陳定南(진정남) / Chen Dingnan, David Chen
1. 개요
대만(중화민국)의 정치인이다. 민주진보당 소속이었다.2. 상세
1943년 9월 29일 대만일치시기 현재의 이란현 지역에서 태어났다. 국립타이완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뒤 사업에 종사했는데[1] 꽤 돈을 많이 벌었다. 그렇게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던 도중 메이리다오 사건과 린이슝 일가 피살 사건이 터지자 대만의 민주화 진영에 합류했다. 1981년 무소속으로 고향인 이란현 현장 선거에 출마하여 중국국민당 후보를 7,000여표 차이로 꺾고 당선되어 처음으로 국민당 소속이 아닌 현장이 되었으며, 범람 및 오염하천으로 악명높았던 둥산허(冬山河)를 복원해 휴양지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하는 등 행정능력을 인정받아 4년 뒤인 1985년에도 재선에 성공했다. 1988년 자신이 현장으로 있던 이란현내 영화관에서의 중화민국 국가 상영[2]을 폐지했다.1989년 중화민국 입법원 입법위원(한국의 국회의원에 해당)으로 당선되었고 2000년까지 4선을 했다. 1993년 민주진보당에 입당했고 1994년 주민 직선제로 전환된 타이완 성 성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중국국민당 쑹추위 후보에게 패하며 낙선했다. 2000년 같은 당의 천수이볜이 총통에 선출되자 입법위원직을 사퇴하고 법무부장(법무부장관에 해당)으로 임명되었으며, 재직 기간동안 부패혐의를 받는 입법위원들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의욕적으로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노력하며 "미스터 클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하지만 천수이볜 총통이 후일 매머드급 비리의혹에 시달리게 되며 천딩난 법무부장의 부패척결을 위한 노력은 다소 빛이 바랬다. 부패에 엄했던 천딩난 법무부장이 사퇴하면서부터 천수이볜 총통의 부정부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이는 결국 천 총통의 퇴임 후 구속과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이어지는 민진당의 암흑기를 만든다.
2006년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정치 일선에서 은퇴했고 2006년 11월 5일 사망했다. 그가 현장을 지낸 이란현에는 천딩난 기념관이 조성되어 추모객들을 맞고 있다.
훗날 대만의 총통이 되는 라이칭더는 의사 시절 천딩난의 타이완 성장 선거운동을 도우며 정계에 입문했으며, 그를 가장 존경한다고 밝힌 바 있다. 범록연맹 계열에서는 매우 높이 평가받는 정치인이다.
3. 선거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81 | 현시장선거 | 이란현장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2,099 (22.81%) | 당선 (1위) | 초선 |
1985 | 현시장선거 | 140,923 (69.98%) | 당선 (1위) | 재선 | ||
1989 | 제1대 입법위원 선거(증액선거) | 이란현 | 90,389 | 당선 | 초선 | |
1992 | 제2대 입법위원 선거 | 74,036 (35.62%) | 당선 | 재선 | ||
1994 | 성장선거 | 타이완성 | | 3,254,887 (38.72%) | 낙선 (2위) | |
1995 | 제3대 입법위원 선거 | 이란현 | 93,644 (54.84%) | 당선 (1위) | 3선 | |
1998 | 제4대 입법위원 선거 | 42,099 (22.81%) | 당선 (3위) | 4선 | ||
2005 | 현시장선거 | 이란현장 | 112,853 (47.75%) | 낙선 (2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