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26 19:33:46

제이슨 윌리엄스

제이슨 윌리엄스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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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윌리엄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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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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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윌리엄스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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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크라멘토 킹스 등번호 55번
밥 내시
(1977~1979)
제이슨 윌리엄스
(1998~2001)
자바리 스미스
(2003~2004)
멤피스 그리즐리스 등번호 2번
덕 웨스트
(1998~2001)
제이슨 윌리엄스
(2001~2005)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
(2007~2008)
마이애미 히트 등번호 55번
빌리 탐슨
(1988~1991)
제이슨 윌리엄스
(2005~2008)
에디 하우스
(2010~2011)
올랜도 매직 등번호 44번
팀 창단 제이슨 윌리엄스
(2009~2011)
앤드류 니콜슨
(2012~2016)
멤피스 그리즐리스 등번호 3번
앨런 아이버슨
(2009)
제이슨 윌리엄스
(2011)
브라이언 스키너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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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윌리엄스
Jason Williams
본명 제이슨 챈들러 윌리엄스
Jason Chandler Williams
출생 1975년 11월 18일 ([age(1975-11-18)]세)
웨스트버지니아 주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플로리다 대학교
신장 185cm (6' 1")
체중 86kg (190 lbs)
윙스팬 193cm (6' 4")
포지션 포인트 가드
드래프트 1998 NBA 드래프트 1라운드 7순위
새크라멘토 킹스 지명
소속 구단 새크라멘토 킹스 (1998~2001)
멤피스 그리즐리스 (2001~2005)
마이애미 히트 (2005~2008)
올랜도 매직 (2009~2011)
멤피스 그리즐리스 (2011)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커리어
2.1. 프로 입문까지2.2. 프로에서
3. 플레이 스타일4. 여담

[clearfix]

1. 개요







NBA의 농구선수. 별명은 J-Will, 화이트 초콜릿[1].

2. 커리어

2.1. 프로 입문까지

윌리엄스는 고등학교 때부터 훗날 NFL 명전에 등재될 리시버 랜디 모스와 친했고, 이 둘은 소속 고등학교를 준결승까지 이끌었다. 이후 그들은 나란히 마샬(Marshall) 대학교에 진학했고, 윌리엄스는 빌리 도노반 감독 아래에서 재능을 펼쳤다. 도노반이 플로리다 대학교에 부임하자 도노반을 멘토로 생각했던 윌리엄스는 1년을 휴식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플로리다로 전학을 감행했다. 플로리다에서 그는 한경기 17어시스트[2]를 기록하고 강호 켄터키에게 업셋승리를 거두는데 기여했지만, 연이은 대마초 양성반응으로 인해 결국 시즌 도중 출장정지를 먹었고, 이것이 그의 대학 커리어의 끝이었다.

2.2. 프로에서

비록 대학 커리어 끝이 좋진 않았지만 윌리엄스의 재능은 이미 정평이 나있었고, 그를 지명한 건 7픽을 들고 있던 새크라멘토 킹스였다. 바로 주전 포인트가드로 투입된 윌리엄스는 크리스 웨버, 블라디 디박, 페자 스토야코비치 등과 함께 오랫동안 바닥을 깔던 새크라멘토를 포스트시즌에 올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후술할 것처럼 윌리엄스의 경기리딩이나 슛 선택은 좋은 수준이라 보긴 어려웠지만, 폭발력과 화려함, 그리고 경기 스피드를 통해 킹스는 강력한 공격을 선보였고, 윌리엄스 역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새크라멘토에서 그는 수많은 하이라이트를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경기를 말아먹는 일도 잦았기에 결국 새크라멘토 수뇌부는 더 안정적인 포인트가드를 선호하게 되었고, 그를 멤피스 그리즐리스로 트레이드하면서 마이크 비비를 데려왔다.[3]

멤피스에서 4년을 보낸 윌리엄스는 2005년 여름에 대형 트레이드의 일환으로 마이애미 히트로 트레이드되었다. 그 해 주전 포인트가드로 뛰면서 윌리엄스는 간간히 예전의 화려한 모습도 보였지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리딩을 선보였고, 드웨인 웨이드샤킬 오닐 뒤로 마이애미의 최다득점자로 활약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정규시즌만큼의 화력이 나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쏠쏠하게 웨이드와 오닐 뒤에서 활약하며 우승반지를 끼는 데 성공했다.

그 후 윌리엄스는 점점 하향길을 걸었고, 올랜도, 멤피스와의 시절을 보낸 후 2011년 그는 은퇴했다.

3. 플레이 스타일

만화에서나 볼 법한 기상천외한 패스와 현란한 드리블, 잘생긴 외모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4] 포인트 가드이자 쇼타임 패스마스터. 기록이나 수상경력만 보면 특별히 눈에 띌 구석이 없으나, 화려하고 독창적인 패스로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하이라이트 필름을 뽑아내는 능력만큼은 정말 끝장나게 좋았다. NBA는 프로무대이므로 이슈와 쇼맨십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인데, 그의 플레이는 원정 경기에서 홈팀을 응원하던 관객들조차 감탄케 하며 환호를 받아낼 정도였다.

