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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 Choheung | |
정식 명칭 | 주식회사 조흥 |
영문 명칭 | Choheung Co., Ltd. |
설립일 | 1959년 2월 11일 |
업종명 | 식품첨가물 제조업 |
대표이사 | 함영제 |
상장 유무 | 상장기업 |
기업 규모 | 중견기업 |
상장 시장 | 유가증권시장 (1976년 ~ 현재) |
종목 코드 | 002600 |
자본금 | 30억원 (2019) |
매출액 | 1,950억 6천만원 (2019) |
영업이익 | 123억 4천만원 (2019) |
당기순이익 | 78억 4천만원 (2019) |
주소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시화로 38 (성곡동)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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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뚜기 계열 식품첨가물 제조업체로, '오뚜기' 브랜드를 처음 쓴 업체이며 뉴슈가 시장에서 제니코식품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오뚜기 피자를 생산하는 업체이기도 하다.2. 역사
1959년에 함형준[1], 홍종문[2], 박세정 등 5명[3]이 서울 영등포에서 세운 '조흥화학공업'이 모태이다. 창립 첫해부터 사카린 생산을 시작하여 1960년 문래공장을 세우고 이듬해 사카린 수출을 시작했으며, 뉴슈가 생산을 개시했다. 1963년 신도림 종합화학공장을 세운 후 1967년에 이스트 생산을 시작했으며, 일본 도쿄에 첫 해외출장소를 세웠다. 같은 해에 식품부를 통해 '오뚜기 즉석카레'를 생산하다 이듬해 함형준 공동창업주의 장남 함태호가 '풍림상사(현 오뚜기)'로 분가했다.1968년 당시의 광고[4][5] |
1976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한 후 1987년 함형준 공동창업주의 차남 함승호가 대표이사에 취임하면서 2세 경영체제가 시작됐고, 이듬해 빵크림 생산도 개시했다. 1991년 중앙연구소를 세웠으나, 1995년에 신도림공장에 가스누출 사고가 터지자 조업을 중단한 후, 1997년에 생산설비를 경기 안산공장으로 이전하는 한편, 사카린 및 화공약품 사업에서 철수했다. 또한 동아건설산업과 함께 신도림공장 터에 세워지는 '신도림 동아아파트' 1, 3차 시행사로 참여하여 분양하기도 했다.
2001년 삼양테크힐과 코다노를 인수합병했지만 이듬해 경영난으로 함태호 오뚜기 회장이 대주주가 되면서 오뚜기 계열사가 됐다. 2004년에 현 명칭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뉴질랜드의 유기농 전문점 체인업체 '허클베리 팜스'의 한국 사업권을 따서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1호점을 열었지만, 사업 부진으로 2009년에 철수했다. 2016년부터 오뚜기피자 생산을 맡아 성공하고 밀키트 시장에도 진출하면서 점차 효자 기업이 됐다.
3. 지배구조
2023년 4월 기준.주주명 | 지분율 |
오뚜기 | 48.93% |
함영준 | 6.98% |
오뚜기재단 | 5.00% |
함영범 | 2.45% |
애드리치 | 1.67% |
함영진 | 0.83% |
함영제 | 0.83% |
알디에스 | 0.27% |
함창호 | 0.25% |
4. 역대 임원
- 명예회장
- 홍종문 (1994~1999)
- 회장
- 이득춘 (1959~1969)
- 홍종문 (1976~1994)
- 함승호 (1994~2006)
- 대표이사 사장
- 함형준 (1959~1982)
- 홍종국 (1982~1987)
- 함승호 (1987~1994)
- 홍순모 (1994~2004)
- 공영호 (2004~2008)
- 박찬일 (2008~2017)
- 유익제 (2016~2022)
- 김성태 (2022~2024)
- 함영제 (2024~)
5. 산하 브랜드
- 오뚜기: 뉴슈가, 이스트 브랜드
- 코다노: 피자치즈 브랜드
- 마또네: 냉동피자 브랜드
6. 사건 사고
1980년대 이후 영등포공장은 시설의 노후화 등으로 황산가스 노출 등 안전문제의 기미가 점차 누적되기 시작했고, 도시화의 진행으로 아파트도 생기면서 1995년 조업 중단 전까지 황산 누출사고가 날 때마다 인근 신도림동 주민들의 대피와 항의 민원이 빗발쳤다.특히 1987년 3월 5일 낮 3시 10분경 영등포공장 내 사카린제조공장에서 무수황산이 20여분간 노출된 사고가 있었는데, 무수황산 20톤짜리를 실은 고려아연 울산공장 소속 탱크로리 차량이 3m짜리 호스를 공장 저장탱크에 연결 뒤 밸브를 틀었지만, 탱크로리 쪽 볼트가 느슨해졌기 때문에 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인근 신도림중학교 학생들이 긴급대피 및 하교하는 등 1시간 동안 큰 소동이 빚어졌고, 같이 이웃한 한국타이어 영등포공장[6], 삼영화학공업 신도림공장[7] 역시 대피 및 조업중단을 하는가 하면 경인국도의 행인들까지 대피하는 소동까지 발생하였다.
1995년 7월 25일 낮 1시 10분경, 동 공장 염분저장소 산분해 저장탱크가 압력을 못 이겨 염산(클로로설폰산) 가스가 누출되면서 인근 주민 4명이 병원으로 이송됐고, 1천여명이 대피했다.(매일경제 기사) 이 사고로 화학공장은 조업을 중단했고, '신도림동 공해추방 비상대책위원회' 측이 공장 이전을 요구하며 시위했다. 파장이 커지자 구로구청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의뢰해서 안전진단을 실시코자 하고 본사에 동월 말까지 공장 이전계획서를 내도록 지시했다. 이후 본사는 안전점검 결과 이상이 없는 식품공장만 돌리다가 1997년에는 식품 생산라인을 시화공장으로 이전하며 사카린 및 화공약품 사업에서 철수했다.
[1] 오뚜기 창업주 풍림 함태호의 부친이자 뮤지컬배우 함연지의 증조부.[2] 대선제분 공동창업자이자 1957년부터 개최 중인 '장호홍종문배 전국주니어테니스대회' 창설자이기도 하다.[3] 이들을 각자 상회를 운영했는데 서로 거래를 하면서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4] 이는 극장 광고로 추정되며, 당시는 흑백 TV이던 시절이지만 당시 극장 광고는 상당수 컬러였던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오뚜기와 조흥 측에서는 정확한 제작 시기를 알지 못하는지 유튜브 제목에는 1980년대늦어봤자 70년대 초일텐데 영상으로 되어 있다. 아무래도 컬러로 제작된 TV CF로 착각해서 컬러방송을 시작한 1980년 이후 TV광고로 추측했었을 수도 있다.[5] 여담으로 이 광고가 오뚜기의 사실상 첫 광고이며 조흥화학공업 식품부 명의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영된 광고이기도 하다.[6] 현 신도림 3차 대림 e편한세상 터에 위치.[7] 현 신도림 2차 동아아파트 터에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