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5 22:19:19

제2차 자모산성 전투

제2차 자모산성 전투
파일:attachment/jamosansung12.png
자모산성
시기 고종 23년(1236년) 6월 병신일 ~ 7월 정유일[1]
장소 자모산성 (現 평안남도 순천시 자산)
원인 몽골의 3차 침입.
교전국 고려 파일:고려 의장기.svg
지휘관 최경후(崔景侯)
김지저(金之佇)
김경희(金景禧)
지휘관 불명
병력 병력 규모 불명 병력 규모 불명
피해 지휘부 궤멸 피해 규모 불명
결과 자모산성 함락.

1. 개요2. 설명3. 기록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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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여몽전쟁 시기에 벌어진 전투.

2. 설명

몽골은 1235년, 남송을 공격하던 차에 1+1의 덤으로 고려침공을 개시한다. 탕우타이(唐兀台)가 이끄는 몽골군은 6월 경인일에 압록강을 건너 영삭진(寧朔鎭) → 가주(嘉州)[2] → 운암역(雲岩驛)[3] → 박주(博州)[4] → 자주[5] 순으로 움직였다.

이에 자주부사 최경후, 판관 김지저, 은주부사 김경희 등이 병력을 자주산성으로 집결시켜 몽고군을 상대로 1달 동안 분전하였으나, 모두 살해당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패배한 것으로 추측된다.

3. 기록

○병신일. (몽골군이)자주(慈州), 삭주(朔州), 구주(龜州), 곽주(郭州) 등지에 진을 둘러쳤다.
- 《고려사》권23 고종 23년 6월 기사
 
○계묘일. 몽고 기병 20여기가 자주(慈州) 동쪽 들판에 침입를 베던 농민 20여명을 사로잡아 전부 죽였다.
- 《고려사》 권23 고종 23년 7월 기사
 
○정유일. 몽골군이 자주(慈州)를 함락시켰다. 부사(副使) 최경후(崔景侯), 판관(判官) 김지저(金之佇), 은주 부사(殷州副使) 김경희(金景禧) 등이 모두 살해당했다.
- 《고려사》 권23 고종 23년 8월 기사
 
○가을 7월, 몽골병이 자주(慈州)를 함락하였고, 부사(副使) 최경후(崔景侯), 판관(判官) 김지저(金之佇)와 은주 부사(殷州副使) 김경희(金景禧) 등이 모두 피살되었다.
-《동국통감》 권32 고려기
 
○8월, 몽골이 자주(慈州)를 함락시키고, 진군하여 남경(南京)에 이르렀다.
-《동사강목》 제10하 고종 23년 기사.

4. 기타

6년 전 벌인 전투와 판이한 결과를 낳았는데 당시에는 몽골의 주력군을 상대한 게 아니거니와, 전투 말미에 고려회안공 왕정을 보내 강화조약을 맺었기에 몽골군이 전투를 중단한 상황이였다. 반면, 제2차 자모산성 전투는 몽골의 주력군과 맞서 싸운 것이다.


[1] 양력으로는 1236년 7월 15일 ~ 1236년 8월 15일[2] 계사일에 점령[3] 을미일에 점령[4] 을미일에 점령[5] 병신일에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