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전성서(田聖瑞) |
이명 | 전성서(田聖西) |
생몰 | ? ~ 1912년 9월 11일 |
출생지 | 경기도 적성현 남면 문상하리 |
사망지 | 경기도 포천군 서면 나뭇골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전성서는 경기도 적성현 남면 문상하리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출생년도는 알 수 없다. 그는 정용대(鄭用大) 의병장 휘하에서 중군장으로 활동하다 정용대 체포 이후 잔여 의병을 모아 의병부대를 다시 구성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16명의 의병을 이끌고 1909년 2월 18일 양주군 석적면 항동에서 향주 헌병분견소 헌병과 교전했으며, 9월 17일에는 양주군 석적면 행동리 부근에서 동료 의병 15명과 함게 군자금, 군수품을 거두었다.1910년에 들어서는 1월 29일 양주군 백석면 홍복리에서 의병 63명을 이끌고 양주헌병분견소의 헌병과 교전하였고, 2월 17일에는 양주군 어등산면 중촌에서 의병 13명을 이끌고 일본 경찰과 교전했다. 또한 4월 14일 포천군 내정면 신기리에서 홍원유 의병장과 함께 의병 36명을 이끌고 적성 헌병분견소 헌병들과 교전했으며, 4월 16일에는 강기동 의병장과 함께 양주군 천천면 돈계리에서 결세징수를 위해 출장 나온 양주군 백석면장 심능설(沈能卨)을 위협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4월 29일에는 강기동 의병장과 의병 16명을 이끌고 유산리의 헌병분견소 헌병들과 교전했다.
이후에도 의병 8~9명과 함께 양주군 일대를 다니며 순사들과 교전하거나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의병항쟁을 이어갔으나 1912년 9월 11일 포천군 서면 나뭇골에서 일본 헌병대와 교전 중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전성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