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01:14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비판 및 논란



1. 개요2. 1기
2.1. 1기 3대 위원장 이영조 관련 논란
2.1.1. 위원회 해산 관련 논란2.1.2. 결재 3개월 미루고 출장2.1.3. 포항 미군 사건 번복2.1.4. 세금으로 포도주 구입2.1.5. 영문 보고서 배포 중지2.1.6. 4.3은 폭동이고 5.18은 민중반란2.1.7. 결과
2.2. 황태성 사건 조사개시 관련 논란
3. 2기
3.1. 2기 1대 위원장 정근식 관련 논란3.2. 2기 2대 위원장 김광동 관련 논란3.3. 이옥남 위원 관련 논란3.4. 대통령실의 허상수 위원 임명 거부 사건
3.4.1. 대통령실의 임명 배제 미통보
3.5. 하미마을 학살 피해자 신청 각하3.6. 김광동•이옥남, 부역자 가리겠다
3.6.1. 민간인 학살사건 유족의 김광동 위원장 형사고소
3.7. 김광동,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보상 심각한 부정의", "적대세력 유족 거짓말", "더 고귀한 희생" 발언 논란
3.7.1. 반응
3.8. 김광동의 전쟁 중엔 재판 없이 사람 죽일 수 있다 발언3.9. 진실화해위 국장의 막말 논란3.10. 전시 즉결 처분 정당화 논란3.11. 민간인 학살 진실규명 불능 처리 지시 논란3.12. 진도 가족 간첩단 사건 무죄 판결 부정3.13. 대구 10월 항쟁 추모식 유족 모욕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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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대한 비판 및 논란에 관해 서술하는 문서.

2. 1기

2.1. 1기 3대 위원장 이영조 관련 논란

2.1.1. 위원회 해산 관련 논란

과거사법에 의하면 진실위는 그 자체 결정만으로도 조사활동기간을 법적으로 2년이나 더 연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영조는 2010년 1월 22일 제122차 전원위원회의에서 조사기간을 단지 약 2개월만 연장했다(2010년 4월 24일에서 6월 30일까지로). 유족에 따르면 "그럼으로써 그는 역사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방기"했다. 위원회 해체에 앞장선 것이다. 더구나 이영조는 조사종료 기간이 남았는데도 유족들이 신청한 사건을 무더기로 각하나 진실규명불능 처리했다.출처: 1기 진실화해위 조사관 김성수가 진행한 유족회 윤호상 인터뷰

이영조는 진실위 위원장으로 근무 당시 가해자를 밝히기가 어렵다면서 민간인학살 사건에 대해 군대 대장이나 경찰서장 수준에서 사과하고 사건을 무마, 처리하자고 하였다. 유족들은 국가폭력의 의해 학살된 희생자의 유해를 발굴하고 추모시설을 세우고,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이영조는 유족들의 요구를 무시해 버렸다.#

2.1.2. 결재 3개월 미루고 출장

진실규명된 사건에 대한 결재를 3개월 이상 미루고 외유성 해외출장을 다녀 관련 유가족들의 권리를 침해하여 결국 이의신청 등의 법적절차가 시간부족으로 졸속 처리된 일#이 있었다.

법에 따르면 결정통지를 받은 사람은 60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도록 돼 있고, 위원회 또한 60일 이내에 그 이의신청에 대해 결정하고 결과를 통지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영조가 결재를 미루고 출장을 가 사건 의결 후 90일이 지났음에도 미결재 15건이 신청인이나 참고인에게 통지되지 못한 매우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났다. 60일간의 이의신청기간과 60일간의 이의신청결정 통지기간은 법이 보장한 신청인의 권리인데 위원회는 이를 보호하기는커녕 책임과 의무를 방기해 신청인과 피해유족의 권리를 명백히 침해하는 위법한 처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위원장 미결재 사건 중에는 수십 건의 신청사건이 병합된 것들이 있고 조사결과 희생자로 거명되는 사람은 수백 명에 이른다.#

대부분 미군 학살 관련 사건이다.

2.1.3. 포항 미군 사건 번복

진실위 전원위원회의 의결사항은 법에 규정된 방식 외에는 진실위 전원위원회조차 임의로 '진실규명' 혹은 '불능'으로 바꿀 수 없다. 위원회 같은 회의 구조에서 결정한 것은 결정한 기관도 고칠 수 없고 다른 국가기관도 결정내용을 그대로 인정한 상태에서 그 효력을 다투지 않아야 한다는 불가변력, 불가쟁력의 원칙 때문이다.출처:김성수

그런데 이영조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진실규명'으로 결정된 전원위원회 의결을 뒤짚고 임의적으로 '진실규명 불능' 처리했다.#

