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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헨더슨/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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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던 헨더슨의 클럽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선덜랜드 AFC

파일:sunderland_hendo.jpg

잉글랜드 북동부 선덜랜드 지역에서 태어나, 패링던 커뮤니티 스포츠 칼리지에 다니다가 1998년에 선덜랜드 유스팀에 합류한다. 잉글랜드 U-19, U-20, U-21팀에서 뛰었으며, 2010년 11월 17일에는 프랑]와의 친선전에서 잉글랜드 성인 대표팀 멤버로 데뷔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2008년부터 2011년에 이르기까지 89경기에 출전할 정도로 기대를 모으는 유망주였다. 2008년 11월 1일에 있었던 첼시와의 경기에서 팀은 5:0으로 졌지만 리그 데뷔전을 갖고, 블랙번 로버스와의 리그컵 경기에서 첫 선발 출전을 이룬다.

2.1. 코번트리 시티 FC (임대)

2009년 1월에는 풋볼 리그 챔피언십 소속 코번트리 시티로 한 달간 긴급 임대되었고, 이후 코번트리의 요청으로 시즌이 끝날 때 까지로 연장되었다. 헨더슨은 이 임대 연장에 대하여 1군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평하였다. 또한, 임대 연장이 발표된('09/02/23 발표) 직후의 경기였던(02/28) 노리치 시티전에서 성인무대 데뷔골을 넣었다. 하지만, 코번트리에서의 임대생활 중, 좌측 제 5 중족골 골절을 당하게 되었고, 결국 2009년 4월 8일에 원 소속팀인 선덜랜드로 복귀했다.

2.2. 2009-10 시즌

임대에서 복귀하여 09-10 시즌에는 선덜랜드 1군 스쿼드에 포함되어 리그 경험을 쌓았으며, 칼링컵 3라운드 버밍엄전에서 선덜랜드 1군 소속으로 첫 골을 넣었다. 그 후, 12월 19일에 열린 맨체스터 시티와의 리그 경기에서 프리미어 리그 첫 골을 기록하였다. 본래 포지션이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선덜랜드에서 뛸 때에는 대부분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 나섰다. 하지만 시즌 후반기에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인 리 캐터몰이 부상으로 이탈하자 중앙 미드필더로 보직을 바꾸어 뛰기도 하였다. 1군에서의 활약 덕에 선덜랜드와 2015년까지 연장 계약을 체결했고, 09-10 시즌에 선덜랜드 팬들이 뽑은 '올해의 영 플레이어'에 선정되었다.

2.3. 2010-11 시즌

비 시즌 기간동안 레스터 시티, 호펜하임 등과 가진 친선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팬들의 기대를 모았으며, 구단은 등번호를 16번에서 10번으로 부여하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헨더슨은 10-11 시즌 동안 선덜랜드의 1군으로서 맹활약하였고,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등 빅클럽들과의 경기에서 활약, 팀이 패배하지 않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런 활약에 힘입어 리버풀, 맨유 등 빅클럽들이 헨더슨을 노리기 시작했다.

2011년 1월 13일, 헨더슨은 FIFA가 발표한 '2011년 주목 해 볼 어린선수 13인'에 선정되었다. 헨더슨에 대한 FIFA의 평가는 '침착함, 단단함, 다이나믹함'이었으며, 이 결과에 대해 선덜랜드의 감독인 스티브 브루스는 '헨더슨은 잉글랜드에서 가장 뛰어난 유망주'라고 평했다.

2011년 4월 23일, 위건 애슬래틱과의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며 승리를 견인했다. 이는 선덜랜드의 8경기 무승을 끊은 결과였으며, 2년 연속으로 선덜랜드의 '올해의 영 플레이어'로 뽑히게 된다.

3. 리버풀 FC

파일:hendersoncaptianfantastic.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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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알 에티파크 FC

파일:헨더슨 알 에티파크.jpg

2023년 7월 27일,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의 알 에티파크로 이적했다. 파브리지오 로마노의 보도에 의하면 이적료는 £12m+@라고 한다. 계약 기간은 3년. 이로서 자신이 오랜 세월 몸담았던 리버풀 FC의 레전드 스티븐 제라드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

