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06 17:37:51

진조의

陳祖義
? ~ 1407년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

1. 개요

명나라 시기의 해적.

2. 생애

광동 조주 사람이자 구항(舊港)의 해적 두목으로 홍희 연간에 가문이 남양으로 이주했으며, 말라카에서 10여 년 동안 해적 활동을 해서 전성기에는 1만 명이 넘고 전선이 100여 척이었으며, 일본, 대만, 남해, 인도양 등에서 활동했고 약탈한 배가 1만여 척, 공략한 연해의 도시가 50여 곳에 달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로 인해 홍무제는 50만 량의 백은을 현상금으로 걸고 체포하려 하자[1] 팔렘방으로 달아났으며, 마나자무리 수하에서 대장 노릇을 하다가 마나자무리가 죽자 해적들을 소집해 스스로 팔렘방의 왕이 되었다.

1406년에 아들인 사량을 보내 명나라 조정에 입조하게 했으며, 명나라 조정에 공물을 바치면서도 해상에서 해적질을 해서 조공 사절로 왕래하는 자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1407년에 정화가 서양으로부터 돌아오면서 사람을 보내 위로했는데, 진조의는 거짓으로 항복한 뒤 몰래 약탈을 도모했다.

그러나 시진경이 이 사실을 정화에게 알리면서 진조의는 정화를 습격했다가 오히려 5천여 명이 죽고 생포되었으며, 9월에 명나라 조정으로 끌려가 영락제가 각국의 사신이 보는 앞에서 처형하어 효수했다.

3. 대중매체에서

2009년 드라마 정화하서양에 등장한다. 교묘한 계략으로 교전없이 정화의 함대를 위기로 몰고 갔으나 배를 빼앗겠다는 욕심에 무리하게 교전하다가 체포되고 참수된다.


[1] 백은 50만냥이라는 액수가 사실이라면 진조의는 역사상 가장 많은 현상금이 걸린 현상수배범중 하나일 것이다.