이영조 위원장은 포항지역 미군폭격사건을 전원위원회에서 '진실규명'에서 '진실규명 불능'으로 재심의하는 안건 상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재심의안은 전원위에서 의결 받지 못했다. 이처럼 재심의가 무산되자 이영조 위원장은 의결 내용을 변경해서 결재를 상신하라고 TF팀 특별보좌관에게 지시했다. 하지만 변호사 출신의 이 특별보좌관은 "이미 의결된 전원위원회의 의결을 뒤엎는 보고서는 결재 상신할 수 없다"며 지시에 불응했다. 그러자 이영조 위원장은 그 자리에서 이 보좌관을 면직시켰다.#

이후 이 위원장은 비서실 사무원에게 해당 문서를 기안하게 한 후 김용직 상임위원의 중간 결재에 이어 '진실규명' 부분을 '진실규명 불능'으로 바꾼 수정보고서에 결재했다. 그 결과 '진실규명'된 5건의 포항지역 미군폭격사건 중 3건이 '불능' 처리된 상태로 신청인 등에게 통지됐다. 진실위 전원위원회가 '진실규명'으로 의결한 지 4개월이나 지나 이영조 위원장이 '진실규명불능'으로 변경해 결재한 것이다.#

1표의 의결권만 가지고 있는 이영조 위원장이 전원위 의결을 뒤엎고 '진실규명'된 희생사건을 '불능' 사건으로 변개한 것이다. 이는 마치 국회에서 본회의 '의결'로 동의한 사항을 다음 날 국회의장이 정부에 통보하기 위한 결재서류에서 임의로 '부결'로 바꾸어 보내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해 진실위 이기욱 비상임위원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고 법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포항지역 미군 폭격사건의 유족인 이영애는 "이영조 위원장의 납득할 수 없는 조치에 대하여 끝까지 투쟁하고 법적조치를 취하겠다"며 분노했다.#

2.1.4. 세금으로 포도주 구입

기사에 따르면, 이영조는 퇴임 직전인 2010년 12월경 국민혈세 500만 원으로 백화점 명품관에서 포도주를 구입하여 지인 등에게 선물로 배포하는 일 등이 있었다고 한다.#

2.1.5. 영문 보고서 배포 중지

이영조는 진화위 영문 보고서가 번역이 엉터리라며 배포를 중단하여 번역자 김성수에게 고소당했다. 김성수가 승소했고 이영조가 패소했다. 즉 번역엔 문제가 없다는 것.

2.1.6. 4.3은 폭동이고 5.18은 민중반란

이영조는 위원회가 해체되고 성과를 정리하는 자리에서, '제주도 4.3은 폭동이고, 광주 5.18은 민중반란'이라고 발언하여 크게 문제가 되었다. 관련기사

2.1.7. 결과

이영조는 진실화해위에서의 행보로 고소를 당했고 패소했다.# 이후 이영조는 새누리당 공천을 받게 되는데 시민사회가 강력 반발하여 이영조의 공천이 취소되었다.# 또한 경희대 교수였는데 복직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2.2. 황태성 사건 조사개시 관련 논란

담당 조사관 전명혁에 따르면 황태성 사건이 조사개시 요건을 충족했음에도 조사개시되지 않았다고 한다. 확정판결사건 조사개시하려면 형사소송법상 재심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황태성 사건의 경우 전명혁에 따르면 새로운 증거 발견이 있었다고 한다.

3. 2기

3.1. 2기 1대 위원장 정근식 관련 논란

  • 2021년 5월 24일 2기 초대 위원장인 정근식이 탈북 국군포로들이 공산군이 포로에게 저지른 가혹행위와 공산군의 포로 송환 거부에 대해 규명해 달라는 신청서를 낸 직후 이뤄진 국군 포로들과의 면담에서 자신이 거제 포로수용소에 있던 중공군 포로의 피해에 관심이 많아 이들의 피해상을 조사해보려고도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정근식은 이에 대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것은 위원장으로서의 발언이 아니라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원장으로 있을 때 중공군 포로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라며 남북 화해를 위해서는 중공군의 피해도 알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면담에서 국군 포로 분들에게는 신청서를 잘 검토해보겠다고 긍정적인 말씀을 드렸다고 덧붙였다. # 6월 6일, 정근식 위원장은 국군포로의 자택으로 직접 찾아가 사과했다. #
  • 2021년 11월 4일 피해자 유족들에게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울 경우 국군·경찰로 기입하라'는 취지의 안내를 했던 것으로 드러나 인권단체가 정근식 위원장을 고발하였다. 실제로 북한 인민군이나 반란군에 희생된 일부 피해자 유족들이 ‘우리 군경에 의한 희생자’라고 입장을 바꿔 보상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실제 2021년부터 2022년까지 국군·경찰이 학살했다고 2기 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한 사건 중 최소 222건이 인민군과 좌익 세력의 소행인 것으로 판단된다는 사실이 조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유의해야 할 점은 이것이 최종 진실규명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다. 1기 위원회 당시에도 우리 군경에 의한 희생으로 신청이 되었다가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으로 유형이 변경되어 진실규명된 사례가 존재한다.# #

