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00:11:20

중과부적

고사성어
무리 중 적을 과 아닐 부 원수 적

1. 개요2. 반례
2.1. 전투2.2. 창작물에서
3. 관련 문서

1. 개요

적은 수효(數爻)로 많은 수효(數爻)를 대적(對敵)하지 못한다는 뜻.[1]

중국어에서는 한자 순서가 약간 다른 '과부적중(寡不敌众)'을 쓴다.

2. 반례

이 문서에 나열된 중과부적의 반례는 말 그대로 반례이다.

소수의 세력으로 다수를 이긴 경우가 유명하고 후세에도 이어져 내려오는 이유는 다수가 소수를 이기는 게 디폴트이기 때문이고 소수가 다수를 이기는 것은 매우 특이한 경우다. 소수의 세력으로 다수를 이기는 게 쉬운 일이라면 그 이야기들이 유명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다수의 세력이 소수의 세력에 패하면 후손대대로 조롱거리가 되는 것은 같은 이유로 그런 상황이 역사상 흔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과부적이라는 이 평범한 진리가 고사성어로 내려오는 이유는 나는 특별하다는 선민의식에 빠져 자신을 파멸의 나락으로 이끄는 사람들이 옛날에도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반례가 존재한다는 것은 역으로 우위를 점했는데도 지휘관이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거나 다른 곳에서 불리한 점을 적에게 노출하면 우위가 무의미한 패배를 당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음을 시사한다.

2.1. 전투

가급적이면 야전과 해전 위주로 서술하고, 공성전은 특성상 방어자가 유리한 전투이므로 방어자가 승리한 경우는 정규군 기준 병력차가 5배 이상 나는 경우[2]에 한하여 등재.
  • 팽성대전: 초군 30,000여 명 vs 한군 약 560,000여 명
  • 정형 전투: 한군 30,000여 명 vs 조군 약 200,000여 명
  • 합비 전투(215년): 조조군 7,000명 vs 손권군 100,000명
  • 여요전쟁
    • 제1차 흥화진 전투: 고려군 3,000명 vs 거란군 400,000명
      비율로 환산하면 133배 차이를 극복해낸 것이다.
    • 통주 전투: 거란군 200,000 명 vs 고려군 300,000 명
    • 곽주 전투(1011): 고려군 1,000~1,700 명 vs 거란군 6,000여 명
      거란군의 수성전이었지만 고려군에게 몰살당했다.
    • 금교역 전투: 고려군 100 명 vs 거란군 300 명
  • 길주성 전투: 고려군 2,000 명 vs 여진군 60,000 명
  • 1126년 송나라 지방관과 금나라 사신 호위대의 충돌: 금군 17명 vs 송군 2,000명
  • 대창원 전투: 금군 400 명 vs 몽골군 8,000 명
  • 임진왜란-정유재란
    • 용인 전투: 조선군 7~8만 명 vs 일본군 1,600명
      너무 수 차이가 크다 보니 일본군이 조선군을 전멸시킨 것은 아니고 '와해'시켰다가 맞다. 실제로 조선측의 사상자는 1600여 명 정도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해도 어이 없다 이상으로 말이 안 되는 패전이었지만...
    • 정암진 전투: 조선 의병 50여 명 vs 일본군 2,000명
    • 제1차 진주성 전투: 조선군 3,800 명 vs 일본군 30,000 명
    • 벽제관 전투: 일본군 20,000 명 vs 조명연합군 43,000 명
    • 행주대첩: 조선군 3,000 명 vs 일본군 30,000 명
    • 명량 해전: 조선군 13 척 vs 일본군 대략 300여 척[3]
  • 카가얀 전투: 스페인군 40 명 vs 일본 왜군 1,000 명
  • 제1차 세계 대전
    • 갈리폴리 전투: 동맹국 315,000 명 vs 협상국 560,000 명
      양측 다 사상자가 25만 명으로 비슷비슷했다.
    • 크라곤자 산 전투: 독일군 1개 대대[4] vs 이탈리아군 5개 연대
      너무 수 차이가 크다 보니 독일군이 이탈리아군을 전멸시킨 것은 아니고 '생포'시켰다가 맞다.
  • 제2차 세계 대전
    • 1942년 북아프리카 튀니지 전선: 영국군 30,000 명 vs 이탈리아군 220,000 명
    • 레이테 만 전역 사마르 해전: 미 해군 태피-3 호위항공모함 6척, 구축함 3척, 호위구축함 4척 vs 일본 제국 해군 구리다 함대 전함 4척, 중순양함 6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11척
      미 해군 태피-3은 수상함 전력이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지만 호위항공모함을 성공적으로 지켜내고 야마토급 전함까지 퇴각시켰다.
  • 6.25 전쟁
    • 춘천-홍천 전투: 대한민국 육군 1개 사단 vs 조선인민군 1개 군단(3개 사단, 1개 연대)
    • 베티고지 전투: 대한민국 국군 36 명 vs 중공군 800 명
  • 짜빈동 전투: 대한민국 해병대 약 300명(미군 2명 포함) vs 북베트남군 2,000~3,000명

