 가장 열악한 땅이라는 의미에서 한계지라 부른다. B 지역 토지가 한계지가 되면 전국의 쌀 한 가마당 가격은 6만 원으로 결정된다. 이에 따라 A 지역 토지를 경작하는 사람들은 5만 원을 들여 6만 원을 벌 수 있어 쌀 한 가마당 1만 원의 소득을 추가로 얻게 된다. 이 소득은 사람들로 하여금 A 지역 토지를 이용하려는 경쟁을 유발하고 지주에게 땅을 빌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더 높은 지대를 제시하게 함으로써, 지대는 결국 기존의 A 지역 토지 경작자들의 추가 소득인 1만 원으로 결정될 것이다. 쌀 수요량이 더 늘어나서 C 지역 토지가 한계지가 되면 A 지역 토지의 지대는 더 오르고, B 지역 토지에도 지대가 형성된다. 결국 쌀의 가격은 한계지에서의 쌀 생산비가 되고, 한계지보다 비옥도가 높은 토지들의 지대는 그 토지에서의 쌀 생산비와 한계지에서의 쌀 생산비의 차액이 되는 것이므로, 더 열악한 땅이 한계지가 될수록 쌀 가격은 오르고 그에 따라 지대도 오르게 된다.
이와 같이 리카도는 지대를, 토지 생산물의 가격에서 생산비를 뺀 나머지, 즉 잉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지대를 토지 생산물의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비용이 아니라 토지 생산물의 가격이 오름으로써 얻게 되는 불로소득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이런 고전경제학파의 지대론에 입각해 헨리 조지는 지대 전액을 조세로 걷어야 한다는 지대 조세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고전경제학파에 이어 등장한 초기 신고전경제학파는 지대를 잉여나 불로소득으로 간주하는 고전경제학파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보았다. 그래서 초기 신고전경제학파의 클라크는 토지를 노동이나 자본과 같은 생산 요소의 하나로 보고, 지대를 ‘한계생산이론’에 입각하여 새롭게 정의했다. 이 이론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다수인 완전경쟁시장을 전제로 생산 요소의 가격은 그것의 한계생산가치, 즉 생산 요소 한 단위를 추가함으로써 얻게 되는 생산량 증가분만큼의 가치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토지의 임대 가격인 지대도 토지로부터 얻게 되는 생산물의 생산량 증가분만큼의 가치를 반영한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로써 지대를 토지가 생산에 기여한 정도를 반영한 정당한 대가로 보고 토지를 노동이나 자본과 별개로 취급하는 고전경제학파의 관점을 비판했다.
리카도와 클라크의 논의는 신고전경제학파의 마셜의 이론으로 이어진다. 마셜은 초기 신고전경제학파의 한계생산이론을 발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고전경제학파의 지대론을 재해석함으로써, 자신의 이론을 전개했다. 우선 마셜은 생산 요소를 생산량이 변함에 따라 투입량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변 생산 요소와 그렇지 않은 고정 생산 요소로 나누고 그에 대한 비용을 각각 가변 비용, 고정 비용이라 정의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생산량을 늘리거나 줄이기 위해 즉각적으로 투입량을 조절할 수 있는 노동이나 자본은 가변 생산 요소이다. 그러나 토지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큰 규모의 필지를 특정 시기에 목돈을 지불하여 빌리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투입량을 즉각적으로 조절하기 어렵지만 장기적으로는 토지를 빌려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토지는 단기적으로는 고정 생산 요소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가변 생산 요소로 볼 수 있다. 한편 마셜은 생산자의 행위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를 위해서는 생산물 한 단위를 더 늘리는 데 필요한 비용의 추가분 즉, 한계 비용이 생산물 한 단위의 가격과 같아지도록 생산량을 결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한계 비용은 생산량을 결정하는 데 관여하는 비용이므로 생산량을 늘리거나 줄임에 따라 즉각적으로 변할 수 있는 가변 비용에 한해서만 논의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지대는 단기적으로는 생산량에 관여하는 한계 비용으로 볼 수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볼 수도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마셜은 지대를 생산에 기여하는 비용으로 보는 초기 신고전경제학의 관점과, 임금이나 이자와는 다른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는 고전경제학파의 관점을 자신의 이론 안으로 수용할 수 있었다.
또한 마셜은 지대를 순전히 자연의 혜택으로 인한 것으로 한정하면서 리카도의 차액지대론이 인위적 요소가 개입될 수 있는 토지의 비옥도를 지대 발생의 원인으로 보았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는 한편 그는 토지 이외의 요소에도 지대 개념을 확장하여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이를테면 마셜은 공장, 기계 등 고가의 자본 설비의 경우에는 그것을 이용하는 대가가 지대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준(準)지대’라고 하였다. 이런 요소도 토지처럼 공급을 쉽게 늘릴 수 없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는 고정 생산 요소지만, 장기적으로는 가변 생산 요소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마셜은 이전까지의 지대론을 정교화하고 현대 지대론으로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4. 고3

2019학년도
3월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역법은 연월일시의 시간 규범을 제시하는 일뿐만 아니라 태양, 달 그리고 다섯 행성의 위치 변화를 통해 하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역법의 ⓐ운용과 역서의 발행은 나라를 다스리는 중요한 통치 행위였기 때문에 동아시아에서는 국가 기구를 설치하여 역법을 다루었고 그곳의 관리에게만 연구가 허락되었다. <서경(書經)>에서 말한 ‘하늘을 관찰하여 백성에게 시간을 내려준다.’라는 뜻의 관상수시(觀象授時)는 유교 문화권에서 역법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를 잘 드러낸다. 관상수시는 하늘의 명을 받은 천자에게만 허락된 일이므로 고려 시대에는 중국의 역을 거의 그대로 따라야 했다. 고려 초에 도입된 선명력은 정확성이 부족하여 고려 말에는 정확성이 높아진 수시력을 도입했다. 수시력은 계산식이 복잡해 익히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일식과 월식, 곧 교식을 추보*할 때는 여전히 선명력이 사용되었다. 이 상황은 조선 건국 직후에도 지속되었다.