3.2. 2기 2대 위원장 김광동 관련 논란

  • 2기 2대 김광동 위원장의 뉴라이트 이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김광동 위원장의 경우 한국전쟁 시기 학살 사건을 전담하는 1소위를 담당하는 상임위원으로 해당 사건 진실규명에 관해 관련 유족회의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은 바 있다.# 거기에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헬기사격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며 5.18 북한 개입설에 대해서도 가능한 의혹이라고 쓴 것도 알려졌다.#

3.3. 이옥남 위원 관련 논란

  • 과거사정리법상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은 정치활동이 금지되어 있으나, 비상임위원인 이옥남 위원이 국민의힘 혁신위원회 활동을 병행하여 문제가 된 적이 있다.#

3.4. 대통령실의 허상수 위원 임명 거부 사건

2023년 4월 17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1], 허상수(67) 재경제주4.3희생자및피해자유족회 공동대표(전 성공회대 교수, 현 한국사회과학연구회 이사장)는 2월 24일 국회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했으나(국회의원 재석 269석 중 찬성 224표) 50일 만에 대통령실 인사검증 과정에서 탈락했다. 허상수는 43년 전 자신의 노동운동에 대한 처벌 근거였던 국가보위에관한특별조치법(국가보위법)이 위헌이라며 1년8개월 전 재심을 청구했다가 발목이 잡혔다. 허상수는 1980년 전두환 정권 당시 전국연합노동조합 서울지역지부 중앙국제법률특허분회 분회장으로서 40여명의 노조원들과 집단농성을 해 국가보위법을 위반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져 1981년 6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82년 6월 항소심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고 1983년 4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박정희 정권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유신선포 전인 1971년 12월27일 제정된 국가보위법은 대통령에게 국회의 동의 없이도 국가비상사태 선포권을 부여하고, 노동기본권 등 민주주의 기본요건을 철저하게 침해한 법률로 1981년 12월17일 폐지됐다.출처: 한겨레 고경태

헌법재판소는 1994년 허상수에 대한 처벌의 근거가 됐던 국가보위에관한특별조치법(국가보위법)을 위헌으로 결정했다. 허상수는 국가보위법이 위헌임을 근거로 재심을 청구했다. 2021년 8월19일 재심 법원인 서울고등법원 형사10부(재판장 이재희)는 특별조치법을 위헌·무효로 판단해 원심판결을 파기했으나 선고유예 처분을 내렸다. 원심의 공소 사실 중 변조사문서행사, 건조물 침입 등은 재심 사유에 포함되지 않아 이 부분에 대한 유무죄 여부가 심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각 노조 해체 서면결의서의 문장을 일부 바꾼 것과 해고 뒤 사무실에 침입하였다는 것 때문에 인정된 혐의였다. 허상수는 “변조사문서행사는 노조해체서면결의서 표지에 내 이름을 넣어 바꾼 것을 문제삼은 것이고, 건조물 침입은 개인 사물을 가지러 사무실에 갔을 때 처음에는 통과시키더니 나중에 광화문 파출소 순경을 불러 나를 데리고 가 엮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재심 선고유예 판결이 탈락 사유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심 판결이 없었다면 이미 40년 전에 확정된 판결은 진실화해위 위원 임명에 결격사유가 되지 않았을 상황이었다. 과거 피해 회복을 위해 재심을 청구했는데 오히려 불이익을 받은 셈이다.#

허상수는 “국회투표를 통과한 사안을 대통령이 거부하는 것은 이중의 처벌이고 인격살인”이라며 “너무 큰 충격이다. 내가 40년 전 처벌받은 법은 언론자유와 노동3권을 완벽히 금지한 국가보안법 수준의 악법이었다. 그걸 바로잡겠다고 신청한 재심 판결 때문에 진실화해위원에서 탈락시킨 것은 나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원내대변인은 "대통령실이 내세운 결격 사유는 터무니없다"며 "과거 국가보위법이라는 위헌적 법률이 횡행하던 시대에 정부에 당한 탄압이 어떻게 결격 사유가 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대체 얼마나 더 4·3과 희생자들을 모욕할 생각이냐"며 "4·3 희생자들 넋을 위로하고, 유족을 대표하는 허 대표를 진실화해위원으로 임명하라"고 촉구했다.#

진실화해위원이었던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허상수 위원 임명 배제는 위헌이다.
재심 판결에서 나온 선고유예를 새로운 유죄 판결인 양 결격 사유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이다. (중략) 잘못은 재심 제도의 본질을 오해한 인사검증 담당자에게 있다.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해보겠다.