2.1.1. 윙드 후사르

역사상 최강의 기병대들 중 하나답게 전적도 중과부적을 뚫어낸 전적이라 굉장히 화려하다.
  • 1604년 비아위카미엔 전투 - 폴란드리투아니아군 2,300명 vs 스웨덴군 5,000
    스웨덴군 궤멸
  • 1605년 키르홀름 전투: 폴란드리투아니아군 3,600명(윙드 후사르 1,500명) vs 스웨덴군 12,000명
    이 전투에서 스웨덴군은 대략 60% ~ 80%가 전사했다. 말 그대로 학살. 스웨덴 원수였던 레나르트손이 전사했고, 같이 참전했었던 스웨덴 국왕 칼 9세는 목숨만 간신히 건져 탈출했다. 그리고 포위당한 스웨덴군은 폴란드군에 의해 무참히 도륙당했다. 스웨덴군은 6천 ~ 9천여 명이 전사한 데 비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군은 고작 100명 전사하는 경이적인 교환비를 보였다. 특히 그 중에서 윙드 후사르 300명이 스웨덴 보병대 8,200명을 막아내며 27배 병력차를 극복했다.
  • 1514년 오르샤 전투: 윙드 후사르 1만 2천 ~ 3만여 명 vs 모스크바 대공국군 4만 ~ 8만 명
    1만 2천 ~ 3만여 명으로 모스크바 대공국의 병력 중 4만 5천 ~ 8만 명 중 1만 ~ 3만여 명을 전사시키고 3천 ~ 5천여 명을 포로로 사로잡았다.
  • 1610년 클루쉬노 전투 - 폴란드리투아니아군 6,800명(윙드 후사르 5,500명) vs 스웨덴-루스 연합군 35,000명
    러시아군 궤멸
  • 1673년 코침 전투: 폴란드-코사크 연합군 45,000명 vs 오스만 제국군 12만 명
  • 1651년 베레스테츠코 전투: 폴란드군 8만 명(윙드 후사르 17,000명) vs 자포리자 카자크군 20만 명
    자포리자 측은 사망자만 4만 명을 내었지만, 폴란드군의 손실은 700명
  • 1683년 제2차 빈 포위전: 윙드 후사르 1만 8천 명 vs 오스만 제국군 9만~30만 명
    을 최소 9만 ~ 최대 30만으로 추정되는 대병력이 포위하자, 윙드 후사르 1만 8천 명이 (후대에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기병 돌격'으로 불리는) 전설적인 돌격으로 붕괴시킴.
  • 1695년 호도프 전투 - 윙드 후사르 400명 vs 크림 칸국 약 10,000

2.1.2. 비록 졌지만 잘 싸운 경우

  • 테르모필레 전투: 그리스 연합군 10,000 ~ 20,000명 vs 아케메네스 왕조 70,000 ~ 300,000명
  • 장판파 전투 장비, 조운: 전투 자체는 조조군의 승리였으나, 조운은 혼자서 조조 진영 한복판에 들어가 유비 가족을 구출하고, 장비는 기병 20명과 함께 다리에서 조조군의 추격대를 막아세웠다.
  • 황산벌 전투: 백제군 5,000 vs 신라군 50,000
  • 1차 세계대전 베르너 포스: 생애 마지막 전투에서 단신으로 포커 Dr.1을 몰고 영국군 전투기 7대를 상대로 현란한 기동전을 벌이며 싸우다 전사.
  • 김상옥: 400명 이상의 일본 제국 경찰을 상대로 3시간 반 동안 쌍권총으로 총격전을 벌이다 마지막 1발로 자살 순국.
  • 겨울전쟁: 핀란드군 250,000~340,000 명 vs 소련군 420,000 명 ~ 990,000 명

2.1.3. 논란이 있는 경우

  • 살수대첩의 경우 당연히 고구려군이 수나라 30만 별동대보다 적을 것이라 여기지만 꼭 그렇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얼마뒤 고당전쟁에서 수만~수십만을 연타로 동원하는 위력을 보여준 고구려이기도 하거니와 먼훗날 고려군이 더 많은 상태에서 승리한 귀주대첩도 있기 때문이다.[5]
  • 청산리 전투는 독립군측 병력 숫자와 일본군 피해 규모에 대한 논란이 있다.

2.2. 창작물에서

반례 문단의 하위 문단이므로 중과부적을 뚫고 이겨낸 사례만 서술하며, 중과부적 그대로를 보여주는 사례는 중과부적 엔딩 문서를 참조할 것.

