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 1936년 5월호 수록 삽화
1. 개요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1]의 등장인물.소작인의 아들인 주인공 '나'에겐 한참 높아 보이는 마름의 딸이다.
봄봄의 점순이도 적극적이고 당돌하지만 당시 시대상이 그렇듯 남녀 사이의 내외가 요구되어 잘 부각되지는 않는다.
봄봄의 점순이네 아버지인 '봉필이'와는 다르게 이 작품의 점순이네 아버지는 직접 등장하진 않으나 떠돌이로 마을에 맨몸뚱이로 온 '나'의 집안에게 별 요구도 없이 농사지을 땅도 빌려주고 생필품도 그냥 빌려주어 집안이 먹고 살 기초를 만들어 주었다고 하니 인심 좋은 사람인 듯하다. 점순이도 마름네 딸이라며 으스대지 않고 동네 어른이 "너도 얼른 시집 가야지?" 하고 짓궂은 농담을 하면 "갈 때 되면 어련히 갈라고요"라고 받아치는 등 격의없고 친근한 성격으로 나온다. 주인공도 오며가며 마주치는 점순이를 나쁘게 보는 것은 아니었다.
2. 작중 행적
나도 한때는 걱실걱실히 일 잘 하고 얼굴 예쁜 계집애인 줄 알았더니 보니까 그 눈깔이 꼭 여우새끼 같다.
작중 주인공 '나'의 점순이에 대한 묘사
당대 흔한 미혼 남녀처럼 평소 내외하며 지낸 주인공인 '나'와 점순이. 그러다가 작중 시점에서 나흘 전 혼자 일하던 '나'에게 갑자기 점순이가 찾아온다. 언제부터 친했다고 쓸데없이 시비를 걸거나 참견 하고 갖은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혼자 웃어대는 점순이를 본 '나'는 날씨가 풀리니 미친 게 아닌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이윽고 점순이는 주변을 살피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구운 감자를 주려고 하지만 '나'의 반응은 시큰둥하다.[2] '나'가 감자를 거절하자 점순이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눈물까지 머금으며 달아났다. 하지만 '나'의 처지는 소작농의 아들인 자신이 마름의 딸인 점순이와 문제가 생기면 자기 아버지가 실직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3] 어쩔 수 없이 참아 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이 때 점순이는 바구니로 자길 때렸으면 때렸지 울 애가 아니라며 자길 잡아먹으려 기를 쓰는 것이라 오해한다.작중 주인공 '나'의 점순이에 대한 묘사
이 사건 이후 점순이는 '나'의 암탉을 매우 때리는데 하필이면 그 닭은 '나' 집안이 기르는 씨암탉이었고 그 장면을 나무하고 오던 '나'가 봤다. 어쨌든 씨암탉을 때린다고 화가 난 '나'[4]에게 된통 욕을 먹자 이쯤이면 그만할 듯 한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아예 더욱 오기를 부려서 닭을 더 때리는 대사고를 친다. '나'의 말에 따르면 그 씨암탉은 골병이 단단히 든 것 같았다. 알집이 제대로 상했다. 이런 점순이의 행동에 '나'는 '나도 한때는 걱실걱실히 일 잘 하고 얼굴 예쁜 계집애인 줄 알았더니 시방 보니까 그 눈깔이 꼭 여우새끼 같다.' 라며 점순이를 미워하기 시작한다.[5]
점순이는 이제 하다하다 닭들끼리 싸움까지 붙인다. 끝내 '나' 집안 수탉이 죽어가자 '나'는 달려들어서 점순이네 수탉을 때려 죽여 버렸다. 이에 점순이가 왜 남의 닭을 죽이냐고 나무라자 '나'는 그럼 어떠냐고 응수하고 점순이는 누구 집 닭인데! 라며 소리친다. 이에 '나'는 이제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울음을 터트리고, 점순이는 앞으로 다가와 다음부터 안 그럴 거냐고 묻고 닭 죽은 건 이르지 않겠다고 '나'의 어깨를 짚은 채로 몸뚱이를 겹쳐 쓰러져 노란 동백꽃[6] 속으로 파묻혀 버렸다.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너 말 마라!"