첫째로, 2021년 선고유예는 유죄 판결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1982년 유죄 판결의 그림자 판결에 불과하다. 재심법원에 의한 무죄 판결은 과거의 유죄 판결을 깨뜨리므로 형성적 효과를 낳지만, 재심 법원에 의한 유죄 판결은 과거 유죄판단의 확인에 그치므로 어떠한 추가적인 효과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재심 재판에서 판사가 3년이나 5년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실제 사례들이 왕왕 있는데 검사가 이러한 형벌을 집행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집행유예이든 선고유예이든 실형 선고이든 원래의 유죄 판결을 통해 피고인은 죗값을 치렀기 때문에 재심 재판에서의 유죄 판결은 허구적인 것이다. 이와 같이 재심에서의 유죄 판결이 법적 효과를 전혀 발생시키는 않는다는 보장 때문에 재심 제도가 존재한다. 과거의 유죄 판단을 유지하는 기술적인 방편에 불과한 선고유예 판결을 새로운 판결인양 취급하는 것은 재심 제도에 관한 법적 놀이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둘째로, 2021년 선고유예 판결을 결격 사유로 활용하는 것은 이제 동일한 행위를 이중으로 처벌하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이는 일사부재리 원칙의 우회적 위반이고 형사 피고인을 이중적 위험에 빠뜨리는 조치로서 헌법이 엄격히 금지하는 바이다. 임명 유보는 그림자 판결을 재심 제도의 본질에 반해서 집행하려는 시도이고, 재심 판결의 의미를 위헌적으로 확장하는 행위이고, 인사 관련 법령을 위헌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본디 재심은 피고인을 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서만 허용된다. 어쨌든 위헌적인 인사검증은 허상수 선생의 공무담임권과 재판청구권을 근본적으로 침해한다.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허상수 진실화해위원 임명 배제…재심제 취지 망각한 위헌적 적용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는 4월 20일 서울 전쟁기념관 앞에서 진실화해위원회의 허상수 위원 임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허상수는 4월 20일 대통령실에 임명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의견서는 국회에서 선출한 공직자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반드시 해야 하는 기속재량이므로 즉각 이행해야 하며 임명하지 않으면 삼권분립 침해라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4월 21일 뉴시스 단독보도에 따르면 이 날 대통령실은 이날 진실화해위에 상임위원 이상훈, 이옥남, 비상임위원 오동석, 이상희, 차기환 등 5명에 대한 임명을 알리는 공문을 전달했다. 국회에서 이들에 대한 선출안을 가결한 지 약 두 달 만이다. 관련법에 따라 대통령은 후임 위원 선출 시 즉시 임명해야 한다. 허상수 4·3 희생자 및 피해자 유족회 공동대표는 민주당 추천 몫으로 진실화해위 위원 후보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대통령실은 임명 과정에서 결격 사유가 확인됐다며 탈락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1일 “억울할 수 있겠지만 법해석 문제라서 상황변화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원내대변인은 "허 대표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에 따라 국회가 선출한 진실화해위원"이라며 "두 달이 넘도록 임명하지 않더니 재심 제도의 취지를 망각한 위헌적 적용으로 임명을 거부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허 대표는 군부독재 정권에게 당한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재심을 신청했다"며 "그런데 재심 제도를 오히려 불이익 근거로 삼은 윤석열 정부 행태를 강력 규탄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4·3과 희생자들, 유족에 대한 모욕"이라며 "허 대표 임명 거부는 제주 4·3 사건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이중적 태도를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4·3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유족을 대표하는 허 대표를 진실화해위원으로 임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진실화해위는 "국회에서 선출된 상임위원 2명과 비상임위원 3명 등 5명이 24일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몫으로 위원에 추천돼 국회에서 선출안이 통과됐던 허상수 4·3 희생자 및 피해자 유족회 공동대표는 대통령실의 거부로 임명되지 않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대통령이 허상수 대표를 임명하지 않은 것은 형사재심제도의 취지를 오해한 결정으로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이중처벌에 해당한다. 선고유예는 과거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으면서 형을 조정한 것에 불과하다.

허상수 대표는 1982년 당시 징역 8월에 1년의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받았는데, 그로부터 1년의 집행유예 기간이 지나면서 형법 제65조에 따라 이미 그 형의 선고는 효력을 잃게 되었다. 만약, 허상수 대표에게 형사재심법원이 판결한 선고유예의 효력을 강제한다면, 이는 동일한 사안을 두 번 처벌하는 것으로 헌법에서 천명하고 있는 이중처벌금지 원칙에 위반된다. 또한, 피고인을 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서만 허용되는 재심제도의 취지에도 명확히 반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23년 2월 19일 이후로 7명의 위원이 공석인 상태였다. 이러한 위원 공백으로 인하여 진실규명 신청을 심의하고, 조사 활동을 수행해야 할 소위원회 업무마저 마비되어,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제대로 된 업무수행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었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임명을 미뤄오다가, 허상수 대표에 대해서는 40년이 지나서야 명예를 회복한 재심판결에서의 형식적 선고유예를 사유로 임명을 거부하고 있다. 이는 산적한 과거사 진실규명 요구를 앞에 두고도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의 발목을 잡는 방해에 다름 아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과거사위 성명#

3.4.1. 대통령실의 임명 배제 미통보

대통령실은 지난 4월21일 허상수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 5명의 위원을 임명한 뒤에도 공식 문서로 허상수 대표의 임명 배제 사실과 사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이 국회를 통과한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더불어민주당 추천 몫의 위원에 대해 재심 선고 결과를 이유로 임명 배제 방침을 밝힌 지 3주가 지났지만, 국회사무처에 위원 재추천 요구서를 접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국회에선 국민의힘 추천 진실화해위 위원이 선출됐고, 정작 임명 배제된 위원을 추천한 민주당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출처: 한겨레 고경태

국회를 통과한 허상수 대표에 대한 임명이 거부됐는데 민주당은 이에 항의하는 성명서를 두 차례 내기는 했으나 국민의힘 추천 진실화해위원 투표 때 충분히 허상수 위원 임명 배제에 대해 문제제기할 수 있었는데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국민의힘 추천 진실화해위원 투표에 임했다.