이적하자마자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사우디로 향한 많은 스타 선수들 중에서도 헨더슨에 대한 비판은 특히 거셌다. 리버풀의 주장, 잉글랜드의 부주장으로서 팀 결속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코로나19로 인한 리그 중단이나 슈퍼 리그 파동 같은 중대한 이슈가 있을 때 리그 내 전체 선수단의 행동을 이끄는 등, 책임감과 자긍심은 언제나 헨더슨을 묘사하는 단어였다. 그런 그가 역사와 인프라 없이 거대한 자본만으로 스타들을 흡수하고 있는 사우디 리그로 갑자기 떠나는 일은 축구 팬들에게 괴리감을 느끼게 했다. 특히, 성소수자 인권 등 그가 지지해온 가치를 멸시하는 국가로의 이적이라는 점은 다소 와전된 거액의 연봉 소식 까지 더해지면서 사람들이 그에게 큰 실망을 표하게 만들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돈 때문이 아닌, 정기적인 출장과 축구 관점의 비전을 바라보고 이적했으며, 경쟁력을 유지하여 국가를 계속 대표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해명했으나, 많은 팬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급기야 대표팀 경기에서 자국 관중들이 자신에게 야유까지 보내자 꽤 충격을 받은 듯 실망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결국, 본인의 예상보다 훨씬 부정적인 팬들의 반응에 낙담했는지, 겨울 이적시장에 그가 유럽 무대로 돌아오고 싶어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또한, 사우디 리그도 원대한 비전과 투자에 비해, 실제로 팬들을 끌어모으고 스포츠 문화를 꽃피우는데 저조한 성과를 보여 본인이 기대했던 사우디 리그의 발전 가능성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24년 1월 9일, AFC 아약스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유럽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고 스스로 뮌헨레버쿠젠에 역제안했다는 기사가 떴다. 다만 이 두 구단은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로마노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댓글에 이모지를 통해 아약스행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이후 아약스는 헨더슨 이적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로마노가 직접 말하였다.

1월 13일, 유벤투스 FC가 헨더슨을 임대 이적으로 노리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1월 14일, 벤 제이콥스에 따르면 에티파크는 헨더슨을 임대, 판매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보도하였고 팀훈련 합류를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노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 아약스는 헨더슨 영입을 성공시키기 위해 에티파크와 협상을 진행 중이며, 이미 헨더슨은 아약스와 개인 합의를 마쳤다고 한다. 이후 며칠 지나지 않은 1월 17일에 협상이 거의 완료되었다고 밝혔고, 데이비드 온스테인 역시 헨더슨이 에티파크와의 계약을 해지할 예정이라고 보도하였다. 기존에 받았던 주급의 75%를 삭감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주급 수령을 연기한 상황 속에 이적을 결심했기에 사우디에서 한 푼도 못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결국 사우디 이적은 헨더슨에게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은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다만 헨더슨 본인에게는 안타깝지만 사우디로 떠난 다른 축구선수들의 유럽 복귀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는 의견도 있다.

1월 18일, 파브리지오 로마노조던 헨더슨 to 아약스 Here We Go!띄우며 아약스 이적에 쐐기를 굳혔다. 심지어 헨더슨은 자신의 바이아웃을 발동시키는데 400만 유로정도의 사비를 쓴 것으로 전해졌다.

1월 19일, 알 에티파크와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하였다.

5. AFC 아약스

파일:Jordan Henderson Ajax.jpg

2024년 1월 19일, 아약스로 자유이적했다. 계약 기간은 2년 반.# 등번호는 조던 헨더슨의 아버지인 브라이언 헨더슨이 아마추어 축구선수 시절 사용했던 6번을 선택하였다.

5.1. 2023-24 시즌

워크 퍼밋이 발급되지 않아 18R RKC 발베이크, 19R 헤라클레스 알멜로 리그 2경기 모두 소집 명단에 들어가지 못했다. PSV 에인트호번과의 리그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룰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 2월 4일, PSV 에인트호번과의 리그 20R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며 드디어 아약스 데뷔전을 치렀다. 후방에서 정확도 높은 롱패스와 빌드업 가담, 전체적인 지휘를 하면서 중원을 책임지었다. 팀은 1:1 무승부 하였다.

2월 16일, FK 보되/글림트와의 UEFA 컨퍼런스 리그 16강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선발 출전했다. 전체적으로 중원을 지휘했으며 어린 선수들의 사기를 올리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이 경기에서 아약스가 후반 추가시간에만 2골을 기록하며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후 요시프 슈탈로, 조렐 하토를 제치고 팀의 3번째 주장이 되었다.[1]
파일:Henderson Ajax 3rd Captain.jpg
아약스의 3주장이 된 조던 헨더슨

2월 18일, 이적 이후 4번째 경기인 22R NEC 네이메헌전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했다.


[1] 조렐 하토는 3주장에서 4주장, 요시프 슈탈로는 주장단에서 제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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