이후 마름 집 어머니가 바느질 하던 애가 어디 갔냐고 점순이를 찾자 점순이는 꽃 아래로 '나'는 산 위로 급히 빠져나가며 소설은 끝난다.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너 말 마라!"
독자들이 이 작품을 마지막까지 읽은 후에 점순이 '나'에게 호감이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초반부터 수많은 암시가 등장한다.
작중 초반에 점순이 구운 감자를 건네는데 구운 감자는 흔히 감자로 할 수 있는 간단한 요리인 찐 감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만들기 번거롭다.[7] 이를 통해 '점순이는 맛있는 감자를 골라내서 일부러 정성껏 구운 감자를 주는 것으로 관심을 사려 한 것이다.'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점순이의 '나'에 대한 호감도를 보여주는 일종의 장치인 셈이다. 게다가 점순이는 이 구운 감자를 거절당하자 얼굴이 새빨개진 채 눈물까지 머금으며 달아났다. 이 상황에서 점순이가 분함과 서운함을 크게 느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런 점순이의 반응이 매우 유별났다는 것은 '점순이는 바구니로 자길 때렸으면 때렸지 울 애가 아니다'라며 이상하게 여기는 '나'의 반응으로 알 수 있다.[8]
점순이 '나'를 괴롭히는 것도 감자를 거절당한 이후의 시점이다.
감자를 거절당하기 전엔 정성껏 구워낸 감자를 건네기도 했는데, 거절당한 후엔 마치 보복이라도 하듯 '나' 집안의 닭들을 괴롭힌다. 거절 이후로 태도가 완전히 바뀐 것. '나'가 의도적으로 피하지 않았다면 못된 짓을 안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아예 계책을 내어 '나'의 관심을 끌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알게 모르게 호감을 표하지만 '나'는 자신을 괴롭히는 줄 알고 피한다. 점순이의 구애를 끝까지 눈치채지 못한 '나'의 답답함과 순박함이 시종일관 그려지지만, 설혹 알았다고 해도 모른 척 했을 것이다. '나'의 독백을 살펴 보면 '마름네 집 딸인 점순과 잘못 엮이면 땅이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9] 작품의 시간배경이 1920~1930년대인데, 이땐 소작농집과 마름집 사이에서 이성들끼리 엮이려면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 했다. 초반에 묘사되는 마름댁 부부의 인심 좋은 모습 때문에 '어, 생각보다 잘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마름댁 부부가 자상하다고 해도 안심할 수 있는 게 절대 아니었으며 '나'의 걱정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앞산도 첩첩하고'[10]의 주인공 오달병이 그 사례인데, 창을 잘 하는 것으로 소문이 났던 달병[11]은 주인집 가족 앞에서 소리를 하다가 마을에 '달병이 주인집 딸 장례를 소리로 꾀어 결혼하려 한다.'는 헛소문이 나돌자 주인에게 얻어맞고 쫓겨났다. 이 주인도 당시 기준으로는 그렇게 나쁘지 않은 주인이었고 심지어 달병이 어렸을 때 업어 키우다시피 했던 이였는데도 이랬다.[12]
2.1. 캐릭터의 특징
- 마을에서 좀 잘 나가는 마름집의 딸
마름이란 지주를 대리하여 소작권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지주의 땅을 관리한다. 당연히 소작농들에겐 지주 다음으로 발언권이 세고 그만큼 집안 사정도 나았다. 게다가 '나'의 집은 원래 이 마을이 고향도 아니고 집도 재산도 없이 흘러 들어와 점순네 덕에 땅을 부쳐먹고 집을 지어 살게 되었다. - '나'가 점순이의 감자를 거절했을 때 새빨개진 얼굴로 눈물까지 어린 채 쏘아보다가 도망쳤다. 이때 '나'의 언급에 의하면 바구니로 자기 등허리를 후려쳤으면 쳤지 저럴 애가 아니라고 한다.