2기 진실화해위원을 지낸 한 인사는 "국민의힘에서 재추천한 김웅기 변호사 선출안 때 허상수 공동대표 건에 대한 강력한 문제제기를 하고 대책을 만들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지금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때 어렵게 만든 진실화해위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하다.”고 말했다. 그는 “2기 진실화해위는 국가차원의 마지막 진상규명 기회”라고 덧붙였다.#

2기 진실화해위에는 2021년 5월27일 조사를 개시한 뒤 올해 1월31일까지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2만92건이 신청접수됐다. 1기 때 접수된 사건(1만1175건)보다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이 가운데 조사 진행중인 사건은 1만2918건인데, 진실규명이 된 사건은 1180건으로 10%도 안된다. 90%가 넘는 사건이 진실규명이 안됐지만 진실화해위 활동 기간은 내년 5월26일까지 1년여 남았다. 김광동 위원장은 지난 4월11일 충주 국민보도연맹 희생자 유해발굴 개토제 직후 유가족들과의 간담회에서 “1년간 아무리 조사를 빨리 진행한다 해도 45~55%의 사건을 종결할 수 있을 예정이라 위원회 활동 1년 추가연장을 계획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웅기 변호사에 대한 대통령실의 위원 임명이 이뤄질 경우 위원장을 비롯한 진실화해위 전원위원회에 참여하는 상임·비상임 위원 8명의 구도는 대통령 지명 및 국민의힘 5, 민주당 3이 된다.#

허상수 인터뷰

민주당의 대응이 부족하다는 고경태 기자와 달리 허상수는 민주당이 잘못한 건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허상수는 탄원서에 임명 배제가 위헌이라는 법률적 근거를 잘 설명했으니 대통령도 탄원서를 읽어보면 임명할 것이라고 매우 낙관적으로 생각중이다.

3.5. 하미마을 학살 피해자 신청 각하

법 문헌 해석에 대한 양측 입장은 전술했으니 참고. 그런데 각하측은 외국인은 진화위법이 규정한 진실규명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주된 논거였는데, 해외입양 피해자는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진실규명에 나서면서 같은 외국인인 베트남 하미마을 피해자들에게는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 형평성 문제가 있다. 진화위는 '외국에서' '전쟁 중'이라 다르다고 하는데, 하미마을 피해자는 배제하고 해외입양 피해자만 포함시킬 수 있는 기준을 만들려 노력한다고 비판받았다.

그 외 한겨레에서 보도한 각하측이 했다는 '국민통합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같은 애매모호한 말들은 너무 이상한, 모든 조사개시를 막는 기적의 논리. 법은 미래의 장기적인 국민통합을 말하는 것이지,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이 현재 일시적인 논란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그렇게 따지면 조사개시하지 않음으로써도 국민분열이 발생한다. 진화위에 신청된 모든 사건엔 논란이 있다.

사실 나무위키와 커뮤에서 전통적으로 베트남 전쟁/한국군/논란 제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측이 토론에서 이기는 등 우세하고 현실성도 의문이라 비판의 강도가 약한 것이지, 기본적으로 모든 신청은 가능한 한 각하시키지 않고 최대한 조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베트남 학살 조사개시 회의에서 각하측에서 국민통합 국민분열 같은 애매모호하고 비판받을 만한 발언이 많이 나왔다.

3.6. 김광동•이옥남, 부역자 가리겠다

“부역 혐의 희생자 중에 실제 부역자가 있었나?”는 질문에 김광동과 이옥남 1소위 위원장이 함께 “부역자가 있는지 세심하게 고려하려고 논의 중”이라며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진실화해위 위원장으로서 선을 넘는 발언을 했다는 비판이 진실화해위 안팎에서 나온다.“부역자 가리겠다”는 김광동…위원회에서도 “설립 취지 뒤엎는 극언”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 변호사는 “진실화해위는 공권력의 인권침해를 밝혀내고 인정하는 기관이다. 즉 공권력 행사의 불법성만 판단하면 되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이번 발언은 피해자가 인권침해를 당할만한 사람이었는지 살피겠다는 거다. 진실화해위 설립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3.6.1. 민간인 학살사건 유족의 김광동 위원장 형사고소

6.25 전쟁시기 대한민국 국군과 경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 사건의 유족이 김광동 위원장을 '사자명예훼손 혐의' 로 형사고소했다. 진실규명 결정서에 '악질 부역자' 표현 등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내용을 기술해 진실을 왜곡하고 모멸감을 줬다는 이유다. 불명확한 과거 경찰 자료를 기반으로 내린 결정이라는 뜻이며 유족은 '보고서를 받아보고 치가 떨린다' '아버지를 반역자로 만들었다"며 분개했다. 사건의 진상규명을 제기한 신청인이 진실화해위 위원장을 형사 고소하는 건 초유의 일이다.