또한 사실 소수가 다수를 이겨낸다는 전개는 수많은 창작물에서 나오는 클리셰다.[6] 때문에 소수가 다수를 상대해 이긴 사례를 다 넣기엔 예시가 넘치므로 명확히 불리한 상황임이 언급되거나 예정에 없던 일이라는 식으로 연출되는 경우만 기재한다.[7]

3. 관련 문서


[1] 직역하면 '많은 수효와 적은 수효 간에는 대적 자체가 안 된다(=게임이 안 된다).' 가 된다.[2] 공성전 문서에서 공격자는 공략을 위해 방어자의 3배 이상의 병력을 요한다고 명시한 내용을 고려함.[3] 일본군 측에서 실제로 참전한 군함은 130여 척 정도로 명목상 대비 절반도 채 안 된다. 그래도 약 10배 차이가 난다.[4]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투로, 이 독일군 부대의 최고지휘관이 훗날 사막의 여우로 알려진 에르빈 롬멜이다.[5] 하지만 대개의 유목제국이 그렇듯 요나라 영토가 넓기만 하고 인구밀집지대는 연운 16주 정도가 전부이기 때문에 의외로 고려와 인구차이가 그닥 크지 않다. 더구나 요나라는 대외원정대고 고려는 수비하는 입장이다. 유목민인 만큼 동원력은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6] 자세한 내용은 17대 1 문서도 참조해볼 것.[7] 예를 들어 오버워치 PvE 난투는 모든 임무가 기본적으로 네 명으로 수많은 병력을 상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술할 베네치아 사태(응징의 날 난투)를 제외하면 모두 원래 작전대로 투입되어 예정대로 싸운 것이다. 에이스 컴뱃 시리즈도 소수의 주인공 편대가 다수의 적 공군 병력을 도륙내는 것이 종특이다. 예를 들어 7편의 SP 2화 〈Anchorhead Raid〉도 스트라이더 편대 단 네 대가 앵커헤드만에 있는 에루지아 병력들을 도륙내지만 이 임무도 원래 예정대로 네 대만 투입해 기습한 것으로 무전 대사도 불리하다는 느낌은 없고 오히려 신나게 때려부순다는 연출이라 여기 기재되지 않는다.[8] 대책위원회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단 네 명으로 카이저 PMC 병력들을 상대한다. 일단 흥신소 68의 리더가 스스로 선택한 싸움이긴 한데 속으로는 저질러버렸다며 멘붕하고 있었지만 결국 모두 해치우고 살아남는다.[9] 전투 시작 전 브리핑에서 칼날 여왕이 플레이어 정신체에게 힘든 상황이라고 언급한다.[10] 용기병 한 대로 보호막 충전소의 지원을 받아가면서 테란 바이오닉을 궤멸시켰다! 결국 이 경기는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피닉스의 반복 대사로 등재될 정도로 명경기가 되었다.[11] 요르가 워낙 사기적으로 강하다 보니 평소에도 홀로 투입되어 도륙내는 게 일상이고 이 임무도 예정대로 한 명만 호위를 맡은 것이긴 하지만 위치가 노출되어서 예상보다 많은 적을 만난 탓에 요르도 잔뜩 긴장했고 실제로 검투사에게 죽을 뻔했다.[12] 윗선에서 B7R에 가름 편대를 버림말로서 보냈는데 적 에이스 편대가 나타나 단 2기로 상대하게 된다. 조기경보통제기가 퇴각을 허가하지 않는데, 이쪽은 태연하게 그럴 줄 알았다며 보수 추가라는 반응만 하고 모두 해치우더니 자기들은 미끼였냐고 한탄한다.(…)[13] 두 대만 투입된 가루다 편대만 노리고 수많은 에스토바키아 공군기들이 투입된 가운데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틴다.[14] 이전까지의 무인기떼 습격은 (당사자들은 몰랐겠지만) 의도했던 일인 반면, 이때는 에루지아가 IFF를 위장한 실기를 보내 조기경보기까지 속여넘겼다. 거기다 아스널 버드산탄미사일인 헬리오스까지 날아온 것은 덤.[15] 클레멘스 준장의 모략질 때문에 스트라이더 편대 4기를 제외한 지원기들의 도착이 늦었고 덕분에 전투기 단 네 대로 수많은 에루지아 공군 전투기들을 상대하며 5분 가까이 버텨낸다.[16] 원래는 잠입 후 납치 임무라 단 네 명의 블랙워치 요원만 투입된 가운데 레예스의 돌발 행동 때문에 단 네 명의 병력이 탈론 본거지의 모든 병력들을 상대하며 탈출하는 꼴이 되었다.[17] 수적 차이는 1기 정도일 뿐이지만 두 기체의 성능도 압도적이다.[18] 이조차도 정규군에 민간인까지 합한 숫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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