-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점순이가 가져온 것이 찐감자가 아니라 군감자라는 점이다. 가마솥에 대충 던져넣기만 하면 알아서 잘 익는 찐감자와는 달리 군감자는 태우지 않으려면 상당히 신경을 써 주어야만 한다. 시대적 배경 상 전기오븐도 아니고 그냥 아궁이불에 구워야 하는데 겉이 좀 타더라도 케라멜라이즈되어서 먹음직해지는 군고구마와는 달리 감자는 타면 그냥 쓴 숯덩이일 뿐이다. 즉, 이 군감자는 단순히 많이 해서 남은 걸 주는 게 아니라 점순이가 '나'를 위해 정성껏 구워 온 마음의 표시고 그것을 거절당하였으니 여간 속상했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 입도 꽤 걸걸하나, 쌍욕을 하는 게 아니라 패드립을 곁들이며 다채롭게 비아냥거린다.
- 걱실걱실히 일 잘하고 예쁘장하며 가무잡잡한 피부
- '나'에게 거절당하자 그 주변을 뱅뱅 맴돌며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해 괴롭힌다.
- 마지막에 '나'를 밀쳐 몸이 겹치도록 꽃밭에서 엎어짐
요즘 시대로 따져도 점순이는 매우 저돌적인 성격이며 동작이 크다. 주인공 '나'에게 관심을 표하기 위해 초반엔 구운 감자를 건네는 등 호의적으로 구는 방식을 선택했다가 거절 당하자, 바로 노선을 틀어 주인공을 화나게 하고 괴롭히는 방식으로 수위를 높인 것을 보면 매우 과감한 성격이기도 하다.
'나'와 점순이의 관계만 봐도, 고전 소설임에도 여러모로 현대의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귀감이 되는 작품이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 드라마, 영화, 만화 등의 창작물들 중에 동백꽃처럼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현하는 당찬 여주인공과 그걸 답답할 정도로 눈치채지 못하는 순진한 남주인공'의 구도를 갖는 작품들이 매우 많다. 이는 성별 반전된 경우들도 마찬가지.
심지어 옛 시대의 각각 소작농-마름 집 자식이란 설정으로 현 시대의 작품에도 많이 등장하는 '신분 차이로 이루어지기 힘든 관계성' 설정을 보는 재미도 있다.
3. 기타
제5회 김유정문학제 행교에서 김유정의 작품인 봄봄과 동백꽃에 나오는 점순이를 뽑는 점순이 퀴즈가 열리기도 했다. 관련 기사한편, 실존인물인 점순이의 딸도 등장했는데 이 점순이는 동백꽃의 점순이가 아니라 봄·봄에 나오는 점순이다.교과서에서 너무 오랫동안 실렸다는 이유로 해당 작품을 빼 버렸다가 다시 원상복구하는 경우가 많다.[13] 덕분에 이명은 국어 교과서 편찬자들의 여신님. 여담으로 교과서에 실린 동백꽃 작품에선 점순이의 만행[14]에 대해서 덜 조명되는 편인데 점순이의 말 중 "늬 아버지가 고자라지?"가 있다. 중고등 학생 때 이 구절을 읽어보면 단순히 주인공 아버지만 욕하는 걸로 알 수도 있지만 훗날 다시 읽어보면 주인공네 부모를 쌍으로 욕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버지가 고자인데 자기가 태어났다는 건 어머니는 외간 남자랑 간통을 했다는 뜻이고, 주인공은 사생아라는 삼중 패륜욕이 된다.
출처: #1 #2
2019년 하반기 즈음 제작된 교과서[15] 속 동백꽃 작품에 게재된 삽화가 예뻐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 삽화 작업은 레진코믹스의 초년의 맛 작가인 앵무가 담당했다.