김광동 위원장은 지난해에 '희생자 중 부역자를 선별하겠다'는 발언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고, 실제로도 경찰의 민간인 사찰기록을 진실규명 결정서에 그대로 실었다. #

3.7. 김광동,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보상 심각한 부정의", "적대세력 유족 거짓말", "더 고귀한 희생" 발언 논란

한겨레, KBS, 한국일보, 노컷뉴스, JTBC 등이 6월 9일 보도. 그 후 경향신문, MBC, YTN, 연합뉴스, 문화일보 등이 후속 보도를 이어갔다. 결국 국회행정안전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문제될 만큼 논란 된 발언.

김광동은 적대세력 피해 보상이 없는 것이 부정의하다는 이야기라며 맥락을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가 녹취록 전문을 공개하기 전까진 맥락을 알 수 없고, 김광동의 해명이 어느 정도 맞을 수도 있다. 아래 한국일보 기사처럼 저렇게 직전에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은 9일 서울 중구 영락교회에서 열린 조찬 강연에서 “인민군과 빨치산, 즉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이 (군경에 의한 희생보다) 더 고귀하고, 선(先)보상이 돼야 한다”며 “한국전쟁 시기 공산 전체주의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을 유공자로 기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침략자에 맞선 군인과 경찰이 초래한 피해에 대해 1인당 1억3,200만 원의 보상을 해주고 있다”며 “이런 부정의는 대한민국에서 처음 봤다”고 밝혔다.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 유족 중 진화위의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이들은 국가를 상대로 배ㆍ보상 소송을 제기해 보상금을 받아왔는데, 이게 부당하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한국일보

그런데 위 한국일보 기사는 녹취록을 그대로 쓴 건 아니고 녹취록을 가지고 있는 언론은 한겨레인데 이전 맥락이 어떻든 아래와 같이 군경 민간인 학살 피해자 보상 이야기 직전, 학살을 "침략자에 맞서 전쟁 상태를 평화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 것에서, 악마의 편집이 아니라 실제로 문제되는 발언이다. 맥락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따옴표 친 내용은 녹취록 내용 그대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침략자에 맞서서 전쟁상태를 평화상태로 만들기 위해 군인과 경찰이 초래시킨 피해에 대해 (희생자) 1인당 1억3200만원의 보상을 해주고 있다. 이런 부정의는 대한민국에서 처음 봤다. 지구상에서 이런 나라가 있어 본 예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침략자에 의해 초래된 희생은 감추고, 침략을 막는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을 ‘국가범죄, 국가폭력’이라는 이름으로 교육하고 1억3200만원씩 보상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겨레

맥락을 최대한 김광동에게 유리하게 가정해도 공개된 녹취록인 따옴표 친 발언을 보면, 아무리 봐도 학살을 국가폭력이라고 명명하는 것도, 보상도 마음에 안 든다는 말 아닌가? 학살에 대한 김광동의 가치관은 일반인의 가치관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 반박할 필요도 없어 보이고, 실제로 다른 위원들이 국제 인권법 위반이고 2차 가해라며 사과를 요구하는 중이다. "1억 3200만원씩"이라며 액수가 너무 많다는 듯이 강조하는데 살해에 1억의 배상은 다른 피해보상 판례와 비교해도 절대 큰 액수가 아니고 오히려 적은 금액이다. 인혁당 사건 배상금은 600억이다.

또한 김광동은 적대세력 피해자들은 보상금 때문에 군경에 희생됐다고 거짓말을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김광동은 2023년 5월 25일 기자회견에서는 군경 민간인 학살 조사가 느린 이유가 군경에 의한 학살 피해자는 빨갱이 프레임을 두려워해서 피해 사실을 밝히기 꺼려서라고 이야기했으면서 빨갱이 프레임을 자처해서 쓰는 사람이 그리 많다는 것인가? 불이익이 무서워 신청도 안 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착오로 신청을 잘못한 경우를 '거짓말'이라고 모함하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전술한 "더 고귀한 희생" 발언은 국민 차별이다.