다만 동료들조차 그의 패스를 받아내기 힘들어했을 만큼 공격적인 패스를 즐기다보니 아무래도 안정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으며, 실제로 킹스 시절 윌리엄스의 어시스트/턴오버 비율은 영 좋지 않았다. 이런 불안정한 경기운영과 잦은 턴오버 때문에 감독의 머리를 아프게 하기 일쑤였고, 샷셀렉션이 좋지 않아 뜬금없는 3점 슛을 던져 팬들의 뒷목을 잡게 하는 경우도 잦았다. 결국 그가 전성기를 보낸 새크라멘토 킹스는 그를 훨씬 견실하고 득점력이 좋은 포인트 가드였던 마이크 비비와 트레이드한다. 기본적으로 리딩을 해주어야할 전통적인 포인트 가드의 롤에 있어 심하게 불안정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단, 위와 같은 사정은 쇼맨쉽 플레이가 너무 잦았던 킹스 시절까지의 이야기. 실제로 패스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면 킹스 시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멤피스 그리즐리스로 트레이드 된 이후부터는 한층 더 안정적인 가드 역할을 수행했으며 턴오버로 이어지는 무모한 플레이는 눈에 띄게 줄었다. 그리고 마이애미 히트에서는 더더욱 화려함을 줄이고 볼 운반과 스팟 업 3점 등 보조적인 역할에 집중, 실속있는 플레이를 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면서 결국 2006 NBA 파이널 우승에 공헌하기도 했다.

패스 외 특징으로는 90년대 막바지에 데뷔한 선수치곤 3점 슛 시도가 굉장히 많았다는 점이 있다. 당장 루키 시즌부터 평균 6.5개를 시도하며 전술한 바와 같은 나쁜 슛 셀렉션을 선보였지만, 그래도 시도수를 점차 줄이고 반대로 성공률은 끌어올리며 02-03 시즌부터는 꽤 준수한 3점 슈터로 자리잡는다. 필드골 시도 중 3점 시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략 절반으로 높다보니 야투율은 썩 좋지 않았지만 이러나저러나 두 자릿수 평득은 꾸준히 기록하는 가드였다.

수비의 경우 훌륭한 수비수였다고 보긴 어렵지만, 쇼맨쉽 플레이어라는 이미지와 달리 수비 코트에서 의외로 열심히 뛰어다니는 선수였다. 신장은 작아도 빠르게 달라붙고 패싱레인을 끊는 번뜩이는 스틸도 종종 보여주었는데, 앞선 수비를 그토록 강조하는 팻 라일리가 우승 시즌 마이애미 히트의 주전 가드로 제이슨 윌리엄스를 선택한 것부터가 수비력이 적어도 구멍은 아니었다는 증거가 된다.

파일:external/giant.gfycat.com/BeautifulUnacceptableHectorsdolphin.gif

그를 상징하는 무브로 남은 엘보우 패스. 슛은 들어가지 못했어도 관중의 호응은 상당했다. 2000년 NBA 올스타전 위크앤드 중 루키와 2년차 선수들간의 이벤트 경기인 라이징 스타 챌린지에서 나온 플레이.[5] "팔꿈치로도 패스를 할 수 있나요?" 라는 사회자의 사소한 질문에서 시작된 플레이였지만, 만화에도 나올 정도로 아직도 많은 팬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킹스 시절의 그가 길거리 농구에서나 볼법한 플레이를 NBA 무대에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의 눈을 한층 더 즐겁게 하는, 여러모로 짧고 굵은 센세이션을 남긴 선수였음은 분명하다. 오죽하면 제이슨 윌리엄스의 하이라이트 영상이 NBA 공식 유튜브 계정의 모든 영상을 통틀어 역대 조회수 18위를 기록할 정도이니 말 다했다. 은퇴 이후에도 유튜브에서는 현역으로 계속해서 소환되는 셈. 제이슨 윌리엄스보다 탑 10 하이라이트의 조회수가 높은 선수는 르브론과 아이버슨 둘 뿐이다.[6] 유튜브가 활성화되지 않은 시기에 뛴 제이슨 윌리엄스의 영상이 유튜브가 활성화된 시기에 뛴 수많의 슈퍼스타들보다 조회수가 높다는건, 아직도 그의 플레이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높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는 하이라이트 필름을 떠나서도 꽤 괜찮은 커리어를 보유한 선수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게 리그에서 10시즌 이상 장수하며 그 중 대부분을 스타팅으로 출장했고, 05-06 시즌에는 주전 포인트 가드의 위치에서 우승을 해냈으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선수생활을 보냈다고 할 만 하다. 어찌보면 화려한 플레이를 일삼았던 커리어 전반기에는 어지간한 올스타급 선수들보다 오래토록 기억될 기량 이상의 인지도를, 역할을 줄이고 비교적 안정적으로 플레이했던 후반기에는 모든 선수들의 지상과제인 우승반지를 확보함으로써 두 시기 모두 챙길 건 확실하게 챙겼다고도 볼 수 있다.

