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13:53:54

조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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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파일:울산C조평원.jpg
조평원
趙平原 | Jo Pyeong-Won
출생 1994년 6월 29일 ([age(1994-06-29)]세)
인천광역시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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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74cm, 70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풀백, 윙어
학력 군산문화초등학교 (졸업)
완주중학교 (졸업)
금호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학사)
소속 구단 목포시청 축구단 (2018)
춘천시민축구단 (2018~2019)
FC 남동 (2020)
울산시민축구단 (2021)

1. 개요2. 클럽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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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로, 포지션은 미드필더. 측면 포지션까지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기도 하다.

2. 클럽 경력

2.1. 유소년 시절

조평원은 축구부가 아닌 일반 학생들끼리 나가는 도 대항 축구대회에서 주목받아 문화초등학교 이진휘 감독에게 스카우트를 받았다. 이후 정식으로 축구부에 들어가 활동했으며 광주 FC의 유소년 구단인 금호고등학교에 입학하기도 했다. 금호고 시절 부상으로 저학년 시기를 날렸지만 3학년 때 부상을 떨쳐내고 좋은 활약을 펼쳐 졸업 후 연세대학교 진학을 이뤘다.

하지만 연세대로 올라간 뒤에도 조평원은 부상에 종종 시달렸다. 1, 2학년 시기는 대부분 부상으로 빠져야 했고, 3학년으로 올라가서도 온전한 주전 멤버로 선택받지는 못했다. 결국 우선지명 기간이 끝나도록 광주의 선택을 못 받았고, 연세대에서 4학년까지 채우고 졸업하게 되었다. 그러나 4학년으로 올라간 뒤 연세대의 주장을 맡은 조평원은 춘계연맹전 최우수 선수로 선발되는 등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2.2. 목포시청 축구단, 춘천시민축구단

연세대를 졸업한 이후 프로 구단 테스트를 보러 다녔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고 한다.[1] 이후 포르투갈로 날아가서 도전을 이어갔지만, 타지 생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결국 귀국했다. 잠시 공백기를 가지던 그는 2018년에 내셔널리그 소속 목포시청 축구단에 입단했으나, 경기 출전으로 이어가지는 못했다. 목포를 나온 후 2018년 여름부터는 춘천시민축구단에 합류해서 출전 기회를 가져가기 시작했다. 득점을 많이 가져가기 힘든 포지션에서 뛰었으나 그럼에도 꽤 준수한 득점력을 보여주는 등, 춘천에서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2.3. FC 남동

파일:2020조평원.png

2020년에는 신생 구단인 FC 남동의 창단 멤버로 합류했다. 남동에서는 사회복무요원 근무를 병행하면서 활동할 예정.[2] 김정재 감독이 조평원을 남동의 패스 마스터라고 부를 정도로 기대를 걸었고, 프리시즌부터 꾸준히 기용되면서 주전으로 입지를 다졌다. 개막전에서는 황대훈과 함께 중원을 맡아서 많은 활동량을 보여주었으나 그에 비해서 존재감은 다소 부족했고, 결국 전반 종료 후 강민규와 교체되었다.

20시즌 남동에서의 기록은 리그 6경기 출전. 8월로 넘어가면서 리그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2.4. 울산시민축구단

2021년 1월 13일, K3리그 승격팀 울산시민축구단으로의 이적이 발표되었다. 2021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났다.

3. 플레이 스타일

화려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수는 아니지만 견실한 플레이를 지닌 편에 속한다. 킥력도 준수하고 볼 키핑 능력 역시 갖추었다고 평가 받았다. 덕분에 중앙, 측면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자원으로 각광받기도 했다. 수비수로는 투쟁심이 돋보이는 선수.

4. 여담

  • 공부도 열심히 하는 축구 선수로 알려져 있다. 중학교 시절까지 평균 90점은 나올 정도로 학업도 병행하는 편이었고 연세대 시절에도 수업에 곧잘 참여했다. 초등학교 시절 축구부의 스카우트를 받았음에도 부모님은 반대했는데 그 이유가 당장 성적도 잘 나오는 편이니 공부를 더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실제로 중학교 진학때까지는 반 내 5등에는 들어야 축구를 계속 시켜주겠다는 조건을 걸었고 조평원은 축구를 하기 위해 이를 충족했다. 다만 대학을 졸업하고 선수가 된 후에도 부상이 잦다보니 여전히 집에서는 운동선수의 길을 걱정하는 듯하다.
  • 취미는 기타 연주.
  • 축구 생활은 남동에 오기 전까지 다른 곳에서 했지만, 태어난 곳은 인천이라고 한다. 어머니가 원래 살던 곳도 인천.


[1] 이 중에 울산 현대 축구단도 있었다.[2] 춘천에서 있던 시절에도 근무 자체는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