참고로 학술적으로는 진화위가 쓰는 '희생'이란 표현도 문제가 있고 피해, 살해, 학살 등으로 써야 맞다는 지적도 있다. 희생이란 표현은 무언가를 위해 죽었다는 말로 들려《빨갱이의 탄생》에서 김득중 박사는 국가주의적이라고 지적한다. 진화위가 쓰는 "좌익사범", "처형" 표현도 지적받는다. 그러나 이런 세심함까지 기대하진 않는다. 조사를 공정하게만 하면 더 바랄 게 없다. 발언 논란도 본질적으로 국민 차별하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조사의 공정성이 훼손되니까 이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

3.7.1. 반응

안병욱 1기 2대 위원장은 “김 위원장은 진실화해위의 본질적 기능과 한국전쟁에 대한 기본 이해가 뒤죽박죽인 것 같다”며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자에 대한 배·보상이 필요하면 새로운 입법으로 추진하면 되는 것인데, 엉뚱하게 그동안 사법부 판결을 거쳐 진행한 보상을 잘못된 것인 양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병욱은 계속 이 문제에 대해 언론과 인터뷰하는데, “위원장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조사 결과가 왔다 갔다 한다고 하면 위원회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는 일”이라며 “진실화해위원회는 한국사의 여러 갈등을 봉합하고 여러 근거와 정황을 토대로 상식적인 판단을 내리는 곳인 만큼 위원장 입장과 관계없이 조사관들은 위원회 취지에 맞게 조사를 이어가야 한다”고도 말했다.#

다음은 이 발언으로 상처받은 당사자인 유족회의 입장이다. 다만 2023년 현재 유족회 간 갈등도 있는 것 같은데 외부인은 도저히 그런 것까지 알고 입장을 쓰기는 불가능하고(인터넷으로 매우 단편적 정보만 나옴) 언론이 보도하는 유족 입장을 실었다.

맹억호 충남 아산유족회 회장은 “침략자에 맞서서 전쟁상태를 평화상태로 만들기 위해 군과 경찰이 부녀자와 젖먹이 아이까지 적법한 절차없이 집단학살한 것이냐”고 되물었다. 맹 회장은 특히 이 발언이 영락교회에서 이뤄진 점에 대해서 유감을 표명했다. 서북청년단(서북청년회)은 1946년 북한에서 월남한 기독교 청년들을 중심으로 설립된 극우 반공단체다. 이들이 민간인 학살에 적극 가담했다는 증언 때문에 논란이 된 바 있다. 영락교회 재단이사장이었던 한경직 목사(1902~2000)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서북청년회를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명호 충남 서산유족회 회장은 “진실화해위를 설립한 기본법을 부정하는 자가 위원장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유족들에게 비수를 들이대는 데 그 사람이 대한민국 국민인지 의심될 정도다. 자진사퇴만이 최선의 길이라 생각한다”는 뜻을 밝혔다. 안원경 충북유족연합회장은 “민간인 학살은 국가범죄일 뿐”이라고 말했다.#

윤호상 한국전쟁유족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광동 위원장(국민의힘 추천)은 앞서 1기 위원회가 인정한 역사적 사실들마저 부인하고 모욕적 발언을 일삼는다. 최근(6월9일)엔 군경의 학살 희생자 유족들을 두고 ‘군인과 경찰이 침략자에 맞서다가 초래한 피해를 국가가 보상을 해주는 나라가 세계 어디에 있느냐’고 했다. 그것도 극우 테러집단 서북청년단의 온상이던 영락교회 조찬 기도회에서. 지난 20일엔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관 출신을 (조사국장) 최종 합격자로 발표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참고로 위 조사 1국 국장 채용 문제에 대해 안경호 유해발굴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은 고공단 국장급 같은 경우는 대통령 임명사항인데 여러 우려들을 언론을 통해서도 보았습니다. 다만 소위 가해 주체라고 할 수 있는 국정원이나 경찰이나 군이나 지금 위원회 16개 정부기관에서 파견 나와서 근무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한편 우려일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임명권자께서 그런 유족이나 언론의 우려들을 잘 감안해서 하시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윤호상 한국전쟁유족회장은 "김광동 1소위원장은 군경에 의한 희생 사건 조사를 갖은 구실로 지연시켰다. 조사 개시 사건도 보고서에 꼬투리를 잡고 퇴짜를 놨다. 그가 진실화해위원장에 취임한 뒤인 지난 4월27일 유족 간담회에서 따졌더니 ‘속도를 내서 순차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했는데 진전이 없더라. 6월15일에 이옥남 1소위원장을 다시 만났는데, ‘부역 혐의자’와 ‘부역자’를 구분하고 있다는 거다. 그게 말이 되나. 결국 진실 규명을 하지 않겠다는 거다."#라고 말했다.

유족회는 적대세력에 의한 피해자가 거짓말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누가 돈 몇푼 받자고 부모얼굴에 먹칠을 하고 거짓말을 하겠나. 설령 거짓말을 한다 해도 현재 진실화해위 조사관 정도면 흑백을 가릴 능력이 있을 거다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 외 한국전쟁 연구자인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적법한 조사과정을 거쳐 법원 판결을 거쳤을 텐데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법관 출신의 한 법조인은 “진영을 떠나 과거의 어떤 쪽 세력이든 정말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해원하기 위한 취지로 만든 법이므로, 이 세력은 안되고 저 세력은 되고 하지 말고 정확하게 이 법의 취지에 들어맞는지를 따지면 되는 문제”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특정 세력을 전제로 이 법을 해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3.8. 김광동의 전쟁 중엔 재판 없이 사람 죽일 수 있다 발언