위의 삽화를 리터칭하거나 캐릭터 디자인 및 컨셉을 차용한 2차 창작이 유행하기도 했다. 이 사진을 비롯하여 언더붑 등 수많은 일러스트가 있었다.#
계란계란의 캐릭터 오점순이 동백꽃의 점순이에게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밝혔다.[16]
천재교육 중학교 2학년 국어 2009년 개정판 교사용 CD에서의 성우(?)는 윤여진으로 추정된다.
KBS의 라디오 문학관에선 김윤미가 맡았다.
1996년에 KBS 라디오에서 실시한 공모전 수상작 중에는 점순이가 주인공 '나'와 결혼하여 라디오에 자신의 연애담을 사연으로 보낸다는 후일담이 있었다. 이 내용은 당시 FM 인기가요(22~24시) DJ였던 이주노가 소개했다.
[1] 참고로 제목의 동백꽃은 생강나무꽃의 강원도 방언이다. 자세한 건 해당 문서 참고.[2] 물론 점순이가 “너 봄 감자가 맛있단다. 느 집엔 이거 없지?”라며 속을 긁은 탓이다.[3] '나'의 부모는 그분들이 없으면 우린 굶어 죽었을 거라고 점순이네 부모를 따르면서, 한편으로 그들의 인심을 잃을까봐 '나'에게 괜히 점순이와 엮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4] 직접 때리면 안 되니까 대신 애먼 울타리를 두들겨 팼다.[5] 다만 이 문장은 중의적이다. 점순이를 마뜩잖게 보면서도 얼굴이 예쁘다는 묘사를 하기 때문. 즉, '나'는 점순이를 싫어하면서도 점순이가 이쁘다고는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6] 정확히는 이 동백꽃은 우리가 아는 그 연분홍색 or 적색의 그 동백꽃은 아니고 생강나무꽃이다.[7] 찐 감자는 여러 개를 한꺼번에 찜통에 넣고 쪄 버리면 그만이지만 구운 감자는 몇 개만 골라서 타지 않게 계속 봐가면서 구워야 한다.[8] 물론 '나'는 점순이의 반응을 통해 자신에 대한 호감을 눈치챈 것이 아니라 자길 잡아먹으려 기를 쓴다고 생각했다.[9] 당시 땅 빌려주는 건 보통 1년 단위 계약인데 마름한테 잘못 찍히면 더 이상 안 빌려준다. 쉽게 말해 1년 단위 월셋집.[10]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이 저술한 '한(恨)' 3부작의 제 2부이다.[11] 레코드에서 들려오는 임방울의 '쑥대머리'를 그대로 따라하는 신기를 보여주어 이미 온 마을의 유명인사였다. 문제의 사건 이전에도 주인집 일가 앞에서 일하면서 창을 여러 번 하여 칭찬을 들었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하필 달병을 시기하던 누군가가 머잖은 시점에 헛소문을 퍼트린 것이다.[12] 사실 달병 또한 장례에게 마음이 있긴 했으나 신분 차로 인해 스스로의 마음을 부정한 채 체념하고 있었다. 그러다 6.25가 발발하여 남편을 잃은 장례가 친정으로 돌아오자, 뒤늦게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장례와 함께 야반도주한다. 장례는 딸을 낳다가 산고로 죽고, 달병 혼자 딸을 키우다가 그 딸이 부모와 같은 전철을 밟으며 떠돌이 하모니카장이와 함께 가출을 한다. 답답하고 분했으나 아비 인생이나 딸 인생이나 똑같은 방식으로 기구하단 뜻으로 '앞산도 첩첩하고' 구절을 읊게 된 것.[13] 이럴 때 동백꽃 대신 들어가려는 작품들은 대부분이 꼭 종교 관련 문제나 정치 관련 문제 때문에 삭제된다.[14] 실제로 주인공 '나'도 이렇게 표현한다.[15] 출처는 창비 2학년 2015년 개정 국어교과서[16] 그런데 작가의 망상으로 인해 고전 소설 동백꽃 속의 점순이와 완전히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