세종은 즉위 초부터 수시력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고 애썼고 마침내 수시력에 통달했다고 자부했다. 그럼에도 세종 12년, 교식 추보에 오차가 생기자 세종은 그 해결책으로 조선만의 교식 추보 방법을 찾고자 했다. 세종은 중국의 역법을 수용하되 이것을 조선에 맞게 운용하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면서도 시간 규범을 스스로 수립하고자 한 것이다. 수시력으로 교식을 추보할 때에는 입성을 사용했는데, 이때의 입성은 모두 중국을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 입성이란 천체의 위치를 계산하는 데 필요한 관측값 등을 실어 놓은 계산표이다. 세종은 한양을 기준으로 한 입성을 제작하려 했다. 그래서 입성 제작에 필요한 낮과 밤의 길이인 주야각을 추보하기 위해 한양의 위도 등을 알아내도록 명했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 성과를 담은 것이 세종 26년에 편찬된 <칠정산 내편>이다. ‘칠정’이란 태양, 달, 다섯 행성의 운행을 가리키고, ‘산’이란 계산했다는 뜻이다. <칠정산 내편>은 중국 역법에 기반을 두었지만 교식과 천체 관측에 필요한 값들을 한양의 기준으로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역법이라 할 수 있다.
<칠정산 내편>의 효용성을 살피기 위해 세종은 정묘년(1447년) 8월에 일어날 교식을 미리 추보하여 <칠정산 내편 정묘년 교식 가령>을 편찬하게 했다. 그런데 이 추보에 오차가 발생하자 추보의 방법과 내용을 꾸준히 정비했다. 이 성과를 담은 책이 바로 세조 4년에 편찬된 <교식 추보법 가령>이다. 이 책은 정묘년(1447년) 8월의 교식을 새로운 계산식으로 다시 추보한 것이다. 두 가령의 교식 추보 원리는 동일하지만 계산식을 약간 달리했기 때문에 교식 추보 시각은 서로 달랐다. 두 가령의 교식 추보 시각은 현대 천문학의 계산과 조금의 오차는 있지만 당시 유럽의 천문학과 비교하더라도 그 방법론이 매우 정교하여 조선 역법의 뛰어난 수준을 보여 주는 것이다.
지구는 태양과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근일점에서 공전 속도가 가장 빠르다. 그러므로 북반구에서 관측한 태양은 동지 즈음에 가장 빠르게 운행하는 것으로 보이고, 하지 즈음에 가장 느리게 운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칠정산 내편>은 근일점과 동지가 일치한다고 보았다. 즉 동지와 하지에서 태양의 실제 위치가 평균 속도로 운행한 태양의 위치와 일치한다고 설정한 것이다. 그리고 동지부터 하지 사이를 영, 하지부터 동지 사이를 축이라 했다. ‘영축차’는 태양의 실제 위치에서 평균 위치를 뺀 값이다. 그러므로 영에서의 값인 ‘영차’는 양의 값이고, 축에서의 값인 ‘축차’는 음의 값이다. 달 역시 지구와 가까울수록 빠르게 움직인다. 그래서 달이 지구와 가장 가까이 위치할 때인 근지점에서 ‘지질차’의 값을 0으로 간주했다. ‘지질차’란 달의 실제 위치에서 평균 위치를 뺀 값인데, 근지점부터 달이 지구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원지점까지는 달의 실제 위치가 평균 위치보다 앞선다. 그리고 원지점부터 근지점까지는 그 반대이다. 달의 실제 위치가 평균 위치보다 앞서면 ‘질차’, 뒤처지면 ‘지차’라 했다.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놓여 태양을 가릴 때를 삭(朔), 지구가 태양과 달 사이에 놓여 달을 가릴 때를 망(望)이라 한다. 정삭과 정망은 지구와 달이 태양과 정확히 일직선 위에 놓이게 될 때의 시각이다. <칠정산 내편 정묘년 교식 가령>과 <교식 추보법 가령> 모두 정삭, 정망은 태양과 달의 평균 위치로 계산된 경삭과 경망에 실제 태양과 달의 빠르고 느린 정도를 가하거나 감하여 구했다. 이를 가감차 방식이라 한다. 가감차 값은 영축차에서 지질차를 뺀 값을 속도항 값으로 나누어 구했다. 즉 가감차 값이 양일 때에는 그 값을 경삭, 경망에 더하는 가차로 삼았고, 음일 때에는 그 값을 경삭, 경망에서 빼는 감차로 삼았다. 앞에서 언급한 두 가령 모두 영축차에서 지질차를 뺀 값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칠정산 내편 정묘년 교식 가령>은 속도항 값으로 달의 이동 속도를 활용했지만, <교식 추보법 가령>은 달의 이동 속도에서 태양의 이동 속도를 뺀 값을 활용했다. 이는 태양이 달에 비해 느린 속도로 달과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고려한 것이다.
<칠정산 내편> 등을 통한 역법의 확립으로 조선은 유교적 이념을 만족스럽게 실현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칠정산 내편>이 편찬된 지 200여 년 뒤, 일본을 왕래하던 조선 통신사 사신 박안기는 조선의 역법을 일본에 전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에서도 독자적인 역법 <정향력>이 완성되었다. 동아시아 천문학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서로 다르게 전개되었지만 <칠정산 내편>, <정향력> 등은 자국의 고유한 역법을 확립하고자 했던 열망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