영천 보도연맹 학살 사건의 유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나온 발언으로 한겨례는 전쟁 중엔 재판없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발언이 '법률에 의한 재판 받을 권리'그 명시된 헌법은 물론 한국전쟁 당시 계엄법상으로도 맞지 않고 진실화해위의의 판단 과도 대비된다고 지적했다. #

김광동은 10월 10일 영천유족회원들과의 만남, 10월 13일 국정감사, 10월 17일 전체위원회, 10월 18일 한겨레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18일에는 전시 즉결처분의 법적 근거를 묻는 기자에게 "계엄법에 있다" 고 답했다. "몇조 몇항이냐" 고 재차 묻자 "계엄법을 다 읽어보라" 고만 했다. "전 세계의 모든 계엄령은 전쟁이 발생하면 비상조치령과 계엄령이 발동되고, 계엄령이 발동되면 곧 군 지휘관이 사법권을 행사하게 되어 있다" 고 주장하면서 "왜 가짜뉴스를 유포하느냐"는 지적에 대해 "모욕을 한다" 며 "계엄법에 다 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나 1948년 7월5일 공포된 국방경비법, 1948년 11월30일 공포된 국군조직법과 김광동 위원장이 직접 인용한1949년 시행된 계엄법 어디에도 관련된 근거가 없었으며, 헌법과 법률에 뿌리가 없는 즉결처분 훈령은 1951년 7월10일 육본훈령 제191호에 의해 취소되었다. 게다가 애초부터 관련 조항은 민간인에게 적용될 여지가 전혀 없었다. 또 진실화해위는 이미 과거 비슷한 사례들에 대해 위법하다고 판단했으며, 국가배상 판결도 내려졌었다. #

3.9. 진실화해위 국장의 막말 논란

국정원 대공관 출신인 황인수 국장이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피해를 입은 유족들을 겨냥해 "유족들이 돈을 뜯으려 거짓말을 한다"는 막말을 해 논란이 일었다.

또 진실화해위 조사관들에게 "신청인들은 국가로부터 돈 뜯어내려고 거짓말하는 사람들"이라는 주장을 일삼으며 "이를 막기 위해 내가 진실화해위에 왔다는 말도 했다"는 발언도 한것이 확인됐다. 황인수 국장은 조사관들에게 "종북 척결" 취지의 편지을 보낸 것이 밝혀졌으며, 채용 당시부터 자격을 두고 논란이 일었던 인물이다. # #

3.10. 전시 즉결 처분 정당화 논란

1 공화국 시기 대한민국 경찰이 자행한 진도 학살 사건의 미성년자 피해자들을 부역자로 내몰아 논란이 일었다. # # # #

3.11. 민간인 학살 진실규명 불능 처리 지시 논란

김광동 위원장은 2024년 4월1일자 회의에서 많은 진상규명 요청으로 업무가 적체된다는 명분을 내세우 "규명 불가능한 사건은 주저 없이 불능 처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또 근래 논란을 빚은 안기부 출신 황인수 조사1국장의 제안으로 가동을 시작한 보고서 검증팀이 오로지 반대 입장에서만 민간인 학살을 다룬다는 주장도 제기되면서 진실규명의 발목이 잡힐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3.12. 진도 가족 간첩단 사건 무죄 판결 부정

[단독] 재심 무죄인데‥"진도 간첩단, 조작 아니다" 황당 교육 (2024.07.10/뉴스데스크/MBC)
1980년에 발생한 '진도 간첩단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전남 진도 지역에서 가족과 친지들을 간첩 혐의로 체포해 불법 구금과 고문을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낸 사건이며, 2009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관 출신인 황인수 국장은 이 사건이 간첩조작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고문을 절차상 문제로 치부했다. 거기다가 학살 사건을 조사할 때는 "북한의 만행 세 건이면 남한의 만행 세 건하는 그 정도는 괜찮아요. 제가 용인한다 그랬잖아요. 숫자적인 균형을 맞춰야 되겠구나 생각을 가져달라는 겁니다."라고 하며 남북 진영의 균형을 맞추라고도 주문하기도 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황 국장은 MBC와의 문자와 전화 등 10여 차례 연락에도 아무 답이 없었다.

김성회,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어떤 쪽이든 사실관계를 비틀어야 된다는 압박을 공개적으로 국장이 조사관들에게 했다고 밖에 볼 수 없고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밝혔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과거사위원회가 7월 15일 논평을 내고 “국가범죄를 정당화하고 진실화해위의 존재 이유를 부정한 황인수 조사1국장은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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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대구 10월 항쟁 추모식 유족 모욕 논란

해방 직후 발발한 첫 대규모 민중항쟁으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던 대구 10월 항쟁를 기리는 위령제에서 진실화해위원회가 10월 항쟁을 '10월 사건' 격하하고 추도사의 중요한 부분을 빼고 낭독해서 논란이 불거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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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월 16일 한겨레가 탈락 사실만을 짧게 단독보도한 뒤 17일 여러 언론이 탈락 이유를 분석하며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