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증참판엄공실기(贈參判嚴公實紀)』는 조선 초기 영월(寧越)의 호장(戶長)이었던 엄흥도(嚴興道)의 행적을 12세손 엄석헌(嚴碩憲, 1762~1822)이 모아서 편찬한 실기(實記)이다. 종로도서관 소장본은 편제면(編題面)의 간기(刊記)를 통해서 1817년 교서관(校書館)에서 활자(活字)로 간행한 판본임을 알 수 있다. 엄흥도는 조선 초기의 영월(寧越) 호장(戶長)으로 단종(端宗, 1441~1457)이 영월에서 시해당하자, 그 시신을 수습한 인물이다. 1698년에 단종이 추봉되면서 공조좌랑(工曹佐郎)에 증직되었다. 그 후 여러 번 증직되다가 1748년에 공조참판(工曹參判)으로 증직되었다. 『증참판엄공실기』라는 실기 제목은 이와 같은 그의 이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증참판엄공실기』을 편찬한 엄석헌은 엄흥도의 12세손으로 자는 경관(景寬), 호는 여암(旅庵)이다. 생부(生父)는 엄사신(嚴思信, 1744~1771)이며, 엄사광(嚴思洸, 1735~1783)의 양자가 되었다. 아들은 엄문표(嚴文彪, 1785~1835)이다.2. 형태적 특징
이 책의 표지서명은 『엄호장실기(嚴戶長實紀)』이다. 본문은 금속활자(金屬活字)인 임진자(壬辰字)로 인출하였다. 첫 장의 반곽이 25.0×17.3cm이며, 계선이 있고 반엽(半葉)마다 10행(行) 18자(字)로 되어있다. 본문의 주석은 쌍행(雙行)으로 부기하였다. 판심의 어미는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向二葉花紋魚尾)이며, 판심제(版心題)는 엄호장실기(嚴戶長實記)이다. 권1 제1면(面) 상단에는 ‘京城府立圖書館藏書’가 찍혀 있다.3. 체제 및 내용
『증참판엄공실기(贈參判嚴公實紀)』는 3권 1책 구성으로 편제면(編題面)에 “정축계추 운각활인(丁丑季秋 芸閣活印)”이라는 문구가 있어 1817년 교서관(校書館)에서 활자로 간행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권수(卷首)에는 1817년 이만수(李晩秀, 1752~1820)와 홍석주(洪奭周, 1774~1842)가 각각 작성한 「증참판엄공실기서(贈參判嚴公實紀序)」와 그 다음에 「증참판엄공실기총목(贈參判嚴公實紀總目)」이 있다. 이만수의 서문에는 엄흥도(嚴興道)의 12세손 엄석헌(嚴碩憲)이 편찬하여 인행(印行)하고자 하였음을 밝혀놓았다. 본문 구성을 살펴보면 권1은 사적(事蹟)으로 조야기재합록(朝野記載合錄)과 기실문(記實文)으로 전(傳), 전후서(傳後敍), 외전(外傳), 찬(贊), 행장(行狀), 묘명(墓銘)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권2는 사원문(祠院文)으로 육신사우기(六臣祠宇記), 창절서원중수기(彰節書院重修記), 원강사기(圓岡祠記), 원강서비(圓岡敍碑), 원강사서략(圓岡祠敍略) 및 도유통문(道儒通文) 등이 있고, 사제문(賜祭文)으로는 치제묘문(致祭墓文), 치제정려문(致祭旌閭文), 치제배식단문(致祭配食壇文), 제묘문(祭墓文)이 있으며, 권2 마지막 부분에는 조종영(趙鍾永, 1771~1829), 최헌중(崔獻重), 이면구(李勉求, 1757~1818), 이공민(李功敏)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권3은 부편(附編)으로 거사엄군묘표(居士嚴君墓表), 서학동묘지후(書鵲洞墓誌後), 엄처사선묘표(嚴處士善墓表)와 복실기(復貫記), 영월엄씨소보서(寧越嚴氏小譜序)와 보보록(補譜錄)이 있다. 권말(卷末)에는 본서의 편찬과 간행을 위해 자금을 모은 유사(有司)로서 후손인 사환(思煥), 국헌(國憲), 순헌(順憲), 편차(編次)를 담당한 교헌(敎憲), 교정(校正)을 담당한 문정(文珽), 감인(監印)을 담당한 문빈(文彪) 등이 엄석헌의 지문(識文)으로 기재되어 있다.종로도서관 고문헌 검색시스템에서 원문 확인이 가능하다.
4. 특성 및 가치
『증참판엄공실기』는 단종(端宗)이 세조에 의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안치되었다가 시해되자 시신을 수습하고 장사 지낸 영월 호장 엄흥도의 전기이다. 국왕의 옥체가 후세에 이르기까지 유실되지 않게 한 공(功)을 이룬 것으로, 선조(宣祖) 때 종손에게 호역(戶役)을 면제해 주고, 현종 때 송시열(宋時烈)의 주청으로 자손을 등용하게 하였다. 숙종 때에는 공조 참의에 증직하고, 영조 때 정문(旌門)을 내리고 공조 판서에 증직하였다. 정조 때에는 사육신과 함께 영월의 창절사(彰節祠)에 배향되었다. 정조는 단종(端宗) 때 충절을 다한 여러 신하의 배향을 교서로 내리고 배향할 여러 신하를 취사할 적의 수의(收議)에 대한 비답을 내리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의리를 다하여 송종(送終)의 일에 진력한 사람은 오직 엄호장(嚴戶長) 한 사람뿐이다. 절의로 죽은 사람의 대열에 들어 있지 않다 하여 어찌 차마 이 사람만을 배향에서 빠뜨릴 수 있겠는가. 김 문정공(金文正公), 송 문정공(宋文正公)을 묘정(廟庭)에 추가로 올린 것도 바로 확실한 전거를 원용하여서인 만큼, 증참판 엄흥도(嚴興道)는 31인의 위차(位次) 다음에 넣도록 하라.”고 하였다. 『증참판엄공실기』는 이와 같은 엄흥도의 배향, 정려, 치제 등과 관련된 기록을 비롯하여 그의 행적을 보다 자세히 확인할 수 있는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조 이후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개인의 문집이나 실기를 간행하는 출판문화의 사례로 의미를 지니는 책이다.※이 문서는 종로도서관 인문사회과학실에서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