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 정권 기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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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重房고려 시대 2군 6위의 상장군, 대장군으로 구성된 회의 기관이다. 전체 구성원은 총 16명으로 우두머리는 반주라 불리었던 응양군 상장군이 맡았다. 대체적으로 2군 6위와 관련된 중요 회의 기관으로 운영되었으나, 무신정변 이후 정중부, 이의방이 권력을 장악하며 무신정권 초기 최고 권력 기구가 되었다.
2. 역사
자세한 설치연도는 알려져있지 않으나 2군 6위의 상장군, 대장군으로 구성되어 있으니만큼 2군 6위가 완성된 시점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신정변 이전에는 고려의 중앙군들이 도성과 관련된 수비 등에 대해 회의하는 기관 정도였을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무신정변 이후 무신들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그야말로 최고기구로 자리잡게 된다. 아무래도 무신들이 직접적인 조정 권력을 장악하지 못했으며, 무신정권 초기를 보면 알다시피 권력의 중추가 지속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독자적인 기구를 마련할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기존 중앙군 무신들의 합좌기구인 중방이 권력의 중추가 되었다. 이는 무신정변의 주동자 중 한 명인 정중부가 중방의 우두머리인 응양군 상장군 위치에 있었던 것 역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의방과 이고도 각각 대장군에 오르면서 중방에 참여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무신정권 초기의 권력구도는 중방을 중심으로 운영되게 되었다.
중방 중심의 운영체제는 도방을 설치하며 독자적인 기구를 만든 경대승에 의해 흔들릴 뻔했으나, 경대승이 사망하고 역시 상장군 직을 가지고 있던 이의민이 다시 집권하면서 꾸준히 위치를 유지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체제는 최충헌이 집권하면서 끝나게 되었다. 최충헌은 무신 정권 초기의 무신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에 독자적인 기구의 필요성이 중요했고, 결국 교정도감을 따로 설치하면서 중방 중심의 체제는 끝나게 된다.
이후 중방은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아갔으며, 충선왕 때 한번 폐지되었다가 다시 부활하였고, 조선이 건국된 이후 최종적으로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