4. 여담

  • 그를 상징하는 또다른 시그니처가 있는데, 100% 완벽에 가까운 패스에 성공했을 경우 소리를 지른다.
  • 미식축구 선수들과의 교류가 많았고 팔 힘이 꽤 세다고 한다. 중장거리 패스도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가 있었던 비결이 바로 이 팔 힘 때문이다.
  • NBA 커리어를 마감한 이후 중국리그에서 뛰기도 했으며, 유튜브에 활동 당시의 영상과 하이라이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화려한 플레이로 유명했던 백인 농구선수 피트 마라비치의 재림이라는 소리도 들었다.[9] 일반적으로 백인 선수들은 화려하기보다는 정적이고, 강렬하기보다는 단조로운 슈터라는 인상이 강한데, 제이슨 윌리엄스는 이러한 선입견과 정반대되는 흔치 않은 인물이기에 지금까지 NBA에서 백인 선수를 논할때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다. 별명부터가 화이트 초콜릿.
  • 새크라멘토에서 같이 뛰었던 크리스 웨버는 그를 최고의 볼 핸들러 중 하나로 뽑는다.
  • 젊은 시절의 여리여리하고 잘생긴 동안 외모와 다르게 50 가까이 된 현재는 자글자글한 노안이 되어버렸다.[10]


[1] 흑인같이 플레이하는 백인이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2] 여전히 플로리다 대학교 역사상 한경기 최다 어시스트 기록이다.[3] 먼 훗날 윌리엄스는 이를 회고하면서 킹스 수뇌부가 잘 결정한 거라고 이야기했다. 비비가 오면서 그 막강한 레이커스와 접전을 펼친 걸 보면 자기가 떠나고 비비가 오면서 더 나아진 거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고 스스로 밝혔다.[4] 2년차 시즌에는 머리를 밀어서 스킨헤드가 되었는데, 심리전으로 유명한 레이커스의 필 잭슨 감독은 이를 두고 아메리칸 히스토리 X 드립을 치면서 킹스와 레이커스 간의 라이벌 관계에 불을 붙인 적도 있다.[5] 당시 올스타 전은 올스타 저지 없이 각 팀 저지를 입었다. 패스를 받은 선수는 당시 덴버 너게츠의 라에프 라프렌츠, 수비하던 빨간색 유니폼은 당시 LA 클리퍼스라마 오돔이다.[6] 탑 10 영상으로 한정하지 않아도, 제이슨 윌리엄스보다 조회수가 높은 선수는 비교적 최근에 뛴 르브론 제임스나 스테픈 커리같은 선수가 대부분이며, 제이슨 윌리엄스와 비슷하거나 이전 시기의 선수는 마이클 조던과 코비, 아이버슨 밖에 없다. 그런데 이 선수들은 유명하다는 차원을 넘어 NBA의 아이콘으로 군림한 선수들이다. 저런 선수들과 비비고 NBA 역사의 각종 레전드들을 넘어서는 조회수를 찍을 정도라는 것.[7] 은퇴 후 2002년 자신의 운전사를 살해한 혐의로 채포되어 재판을 받는 등 농구판 OJ 심슨 사건의 당사자로서 오히려 더 유명해진 사람이다. 결국 살해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선고를 받았으나, 변호사 비용으로 선수시절 번 돈을 모두 날려 파산하고, 마누라 폭행 등으로 징역 27개월을 복역하고 나락으로 떨어진 인물.[8] 안타깝게도 이 제이 윌리엄스는 2년차 때인 2003년 6월 오토바이 사고를 크게 당해서 농구선수로는 재기하지 못하고 조기 은퇴했다.[9] 물론 마라비치는 폭발적인 득점력, 윌리엄스는 리딩력이 주가 되는 선수란 점에서 다르고 포지션도 다르다. 또한 마라비치는 팀플레이 능력이 떨어져서 그렇지 개인기량으로는 당대 최고수준이었고 실제로 70년대 최고의 가드 중 하나였다. 한번도 팀성적이 좋은 적이 없었음에도 그 개인 기량만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르고 퍼스트팀에도 올랐으니, "화려한 농구"란 걸 제외하면 사실 선수로선 레벨이 다르다.[10] 동년배인 크리스 웨버, 앨런 아이버슨, 레이 앨런, 케빈 가넷, 팀 던컨, 빈스 카터, 폴 피어스 등에 비해 상당히 노화가 심하다. 이들은 비교적 노화가 느린 흑인이어서 그렇다 쳐도, 현재로서는 젊은 시절부터 노안이어서 4~50대에도 얼굴이 늙지 않고 그대로인 스티브 내시보다 더 나이들어 보일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