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조관묵 趙官黙 | |
출생 | 1927년 1월 6일 |
강원도 양구 | |
사망 | 1950년 11월 3일 |
강원도 양구 | |
복무 | 대한민국 경찰 |
최종계급 | 경찰 경감 |
복무 기간 | ?~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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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관묵(趙官黙, 1927년 1월 6일 ~ 1950년 11월 3일)은 대한민국의 6.25전쟁 참전 경찰이다.2. 생애 및 경찰 경력
초기 생애 및 경찰 임용조관묵 경감은 1927년 강원도 양구군에서 태어나 경찰에 임용되었다.
6·25전쟁 당시 양구전방은 백석산지구전투, 양구 동북방 피의능선 전투 등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으며, 조관묵 경감은 춘천경찰서 양구파견대 중대장으로 대원 30여명과 함께 양구지역 치안 업무를 수행하였다.
6.25 전쟁 참전
양구지역 방어와 시민 보호
1조관묵 경감은 강원도 양구 출신으로 경찰에 임용되어, 6·25전쟁 당시 춘천경찰서 양구파견대 중대장으로 근무하였다.
6·25전쟁 중 양구 전방은 백석산지구 전투, 양구 동북방 피의 능선 전투 등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격전지였다.
조관묵 경감은 대원 30여 명과 함께 양구 지역의 치안 업무를 수행하며 북한군 패잔병과 대치하였다.
북한군 패잔병과의 전투
1950년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고 춘천이 탈환되자, 강원도 일대에는 인민군 패잔병이 남아 게릴라전을 전개하였다.
조관묵 경감은 인민군 제10사단 소속 1개 연대(4,000여 명)와 대치하면서 양구군 소재지를 사수하였다.
그러나 11월 4일, 패잔병의 습격을 받아 강원도 춘성군 북산면 내평리까지 후퇴하게 되었다.
이후 반격을 시도하며 격전을 벌였으나, 양구-춘천 간 도로를 우회 차단한 북한군의 배면 공격을 받아 소대와 중대가 통신이 두절되고 적의 집중 공격을 받는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조관묵 경감은 2,000여 명의 양구 시민을 안전하게 후방으로 대피시키며 끝까지 저항하였다. 그러나 결국 적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조관묵 경감과 양구파견대의 활약은 국군이 반격하며 북진하던 시기에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시민들을 보호하고 양구 지역을 지키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특히 2,000여 명의 민간인을 안전하게 후송하며 임무를 완수한 그의 희생정신은 경찰의 귀감이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조관묵 경감의 희생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경위에서 경감으로 1계급 특진을 추서하였다.
또한 2019년,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는 그를 "5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3. 공훈
1계급 특진 (추서)국가보훈처 이달의 6.25전쟁영웅(2019년 5월)
4. 참고 자료
강원경찰국, 『강원경찰전사 영광의 서곡 제1권』, 1952강원경찰청, 『강원경찰발전사』, 2002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6.25 전쟁영웅 조관묵 경찰 경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