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朱希彩(? ~ 772)
당나라의 절도사였다.
2. 생애
본래 노룡군절도사 이회선의 부하 장수였으나 768년 주차, 주도와 함께 이회선을 죽이고 스스로 유후를 칭했다. 또한 이때 자신과 성이 같은 주차를 예우했다.한편 이회선과 구교가 있었던 긍주(恆州)의 절도사 장충지는 이회선이 아무 잘못이 없는데 살해당하고 집안이 멸족되었다고 생각해서 장수를 파견해서 주희채를 토벌하려고 했으나 도리어 패배하였다.
조정에서는 하남부원수(河南副元帥) 황문시랑(黃門侍郞) 동평장사(同平章事) 왕진을 노룡군절도사로 삼고 주희채를 어사중승(御史中丞)으로 제수하고 절도부사로 충임시켰다. 왕진이 도착하자 주희채는 군사들을 선발하여 공손하게 왕진을 맞이하였으며 왕진은 침착하게 정절을 세웠다. 하지만 실제로 주희채는 왕진을 경계하고 있었고 왕진은 주희채를 통제하지 못할 것을 알고 군사들을 위로하다가 10일이 지나 돌아갔다. 조정에서는 결국 주희채에게 어사대부(御史大夫)를 더하고 그를 절도유후(節度留後)로 임명하였으며 나중에 유주 대도독부 장사, 노룡군절도사를 더하였다.
770년, 고밀군왕(高密郡王)으로 봉해졌다. 주희채는 이때부터 점점 방자해졌고 조정에 무례한 행동을 일삼았다.
결국 772년, 주희채의 부하였던 공목관(孔目官) 이원(李瑗)이 병사들의 원한을 이용하여 주희채를 죽였으며 사후 주차가 유후로 추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