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표의 기록은 오직 송서 <후비전>에서만 볼 수 있으며 남사에서는 조안종의 아버지 조예만 기록하면서 조표는 언급이 되지 않았다. 생전에 조표는 치서시어사(治書侍御史)를 지냈는데 치서시어사는 법률에 능통한 자를 임명했다고 하며 이 당시에는 6품 이었으며 이는 송나라 까지도 이어졌으며 1290년에 5품, 1307년에 3품까지 올라갔다.
이후의 기록은 알 수 없으며 이후 유유가 유송을 건국할 때 산조들을 추숭했는데 관계가 외증조부이라 그런지 손녀 조안종이 효목황후(孝穆皇后), 아들 조예가 광록대부(光祿大夫)로 추숭되었으나 조표는 추숭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