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5-28 22:10:38

조복선

성명 조복선(趙卜先)
호적명 조복선(趙福先)
이명 조상선(趙相善)
본관 함안 조씨[1]
생몰 1894년 7월 7일 ~ 1961년 3월 5일
출생지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부내면 안기골
(현 경상북도 안동시 안기동)[2][3]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조복선은 1894년 7월 7일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부내면 안기골(현 경상북도 안동시 안기동)에서 독립유공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월, 그는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고 임찬일(林燦逸)·김원진(金源鎭)·노말수(盧末守)·임동숙(林東淑)·임윤익(林潤益)·유북실(柳北實)·임춘섭(林春燮)·임범섭(林範燮)·박유석·임석현(林錫鉉)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는 처음에는 동지들과 3월 16일 길안면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으나, 3월 21일 임하면 금소동에서 시작하여 경찰주재소와 면사무소가 위치하고 있는 신덕동으로 시위행진하기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21일 그는 금소동에 모인 3백여명의 시위군중에 중식을 제공하고 오후 6시가 되자 독립만세를 외친 뒤, 신덕동으로 시위행진하였다. 이날 오후 9시경, 신덕동에 도착한 시위군중은 경찰주재소를 포위하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주재소에서 경비중이던 일본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인해 약간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일단 후퇴하였다.

오후 11시, 사상자가 발생함에 따라 격분을 참지 못한 그는, 5백여명으로 늘어난 시위군중과 함께 다시 주재소로 달려가 몽둥이와 돌로 건물과 기물을 파괴하고 서류를 파기하였다. 이같은 시위군중의 위세에 눌린 일본 경찰은 급히 뒷산으로 도망쳤다.

이어 시위군중은 임하면사무소로 몰려가서 다시 건물과 기물을 파괴하고 서류를 대부분 파기하였다.

다음날인 3월 22일 일제는 병력을 보강하여 주동자를 검거하였는데, 결국 그도 이때에 체포되었으며, 같은 해 5월 29일 대구지검 안동지청에서 소위 소요 혐의로 대구지방법원 공판에 회부되었다.# 그리고 7월 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및 소요·가택침입·건물손괴·공문서 훼기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61년 3월 5일 별세하였다.

198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1] 30세손 상(相) 래(來) 항렬.[2] 인근의 이천동과 함께 함안 조씨 집성촌이다.[3] 수형인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